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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7 |
130회 백제기행
관리자(2011-07-12 16:49:34)
<오르세 미술관전>과 연극 <산불> (6월 15일) 인상주의 미술과 사실주의 연극을 만나다 - 최미향 연극예술강사 슈퍼스타를 코앞에서 보는 기분 일단은, 작가와 작품 명단만으로도‘독고진의 울렁울렁 심장’이 되는 컬렉션. 읊어보자면 밀레, 고갱, 세잔, 모네, 르누아르, 몬드리안, 뒤랑, 드가, 그리고 (흐읍!) 고흐. 등등 일일이 거명조차 숨찬 화가들의 이름과 작품들을 마주할 수 있다는 설렘에 이끌렸다.이단은, 프랑스 아카데미즘, 사실주의, 인상주의상징주의 회화와 더불어 사실주의, 인상주의 회화에 영향을 주고 또 받은 19세기 초기 사진들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것. 땡잡았다.한가람미술관 3층 전시실에 가득 찬 134점의 회화와 사진 작품을 마주한 첫 느낌은 참 익숙하지만어쩐지 낯설다는 것. 도록이나 화첩에서 수태 보았기 때문에 익숙했을 것이고 그러나 직접 마주친 것은 첫 경험이어서 낯설었을 것이다. 비유해 보자면브라운관을 통해 노상 보던 한류스타를 또는 헐리웃스타를 코앞에서 보게 된 기분. 딱 그 기분. 전시실 입구 장막을 걷고 첫 발을 디딘 순간 시선이 고정되었다. 완벽한 붓터치에서 비롯되는 여체의 부드러움, 탐스러움. 슬쩍 손이라도 대면 바다 거품 위에서 나른히 기지개를 켜고 고개를 돌릴 것 같아 보이는 그녀. 알렉상드르 카바넬의 아카데미즘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신화적 아름다움의 결정체인 동시에 발표 당시 3류 풍속화 취급을 받은 (실제 이 작품 속 비너스가 누워있는 자태와 그녀를 둘러싼 에로스들-생후 12개월 정도나 되어 보이는 사랑스런 외모에 완벽히 부조화되는 음험한 눈빛을 가진-의 표정은 매혹적이고선정적이다)‘ 비너스의탄생’이다. 흡! 심호흡이절로된다.로슈그로스의‘꽃밭의 기사’는 바그너의 오페라 <파르지팔>에 등장하는꽃의 요정 테마를 주요 모티프로 삼은 작품이라 하더니 과연‘불꽃으로 만들어진 꽃다발’이라는 격찬이 아깝지 않은 화려하고 아름다운 신화의 한 장면과 같았다. 함께 보던 초등5년생 조카가“어쩐지 나르시스가 떠올라”라고하기에 곰곰 들여다보니 꽃의 요정들에 둘러싸여 그녀들의 선망을 온 몸으로즐기고 있는 은빛갑옷 기사의 표정이 나르시시즘 그 자체다. 예리한 초딩.언급하고 싶은 숱한 작품들을 빛의 속도로 지나쳐서 도착한 뒤랑의 <장갑을 낀 여인> 앞. 그러나 이런. 굴욕 조명이잖아. 그 커다랗고 아름다운 초상화에 대한 기대와 환상이 어긋난 조명의 각도에 의해 무참히 망가졌다.아쉽다.<인상;해돋이>의 단순하고 솔직한 붓터치를 보니 단 몇 분만의 인상을 화폭에 옮겨놓은 이 작품이 당시 그리다 만 그림으로 비웃음을 산 이유가 양해된다. 누가 알았겠는가.유럽 미술의 황금기를 연 첫 작품으로 미술사에 남으리라는 것을. 이어지는 밀레의 <봄>은 소나기 갠 봄날이 고스란히 내려앉은 과수원 오솔길과 들판, 하늘에 걸린 무지개의고운 빛깔, 그것과 대조되는 아직은 납빛인 하늘이 섬세하게 재현되어 있다. 사실주의란이런 것. 캔버스에 붓을 댄 순간 밀레가 떠올리고 있던 풍경이 감히 내 눈 앞에도 떠오르는 것 같은 근거 없는 빙의.그리고 드디어 고흐다. 과연, 고흐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그의 <별밤> 앞 한 평이나될까말까한 공간을 점유하고 발을 떼지 않는다.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 풍경. 악조건 속에서 어깨와 어깨 사이 빈 틈으로 겨우 눈 맞춘 론 강에는 아를의 밤하늘과 별빛이 맑게 잠겨있다.“이 강변에 앉을 때마다 목 밑까지 출렁이는 별빛의 흐름을 느낀단다. 나를 꿈꾸게 만든 건 저 별빛이었을까?”동생 테오에게 보낸 고흐의 편지는 일련의 인상주의 화가들의 이상과 꿈을 대변하고있다. 당대 주류 화풍의 정형성과 퇴폐적 상업성을 거부한 젊은 화가들이 아카데미를 뛰쳐나왔고 살롱에서 배제되면서 참으로 고생스럽게 버텨낸 시간들 위에 쌓은 명성은 이상을 포기하지 않은 결과였다. 그들의 꿈이었고 그 꿈들이 캔버스에 빛과 색채의 향연으로 부연되는 인상주의 화풍으로 규정되었던 것이다. 함께 보던 한 젊은이가 독백 한 마디를 내뱉는다. “이름 때문에 유명해진 그림이 아니라 그림 때문에 유명해진 화가 맞군”정답.이번 <오르세 미술관전>의 부작용 하나를 굳이 생각해내자면, 정신 못 차리게 많은관람객. 명작들과의 진지한 사귐, 교감에 무척 지장을 줬다. 물론 알고 있다. 그 관람객입장에서는 나 역시 같은 지장생물체였다는 것을. 오랜만에 만나 반갑다, 정통연극 중극장 무대였다면 함박눈 펑펑 쏟아지는 고립된 산골마을의 공간적 폐쇄성을 더 실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4년 전중극장 무대에 올랐던 <산불>을 보지 못한 극심한 아쉬움을파생시킨 무대, 너무 큰 무대. 그러나 그 때는 실제 크기의계단과 집, 더 빽빽한 대숲, 규모로 압도되는 산불장면은 없었을 터이니‘퉁’치자고 위로했다.큰 무대였기에 미리 접어야 했던 기대 하나 더. 이데올로기, 전통적 관습 따위를 가뿐히 넘어서게 되는 극한에 처한인간의 본능이 치밀하게 표현될 수 있을 배우들의 섬세한 표정과 동선, 움직임, 대사의 입체감-넓은 무대를 채워야 할동선은 길고 움직임은 컸을 뿐이며 핀마이크를 통한 스피커확성은 관객 가까이에 있는 인물과 멀리 있는 인물의 말소리를 원근감 없이 들리도록 해버렸다.원작을 각색 없이 거의 그대로 사용했다기에 정극임을 감안한다 해도 다소 지루하지 않을까 했던 걱정은 기우였다.지금은 사용치 않는 단어, 어투가 오히려 반가웠다. 빵빵 울리는 뮤지컬과 가볍고 계통 없는 창작극에 떠밀려 다니다 만난 정통 연극이 또 반가웠다. 자칫 무거운 주제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중압감을 한 방에 훅 날려주는 김 노인(이인철)과양씨의 모자란 딸년 끝순이(곽성은)의 맛깔스런 연기는 최고의 양념이었다. 간만에 깔깔 웃음 대방출. 후반부엔 좀 잦다싶은 김 노인의 등장이 극의 몰입에 자그마한 태클이 되긴했지만, 뭐…. 전쟁이란 극한 상황을 다루면서도 차범석 작가의 대사는 재치와 유머를 잃지 않는다. 양씨(강부자)의 자근자근한 욕설, 사월(장영남)의 본능에 충실한 청상과부용대사들. 예를 들면“점례만이 그 사람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권한이 어딨어?”또는“점례에게 소중한 남자는 내게도 소중하니까”-관객들을‘빵 터지게’하는 유머다.이 부분에서 아쉬움 하나 얘기하고 넘어가자. 규복의 인물이 너무 출중했다. 규복은 이성적·감성적 매력이나 호감이느껴지는 남자여서가 아니라 청상과부들의 바닥을 친 본능에 단방약으로 소용되는 인물이니까 찌질하고 줏대 없고 비호감이었어야 했을 것이다. 그래야 <산불>이 얘기하고자 하는 처절한 인간 본성의 바닥을 더 설득력 있게 표현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보라. 그러기엔 누가 보아도 너무 우월한 유전자를 지닌 배우 조민기가 규복으로 분한 것이다. 커튼콜에서 보여준 조민기의 완벽한 미소는 전쟁통 산골에 갇힌 청상 아니라 21세기 아가씨의 자유로운 여심도 동하게 할만하지 않았냐 말이다.여중생 시절, 연극반 활동 중에 <산불>을 무대에 올렸던경험이 새삼스레 우습다. 이데올로기, 인간본성의 극한, 이런 단어조차 이해불가였던 시절에 그저 대사를 읊었을 뿐이었던 연기. 갑자기 고 차범석 선생님께 송구한 마음이 솟구친다.잠시 숙연해진 이 틈을 놓치지 않고, 혼자 떠들고 있던 TV 주말드라마에서 냉철한 이혼전문 변호사로 변신한 그녀가 내 각막을 통과해 망막에 도달했다. 사월이, 장영남이다. 푸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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