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11.6 |
무위당 장일순 삶과 수묵 전북전을 열고 - ‘지역적 삶’의 스피릿
관리자(2011-06-09 14:52:21)
무위당 장일순 삶과 수묵 전북전을 열고 ‘지역적 삶’의 스피릿 - 주요섭 무위당 삶과 수묵전 전주 조직위원 요즈음 시민사회에서‘원주’가 뜨고 있다. 군사도시 원주,대학도시 원주가 아니다. 로컬푸드 운동의 모범이고, 한국협동조합운동의 메카요, 생명운동의 뿌리이며, 도농복합형지역공동체의 살아있는 모델이다. 원주가 이른바 대안운동,지역운동의 보통명사가 되고 있다.원주는 변방이다. 전북만큼이나 서울과 중앙정부에 대해할 말이 많은 감자바위 강원도의 일부이다. 도시 규모로만보면 인국 30여만 전주의 절반밖에 안 되는 중소도시에 불과하다. 의료단지 유치, 기업도시 유치, 심지어 영상경마장유치까지 나서는 평범한 지방자치단체에 불과하다. 그런데그러한 원주가 하나의‘현상(syndrome)’이 되고 있다. 세상을 움직이고 혁신하는 창조도시가 되어 가고 있다. 어떻게?그렇다. 원주의 영혼이 새로운 원주를 창조한다. 원주는 다른무엇보다‘박경리의원주’,‘ 지학순의원주’, 그리고이번에전주에모신무위당(無爲堂)‘ 장일순의원주’다. 지역적 삶, 우주적 삶 무위당 장일순(1928~1994)은 당대 최고의 지식인 이영희선생이‘절친’으로 교유하고 야당대표 손학규가 극진히 모셨던 1970년대와 1980년대 한국 민주화운동의 선각적 지도자였다. 생명사상을 제창하고 이를 몸소 실천하여 오늘의 한살림과 원주를 있게 한 사상가이자 운동가였다. 그리고‘웃는란(蘭)’으로 상징되는 한국 현대 서화사에서 한 경지에 이른탁월한 예술가였다.그러나 필자에게 무위당 장일순은 무엇보다 국가적 식견과지구적 안목, 나아가 우주적 통찰 속에서도 평생 원주를 지킨‘지역적 삶’의 사표이다.120년전 조선 남녘 동학과 전봉준이 떠오른다. 전라도 고부에 살던 전봉준과 손화중과 그의 동지들은 도탄에 빠진민생과 침몰해가는 나라를 바라보며 통탄해야 했다. 일신의안위와 출세를 쫓지 않고 지금 여기의 삶을 성찰하고 수행하며, 한편으로 경세유표 별본을 탐독하며 국가 경영의 방략을 연구했고, 충청과 강원과 해주와 전라와 경상의 동지들과 통문을 주고받으며 전(全) 조선적 연대를 꾀했으며, 수시로 한양을 오르내리며 동아시아 정세를 살폈다. 무엇보다하늘(정신)과 땅(물질)과 사람(사회)이 새로운 질서로 재구성되는 개벽의 꿈을 공모(共謀=conspire) 하였다. 그러나 그이들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불(火)’을 선택할 수밖에없었다. 시대가 그러하였다.무위당은 대학시절의 서울 유학 외에 평생 원주를 떠나지않았다. 그러면서도‘무위당’이라는 호 그대로 하는 일 없이모든 일을 만들어낸 처사(處士)이며 도사(道士)이며 지사(志士)였다. 지학순 주교와 함께 민주화운동으로, 김지하, 박재일, 이병철 등과 함께 생명운동·협동운동으로, 그리고 원주의 벗들과 함께 한국형 몬드라곤의 가능성을 열었다.그런데 무위당의 삶은 물(水)과 같은 삶이었다. 사랑의 시인 도종환은 무위당을 이렇게 이야기 한다. '그는 물 같은 분이셨다 그를 핍박했거나 비난했던 이들은 불 같은 분이라 의심하였으나 그는 아무래도 물 같은 분이셨다 그는 가장 낮은 곳으로 가라고 하셨다 낮은 곳을 택해 나아간 것들이 물줄기를 이루고 강이 되어 멀리까지 가듯 낮아지고 낮아져야 한다고 하셨다 낮은 곳에 누워 강물이 가르쳐주는 소리를 듣고자 하셨다 그리해야 바다에 이를 수 있다고 믿으셨다(후략) 무위당의 사발통문 무위당 장일순과 전라북도, 사실 특별한 인연이 없다. 전북을 방문했다는 보고도 전해지지 않고, 눈에 띠는 교류가있었다는 흔적도 없다. 필자가 아는 전북에서의 자취는 이런 정도. 글씨 한 점과 인터뷰 한 꼭지와 제자 한 사람. 정읍의 허름한 사무실에 걸린 글씨 한 점이 떠오른다. 그리고1995년에 전주에서 발간된 무크지 남민(南民)에서 만난 무위당 장일순과 최준석 교수(전북대 영문과)의 인터뷰 기사.또 있다. 무위당이 흠모해 마지않던 동학의 2대 교주 해월최시형의 사상과 행적을 평생 뒤쫓고 또 현대적으로 계승하려는 박맹수 교수(교무, 원광대 교학과).어쩌면 2011년 봄 처음으로 원주와 전주 사이에, 무위당장일순과 전주 사람들 사이에 특별한 인연이 만들어지고 있는 셈이다. 원주 사람 장일순이 전주 사람 아무개들을 만나러 온 셈이다. 아니 강물처럼 그냥 흘러가고 있는 지도 모른다.무위당은 전국을 순회하고 있다. 그러나 아니다. 위에서아래로‘온 나라(全國)’를 시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아래서 아래로 옆에서 옆으로‘지역’과‘지역’을 이어주고 또 만나고 있는 것이다. 재작년 광주에서 시작된 무위당의 전시회는 지난 해 청주와 충주를 돌아, 올해 대전을 찍고 전주에 왔다. 그리고 조만간 대구로 움직일 것이다.동학의 사발통문이 둥글게 떠오른다. 둥근 사발 모양의서명지에 석자 이름을 적는다. 강원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아마도 거기에 이런 선언이 천명되어 있을 것이다. “천지막물막비시천주(天地萬物莫非侍天主)”, “밥이 하늘이다”,“돈 위에 사람 있다”,“ 사인여천(事人如天), 사람을 하늘처럼모시자”,“ 민생을편케하고온생명을살리자”등등. 만국활계남조선 2011년 5월 전라북도의 들녘이 측은하다. 새만금에 오기로 했다는 삼성의 신재생에너지산업단지 환영 현수막 언저리, LH(토지주택공사) 유치전 뒤끝 아직 철거되지 못한 살벌한전투구호가오히려애처롭다. 욕망과열망사이,‘ 지역적삶’, 진정한 행복과 자기실현을 자문(自問)한다. 애향심과 개발소외와 발전욕구를 생각한다.전북엔 전봉준과 손화중, 강증산과 소태산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1년 봄 전북의 무위당을 되묻는다. LH 유치현수막 안에 갇힌 전라북도의 영혼. 전북의 영혼을 되찾으려순례를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 박물관 전시실 박제화된 영혼이 아니라, 오늘 여기서 살아있는 전북의 정신을 찾아서.만국활계남조선(萬國活計南朝鮮), 온 세상을 살릴 계책이 조선 남녘에 있다고 했다. 변방에서 새로운 문명이 태어나고, 혼돈의 가장자리에서 생명이 생겨난다고 했다. 있는듯 없는 듯 별 볼일 없는 변방과 가장자리와 비주류들이 모여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낸다. 전북이 의미심장하다.살림의 계책, 즉‘활계’의 비밀은 이미 우리 안에 있다.전란을 피하고 탈 없이 건강하게 살고자 했던 피난과 장생의지(勝地)는 계룡산, 지리산이 아니라 유무상자(有無相資)의 공동체 안에, 무궁생명에 대한 깨달음 속에, 갑오년 백산기포의 폭풍 같은 열망 속에 있다. 부안 핵폐기장 투쟁의 상처와 그늘 아래, 새만금 삼보일보의 발걸음 사이사이에‘삶의길’,‘ 평화의길’,‘ 호혜와공생의길’이있다.‘남조선’을 이야기 한 강증산의 일화가 예사롭지 않다.한 여름 어느 날 제자들과 삼밭을 지나다가 문득 제자들에게“삼대 석 다발을 가져오라”말했다. 그러고는 이내 삼대 석다발을 한데 섞은 뒤에 먼저 상(上)대를 추려 뽑아 버리고,다시 중(中)대를 추려 버리니 가장 가늘어 쓸모없는 하(下)대만 한 줌 남았다고 한다. 그리고 증산은 이 하(下)대를 묶고서는 이렇게 말한다. “이것들이 내 자식이니라. 가장 못나고모자란 사람, 이리 가지도 않고 저리 가지도 않는 사람이 내사람이다.”라고 말이다.개발의 욕망과 생명평화의 열망 사이 도랑물 같은 민초들, 지역들, 그리고 바다에서 만나는 개벽세상. 만인(萬人)활계, 만물(萬物)활계의 열망이 출렁인다. 부안의 에너지자립마을, 진안의 마을축제, 정읍의 산촌유학, 완주의 커뮤너티비지니스, 전주의 발랄하게 빛나는 젊은 예술가들, 더불어협동조합과 사회적 기업과 귀농·귀촌의 젊은 농부들이 우후죽순처럼 자라난다. 그리고 도법스님과 문규현신부님과아름다운 삶을 열망하는 하는 벗들과 함께‘호혜의 그물’을자아간다. 전북의 무위당은 이미 우리 안에 있다. 그물코 하나가 우주적 생명의 그물을 출렁인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