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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7 |
[문화칼럼] 2100년 전의 완주는 한반도 테크노밸리였다
관리자(2011-07-12 16:23:40)
2100년 전의 완주는 한반도 테크노밸리였다 - 곽동석 국립전주박물관장 오랜 침묵을 깨고 완주의 땅 속 깊은 곳에서 2100년 묵은 청동기와 철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유물이 출토된 지역은 완주군 이서면 일대로, 이곳에 이처럼 많은 청동기와 철기가묻혀 있으리라고는 어느 구도 예상하지 못하였다. 고고학적으로 기원전 2~1세기는 청동기 문화가 사회의 기반을 이루는 가운데 새롭게 철기문화가 등장하는 시기로, 청동으로만든 도구와 무기가 점차 철로 대체되면서 생산력이 대하고 또 특정한 지배 세력이 출현하여 사회가 더욱 복잡하고다양화되는 전환의 시기였다. 지금까지 호남지방을 통틀어도 기원전 2~1세기의 발굴유물이 그리 많지 않던 차에 전북의 중심 지역에서 대모의 무덤이 갑자기 발굴되어 세상의이목을 집중시킨 것이다.완주 지역은 2003년에 갈동 무덤 유적에서 청동칼 거푸집1쌍이 국내 처음으로 발굴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2010년에는 전북혁신도시 지인 신풍에서 정교한 무늬가새겨진 청동거울이 대량으로 발굴되었는데 그 양은 우리나라 발굴사상 단위 유적 출토품으로는 최대여서 고고학계의관심이 집중된 바 있었다. 유물들은 땅을 파고 시신을 장하는 토광묘에서 출토되었는데, 100여 기가 무리를 지어 발견되어 남한 지역에서 최대 규모임이 확인되었다. 밀집된 무덤 그 자체는 바로 완주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었던 지배 세력의 존재를 변으로 대변해 준다.지역 현안 문제로 한창 시끄러웠던 지난 5월, 국립전주박물관의 올해 두 번째 특별전으로 열린 <금강의 새로운 힘,2100년 전 완주 사람들>은 과학적으로 보존처리하고 복원하여 원의 모습을 되찾은 완주 지역 발굴 유물을 통하여당시 완주 지역은 한반도 최대의 테크노밸리였다는 사실을보여준다.2100년 전 완주 지역에서는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일까? 그들은 칼과 도를 청동으로 직접 만들어 사용하였고 새롭게 유입된 철기로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었으며, 청동거울은 무늬가 더욱 정교해지고 많은 사람들이 지닐수 있었다. 고운 빛의 유리구슬을 장신구로 사용하였으,검은 빛의 매끄러운 토기와 편리한 그릇들을 제작하였다.전시된 유물은 갖가지 청동기와 철기, 유리구슬 등 100여점으로, 무덤 안에서 짝을 이루며 발굴된 이들 유물은 당시새로운 기술로 제작한 것므로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없는,상당히 높은 신분의 사람들만 사용하였던 권력의 상징물이기도 하였다.이 가운데 청동기는 구리, 주석, 납 등의 주요 원료를 일정한 비율로 합금하여 만들기 때문에 청기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복잡한 공정과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하다. 특히 거푸집에 쇳물을 부어 만드는 청동기는 고도의 주조 기술이 뒷받침되어야만 가능한 신기술의 산물인데, 여기서 발굴된 칼과 창을 제작한 거푸집을 통하여 이미 완주 지역에서는 청동기를직접 제작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거푸집에 남아 있는 검은 그을음이 실제 사용했다는 증거이다. 돌로 만든 거푸집은2매가 짝을 이루는데, 자세히 보면 거푸집 을 잘 맞추기위해 살짝 눈금을 새겨 넣은 것이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미소를 자아내기도 한다. 청동 유물 중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는 청동거울은 모두 11점에 이르는데, 특히 신 적에서는 7점이나 나왔다. 정교한 무늬가 새겨진 갈동의 청동거울은 남한 지역 발굴품 가운데에서는 가장 뛰어난 것이다. 컴퍼스 원리를 이용하여 기하학적인 무늬와 동심원 무늬를 정교하게 새긴 고도 술은오늘날에도 감탄할 만하다.청동기에 비해 내구성이 강한 철기는 고대사회 발전의 가장 큰 동력이었다. 완주 지역의 철기들은 두드려 만든 단조철기도 일부 확인되었지만 대부분은 거푸집을 이용한 조철기이다. 많은 양의 쇠도끼와 낫과 같은 공구들은 곧 이 지역의 농업 생산력을 급격하게 증대시키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철기는 중국 전국시대 연 나라의 영향을 받아 기원전 2세 렵에 들어온 것으로, 당시 완주 지역은 중국 또는 낙랑 지역과 긴밀하게 교류하고 있었음을 알수 있다.2100년 전 완주 사람들은 발달된 청동기문화를 바탕으로철기문화를 새롭게 받아들여 새로운 변화 끌었다. 즉 칼과 도끼를 청동으로 직접 만들어 사용하였으며, 철기가 새롭게 들어와 사회에 활력을 불어 넣었다. 푸른 빛이 일품인 대롱과 원, 고리 모양의 명품 유리구슬은 사람들을 빛나게 하였다. 은 빛의 매끄러운 토기와 단단하면서도 사용하기 편리한 실용적인 그릇들도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제작기술로 만든 것이었다. 이들은 모두 당시 최첨단을 자랑하는하이테크 기술의 결정체였으 러한 선진 문화를 수용하여 발전시킨 주역들이 바로 완주 사람들이었다.우리는 땅 속에 남겨진 흔적을 통해 과거의 사람들과 만나고 대화한다. 여기에 전시된 유물들은 오랜 세월을 견디면서녹슬고 깨 지만 당시 새로운 기술과 사람들의 노력으로만들어진 삶의 결정체이다. 전시실에 들어서면 최고의 기술과 새로운 문화를 꽃피운 2100년 전 완주 사람들이 바로 눈앞에 있는 듯 선하다.과연 그들은 누구까그들은 어디서 왔을까그들의 마을은 어디에 있었을까그들은 어떻게 변화하였을까? 이 모든 궁금증은 앞으로풀어야 할 숙제이다.전시는 6월 26일 아쉬운 막을 내리지만 그 중요성 때문에오는 7월부터 저 멀리 영남땅 국립김해물관에서 같은 제목의 순회전시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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