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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6 |
2011 전주국제영화제 한국장편경쟁부문
관리자(2011-06-09 15:19:37)
픽션과 논픽션을 넘나드는 ‘씨네 에세이’ - 맹수진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한국장편경쟁 부문 대상작은 박찬경 감독의 <다시 태어나고 싶어요, 안양에> (이하‘안양에’)이다. 미술과 미디어아트 분야에서 지속적인 작업을 해오다 최근에는 주목할 만한 단편영화를 연출하기도 한 박찬경 감독의 장편 데뷔작 <... 안양에>은 올해 한국장편 경쟁 부문에선정된 작품들의 특징을 고루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 작품에대한 언급은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한국장편영화들의 전반적인 경향에 대한 설명이 될 수 있을 것이다.1988년 서울올림픽이 개최되기 몇 달 전, 안양에서 있었던 그린힐 봉제공장 화재사건을 모티프로 출발하는 이 영화는 흔히 선형적 서사라고 불리는 정형화된 내러티브 구조에서 탈피해 자유롭게 연상의 가지를 치며 흘러가는 내러티브전략을 취한다. 김예리, 박민영 등 실명으로 등장하는 배우들의 동선을 따라 한 축에서는 그린힐 봉제공장 화재사건에대한 기억을 재구성하고, 다른 한 축에서는 안양사를 비롯한안양 지역 공간의 역사와 민담, 전설을 기록하면서 이 지역에서 발생한 죽음을 애도하고 치유하려고 시도한다. 형식적으로 이 영화는‘다큐멘터리 대 극영화’라는 의심스런 경계에 대해 질문하면서‘영화란 무엇인가’라는 거대한 질문을함께 에둘러 던지는데, 이러한 질문은 감독을 비롯한 배우들이 자신의 이름과 직업을 그대로 가지고 실제 사건을 추적하는 등 다큐멘터리적인 요소를 공공연하게 드러내면서도 정작 카메라는 의도적으로 초현실적인 느낌으로 사건과 대상,풍경을 촬영함으로써 다큐멘터리의‘사실 재현’관습을 재고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이러한 시도는 올해 경쟁 부문에 오른 한국 장편영화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픽션과 넌픽션을 넘나들며 의식의 흐름을 따라 기술해 나가는 양식을‘씨네 에세이’라고 한다면 박찬경 감독의 <... 안양에> 뿐 아니라 안건형감독의 <동굴 밖으로>나 이강현 감독의 <보라> 역시 씨네에세이 형식의 영화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영화들은 다큐멘터리와 픽션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내용과 형식의 문제에 대해 예민하게 성찰하는 영화들이 유의미하게 존재함을 입증한다. 전국 근로사업장의 보건관리 실태에 대한관찰 기록에서 출발하는 <보라>는 객관적인 관찰기록물을지향하는 듯 하더니 어느 순간 이미지와 사운드의 살짝 어긋나는 운용을 통해 몽환적인 느낌과 쉽게 해석되지 않는 모호한 기운을 화면 가득 채워 넣는다. 서로 무관해 보이는 팩트의 더미들 속에서 팩트의 총합을 넘어서는 정서가 형성될 때관객은 기존의 액티비즘 다큐멘터리에서 접해보지 못한 새로운 영화적 체험을 하게 된다. 안건형 감독의 <동굴 밖으로>는 고양이와 가족의 문제 등 실제 대상에 대한 기록에서 출발하지만 어느 순간 영화와 이미지 자체에 대해 사유하는 메타 영화로 확장되는 영화다. 이 영화를 보고 있자면 자연스럽게 경직된‘다큐멘터리’라는 개념이 이런 영화에 합당한가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 2004년작 <진실의 문>의 속편인김희철 감독의 <사랑할수 없는 시간>은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사회에 현재진행 중인 폭력의 양상을 응시하면서 관객을향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구체적인 해답을 찾기 보다는연속되는 질문을 통해 질문자의 위치와 관객의 위치에 대해성찰을 유도하는 영화라 할 수 있다.내용적으로는 정치적 올바름으로 무장하고, 형식적으로는객관적인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을 사용한 전통적인 양식이주류를 이뤄온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계에서 이렇듯 다큐멘리와 픽션의 경계에 대해 회의하고 감독 자신의 위치에 대해 성찰하는 영화들의 등장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흥미로운것은 이러한 작업을 하는 감독들의 공통점은 이들이 독립영화계의 주류가 아닌 변방에서 작업해온 이들이라는 점이다.박찬경 감독은 미술과 미디어아트 쪽에서 주된 경력을 쌓아왔고, 안건형 감독이나 이강현 감독 역시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의 비주류에서 작업하면서 주류 독립 다큐멘터리 진영의 미학적 관습을 향해 날선 질문을 던져왔다. 그것은 분명히 주류 독립영화계를 자극하고 변화시키는 힘이 되어 왔으며 올해 전주국제영화제가 이들의 영화에 주목한 것 역시 그러한 작업에 의미를 부여한 측면이 있다.물론 이러한 영화들을 생산한 요인으로 한국사회의 맥락역시 폭넓게 고려되어야 한다. 과거 이 사회를 규정짓던‘민주 대 반민주’라는 구도의 와해는- 즉 과거의‘악’은 점점세련되어지고 과거‘선’으로 규정되던 집단 역시 다양하게분화되면서 내부의 모순이 파열되어 나오는 상황에서-, 세상과 대상에 대한 재현매체로서 카메라 자신의 위치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올해 JIFF에 상영되는 이 작품들은 그러한 요구에 대한 상당히 예민하고 고심어린 대답인 셈이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한국영화들의 상당수가 다큐멘터리이며 그 가운데 또 상당수가 직간접적으로 재현이라는 행위 자체에 대한 예민한 성찰을 시도하고 있다면, 그것은 역동적인 한국사회 현실이 배태한 하나의 풍경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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