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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7 |
꿈꾸는 노년 - 최일남의「사진」
관리자(2011-07-12 16:40:54)
죽음을 애도하는 한국적 방식 - 장미영 전주대학교 교수 영안실 순례 “조문객 위주로 유족들의 이름이 나열된 영안실. 망인이 어떻게 살다 죽었는가는 알 길이 없다.”“성명 삼자 버젓한 위인들이 죽으면 별격의 독상을 차리듯 신문마다 1단 2단 기사로 대접한다.”“고인에 대한 슬픔으로 마침내 괴괴한 상갓집 마당은 그때마다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병원 영안실이 장 속처럼 붐벼, 즐비한 조화행렬에 매달린 이름표나 훑다가 발길을 돌리기도 한다.”“막상 당사자의 생전 삶이나 죽음 자체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 오직 체면이 시켜 발걸음을 하게하고, 유족과 눈도장을 찍기 위해 틈을 낸다”(112~114면) 소설가 최일남이 바라본 영안실 모습은 깨끗한 직구처럼 직설적으로 다가온다. 독백처럼 펼쳐지는 한국의 영안실 풍경은 말로 꺼내기 쉽지 않은 우리네 장례 문화를 메마르게 보여준다.노작가의 농익은 필력에 망인의 유족들과 그들을 둘러싼 산사람들의 세속적인 욕망이 도리 없이 드러난다. 망인을 모신 영안실은 정작 이승을 뜬 사람을 익명으로 처리하고 주인공에 관한 이야기 대신 서로의 근황을 챙기는 사교장이다. 막상 당사자의 생전 삶이나 죽음 자체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조문객은 상주에 대한 호의거나 체면치레 손님이기 십상이다. 사회성이 많이 떨어지는 사람들까지, 누가 자신해서 일러주거나 청첩장을 보내지 않아도‘혼사같이 기쁜 행사에는 안 가더라도 상가에는 꼭 가야 한다는 불문율’을 지키기 위해 장례식장을 들른다.「사진」에 나타난 한국의 영안실은 카메라 렌즈에 비친 장례식장 풍경처럼 다큐의내레이션 냄새가 물씬풍긴다. 이러한 최일남의 죽음 이야기는 일흔넘은 노작가만이 할 수있는, 아니 나이든 사람이기에 더 말하기 어려운 우리 사회의 장례문화에 대한 눅진한 관찰기다. 화장실 단상 단편「사진」은 작가 스스로‘노을지경’이라고부르는 소설집『아주 느린 시간』에 수록된 4번째 이야기다. 태양은 소멸 직전에 하늘을 발갛게 물들이는 노을로 황홀지경의 장관을 만드는데, 정작 사람의 황혼은‘만물의 영장’이라는 별칭이 무색할 정도로 허망지경의 슬픔으로 굳는다.“영안실은 몇 도에서 얼어붙을까요.”(116면)조문객의 생뚱맞은 질문이 웃음과 서글픔을 버무린다. 사체를 일시 보관하는 영안실에서 화장장으로 진행되는 단계는냉동에서 소각으로 곧장 이어지는 무신경한 죽음 처리 방식이다.‘ 언제는얼렸다가언제는굽는’편리한장례절차는사람이라는 이름이 민망할 지경의 화장 장면이다.“관을 불가마 속에 밀어 넣은 뒤 주검이 타는 모양을 볼 테면 보라고 화장장 역부가 일렀으나 모두들 밖으로 나오고 말았다.”(117)는 대목은 죽음을 끼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생들이 죽음을 사색할 여유를 불꽃 속에 너무나 쉽게 살라버리고 마는 세태를 아프게꼬집는다. 사체를 완전히태운 직후, 뼈를 수습해서 쇠절구 안에 담아 쇠공이로 탕탕 빻으며 어린시절 깨, 콩, 마늘, 생강,고추, 보리, 밀 등을 빻았던 추억을 떠올리는 황당한 회상 장면은“오싹하다든가 섬뜩하다든가 하는 예사 감정을”아예 깜깜하게 막는 화장장의 기막힌 가벼움을 발랄한 비유로 대신함으로써 진한슬픔을 자아 놓는다.“장례라는 것은 결국산 사람들의 분탕질”이라는 거친 표현은 망인에대한 산사람의 태도를 적나라하게 지적하는 촌철살인의 촌감(寸感)이다. 자기 시야에 잡히거나 부분적으로 확보한 판단재료를 바탕으로 죽은 사람에 대해 다가서는 것은 정직한 애도가아니라는것.“ 산사람의죽은사람회고는더구나혈육지간이 아닐 경우 엉성하고 무책임한 법”이기 때문이다. 제물에 마음이 누그러지면서 그는 영안실로 오는 동안에 맛본, 언제나 이상하고 솔직한 기분을 이번에도 되새겼다. 죽음도 죽음 나름이지만, 웬만한 나이에 명을 다한 같은 연배의 친구가 세상을 하직하면 은근히 즐겁다. 이렇게 하나씩 사라지는구나, 요다음은 내 차례구나, 하는 적막감에 젖지 않는 것 아니다. 하면서도 살아남은 자의 마음 한구석에 깊숙이 내장돼 있게 마련인, 제비뽑기에서 이긴 것 같은 기쁨을 먼저 확인하기 쉽다. 또 한 사람을 제쳤다는 경쟁의식의 발로가 잔류파의 쓸쓸함을 밀어내기 일쑤인것이다.(125~126면) 기교를 부리지 않은 듯한 노작가의 세련된 기교 덕분에 이 소설은 죽음을 가까이 느끼는 이들에게 뿐만 아니라 죽음과 무관한 듯 보이는 젊고 건강한 독자들에게도 진지한사색의 시간을 부여한다. 예외 없이 죽음과 맞닥뜨려야 하는 유한한 인생이기에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죽음 앞에서심오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최일남 식 죽음 이야기는 가슴을 짓누르는 처절함 대신대화를 나누는 듯한 평탄함으로 노소를 막론한 공감의 길을 열어간다. 그래서 환희에 찬 인생이든 회환 가득한 죽음이든 삶과 죽음에 관한 온기 가득한 이야기는 모두의 가슴에 잔잔한 파동을 전염시킨다. 사진의 향수 「사진」에 그려지는 죽음 이야기는 스치듯 우연히 노인들의 대화를 듣다가 점차 빠져서 귀를 기울이게 되는 그 무엇처럼 한번쯤 숙연히 눈을 감고 생각할 거리들을 제공한다.‘아주 느린 시간’이라는 소설집의 표제처럼「사진」은 아주느리게 인생의 두께와 깊이를 가늠해보는 시간을 가지라고권유하는 것 같다. 아무리 나이를 많이 먹은 사람도, 아무리 이 세상 인간사에 도통한 현인도, 이거다 하고 답을 내리지 못하는 게 죽음 아닌가. 관념적으로야 무슨 말을 못 해. 너무 넘쳐 걱정일 지경이지. 그러나 정작 죽음과 맞닥뜨리면 까짓 지식이 무슨 소용인가. 눈곱만큼도 도움이 안 돼. 자신이 직접 당해보지 않고는 나락처럼 캄캄한 것이 죽음이라고 했을 때, 천만 년 전이나 오늘이나 저마다 최초이자 최후의 실험자로 떠밀릴밖에 없다고 했을 때, 어느 누가 본능적인 공포에 휘말리지 않겠나. 과정이 아니라 죽음 자체에 대해서.(121면) 죽음을 소설의 소재와 주제로 삼아 정면에서 돌파하는 방식을 취한「사진」은 췌장암 진단을 받은 또래 친구의 죽음을 맞이하는 작중 화자의 소회와 유족들의 행동거지를일화 형식으로 배치했다. 암 선고를 받은 환자, 간호하는유족들, 문병 차 방문한 친구들, 임종, 화장, 수장 등.100년의 연륜을 자랑하는 한국현대소설 중에서도 정말드물게, 소설「사진」은 문학이‘애도’를 다룰 필요가 있다는 것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망자와 같이 찍었던‘사진’을꺼내 볼 때 지나간 시간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착잡함이 몰려오는 것처럼 우리의 애도문화는 한편으로는 너무나 허망하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아주 야단스럽고 부산하다. 이런맥락에서, 「사진」은 단순한 장례 관찰기가 아니다. 작가는우리의 마음 한 자리에‘믿음직한 애도’를 담을 수 있는 성숙한 여유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싶은 속내를 숨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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