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6 |
[문화현장] 금강의 새로운 힘 - 2100년 전 완주사람들
관리자(2011-06-09 15:29:08)
금강의 새로운 힘 - 2100년 전 완주사람들 (5월 3일~26일, 국립전주박물관)
21세기 전의 타임캡슐을 열다
- 황재근 기자
지금으로부터 2100년 전, 그러니까 기원전 2세기에서 1세기쯤 무렵이다. 중국의 한나라에는 한무제가 전한의 전성기를 이끌고 있었고, 공화정 시기의 로마는 카르타고와 겨룬 포에니전쟁에서 승리하며 지중해 세계의 패자로 떠올랐다. 한반도 북쪽에서는 위만이 준왕을 내쫓고 위만조선을 건국했다가 한나라에 의해 멸망했다. 한반도 남부에는 삼한의 싹이 움트고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는 이 지역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아쉽지만 역사책의 기록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잃어버린 역사의 실마리를 찾다
전주국립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금강의 새로운 힘-2100년 전 완주사람들> 전시는 그 잃어버린 고리를 찾는 작업이다. (재)호남문화재연구원에 의해 완주군 이서면 일대에서 발굴된 100여기의 무덤이 바로 그 실마리다. 전주시 관내국도 우회도로(17.5㎞) 건설을 위해 지표조사를 하다 우연히발견된 갈동 유적이 시초였다. 17기의 움무덤으로 이뤄진 갈동 유적은 지난 2003년과 2007년에 걸쳐 발굴됐다. 갈동유적에서 1km 가량 떨어진 지점에서는 74기의 움무덤이 밀집한 신풍 유적이 발견돼 2009년 말부터 2010년 9월까지발굴됐다. 인근의 덕동마을 일대에서도 7기의 움무덤이 발견돼 지난해까지 발굴 작업이 진행됐다.이 무덤들은 모두 기원전 2세기에서 1세기, 청동기에서 철기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것이다. 각종 청동기와 철기, 유리구슬과 토기 등 모두 100여점의 유물이 이번에 전시됐다.전주국립박물관 조규택 학예연구사는“완주 지역의 유적들이 형성된 시기는 청동기에서 철기문화로 들어가던 시기다. 기존에 이 시기 유물들은 주로 평양을 중심으로 한 서북한지역에서 발굴됐다. 고조선과 낙랑이 있던 곳이다. 금강유역에서는 이 시기의 무덤이 이렇게 한자리에 밀집한 지역이없다. 새로운 문물을 가진 세력의 중심이 완주 일대에 터를잡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유물들은 크게 3가지 주제로 나뉘어 전시되고 있다. 제 1주제인‘2100년 전 대규모 무덤 발굴’에서는 갈동과 신풍 유적의 주요 발굴 성과를 소개한다. 제 2주제‘2100년 전 완주의신문물’에서는 이 지역에서 발굴된 수준 높은 유물들이 전시된다. 제 3주제‘선진문화의 중심, 완주’에서는 인근 지역의유적·유물들과 비교해 이 지역의 역사적 위상을 살펴본다.
당대 최고의 기술을 가진 집단
전시장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화려한 문양을 지닌청동잔무늬거울이다. 세밀한 빗금문양이 인상적인 이 유물은거푸집에 무늬를 일일이 새긴 후 청동을 녹여 부어 만든 것이다. 청동거울은 거친무늬 거울에서 잔무늬거울로 점차 발전했다. 완주에서 발굴된 청동거울은 모두 11점으로 1점을 제외하고는 모두 잔무늬 거울이다. 특히 갈동의 잔무늬거울은 남한지역의 발굴품 중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조규택 학예연구사는“당대 최고의 금속기술이 집약된 작품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유적을 남긴 완주지역 주민들의 기술력이 매우 뛰어나다는 것을 보여 준다”고 설명했다.또 하나 눈길을 끄는것은 아름다운 색깔의 유리구슬과 구슬을 엮은 목걸이다. 구슬은 대롱과원, 고리모양을 하고 있다. 지금이야 흔한 소재이지만 당시만 해도 보석과 같은 대우를 받았을것이다. 특히 고리모양구슬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발굴된 것이다.조 학예연구사는“잔무늬거울과 유리구슬 외에도 세형동검 거푸집을 주목해봤으면한다”고 권했다. 갈동 유적에서 발굴된 거푸집은 돌로 만들어져 앞면에는 칼 모양이, 뒷면에는 꺽창 모양이 새겨져 있다.먼저 꺽창의 거푸집으로 활용하다 파손되자 반대편에 칼 모양을 새겨 이번엔 청동검의 거푸집으로 사용한 것이다. 2100년전의 재활용이라니. 인상 깊지 않을 수 없다.이 거푸집이 지진 가치는 또 있다. 갈동 유적에서 거푸집이발견되기 전까지 한반도 내에서 확인된 청동거푸집은 모두 신고품이거나 출토지가 불분명했다. 이 경우 학술적인 조사발굴을 거치지 못해 1급 유물로서의 가치를 갖지 못한다. 하지만갈동의 청동거푸집은 어디에서 발굴됐는지, 어떤 유물과 함께발굴됐는지 확실하기 때문에 학술적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이 유물들은 연구와 함께 문화재 지정 논의도 진행되고 있다.
2100년 전의 무덤이 남긴 수수께끼
전시의 마지막은 이런 질문으로 마무리 된다. ‘완주사람들은 누구일까. 어디서 왔을까. 마을은 어디에 있을까. 어떻게변화하였을까.’이는 완주에서 발굴된 유물을 통해 밝혀내야할 학계의 수수께끼다.이 유적의 주인공들이 유입민인지, 또는 외부의 영향을 받은 토착민인지는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한 과제다. 하지만 상상력을 발휘해볼 여지는 충분하다. 비슷한 시기 고조선에서 위만에게 축출돼 남하했다는 준왕과는 관계가 없을까. 유물에서드러나는 중국의 영향은 육로를 통해 왔을까, 해로를 통해왔을까.100여기의 무덤이 발굴됐음에도 아직 거주지유적을 찾지 못한 것도호기심을 유발한다. 조규택 학예연구사는“대개의 경우 무덤 인근에 주거공간이 있는데 아직 완주에서는 찾지 못했다.하지만 무덤의 집중도를볼 때 거주지 유적도 있으리라 추측하고 있다”고 말했다.마지막 질문은 다시 역사책으로 돌아간다. 기록에 등장하는이 지역의 최초 지배세력은 마한이다. 유적이 형성된 시기는마한 이전에서 마한의 성립시기까지와 겹쳐진다. 2100년 전완주의 주민들은 마한과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는 걸까. 마한의지배세력이 된 걸까. 마한세력과 충돌해 흡수되거나 축출됐을까. 깨진 청동 조각 하나, 토기 파편 하나에서 시작된 궁금증은 이내 2천년의 역사를 뛰어넘는다. 이 궁금증이 더 생명력을 얻는 이유는 바로 우리가 발 딛고 살고 있는 이 지역의 역사이기 때문이다.<금강의 새로운 힘-2100년 전 완주사람들> 전시는 6월26일까지 계속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