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6 |
[서평] 「대한민국 도시여행」- 이병학 지음
관리자(2011-06-09 15:33:45)
「대한민국 도시여행」- 이병학 지음
풍성한 도심여행의 착한안내서 숨은 길을 찾아 헤매다
- 김성철 시인
맑고 푸른 전주천 둑길을 걸어 오모가리탕을 내는 식당들 지나 컴컴한 굴다리 밑을 걷는다. 육중한 시멘트더미를 따라 차량들이 내달리는 다리 옆 바위에 겨우 버텨 선 한벽당이 보인다. 이곳에선 모두가 정자 안 난간에 서 상류 쪽 푸른 강줄기를 감상한다. 하류 쪽은 다리가 가로막았기 때문에 반토막 경관이지만, 전망이 빼어나다. 전주 8경 중 세 가지를 한꺼번에 느끼고 감상할수 있다는 곳이다.「조선 왕들 마음의 뿌리, 전통문화 1번지」본문中
근 10년을 몬 자동차를 중개상에게 넘기던 날, 시집가는 딸자식의 뒷모습을 보는 기분이랄까? 여하간 자동차를 처분하자 곳곳에서 달려드는 불편함 덩어리들이 어찌나 큰 지 멀어져 가던 애마의 뒷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날렵하게 쭉 빠진 신차를 보면 설레기도 했고 애마와 같은차종이 지나가면 반가움도 컸다. 그러다, 삼례 전주 간 시내버스나 익산행 시내버스에 오르면서 불편함보다는 새로움과 기대감이 커졌다. 운전 중에 보이지 않던 시골의풍경 그리고 퍼런 보릿대들이 바람에 나부끼거나 버스 바퀴에서 튄 돌멩이들이 그리는 궤적들이 일으키는 신선함,세상에나 일상적인 것들이 이렇게 신선할 수가 있다니?새로운 버릇이 생겼다면 거창한 대로(大路)나 예쁘게포장된 도로보다는 꾸불꾸불 오래된 담벼락이 가득한 골목길을 헤매는 것이다. 유년의 내가 숨바꼭질을 하거나술래가 되어 골목골목을 누비며 꼭 어디선가 툭 튀어나올것 같은 오래된 풍경을 지닌 골목길 말이다. 전주 한옥마을 곳곳에 숨은 아담한 골목을 걷기도 하고 재래시장 속밀집된 상가골목을 걸으며 기웃 기웃거리는 재미. 우리주변에 널린 것들이 새삼스럽게 내 시야를 자극하는 쏠쏠함이 자꾸 나를 걷게 만든다.2011년 대한민국은 느림의 광풍이다. 전국에 새롭게닦여진 올레길만 봐도 그러하다. 멋진 풍광을 지닌 곳이나 혹은 역사적 가치를 품은 도로들마다 걷기 좋게 닦여져 각지의 여행객들을 불러 모은다. 풍광이 좋고 역사적인 이야기를 품은 도로도 좋지만 새롭게 닦여진 길 위엔삶의 노고가 부족하기 마련이다. 산과 들을 가르고 혹은도시를 가르더라도 내 눈에 띄어질 평범하면서도 새로운,낯익으면서도 낯선 반가운 풍경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도로 혹은 담벼락에 숨은 이야기를 꺼내는 맛과 오래된 먼지를훅 불면 바래진 우리네 이야기가 튀어나올 듯한 여행길. 나는 그런 여행길을 간절히 찾아 헤매고 있었다.책 한 권을 들고 무작정 나서다.서평을 부탁받고 택배로 보내진『대한민국 도시여행』을 펼쳐들었다. 도시여행이라니 혹시 내가 찾아 헤맨 길이? 던져준 먹이를 덥썩 문 강아지처럼 나도 덥썩 책을 물어 넘겼다.그리곤 가까운 군산, 전주, 부안을 먼저 눈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걸로 끝이었다. 더 이상 책을 읽지도 않았고 펼치지도않았다. 오후 시간이 통째로 비는 수요일만 기다렸다. 그리고 돌아온 수요일, 책 한권을 들고 무작정 군산으로 향했다.도착하자마자 아니다 정확하게 말해서 시외버스에 오른순간부터 책 속의 글쓴이의 행적을 놓칠 새라 머릿속에 새겨넣고 있었다. 글쓴이의 출발지역인‘내항’에서부터 도착지점인‘내항 사거리’까지. 통으로 비는 수요일은 오로지 글쓴이의 발자국만 따라가기로 마음먹었다. 출발지점에 도착하고책속에서 접하지 못한 짠내가 가슴을 헤집어 놓고 있었다.군산이라는 도시 속에 숨겨진 것들이 마구 달려올 것 같은기대감. 책 속 부록으로 곁들어 있는 지도만 빼어든 채 느릿느릿 걷기 시작했다.일제 때 일본인 소유의 토지가 가장 많았던 군산, 그로인해전북 평야지대에서 난 쌀을 한데 모아 반출하던 물류기지의흔적들을 여기저기에서 찾아본다. 가로 뻗고 모로 뻗은 녹슨철로며 물이 빠질 때도 배를 댈 수 있게 한 뜬다리 부두며,그동안 군산을 찾았을 때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이 책 속 행간을 타고 새삼스럽게 다가온다.째보선창을 지나고 백년광장을 지나고 옛 조선은행 건물을지나면서 다시 한 번 지도와 책을 펼쳐든다. 책 속 행간을 따라가려하니 급히 가야할 것만 같은 조급함이 나보다 더 앞서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천천히 걷자, 그리고 맘껏 군산의풍경을 담자라는 새로운 다짐을 하고 느긋하게 걷는다. 마음을 한결 가볍게 풀어놓자 구식건물과 신식건물들이 부조화스러우면서 조화롭게 서있는 풍경이 유쾌하다. 날도 푸짐하게화창하고 21세기의 군산과 18~19세기의 군산이 제멋대로내 시야에 들어왔다 사라지면서 수요일 오후가 상쾌하다.
「대한민국 도시여행」
나는 여행지를 여행하면서 지도를 먼저 챙기는 습관이 있다. 야구 모자를 눌러쓰고 작은 배낭과 함께 지도를 들고 여행을 하다보면 여행지도의 불편함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여행객을 배려하는 친절함도 없이 몇 곳의 유명여행지만 굵은글씨로 인쇄되어 있는 불편함. 물론 불편함이 어디 이것뿐이랴만은.걷기를 좋아하고 도심 속 숨은 이야기보따리를 기다리는분들에게 좋은 책이 있다. 도심 곳곳에 얽힌 역사, 이야기 그리고 각 도시의 먹을거리까지 풍성한 도심여행의 종결자라칭해도 별탈이 없을 듯한 책『대한민국 도시여행』.한겨레기자 출신의 작가가 발로 직접 쓴 이 책자를 들고 대한민국 도심을 헤집어보자. 물론 책의 내용이 정겹거나 혹은유쾌하지는 않다. 정신없이 도시를 돌고 이것저것 마구 이야기하는 단점도 없지는 않으나 이 책 한권이면 도심 골목골목에 숨은 우리 문화와 이야기에 귀가 솔깃할 것이다. 서울부터 제주까지 우리나라 주요도시가 총망라된 대한민국 여행기. 아이 손을 잡거나 혹은 아내, 애인의 손을 잡고 느긋하게 글쓴이의 발자국을 따라 걸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