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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7 |
[서평] 「엄마, 없다」 - 김민아 저
관리자(2011-07-12 16:52:22)
관계, 실종되지 않는 딜레마 - 이영진‘여성다시읽기’회장 흔히 여성들을‘관계 지향적’이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여성들이 관계를 맺고 이어나가는 데 남성이라는 성별에비해 능숙하기 때문’이라고도 말한다.하지만‘관계 지향적’이지 못한 여성들도 있다. 그‘관계 지향적’이라는 말은 여성을 가두고 수많은 종류의 모성을 가두고, 또 다양한 모습을 지닌 여성성을 가두는 여성들의 감옥이 될 수도 있는 말이다.<엄마, 없다>는 11개 단편으로 이루어진 김민아의 첫번째 단편집이다. 그러나 정확하게 말하면 단편집이라고하기에는 뭔가 넘치는 게 있다. 이 작품 속 주변인물이 다음 작품에서는 주인공이 되고, 저쪽 작품의 가해자인 듯한 인물이 이쪽 작품에서는 또 화자가 된다.이처럼 책 전체가 각각 다르면서도 하나의 이야기를 구성한다. 그 전방위적인 관계들이 좁은 세상 속에서 복닥거리는 존재들을 디테일하게 보여주기도 하지만 조금은숨이 막히기도 하다. 마치 벗어날 수 없는 거미줄처럼 말이다.첫 번째 단편인 <엄마, 없다>의 입양아는 <목욕 친구>의 며느리인 선미. <지급명세서>속 지혜가 붕어빵을 건네는 옆자리의 여자는 <경혈>의 금옥이다. 또한 <지급명세서>의 마지막 장면인 라디오의 사연을 보낸이는 <비밀번호2269>의 수연이다. <껌 두 알>의 영주와 <굳은살>의 현은 연인관계이다. <선생님이라면 어떻게 하겠어요?>의 영아와 <경혈>의 금옥은 한 남자를 동시에 사랑하는 인물들로 <롤러코스터> 집단 상담에서 만나 서로의사랑과 소망을 기원해준다. 그 마지막 장면은 좁은 마당의 먼지를 휩쓸고 지나가는 회오리바람처럼 쓸쓸하다.김민아가 그린 여성들은 세상의 변방, 사각지대에서 살아가고 있다. 격렬함도 없이 담담하게 그녀들의 고통과불행을 그리지만 자간과 행간 사이에 숨은 그 고통들은읽는 이의 심장에 피 한 방울 똑 떨어뜨린다. 작품들은 하나하나 차분하지만 지독한 리얼리티를 담고 있다. 함부로희망과 기대 그리고 기운찬 대안을 내놓지 않는다. 멀미가 날 정도로 현실적이라 한 순간 책을‘탁’덮고 싶기도했다.<엄마, 없다>의‘엄마, 없다’놀이를 하며 엄마는 즐거워하지만 고아로 자란 아이에게는 상실감만 안겨준다. 끝내 그 상실감은 현실이 된다. <목욕친구>에서 <엄마, 없다>의 입양아 선미의 전 시어머니는 자신의 딸들의‘엄마가 어떻게 그럴 수 있어?’‘엄마는 그러면 안되는 거야’하는 말들에 지들이 직접 엄마를 고르든가 라고 사납게 내뱉는다. 그러면서 선미가 더 딸들보다 미더웠다고고백하지만 선미는 아마도 자신이 날 때부터 엄마가 없어서 복숭아벌레처럼 엄마를 괴롭히는 방법을 몰라서 그랬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작가는 가족 간의 사랑, 역할에 대한 상식이 얼마나 허구적인지 담담하게 보여준다.<비밀번호2269>에서 18살까지 고아원에 빌붙어 살던 주인공에게 고아원장은 할머니를 소개해주면서 이렇게 말한다. “서로가 서로를 돌보면서 살면 좋겠지. 할머니와 기대면서 살아봐. 피붙이가 큰의미가 없다는 걸 알게 될 거야.”대학청소부인 할머니가 농성 중에 삭발을 하던날, 학교가 고용한 깡패용역들에 의해 부서진 비닐문을 덧대고 피켓을 손보던 날 손녀도 도서관을 나와 앞치마를 두른다. 아마도 이 모진 삶에서 이렇게다시 시작하는 것이 이들에게는 희망일까. 홍대 청소부 아주머니들의 그 고통스러웠을 농성이 생각나마음이 쓰라렸다.<껌 두 알>의 영주와 현은 장거리 연애를 하는연인이다. 읽다보니 그들은 동성연애를 하고 있었지만 작가는 이 연인들을 특화시키지 않는다. 편견없이 그녀들을 볼 수 있게 한 작가의 마음씀씀이가다정하다. 이성애 연인들과 다르지 않게 그녀들은서로의 판타지 속에 구축된 모습으로 상대를 사랑한다. 그 사랑은 20대들의 취업문제, 정체성들과뒤얽혀 점점 더 미궁에 빠질 뿐이다.자신의 남편은 절대로 바람피우지 않을 거라고믿던 영아에게 뒤통수를 치는 <선생님이라면 어떻게 하겠어요?> 속 사건들은 사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일상성이 되어버린 일부일처제속 불륜. 그러나 우리들은 여전히 믿고 있다. ‘내남편은그럴위인도못돼’,‘ 설마내아내는나밖에몰라. 심지어는 콩나물 값도 몰라’등등.가는 영아 남편의 불륜상대인 그녀에게도 말을하게 한다. 그러나 <경혈>에서 탈북여성인 금옥은살아남기 위해 사랑하는 남자도 모르는 사람이라고말할 수밖에 없다.<롤러코스터>에서 집단상담을 하는 여성들 속에서도 갈등은 있다. 너무 많은 말을 해도 눈총을 받고, 듣기만 하고 미소 뒤에 숨는 사람도 공격을 당한다. 그러나 한 사람이 힘들다고 느끼면 다른 집단원들이 거들면서 같이 상황을 정리해 나간다. 현실속의 관계도 그와 같다면 사는 게 수월해 질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금옥과 영아는 그곳에서 관찰자와내담자로 만나지만 알아보지 못하고, 서로의 소망과 안녕을 기원해준다. 일견 씁쓸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지만 이러한 타자들과의 부딪힘이 가끔은위로가 되어줄 수도 있다.피붙이도 아니지만 서로 기대고 어루만지고, 위로해 줄 수 있다. 사랑도 지나고 나면 바람 같은 것이며, 피붙이 가족들 간의 사랑도 언제든 무너질 수있다는 것을 작가는 차분하지만 냉정하게 말한다.유한한 존재로 살면서 관계는 영원할 것이라고믿는 것은 오만한 게 아닐까? 가족이라는 울타리가어떤 이에게는 감옥일 수도 있다. 그리고 어떤 사랑은 누군가에게는 억압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엄마도 항상 그 자리에 있는 것은 아니고, 없을 수도 있고, 다른 자리에서 다른 모습으로, 다른 엄마로 있을 수 있다. 세상의 모든 엄마는 다 다르다. 그걸 인정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가. 판타지 속 엄마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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