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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5 |
인터뷰 Interview - 고향에 작업실 연 남천 송수남
관리자(2011-05-06 08:55:01)
"사람에겐 고향이 소중한것이다” - 황재근 기자 ‘현대 수묵화의 거장’남천 송수남(73)선생이 고향 전주로 돌아온다. 송수남 선생은 1980년대 현대 수묵화 운동을 주도하며‘새로운 한국화의 정립’에 힘써왔고 이후에도 한국인, 한국화에 대해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며 혁신을 이끌어왔다. 지난해에는 처음으로 고향에서 그간의 작품 활동을 회고하는 개인전을 갖기도 했다. 귀향을 맞는 선생의 소감을 들어봤다. 1938년 전주에서 태어난 선생은 오랜 기간 타지에서 활동해왔다. 하지만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항상 간직하고 지내왔다. “내가 중앙초등학교 1회 졸업생이에요. 옛날에 경기전이나 한벽루에서 많이 다니고 그랬어요. 경기전 솔밭에서 그림 그리던 게 기억이 많이 나요.” 선생이 전에 썼던 글에는 그 마음이 더욱 절절하게 드러나 있다. 오늘날까지 내가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이 어쩌면 내 어린 시절, 작업실이었던 뒷동산의 덕이었다고 생각되어진다. 그래서 고향이 그립고 사람에겐 고향이 소중한 것이다. 나는 고향을 자주 찾아가진 못하지만 갈 때마다 내 고향이 좋아지는 것이 내 나이 탓인지도 모르겠다. (<시인, 묵객 담소의 장소> 중에서) 한옥마을은 선생이 어릴 적 나고 자란 곳이다. 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게 어디 있습니까. 시간이 흐르면 다 달라지는 거지요.예전에는 이 동네 골목들이 아주 좁았는데 이제는 다 널찍해졌네요. 그래도 길 건너 이목대 쪽 집들은 아직 그대로더군요.”선생이 새로 마련한 거처는 전주 흑석골이다. 1층은 화실, 2층은 창고로 사용할예정이라고.“ 아직은 공사 중이에요. 처음부터 마음에 드는 데가 어디 있나요. 아쉬운 것은 차차 채워나가면 되지. 조용한 동네고 작은 마당도 있어요. 작업에 몰두하긴 좋을 것 같아요.”선생은 작업실에 남다른 의미를 두고 있다. 서울에서 마련했던 작업실들은 항상 손님들이 즐겨 드나들던 사랑방의 역할을 하곤 했다. 일 년 열두 달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다고 가상해 보자. 내가 내 화실을 정리할 필요도 없고, 꽃이라도 꽂아둘 필요가 없질 않는가. 그림이 중요하고 내 작업도 중요하지만 결국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고 그림을 감상해 줄 사람이 중요한 게 아닌가. (<시인, 묵객 담소의 장소> 중에서) 고향의 작업실도 그런 역할을 하게 될까? “글쎄요. 내가 전주에서 나고 자라긴 했지만 서울에 오래 살아서 이제는 아는 사람도 많지 않아요. 몸도 불편해서 많이 돌아다니기도 힘들고. 무엇보다 앞으로는 작품 활동에 집중하려고 해요. 공간도 넓어졌으니 좀 더 큰 작품도 해보고 싶고.”공사가 마무리되는 5월경에 선생은 전주로 이사를 할 계획이다. 가족들은 여전히 서울에 있어 자주 서울을 오가겠지만 삶터는 전주에 둘 것이라고.“당분간은 혼자 지낼 생각입니다. 때가 되면 가족들도 전주로 내려올 수 있겠지요. 5월에 전주에 내려오면 그때 다시 한 번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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