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11.5 |
[서평] 『울기엔 좀 애매한』- 최규석 지음
관리자(2011-05-06 09:00:04)
『울기엔 좀 애매한』- 최규석 지음 정면응시, 필요하다 - 최을영 자유기고가 최규석이란 만화가, 있다. 만화 좀 읽는 친구들은 최규석 알 게다. 만화 안 읽는 친구들은? 당연한 말은 안 쓰는게 도리니 스킵하고. 이런 얘기 주절거리는 이는, 내가 최규석에게 연정(戀情)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많이들 알았으면 좋겠는데 그러지 못한 거 같아 좀 서운해서 그런다.2004년 최규석의 출세작(?) <공룡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란 책 나왔었다. 그 책 읽고, 시쳇말로‘뻑이 갔다.’‘뭐 이런 놈이 다 있어?’라는 내 반응은 신선함을 넘어선충격 때문이었다. 그러니 오늘 서평에서 찬양까지는 아니어도 침튀겨가며 찬사를 늘어놓아도 넓은 마음으로 이해바란다. 이해 못한다면? 흠, 그냥 이해하시라.오늘 얘기할 만화는 <울기엔 좀 애매한>(사계절)이다.울면 울고, 웃으면 웃었지, 좀 애매한 건 뭐야? 뭐 이런분들 있겠다. 사람마다 감정선 다 다르니까. 그런데 생각보다 애매한 상황 종종 있다. 상갓집 풍경 한번 보자. 곡을 한다. 그런데 손님도 맞아야 한다. 때로 웃기도 한다.애매하지 않은가. 마냥 슬플 수도, 마냥 기쁠 수도 없다.분명 슬픔과 기쁨, 울음과 웃음사이에는 적막감 느껴지는공간이 있다. 이 만화는 그 공간에 대한 얘기다. 딱히 뭐라 꼬집을 수 없는, 때로는 극단으로 치닫는 감정을 중화시키는, 때로는 독방에 갇힌 듯한 그 답답한 공간에 대한이야기다.이 만화, 입시미술학원이 배경이다. 이곳에 모여든 인간 군상들은 대체로 추레하다. 대표적인 게 주인공인‘원빈’과‘은수’다. 학원비를 못낸 이들이 나누는 대화, 한번들어보자.“한겨울에 보일러 기름이 없는 거야. 끓인 물 페트병에넣어서 끌어안고 자 봤냐? 아침에 그 물로 샤워도 한다.”“한 달 동안 초코파이만 먹어 봤어요?”“참치캔 헹군 물에 라면 스프 넣고 끓여 먹어 봤냐?”“그거면 석달은 먹죠. 40평 아파트에서 등교했다가 월세방으로 하교해 봤어요? 인생이 자이로드롭입니다.”“너 졸라 잘 살았구나? 난 모태 빈곤이야. 어디서 깝쳐?”(50쪽)‘모태 빈곤’은수는 재수생이다. 대학에 합격했는데 등록금이 없어 다시 학원을 다니며 재수를 한다. 원빈은 부모님이 이혼하고, 어머니가 식당일을 한다. 뒤늦게 학원에 들어온 것은 어머니가 큰마음을 먹었기 때문이다. 모태빈곤이든, 잘 살았다가 가난해졌든 이들은 가난한 집안에 가난한 학생들이다. 학원비도 밀리는 처지에 대학등록금을 구하기란 쉽지 않은 일. 그래서 미술학원 선생이자작가 자신의 분신인‘태섭’은 이들에게 마음자리가 가 있다. 태섭 역시 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태섭의말이다.“다른 걸 볼 기회가 없었어. 대학에 가면 뭘 하는지도몰랐지만 대학에 안 가면 어떻게 되는 건지 아무도 가르쳐주질 않았어. 그냥 겁만 줘. 무슨 폭탄 돌리기도 아니고…. 자꾸 다음 단계로 넘기기만 하는 거야. 그리고 나에게는 학자금 대출 채무가 남았지.”(129쪽)이들은 모두 은수의 말처럼“불가촉 루저”다. 탈출구없는 루저다. 당장 학원비도 없고, 대학등록금도 없고, 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학자금 대출 채무가 남는 이들. 먼 얘기 같은가. 생각보다 먼 얘기 아니다. 요즘 유난히 증가한 대학생들의 자살, 생각해보라. 대학 등록금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하다하다 지쳐, 빚 갚으라는 독촉에 지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들 생각해보라. 생각보다 먼 얘기, 아니다. 어느칼럼 제목처럼“우리는 조용히 죽어가고 있다.”그래서“한국 입시제도는 교육정책이 아니라 고용정책”이란 말, 동의한다. “돈도 재능이야.”란 말 속에 담긴 현실, 동의한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데도 만화가란 꿈을 위해 애를쓰는 은수를 바라보며 그 동생이 한 말“나한테 꿈이 없는 게참 다행스럽달까”란 말에도 동의한다. 그리고 울기엔 좀 애매한 상황에도 동감한다.“그게 말이지, 나도 그래서 한번 울어볼라고 했는데…….이게 참 뭐랄까……. 울기에는 뭔가 애매하더라고. 전쟁이난 것도 아니고 고아가 된 것도 아니고…….”“웃거나 울거나만 있는 건 아니잖아. 화를 내는 것도 가능하지.”“누… 누구한테요?”“그게 문제지.”(111쪽)‘가슴 아픈 일이다’라고 쓰고 웬 청승이냐고 스스로를 비웃는다. ‘네가 언제 애들에게 관심 있었어?’라고 질문하고,‘아니’라고 대답한다. 그렇다. 난 관심 없었다. 아니 지금도그들의 실상, 잘 모른다. 그런데 걔네들이 울기엔 좀 애매한상황이란 건 알겠다. 화를 내고 싶은데 화낼 상대가 누군지모르는 그 상황도 알겠다. 우석훈의 <88만원 세대>를 읽고느꼈던 그‘비상구 없음’, 조금은 알겠다.이들은 지금 울기엔 좀 애매한 상황이다. 이상한 공간에 끼어 있다. 그 공간은 적막하고 삭막하다. 그 안에 웃음도 있고울음도 있지만, 결국 그 공간 안에서만 이뤄지는 일. 탈출구는 없어 보인다. 비상구도 없어 보인다. 비상구 없는 세대는대학을 졸업하고도 학자금 대출을 갚느라 그 적막한 공간에여전히 끼어 있다. 울 수도 없고, 화낼 수도 없는 그 공간에그들은 그렇게 끼어 있다. 짱돌을 들기도 힘들어 보인다.최규석은 그 상황,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작가의말이다.“내가 어른이 되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세상을 만들고 그 속에서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고 있는 어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때의 내가 겨우삽 한 자루 가진 사람들을 향해 왜 저깟 산 하나도 옮기지 못하느냐고 터무니없는 책망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어른이 된후에 깨달았다. …사실 어른은, 아니 어른도 별 힘이 없다.그럼에도 학생들을 볼 때면 당당할 수 없었다. 그들의 삶은내가 그들의 자리에 있을 때보다 더욱 냉혹해졌고 누군가는그것에 대해 죄책감이든 책임감이든 느껴야 했다. 숨만 쉬며세월을 보냈건 어쨌건 어른이 된 이상 그런 감정들을 피해갈수 없었다. …보지 않으면 나았을 테지만 매일같이 학생들과얼굴을 맞대는 상황을 겪고 나니 그들을 위해, 아니 적어도어린 시절의 내가 퍼부었던 비난을 조금이라도 피하기 위해무언가를 해야만 했다. 내가 가진 삽 한 자루로 할 수 있는만큼을.”(5쪽)<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의 저자 장 지글러는“인간은 다른 사람이 처한 고통에 함께 아파할 수 있는 유일한생물”이라고 얘기했다. 또 그는 <탐욕의 시대>란 책에서 벤자민 프랭클린이 얘기한 수치심의 권력을 설명하며“나 아닌다른 인간에게 가해진 고통을 바라볼 때도 나는 나의 의식속에서 얼마간 그 사람의 고통을 함께 느끼며, 그로 말미암아 내 안에 연민의 감정이 생겨나고, 도와주고 싶은 연대감이 발동하며, 동시에 수치심을 느낀다. 이렇게 되면 내 안에서는 행동하라는 부추김이 일어나게 된다.”고 말한다.동의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 말은 얼마간 무색해진다. 그렇다고 손을 놓고만 있을 수는 없는 일. 누구처럼 짱돌을 들라고 얘기하기도 미안한 현실이지만, 그래도 이 현실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일만은 피하지 말아야지 싶다. 최규석이‘불가촉 루저’들이 끼어있는 그 어두운 공간을 정면으로 응시한것처럼 말이다.그래서 정면응시, 필요하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