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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6 |
2011 전주국제영화제 일곱개의 단상
관리자(2011-06-09 15:26:56)
JIFF가 보여주는 '그것들', 이것은 신비다 - 이정현 영화 블로거 하나. 사진 속에 한 사내의 그림자가 보인다. 사내는 어쩌자고 저렇게 서있는가. 전동성당 뒷골목으로사내가 발걸음을 뗀다. 담장 위에 유리조각이 박혀있다. 사내는“담장 위의 푸른 유리조각들을 하나씩 만져보고 싶었지만 손이 닿지 않아”.(강성은 <미아迷兒> 인용) 그만 두기로 한다. 허공에 별처럼 박혀있는 푸른 유리 조각이 눈부시다. 이내 사위가 어두워진다.전주의 밤이 이제 막 시작됐다. 중앙시장에 어스름한 불빛이하나 둘씩 켜진다. 다시, 하늘을 본다. 밤하늘이 몽상가의 안경처럼 반짝인다. 사내는 영화제 거리를 찾아헤멘다. 코아백화점이 보이지 않는다. 민중서관도 보이지 않는다. 이상하다. 다 어디로 간 걸까. 사내는 당황한다. 겨우, 영화제 거리 들어선 사내는 티켓팅을 하고 영화관 안으로 들어간다.둘. 안토니우 다 쿠냐 텔르스의 <갇힌 여인>을 보고나온다.사내는 결심한다. 영화제 상영내내 포르투갈 영화들을 보기로 한다. “자신이 가고 싶지 않은 곳은 분명히 알지만 진정어디로 가고 싶은지는 확신하지 못하는”(주앙 앙투누스) 낯선 포르투갈 감독들의 방식이 맘에 든 것이다. 사내는 오박육일 동안 여섯 편의 포르투갈 영화를 본다. 사내는 진정 자신이 어디로 가고싶어 하는지 알고 싶다. 그러나 곧바로 포기한다. 사내는 가고 싶은 곳이 없음을 깨닫는다. 지금 사내는 CGV 앞에 서있다.셋. 사실, 전주국제영화제의 모토란게있다면이런것이아닌가.“ 원하는사람은누구나오라. 우리가운데 어느 한쪽이 이야기하면 다른 한쪽은 귀를 기울일 것이다. 적어도 우리는 함께 있을 것이다.”(콘라드 죄르지, <방문객>, 2011) 사내는 스스로 원해서 전주에 왔다. 이야기 하는 자와 귀 기울이는 자가 적어도 이곳, 전주에 있을 거란 그생각 하나만으로 사내는 전주에 왔다. 사내가 전주에 머물동안 그들은 사내와 함께 있을 것이다. 사내는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 죄르지의 책제목을 떠올리며 사내는 자신이 이낯선 도시의 방문객임을 깨닫는다. 아, 방문객. 그래, 나는방문객이구나. 사내는 생각한다. 감독이 이야기하면 나는 귀를 기울일 것이다. 다만 그뿐이다. 사내는 자신이 무슨 영화를 보고 싶어 하는지 생각한다. 생각이 희미해져간다. 사내는 영화 팸플릿을 뚫어져라 본다. 알 수 없는?영화가 지면에가득하다. 보고 싶은 영화를 알 수 없다, 는 생각에 사내는머리를 싸맨다.?말하자면‘알 수 없는’영화를 보기 위해 사내는 전주에 온 것이다. 역설처럼 들린다. 넷. “정확히 표현된 모든 것, 사고의 순수함 속에서 표현할 수 있는 것이란 얼마나 보잘것없는가.”(보트 슈트라우스, <커플들, 행인들>,을유문화사, 2008, 199쪽) 사내는 오랫동안“명료한 사고에대한 강박증”(앞의 책)에 시달렸다. 일반상영관에서 사내의병은 깊어만 갔다. 서울에서 사내는 자신의 강박증을 치료하기 위해 많은 영화제의 순례길에 올랐었다. 서울영화제가 맨먼저 떠오른다. 그리고 뒤이어 충무로영화제도 떠오른다. 순례길의 맨 마지막에 서울디지털영화제가 있다. 그리고 먼 길을 돌아 이곳 전주에 온 것이다. 전주국제영화제는 올해로삼 년차다. 서울에서 보낸 순례의 나날은 비교적 순조로웠다. 무엇보다 이동이 편했고 마음의 여유가 있었다. 전주는찻길로 세 시간이다. 잠자리도 해결해야 한다. 사내는 전주에서의 순례길이 고달플 거라 생각한다. 자처한 길이다. 카산드라 윌슨의 노래 <해가 질 때>가 들려온다. “나는 단지해가 질 때 당신이 보고 싶을 뿐이죠. 그것뿐이죠.”사내는생각한다. 그렇다. ’당신’이 보고 싶어 나는 여기에 왔다.?노래가 이어진다. “나는 단지 해가 질 때 당신이 보고 싶을 뿐이에요. 더 이상은 바라지 않아요.”사내는?바라는 것이 거의 없음을 깨닫는다.다섯. 숙련되면 생이 끝날 것 같다,라고어떤 시인은 말한다.(김이듬) 사내는 숙련이란 단어를 다시한 번 발음해 본다. 사내는 당혹스럽다. 숙련은 사내의 것이아님을 깨닫는다.?사내는 숙련과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다.사내는 다짐한다. 나는 미숙련자로 남고 싶다. 호세 루이스게린의 영화를 본다. 그의 영화?네 편을 본다.?게린은 미숙련자의 대가답다. 그는 영화를 찍으며 영화를 지워버린다.가령, <게스트>는 영화제에 방문해‘루저 타임’을 필름에옮긴 영화다. 심지어 <실비아의 도시에서 찍은 사진들>은오로지 스틸사진으로만 이루어진 무성영화다.?그의 영화 안에서숙련은영원히지연된다.‘ 실비아의도시에서’(게린) 감독은 실비아를 찾아 헤맨다. 22년 전 스트라스부르에서 우연히 스친 게 전부인?실비아를 찾아 헤맨다. 숙련공이라면이런 방식을 쓰진 않을 것이다. 사실, 실비아는 어디에도 없고 동시에 어디에나 있다. 사내는 생각한다. 게린의 영화는일종의 말장난 혹은 유희다. 만약 감독에게 의도란 게 있다면?이런 방식이 아닐까, 라고 사내는 생각한다. 의도라니. 게린 감독에게 의도란 게 있기나 할까. 어쩌면 사내 역시, ‘실비아’를 찾아 이곳 전주에 왔는지도?모를 일이다. 스크린 너머에서 겨우, 스치듯 자신의 뒷모습을 보여주는 게 전부인‘그녀’실비아. 그것의 이름을 환영이라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혹은 잉여라고 할 수도 있겠지.여섯. 사내는 전주영화제를 찾은 영화감독 노엘 버치의 말을 떠올린다. “에세이 영화란 (일반적 다큐멘터리와 할리우드식 영화에 공통된 것이라여겼던) 모종의 선형성으로부터 비껴나가는 것과 관련되었다.”(노엘 버치 <에세이 영화와‘잊혀진 공간’> 인용) 전주영화제에서 상영되는 대부분의 영화들은 비선형적으로 진행된다. 영화 안에서 공간은 잊혀지고 시간은 지워진다. 어쩌면그것이야말로 전주국제영화제의 정수가 아닐까. 사내는 자신의 추측이 맞을 거라 생각하며 흐뭇해한다. 좀 더 엄밀히말한다면 전주국제영화제는 에세이영화들로 이루어진 성채라 할 만하다. 사내는 그것을 영화제 거리 도처에서 확인한다. 극장에서, 거리에서, 라운지에서, 카페에서.일곱. “감추어져 있는 것, 그것은 기다림에서 열리지만 밝혀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거기에서 감추어진 채로 남아 있기 위해서이다.”(모리스 블랑쇼, <기다림, 망각>, 2009, 116쪽) 감추어진 채로 남아 있기 위해 열리는 그것, 그것을 이명세의 <M>에서본다. 혹은 리뤄의 <강과 나의 아버지>에서 본다. 장 마리스트라우브의 <후예>에서도 그것은 보여진다. ‘그것들’의록을 여기에 다 기록할 순 없다. 전주영화제는 해마다 사내에게‘그것들’을 보여준다. 그러나 밝혀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거기에서 감추어진 채로 남아 있기 위해. 이것은 신비다. 말하자면 놀라운 체험이다. 사내는 모든 비용과 시간을감수하고 낯선 도시를 찾아 내년에도 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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