2011.8 |
[아름다운 당신] 메이드 인 전주 : THE BAND
관리자(2011-08-17 18:55:41)
5개 도시투어 공연 마친 <메이드 인 전주 : THE BAND> - 우리는 전주의 인디밴드다
- 글 황재근 기자, 사진 최민규 사진가
지난 23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연지홀에서는 낯선 광경이 펼쳐졌다. 객석에 가만히 앉아있어야 할 관객들은 공연 중에도 아랑곳 않고 일어서서 몸을 흔들었다. 한술 더 뜬 이들은 아예 자리를 박차고 무대 앞에 진을 치고 날뛰었다. 상당수의 관객들은 제자리에 앉아있었지만 손을 들어 흔들거나 고개를 까딱이는 것은 마찬가지.클래식, 국악, 연극, 뮤지컬 다양한 공연이 연지홀 무대에 올랐지만 아마 이런 난장판을 만든 공연은 이번이 처음이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락 장르의 공연이 연지홀에서 열린 것이 이번이 최초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전국 투어를 하는 유명밴드가 아니라 이름도, 얼굴도, 노래도 낯선 지역 인디밴드들에게. <메이드 인 전주 :THE BAND>(이하 <메이드 인 전주>)라는 이름을 당당하게 내건 이번 공연은 3일에 걸쳐 초청 밴드 4팀(바닐라 유니티, 피아, 비갠후, 라이밴드)과 전주의 인디밴드6팀(9Ears, 레이디스 앤 젠틀맨, Cryim, 휴먼스, S.T.M.B, ATLAT순수)이 무대에올라 연지홀을 뒤집어 놓았다.하이라이트는 6팀의 지역밴드들이 공연을 펼친 둘째 날 23일. 각각의 개성을 가진 6팀의 밴드들이 뿜어내는 열정적인 사운드는 500여명 관객을 어렵지 않게 집어삼켰다. 웃통을 벗어젖힌 보컬이 포효하고 일렉기타가 성난 야수처럼 울부짖을때는 객석도 함께 일어나 요동쳤다. 감성적인 어쿠스틱기타 선율에 호소력 짙은 목소리가 공연장을 메울 때는 객석도 손과 발, 고개를 까딱이며 함께 리듬을 탔다.6시부터 시작된 공연은 장장 3시간을 넘겨 9시가 돼서야 마지막 순서에 다다랐다. 6팀의 밴드가 모두 한 무대에 올라 엔딩을 장식하기 위해 새로 만든 곡‘stand up’을 함께 열창했다. 객석을 떠나는 관객들에게 인사를 하는 시간. 한사람이 무대 가운데로 끌려 나왔다.“오늘 많이 와주셔서 감사드리고요….”그는 말을 잇지 못하고 목이 메었다. 바로이 유쾌한 난장의 주모자 격인‘아트스페이스 레드제플린’의 정상현 대표였다.
우리도 메이드 인 전주다
지난 2002년 기린로에 문을 연 라이브 클럽‘레드제플린’은 알 만한 사람들은다 아는 전북지역 인디밴드들의 아지트였다. 그러나 여전히 모르는 사람들은 전혀 모르는 곳이었고, 도매시장 채소배달까지 하며 적자를 메웠던 정상현 대표도결국 지난 2006년 폐업을 선택하고 말았다. 그 후 그는 악기 판매대여점과 밴드공연 기획을 하며 노하우를 쌓아 지난 2010년 2월, 폐점한 구 프리머스 극장을임대해 전문공연장‘아트스페이스 레드제플린’을 다시 열었다. 전주의 이름을 내걸고 하는 전주 인디밴드들의 공연에 그가 기획을 맡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메이드 인 전주>는 전주 인디밴드들이 지난 6월부터 한 달여에 걸쳐 진행한5개 도시 투어공연의 제목이다. 서울, 부산, 대구, 광주를 돌며 전주의 이름을 걸고 공연했던 6개 팀이, 23일 홈그라운드에서 화려하게 마침표를 찍은 것이다.전주 공연은 한국소리문화의전당과 공동 주최로 열렸다. 이번 투어공연에 참가한팀은 모두 앨범을 발매하고 지역에서 꾸준하게 활동해온 전업밴드들이다.이 만만치 않은 프로젝트의 시작은 아주 단순했다. 정대표가‘지역팀들이 단체로 서울대회에 출전하면 어떨까’고민하던 중 9Ears의 기타리스트 이동석 씨가“그냥 우리가 뭉쳐서 투어공연을 해보자”고 제안했던 것. 곧바로 다른 밴드들과논의가 진행됐고 별다른 이견 없이 의기투합이 이뤄졌다. 동석 씨는“다들 상현이 형을 신뢰했기에 할 수 있었던 일”이라고 말했다.전주라는 이름을 내걸고 타 지역을 순회하는 공연은 이번이처음이다. “10년 전쯤에는 지역밴드 3~4팀이 함께 투어공연을 한두 번 있었고, 이번에 참가한 팀들도 개별적으로는 다른 지역에서 여러 차례 공연을 했지만 전주를 내걸고 한 적은 없었죠.”정대표의 설명이다.그럼 의미심장한 공연 제목 <메이드 인 전주>는 어떻게정해진 걸까. 정대표는“사실 우리가 전주를 대표한다고 생각하지는않는다”고말한다.“ 오히려역발상으로어필하려고한 거죠. 전주에서 뭔가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누구나‘메이드 인 전주’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거잖아요. 인디밴드들도 딴따라가 아니라 열심히 하는 예술인으로 봐주셨으면 한다는 의미죠.”전주하면 비빔밥, 국악, 영화제 등을 특산품처럼 떠올리는이들에게 이런 생산물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는 것이다.그렇다면 전주산 인디음악의 색깔은 무엇일까. “인디씬도지역마다 조금씩 다른 특색이 있어요. 예를 들어 부산은 헤비메탈 쪽이 강세고, 대구는 펑크 쪽이죠. 전주는 모던락의비중이 높아요. 우리나라에서 전반적으로 모던락이 대세라영향을 받은 부분도 있죠. 또 다른 특징은 가사전달이 잘되고 전반적으로 점잖다는 점이에요. 그래서 전주 정서와도 잘맞죠.”정대표의 설명이다.Cryim의 기타리스트 서기춘 씨는“작은 규모에 비해 다양한 색깔을 지녔다”는 점이 전주 인디씬의 특징이라고 말한다. “전주에는 전국의 장르가 다 있어요. 하드락도 있고 소프트한 음악도 있고 힙합과 크로스오버도 있고. 어떤 관객이와도 취향에 맞는 음악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 장점입니다.”
다양한 개성이 전주 인디씬의 매력
이번 공연에 참가하는 밴드들도 각기 다른 특성을 지닌 팀들이다. 9Ears는 그 중에서도 가장 도드라진다. 악기를 다루는이는 기타리스트 겸 프로듀서인이동석 씨 한 명뿐이다. 나머지 3명은 래퍼다. 이동석씨는“힙합의 DJ 역할을 기타로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라고 설명한다. 락의 사운드에 파워풀한 래핑이 더해져 폭발적인 무대를 선보인다. 장기하와 얼굴들, 10cm 등 유명 인디뮤지션들의 음반을 제작한 미러볼뮤직과 계약해 두 번째 싱글앨범을 선보일 예정이다.S.T.M.B는 이번 투어 참가팀 중 평균연령이 가장 젊은 팀이다. 팀원 대부분이 아직 20대다. 투어 일정 내내 오프닝공연을 맡아 분위기를 띄우는 역할을 멋지게 수행했다. 자신들은 특별히 장르를 규정짓지 않고 있지만 듣는 이들은 펑크 락에 가깝다 말한다고. 신나고유쾌한 그들의 음악은 밴드의 모토인‘전주의 유쾌한 청년 록큰롤 집단’에 잘 어울린다.보컬인 윤준홍씨는 레이디스 앤 젠틀맨의 객원보컬도 맡고 있다.Cryim은 지난 2007년 결성된 전라도 대표밴드 중 하나다. 밴드명은‘I’m Cry’를 재조합해 지었다고. 모던 록 스타일을 바탕으로 포크적인 분위기를 가미한 음악을 들려준다. 특별히 장르에 구애받기보다 과장된 사운드를 덜어낸 부담 없고 소박한 감성과 일상적인 삶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휴먼스(HUMAN’S)는 이번 투어 참가팀 중 유일하게 여성 비율이 과반수를 넘는 팀이다. 5인조 여성밴드였던 롤리폴리의 멤버들과 퓨전그룹 오감도의 리더 안태상 씨가 의기투합해 결성했다. “멤버 각자의 개성과 취향이 달라서 각자의 색깔대로 작곡에 참여했다”는 이들은 무지개처럼 서로 다른 색이 모여 더욱 멋진 음악을 추구한다.ATLAT순수는 투어 최고령 멤버와 최연소 멤버가 모여 있는 팀이다. 지난 2006년 보컬을 맡고 있는 이미순 씨와 기타를 맡은 이철수 씨가 주축이 되어 결성했다. 순수란 밴드명은 두 사람이름의 마지막 글자를 따서지었다. 여기에 23살의 젊은 드러머 이찬영씨가 합류해 3인조로 활동 중이다. 이철수 씨와는 20살 차이가 난다고. 여러 가지 장르의음악을 하면서도 이들이 놓지 않는 것은 가사를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다. 우리가 잊고 지내던 순수함과 곳곳에 숨겨져 있는 사회적 아픔들을 음악에 담고 있다.레이디스 앤 젠틀맨은 소년, theB, 다방밴드, 써니 데이즈 등의 멤버로 유수의 음반을 발매하고 전주와 서울을 오가며 활발한 활동을 펼쳤던 이들이주축이 돼 만든 팀이다. 발라드, 락앤롤, 하드락 등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폭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준다.이들은 음악으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20대 후반부터 30대 후반까지 동세대들에게 공감할 수 있는 정서를 담아 음악을 통해 대화를 건넨다. 그래서첫 번째 정규앨범의 이름도 <Conversation>이다.
전주 인디씬의 오늘과 내일
지역 인디음악계가 넓지 않은지라 이들 6팀은 이미 친밀한 사이다. 이번 투어는 이들의 관계를 더욱돈독히 다지는 계기가 됐다. 버스를 대절해 타 지역을 다니다보니 마치 MT를 가는 분위기였다고.<메이드 인 전주>라는 제목을 내걸고 한 팀으로움직이는 이상 공연에 임하는 마음가짐도 달라질수밖에 없다. 서기춘 씨는“이전에 1:1 싸움을 하러가는 기분이었다면 이번에는 든든한 백과 함께 간기분이었다. 우리 팀만 공연을 할 때는 Cryim을알려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이번 투어에서는 전주를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더 크게 들었다”고 말했다.전업으로 락밴드 활동을, 그것도 수도권 외 지역에서 한다는 것은 춥고 배고픈 길일 수밖에 없다. 짧아도 3년 이상의 기간 동안, 적어도 한 장 이상의 앨범을 발매한 베테랑 팀들이지만 음악만으로 생계를 꾸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부분 실용음악학원 강사나방과 후 교사 활동 등을 병행할 수밖에 없다.레이디스 앤 젠틀맨의 베이시스트 정성환씨는“서울을 제외하고 나머지 지역의 상황은 비슷한 편”이라고 말한다. “오히려 전주는 인구에 비해 많은 팀들이활동하고 있는 편입니다. 라이브클럽도 2~3군데 있고요. 지역에서 활동한다고 음악적 기량이 낫고 떨어지고를 평할 수는 없잖아요. 타지에서 불러주면 공연을 할 수는 있지만 기반은 전주에 계속 두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자라고 살아온 곳에서 활동하는 것이 마음이 편하고 이곳에서 제가 받은 영향과 나의 삶이 맘에 들기 때문에 굳이 다른 지역에서 활동할 생각은 없습니다.”현재 전주에는 정상현 대표가 운영하는‘레드제플린’과 ATLAT순수의 기타리스트 이철수씨가 운영하는‘지금’, 두 개의 인디레이블이 있다. 음반제작 환경이 간소화되면서 녹음부터 믹스, 마스터링을 비롯한 모든 음반작업과 온라인유통까지 지역에서 진행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전에 비하면 지역에서 활동하는 여건이 좋아진 편이라 할 수도 있다.9Ears의 이동석씨는 조금 생각이 다르다. “아무래도 지역에서는 대중에게 노출되는 빈도가 낮으니까요. 기회가 된다면 더 큰 무대에서 활동해보고 싶습니다. 그래도 우리의 뿌리가 여기라는 것은 확실히 해야죠. 이번 투어도 그런 의미를 갖고 있고요.”이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바로 선입견이다.ATLAT순수의 이철수 씨는 고등학교 밴드시절부터25년을 지역에서 활동해온 베테랑 인디뮤지션이다.“여전히 밴드음악은 과격한 것이고 락 밴드 뮤지션들은 불량한 사람들이라는 인식들을 많이 갖고 있어요.지자체에서 주는 지원금을 신청하려 해도 그런 인식때문에 어려움이 많죠.”그런 의미에서 이번 연지홀 공연이 갖는 무게는 가볍지 않다. 서기춘 씨는“일주일 전부터 벅찼다”고 할정도다. “인디씬에 있으면서 이런 공간에서 공연할 기회가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분명히 이후에이 순간을 다시 기억하게 될 것 같습니다. 후배들은 이런 곳에서 자주 공연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정성환 씨는 이번 공연을“지금까지의 전주 인디씬을정리해보는 자리”라고 의미를 부여한다. “지금 함께 공연하고 있는 친구들 중에는 고등학생 시절에 만났던 친구들도 있어요. 이번 우리 공연을 보는 후배들 중에는새로 밴드를 만들어 우리와 함께 공연하게 될 이들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내년, 내후년에도 이런 프로젝트가진행되고 더 많은 밴드가 함께했으면 좋겠습니다.”정상현 대표 역시 앞을 내다보고 있다. 정대표는 이번투어의 영상과 음악을 담아 앨범을 제작할 계획이다. 투어 과정과 전주 인디씬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도방송국에서 제작 중이다. 투어는 끝났지만 전주 인디밴드가‘메이드 인 전주’특산물로 거듭나기 위한 여정은이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