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7 |
[서평] 「불안의 시대」 - 기디언 래치먼 저
관리자(2011-07-12 16:51:51)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불안에 흔들린다
- 최형식 예원예술대 교수
「불안의 시대」라는 책의 제목만으로 나는 언뜻 독일영화「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가 생각이 났다. 몇 년 전 독일영화에 대한 강좌에서 다루었던 인상 깊은 영화여서 그런지‘불안’이라는 단어는 그 이후 오랫동안 나에게 고유명사가된 듯하다.이 영화는 청소부로 일하는 독일 여자 에미와 그녀보다20세정도 나이가 어린 모로코출신 이주 노동자 살렘의 사랑, 두 사람에 대한 주위사람들의 선입관과 차별 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되는 두 사람 간의 갈등을 다루고 있다. 여기에서 두 사람이 겪는 불안한 심리적 상태는 영화를 관통하고있다. 매우 빠르게 전개되는 화면뿐만 아니라 그 배경음악도 관객들로 하여금 불안을 극대화 시킨다. 영화의 핵심은가난하고, 독일어도 제대로 못하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독일인들의 편견과 배척이다. 에미의 동료들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인색하고, 더럽고, 범죄를 저지르며, 게을러 독일인들의노동의 대가로 산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부정적인 속성을부여받은 낯선 자들은 냉대와 멸시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아마 영화감독 파스빈더(Rainer Werner Fassbinder)가원했던 바는 불안하지 않은 삶, 고독과 소외, 편견과 질시보다 이해와 존중, 소통과 사랑이 있는 사회였을 것이다.이 영화가 제작된 시대적 배경이 70년대 초 석유파동으로 인한 경기침체라는 점에서 외국인들에 대한 독일인들의반감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60년대, 70년대는 전후 최고의 경제부흥기였음을 부인 할 수 없다. 이시기에 독일인들은 나치시대에 그랬던 것처럼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 타자에 대한 편견으로 자신들의 불안을 떨쳐 버리려고 했던 것일까? 타자의 불안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이러한 점에서 기실 불안이란 현대인의 삶의 일반적인 조건이라 할 수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언제는 불안의 시대가 아니었던 적이 있었나?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된 68혁명 역시1960년대 어느 무엇도 부러워할 것이 없었던 시대의 젊은대학생들이 주체였다. 도대체 그들은 무엇에 불만을 가졌으며, 무엇을 불신한 결과 그토록 불안에 떨어야 했는가? 전쟁을 경험하지 않았고, 독재자를 겪지 않았으며 부족한 것을전혀 몰랐던 그들에게도 불안은 여지없이 찾아온 것이다.이야기가 주제에서 많이 벗어났다. 기디언 래치먼(Gideon Rachman)의 <불안의 시대>는 그 내용이 좀 다르다. 저자는『The Economist』와『Financial Times』에서외교문제를 주로 다루는 비교적 젊은 컬럼니스트로 세계적인 이슈가 등장할 때마다 매스미디어에 단골로 초대받는 유명 정치평론가이다. 이 책은 여유롭게 누어서 읽을 정도의(양적으로나 질적으로) 가벼운 책이 아니다. 다시 말해 독자가 어느 정도의 정치적, 경제적, 역사적 식견을 갖추지 않고는 저자의 의도한 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사회과학 저서이다. 저자가 책에서도 밝혔듯이 내용의 상당부분은 전문학술지에 이미 발표한 것도 부분적으로 포함되어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책 내용의 중심은‘미국과 세계화’이다. 미국이 세계화의 중심이고 미국에서 글로벌 경제적 위기가 닥치니 세계화가 삐걱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니 세계화에 대해 어느 정도 비판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나로서는 책을 읽는 내내 불편한 감정을 숨길 수 없었다.이 책은 세계화의 시대에 세계의 모든 국가들이 시장경제의논리 속에서 협력하면 모두가 풍요로워질 수 있다고 믿었던 낙관의 시대가 어떻게 분열과 경쟁으로 대립하는 세계, 즉 윈윈(win-win) 전략의 시대에서 어떻게 제로섬(zero-sum)의 시대로 이행하고 있는지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제로섬세계를 플러스섬(plus-sum) 세계로 전환할 수 있는지 그 대안까지도 제시하고 있다.(그래서 그런지 책의 원제목은‘Zero-Sum Future’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언론계에 몸담기 시작한이후 집필시기까지 지난 30년 동안 저자가 직접 관찰하고 분석하며 경험하였던 세계화의 짧은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30년의시기는 또다시 세시기로 나뉜다. 첫 번째 시기인 ‘전환의 시대’는 세계화를 위한 조건이 성숙되던 시기로서 중국 공산당 제11기 중앙위원회 3차 전체회의가 열리던 1978년 12월에 시작되어 크렘린 궁전의 소련 국기가 마지막으로 내려지던 1991년크리스마스이브에 막을 내렸다. 두 번째 시기인‘낙관의 시대’는 주요 강대국들 모두가 민주주의와 자유시장이라는 정치·경제적 비전을 공유하던 시기이다. 이런 비전은‘세계화’라는 새로운 체제로 요약될 수 있으며 미국의 파워가 국제시스템을 주도하면서 어떻게 강대국 간의 관계를 안정시키는 윈-윈 세계를창출했는지를 내용으로 하고 있다. 세 번째 시기인 불안의 시대는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로 시작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여기서 미국의 글로벌 위상은 근본적인 위기에 직면하면서낙관의 시대에 가졌던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에 대한 강한 자신감이 흔들렸다. 이 시기가 바로 내용의 핵심이다. (그래서 한국어 번역본의 제목이 <불안의 시대>인 것 같다)저자는 낙관의 시대의 원동력은 바로‘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고 주장하면서 이 시기에 미국은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면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로 시작한불안의 시대는 제로섬 세계로서 강대국 간의 경쟁이 불가피해지면서 미국의 영향력이 크게 축소되어 세계화에 먹구름이 드리워졌다는 것이다. 즉 미국의 위상이 불안하여 세계화의 실현이 불안한 것이다. 저자는 그러면서도 낙관적이다. 저자는‘진보’에 대한 강한 신념을 포기하지 않았다. 글로벌 경제위기의원인을 저자는 자본주의의 지속적인 성공으로 야기된 지적 오만과 자기과신 그리고 비이성적인 사고를 제시하였다. 그리고불안의 시대를 종식시키기 위한 대책으로는 당연히 이러한 태도를 바꾸는 것뿐만 아니라 특히 비민주적 강대국들의 민주화에 큰 기대를 하고 있다. 경제위기시에 비민주적인 국가주의의국가들의 정책들이 세계화를 위협하고 있으니 이들 국가(특히중국)가 민주화되면 윈윈전략으로 국가 간의 타협과 협조는 불안의 시대를 종식시킬 것이라는 것이다.저자의 세계화에 대한 진단은 대부분 틀리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불안의 시대의 특징들이 2008년도에 비로소 등장하였다는 논리에는 동의 할 수 없다. 저자가 낙관의 시대로 규정한 시기에도 여전히 정치, 경제, 사회는 불안하였다. 저자가 말하는윈윈이란 강대국 사이의 윈윈이며, 지배계층과 가진 자들 사이의 윈윈이었다. 다시 말해 강대국과 주변국가,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사이에는 여전히 제로섬 논리가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민주화에 대한 강한 집착도 순진한 발상은 아닌지?민주화된 국가가 항상 세계화를 지지한다는 법은 없지 않은가?사실 제대로 된 민주화 사회는 분배보다는 성장에, 효율성에,보존보다는 개발에 기초한 세계화를 경계하지 않을까? 그리고어차피 세계화가 피할 수 없는 대세라면‘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화’가 요구된다. 지금까지 세계화의 원동력인 자본주의는 생산력 중심, 성장 중심주의에 집착함으로써 환경, 생태, 평화와같은 가치를 방기한 것이 사실이다. 인간의 끊임없는 탐욕을 반영하는 그 어떠한 발전의 이념과 방식도 이젠 더 이상 인간 삶의 진정성을 담보해 주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은 국가들 사이의정치적, 경제적 관계에 있어서 나타나는 불안보다 일상에서, 직업전선에서, 먹거리에서, 교육현장에서 느끼는 불안에 더욱 민감한 것이다. 그리고 불안이 인간 삶의 일반적인 속성의 하나이고, 그래서 그것이 불가피하다면 탐욕으로 야기된 불안만큼은어느 정도 억제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스 말에‘apatheia’는욕망, 탐욕을 의미하는‘patheia’에서 제거를 의미한 접두어‘a’를 붙인 말이다. 그 의미는 행복이다. 욕망을 억누르면 불안이 없는 행복이 온다는 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