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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6 |
판화가 지용출, 그는 아직 우리 가슴에 있다
관리자(2011-06-09 15:12:15)
판화가 지용출, 그는 아직 우리 가슴에 있다 - 김정경 JTV 구성작가 봄꽃들이 화사한 얼굴을 내미는 2011년 봄날, 그가 돌아왔다. 지난해 5월 불의의 사고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던 판화가 지용출. 그의 1주기를 맞아‘곁에 있는 나무’(5월7일-18일·한국소리문화의전당)전이 열렸다. 그의 오랜 벗들과 선·후배들이 팔을 걷어 부치고 마련한전시다.본격적인 판화 복원 작업만 꼬박 6개월. 유작전을 준비하는 동안 쓸쓸하던 김제시 금구면 선암리의 싸릿재 작업실이 오랜만에 사람들로북적였겠다. 작가의 손때 묻은 작업도구들은 모처럼 온기를 되찾고,목판 위를 오가는 손길들로 분주했겠다.그렇게 판화가 지용출이 작고 1년 만에 우리 곁으로 다시 찾아왔다. 한 사람의 몸 안에는 얼마나 많은 것들이 담길 수 있을까. 전시된 작품은 모두 230여점. 이 작품들은 그가 전라북도에살며 몸 안에 채워온 시간들이다. 시간의 흐름을 따라 작품들곁을 흐르다보면, ‘지용출’이라는 판화가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어렴풋 그가 지나온 시간들을 읽을 수 있다.“그림을 그리면 굶어죽는다”는 부모님의 뜻에 따라 서울성동 기계공고를 졸업한 그는 6수 끝에 추계예술대학교 판화과에 발을 들여 놓았다. 그는 총학생회장을 하기도 했던 소위‘운동권’이었다. 그래서인지 그가 판화 작업을 하면서 사회 참여를 염두에 두었다는 것이 그의 초기 작품들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전주로 내려와 작업한「정미소」,「 붉은 바위」「, 효자동 아파트 단지」,「 개발지구」등 역시 민중판화에속하는 작품들로, 선들이 굵고 거칠다. 이 시기는 작가가 시대적 고통을 표현하는데 강한 호소력을 지닌 판화의 상징과 간결함에 집중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용출 판화가는 부안 갯벌과 김제 붉은 땅, 전주 삼천동 개발 지구의 모습 등자신과 함께 살아가는 주변 사람들의 정서를 섬세하고 정직하게 표현해 내는 작가였다. 그리고 그가 살아온 공간과 작품들은 한 몸을 이루어 서서히 변화해 왔다. 2004년 작업한전북의 옛 지도들 앞에 서면 그의 발바닥에도 지도가 그려져있으리란 상상을 하게 된다. 오목대와동고사, 한벽당, 남고산성 등 전북의풍경들을 민화풍으로 되살려 냈다. 그러기위해 그는 무수히 걷고 보고 들어야 했을 것이다. 나무를 파내고 시간을채워 완성한 전북의 옛 모습이 고스란히 찍혀있다.‘서울사람’인 그가 전라북도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94년, 부인 김미경 씨가 부안으로 발령을 받으면서부터다.아는 사람이라곤 하나 없는 낯선 곳에서 그는 묵묵히 칼을 들고 자신만의 세계를 파 나갔다.그는 지역의 역사와 문화도 그렇지만 일상의 풍경들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다. 소재를 따로 구한다기보다 주변의 풍경들을 그대로 옮겨다 놓는 화가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으리라. 생활 속에서 몸으로 부딪혀 얻어낸 세상, 그래서 그는 농사에 매료됐는지도 모른다.‘미술이든 농사든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사람들과 눈을마주치는 일’이어서 다만‘삶에 충실하고 싶다’던 지용출 판화가. ‘땅에서 나는 모든 것이 아름답다’며 그가 부른 땅과 생명에 대한 찬가는 손수 만든 황토 종이 위에 파꽃이며, 냉이며, 소라풀과 같은 들풀들로 피어 있다.“흙의 냄새, 흙의 마음을 담고자 난 작업실 주변의 흙을 넣어 종이를 만들었다. 우리의 종이 닥에 우리의 흙을 넣어 손으로 펴고, 햇볕에 말려 우리 땅에서 자란 우리의 풀처럼 그렇게 종이를 만들고 종이에 들풀을 찍었다.”(지용출. 전라도닷컴) 지용출 판화가는 작고 사소한 주변의 풍경과 이야기를 놓치지 않는 섬세한 사람이었지만 또 한편으론 스스로를 끊임없이 확장시키고 확대해 가는 부지런한 작가였다. 뒤늦게 대학원에서 동양철학 공부를 하고 전북민족미술협회장을 거쳐전북판화가 협회 회원으로, (사)문화연구창 이사로 활동하며미술과 대중과의 소통을 끊임없이 고민해왔다. 이러한 고심의 흔적들은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2010년 서울 전시를 앞두고 작업한 소나무 연작들에 이르러서 더 단단하고 담담해졌다. 판화의 미덕인 절제와 함축의 미(美)를 담기 위한 노력들이다. 그의 이후의 작품들은 또 어떻게 변화해 갈까 궁금해지지만 아쉽게도 기대할 수 없다.칼의 정직함과 느림을 사랑한다던 판화가 지용출. 전시장을 나서며 이번 전시를준비한 유대수 판화가와 후배 작가들을만났다. 그들이 기억하는 지용출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그가 남기고 간 마음 조각들을 이어붙인 면면은 이러했다. 허전한마당가 조용히 꽃나무 한 그루 심어놓고가던 사람, 한해 농사지은 것이라며 서리태 콩 한 주머니를 수줍게 내밀던 사람,참 착한 사람, 그래서 이 험한 세상을 어찌 살까 내심 주변사람들을 걱정시켰던 사람, 그러나 판화로 세상을 읽어내는 일에 있어선 무섭도록 진지했던 사람이 바로 판화가 지용출이었다. ‘나 홀로 예술’을 경계하고 민중과 함께 숨 쉬는 예술을 꿈꾸었던 지용출 판화가. 우리는 그런 사람을, 온몸으로제 길을 열어간 우리 지역의 작가를 가졌었다고 그를 추억했다.판화가라는 말이 누구보다 잘 어렸던 그는 이제 작품으로만 남았다. 그의 작품을 오래 기억하는 일, 빠르게 흘러가는시간과 바쁜 세상살이에 그를 빼앗기지 않고 간직할 수 있는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판화가 지용출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그의 작품들은 고요하고 평화로운 시간이 내어 줄‘곁에 있는 나무’가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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