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11.6 |
꿈꾸는 노년 - 최일남의「아주 느린 시간」
관리자(2011-06-09 15:16:03)
최일남의「아주 느린 시간」 도시 노인의 죽음 맞이 - 장미영 전주대학교 교수 “죽은 자만 들어가라는 납골당인가. 산 자를 위한 곳이기도 하니까 그렇지. 장정 대여섯이 들어서면 입추의 여지가 없습디다. 그렇게 좁은 칸막이방의양 벽이 온통 납골 서랍이에요. 겨우 단지 하나를 넣으면 그만인 네모진 구멍이 오십 개? 칠십 개? 쥑여주더만.”“가족 납골당도 있다던데.”“돈이 많으면 무슨 호사를 못 해. 단돈 만 오천 원에 십오 년 보관을 책임지는 시립으로서는 그 정도가끽이지. 십오 년 후에도 딱 한 번은연장할 수 있다든가.”“죽어도 죽었달 것이 없네요.”누가 아니래.”-최일남, 『아주 느린 시간』, 54면 아주 느린 시간 노년은 죽음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시간이다. 특별히 노년기는 엇비슷한 또래의 친구나 배우자, 가까운 친지의 죽음이 본인의 일처럼 의식되면서 죽음에 대해 남다른 감정을 가지게 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최일남 식으로 말하면 시간을 아주 느리게만드는 방식은 죽음과 같이 소멸하는 것을 영원한 것으로 만들려는 노력을 일상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최일남의 소설집『아주 느린 시간』에 수록되어 있는 표제작「아주 느린 시간」은 오늘을 사는 우리 사회의 노인들이 실존적인 죽음과 어떻게 대면하는지를 보여주는 수작이다. 최일남은짧은 단편소설들을 통해, 노인의 시선으로 노인의 죽음을 바라보며 죽음을 대하는 세상의 방식을 조망한다. 죽음을 수용하는태도는 어때야 하는지, 또 죽음을 처리하는 방식은 어떤 것이 좋을지, 더 나아가 죽음의 의미는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가 이 소설이 던지는 화두이다. 소멸의 어려움 「아주 느린 시간」의 등장인물인 민 선생이 안식구와 주고받는 대화를 보면, 정작 노인들은 세상에서 유행하는 죽음 담론에 섣불리 합류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간적으로 좀 더 우아하고 고통 없이 단숨에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있어도 나쁘지 않을 텐데 말야.”“윤리가 있잖아요. 까짓것 만들기로 마음만 먹으면 떡 먹듯 쉽겠죠.”“욕망을 극대화시키는 알약이다, 인간복제다, 무병장수 이백 살까지 산다, 호들갑떠는 과학이 소멸에는 신경을 안쓰는 게 곧 인간적인가. 생성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소멸의 어려움이자 아름다움인데…(중략)…“아름다운 것도 쌨다. 살아있는 동안은 생명의 무게가 우주보다 무겁다니 찬미하고 또 찬미하겠지만 흙으로 돌아가는 주검이야 누가 돌아보기나 하나.”(최일남,『아주 느린 시간』, 51면) 노인들은 세상의 무관심과 존재의 무용성을 극복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으로 내몰리면서 본인이 죽음을 통해 흩어져 없어져버릴 소멸의 존재라는 것에 가장 큰 두려움을 가지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작중에 등장하는 노인들은‘굴뚝 없이 시신을 태워 고운 가루로 변신시키는 소각로’이야기며‘목관 대신 불에 잘 타는 골판지 관 이야기’, 또‘값의 고하에 따라 재질이 다른 단지에가루를 담아 가까운 납골당으로 향하는’자본주의식의 무미건조한 단순 논리를 낯설어한다. 세상은 점차 죽음을 빠르고간단하게 처리하는 방식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려 하는데, 정작 노인들은 죽음의 고통보다 갈수록 비인격화 되고 있는 죽음의 처리 방식에 불안을 느끼는 것이다. 나는 느낀다네. 모든 걸 털고 해결하고 세상을 뜬다는 생각 자체가 무의미하고 사치스럽다고. 아니 주제넘어. 죽는날까지 사람인 것이 사람의 노릇인데 완전 종결이 어딨어.가당찮은 허영이지.(최일남, 『아주 느린 시간』, 62면) 이 소설은 죽음을 친구처럼 끼고 살아야 하는 노인들의 죽음 맞이 행태를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차례차례 전하는 형식을 취함으로써 소멸을 거부하는 노인들의 적나라한 심리를 드러낸다. 은퇴한 교육자, 기업가, 장성,의사, 관리라는‘예전 직함을 성명 삼자 밑에 붙이고사는’다섯 노인들은 마치자신만큼은 죽음을 맞이하지 않을 것처럼 위풍당당하게 행동하거나 아니면 오랜세월 묻어 두었던 마음의 묵은 빚을 갚아 모든 걸 털고인생을 말끔하게 정리하려한다. 또 노인들은 늙은 친구의 노안에 감도는 기색을더듬기보다 고향산천의 노쇠한 얼굴 위에 어린 시절 모습을덧씌워 옛 생각에 매달리는 것으로 삶의 표리를 다독이기까지 한다. 이렇게 노인들은 인생의 깊은 바닥을 헤매면서도삶을 삶답게 가꾸는데 필요한 필수 조건에 안타깝게 매달린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오히려 삶에 대한 논의로 표출되는 것이다. 죽음을 억압하는 애도 비즈니스 죽음은 슬퍼해야 할 애도의 대상인가. 아니면 살아 있는 생명들의 안위를 위해 신속히 처리해야 할 그 무엇인가. 「아주느린 시간」은 애도가 자본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하나의 사업으로 전락한 세태를 해학과 함께 담아낸다. “병원에 누웠다가 해부학 교실로 직행하는 사람도 더러 있습디다. 빠르기로 따지면야 그게 제일이겠네.”“암. 맘먹기에 따라서는.”“화장 다음엔 납골당인가요.”“그렇지. 값의 고하에 따라 재질이 다른 단지에 가루를담아 가까운 납골당으로 향하는데, 개중에는 장례장 안에붙은 작은 동산에 올라 그 자리에서 뿌리는 사람도 있더라구.”“산에다 곧장?”“아냐. 바로 뿌리면 산을 오염시킬 염려가 있기 때문에산림법 제 몇조에 걸린대나.”“비료 구실을 해서 토양이나 나무에 이로울 텐데.”“그쯤 여기는 게 보통인데 실지로는 그렇지 않은가 봐.별도로 마련해놓은 대형 단지 투입구에 촉감이 아직 따끈따끈한 뼛가루를 조르르 쏟게 되어 있어요. 그것으로 끝이야. 손 탈탈 털고 돌아서는 거지.”…(중략)…“세상에나. 말짱 헛거네.”“공수래공수거의 절정이지. 땅으로 스며들든 물로 흐르든사라지는 건 마찬가지인데, 그런 이들에겐 적어도 납골당의답답함에서 해방된 기쁨이 여간 아닐 거야.”“어떻게 답답합디까.”“숨이 막혀.”“숨은 버얼써 막혔는데 새삼스럽게 트일 것도 없잖아요.”(최일남, 『아주 느린 시간』, 53면) 자본주의식 애도 방식을 논의의 대상으로 삼는 노인들의 심리는 죽음에 대한 어두운 중압감의 또 다른 반사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클수록 삶에 대한 애착이 강해지듯, 소멸에 대한 두려움이 클수록 애도에 목마를 수밖에 없다.우리 인생에는 연습이 없다지만, 그래도 우리 식으로 연습과 실전을 구분하며 살아가듯, ‘언젠가는 찾아올 사멸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연습용 가사(假死) 체험을 입에나마미리미리 품고 살’필요가 있는 것이다. 죽음 이후의 일을 일깨우듯 우스꽝스럽게 뱉어내는 작중인물들의 대화에는‘소극적이기보다는 적극적인 자세로 죽음에 대처’하자는 노작가의 목소리가 배어 있는 듯도 하다. ‘미루어 짐작하면 죽음끼고 살기 훈련의 일상화’라고 명명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가리지도 미화시키지도 않은 최일남 식의 담담하면서도해학적인 글쓰기는 노년을 의식하고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사회교육적 효과와 함께 우리 사회의 다양한 애도 방식에 대해 숙고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고 하겠다. 이런 맥락에서 노년소설은 죽음을 직면하고 있는 노인자신뿐만 아니라 그 부양 가족, 더 나아가 잠재 노년이라 할수 있는 우리 모두가 필히 관심을 갖고 살펴보아야 할 인생교과서의 하나이다.장미영 전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전주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며, 문화원형콘텐츠연구회 대표이기도 하다. 세계문학비교학회 학술이사, 한국여성문학학회 연구이사, 국문학회 총무이사, 전북여성연구회회장을 역임했다. 저서로는「한국의 노인 담론」,「 실버를 골로」,「 한국의 다문화 코드」,「 스토리텔링의 이해」,「 새만금스토리텔링」외 다수가 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