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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6 |
[문화시평] 조병철 개인전 <모산범수 模山範水>
관리자(2011-06-09 15:13:33)
조병철 개인전 <모산범수 模山範水> (4월 28일~5월 11일) 우진문화공간 산 - 그리기의 지평 - 이영욱 전주대 교수, 미술이론 조병철의 일곱 번째 개인전이‘우진문화공간’에서 있었다. 이번 전시의 제목은“모산범수模山範水”산을 모범삼고 물을 규범으로 삼는다는 뜻이다. 2001년“몽유자연夢遊自然”이라는 제목으로 개인전이 있은 지 10년만이니, 기량으로 보나 생각의 깊이로 보나 지역에서 드물게 출중한 역량을 지닌 그의 작업에 기대를 갖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전시장은 예상 외로 고적했다. 영화제 기간이 전시기간과 겹쳤기 때문인가? 지역과 지역의 삶이 산에 담기다 이번 전시에 조병철이 내보인 작업들은 주로 전주와 주변지역의 산을 소재로 한 것들이다. 덕유산, 마이산, 대둔산,모악산, 지리산을 그린 대작들이 보여 졌고, 나머지 작업들도 산과 그 주변의 풍광을 다루고 있다. 자연스레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그는 무엇 때문에 산을 그리는가? 이 글로벌화된 시대, 이 온갖 이미지들과 시각 장치들이 넘쳐나는 시대에 다름 아닌 산을 그리는 이유는 무엇인가?하긴 그는 오랫동안 풍경을 그려왔다. 하지만 이 풍경화들은 우리가 흔히 보아온 인상주의나 표현주의 풍의 풍경화,내적인 정서의 표출이나 자연과의 감성적 공감을 유도하는풍경화들과는 거리를 둔 것들이었다. 다시 말해서 그의 작업은 근대화, 도시화가 진행됨에 따라 사물화되고 소외된 도시의 삶과 대비시켜 자연을 이상화하거나 그것에 대한 향수를표출하는 것과는 궤를 달리했으며, 어딘가 그가 글에서“(일찍부터) 지역의 현실적인 삶의 풍경을 그려야겠다는 마음을먹게 되었다”고 이야기한 바 있듯이, 일종의 리얼리즘 회화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것들은 초기부터 사회비판적이라기보다는 지역의 삶 그리고 서민적 삶에 대한 공감과 연민의시각을 드러냈으며, 갈등을 부각시키기보다는 지역을 삶의터전이자 문화적 삶의 연속성과 가능성의 근거인 장소로서드러내는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작업이 초기에는 전주라는 지방 도시와 그 주변 지역의 삶의 일상에 주목하다가점차 이 도시와 그것을 둘러싼 외곽의 자연을 한 눈에 포괄하려는 시도로 옮겨가고, 그리하여 이번 전시에서처럼 산과같은 자연 풍광을 주로 하고 거기에 삶의 풍정들이 흔적처럼덧붙이는 데까지 이르게 된 것은 이 같은 그의 인식 내지 의도와 긴밀히 관련되어 있었다.잘 알려져 있듯이 오늘날 글로벌 시대를 맞아 지역은 새로운 삶을 가능케 하는 장소로 논의되고 있다. 물론 오랜 동안중심-주변 구조에 의한 차별과 쇠락을 경험한 지역민들로서는 이런 논의가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글로벌화의추세가 국가와 사이가 아닌 지역 사이의 교류를 촉진하고,삶의 모든 국면에서 이동성이 강화되는 한편으로 정주성의 가치를 부각시키며, 문화적 동질화를 통해 역으로 지역의 문화적 차이를 지역의 자원으로 주목케 하면서, 지역적 삶의가능성이 새롭게 주목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꼭이런 추세나 논의가 아니더라도 자신이 살아온 지역의 문화에 애정을 갖고 그 문화가 변화 속에서도 긍정적 전수되고변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능동적으로 모색하는 것은 적어도예술가의 입장에서는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정향이다.이번 전시는 조병철의 이 같은 예술적 지향이 낳은 성과이다. 지리학자인 이기봉은 우리나라의 전통 사상과 감수성에서 산이 차지하는 위상에 대해 이야기 한 적이 있다. 그에 따르면 흔히 조상의 무덤에 갔다 올 때‘산에 간다’혹은‘산소山所에 간다’고 말하듯, 늦어도 조선 시대이후 우리나라에서는 조상과 산을 동일시하고 조상이 자손에게 가져다주는 힘의 근원이 산에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또한 그는 한국의궁궐(경복궁)이 세계적으로 유례없이(중국과 일본의 경우와도 달리) 산 아래 위치해 있을 뿐 아니라 그 산의 흐름이 임금의 왕좌에까지 연결되도록 구성되어 있으며, 또한 그 조영造營구조가 하늘과 산과 땅을 연계시키도록 구상되어 있다고 덧붙인다. 나는 조병철이 산을 그린 것이 산을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전통적인 사상과 감수성에서 그러하듯, 우리가사는 지역과 그곳의 삶을 둘러싸고 있는 힘의 근원 같은 것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가 이 지역과지역의 삶을 그리기로 했을 때 마치“청산이 그 무릎 아래 지란芝蘭을 기르듯”(서정주 <무등을 보며>) 산들과 그 주변의마을들 사람들을 가시화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서양화도 동양화도 아닌 조병철의 풍경 이렇게 본다면 서양화가로서 훈련을 받고 작업을 했던 그가 일찍부터 서양화의 기본 전제들을 포기하고 전통 한국화의 요소들을 채택 변용해 나간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분명해진다. 그는 이미 97년부터 캔버스를 버리고 점차 한지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으며, 점차적으로 서양화적인 풍경화 양식과 기법 대신 전통 한국화의 시視방식에 다가갔다. 또한먹과 붓을 활용하는 가하면 병풍 족자 형식을 차용하기도 했다. 게다가 그는 지난 7년여 동안 산수화에 대한 본격적인공부를 하기위해 그 근간이 되는 자연과 우리의 산천을 답사하며 백두대간의 산들과 전라도의 산들을 탐사하는 열정을보여주기도 했다. 이번 전시는 그간의 이 같은 노력과 실험들이 소재 상으로나 기법 상으로 어느 정도 숙련기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주는 듯하다.눈에 들어오는 것은 동양화라고 할 수도 없고 서양화라고 할 수도 없는 그야말로 조병철 나름의 독특한 산의 풍경이다. 작업들은 일견 너무도 자연스러워 그 특이함이 눈에 띠지 않지만 좀 더 눈을 가까이 하면 서양 풍경화의 특징과 동양화의 특징이 교묘하게 어울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전반적으로 담채를 활용해서인지 산의 풍경은 화사하고 담담하다.구도는 일단 서양화의 그것에 가까워 한 눈에 원근법적인 구성을 갖고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어딘가 시점이 어긋나 있는 듯하여 살펴보면 이 구도는 전통 산수화의 삼원법(고원,심원, 평원)들과 다양한 방식으로 섬세하게 결합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전통 산수화의 미점법이나 여타 준법들을 변형한 부분들이 엿보이기도 하고, 부감의 시각에서배치된 사람들이나 집들 혹은 여타의 정경들을 찾을 수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 그림들은 전체적으로는 전통 산수화처럼대상을 이상화하는 방식으로 재구성되어 있지 않다. 이들은기본적으로 사실적 풍경화의 시야를 확보하고 있다. 내가 보기에는 이번 전시의 <와운 설송도>가 양화와 전통 산수화의장점을 결합하려는 그의 야망을 가장 성공적으로 구현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 그림에서는 공간적 깊이와 넓이의 사실성이 전통 산수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눈이 가득 찬 정경의 아름다움과 유려하게 삼투되어 있다.한마디로 그는 매우 힘들고 어려운 실험을 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예술적 지향을 구현해 줄 수 있는 방법론을 탐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일견 온유해 보이는 작업들 구석구석에는 바로 이러한 탐구의 흔적들이 잠재되어 있으며, 성과와 실패의 기미들이 내장되어 있다. 나는 그의 이 같은 실험과 고투가 뚜렷하게 성과로 드러나기를 기대하며, 이러한 담대한 구상과 열정이 제대로 존중받을 수 있는 화단의 풍토를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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