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5 |
신귀백 영화엿보기 - <그대를 사랑합니다>
관리자(2011-05-06 08:54:26)
노인을 위한 나라
원작의 수고
‘만화적 상상력’이라는 말. 비록 네모 칸에 갇혀있지만 그림 속 동물과 무생물이 말을 하고, 하늘로 기차가 날며, 땅이 갈라지는 장면들 말이다.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이하 그대사)>는 만화가 원작이지만 만화적 상상력을 추수(追隨)하지않는다. 아니 강풀의 만화는 말풍선을 줄이고 이야기를 네모 칸 속에 가두지 않는데 그 매력이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마치 붓이 카메라가 되어 앵글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영화적 화면구성을 보여주는데. 쓰잘데기 없는 말풍선 대신 화면이 이야기를 건네는 조금 느린 미학은 마우스를쥔 건방진 독자에게 편안함을 안긴다. 강풀의 속내에는 영화의 단위인 신과 시퀀스에 대한 만화가의 바른 이해에 있을 터.줄곧 저질스런 스포츠 만화로 대표되는 세상속, 웹에 강풀이란 존재를 알린『순정만화』는 같은 이름의 청춘영화 <순정만화>로 태어났지만관객과의 소통은 그리 활발하지 못했다. 하지만“조땠네”라고 말하는 여학생에게 끝까지 존대를하는 청년의 이야기 그리고 부드러운 선은 오래도록 가슴을 적신다. 노송동 전주 제일고등학교부근에서 찍은, 토스트 굽는 바보 승룡이 이야기<바보> 역시 관객의 외면을 받았고, 전두환 그 뒤의 이야기를 다룬『26년』은 영화제작단계에서 엎어졌지만 <그대사>는 순전히 입소문으로만‘뜬(4월 17일 현재 160만 동원)’영화다.영화 장르가 보여주는 컴퓨터그래픽과 특수효과는 만화장르에 강펀치를 먹여 비틀거리게 했지만 강풀과 추창민 감독은 오히려 영화에서는 낯선, 차분하고 독하지 않은 현실적 캐릭터들을 등장시킨다. 현실에서 자주 접하던 사람들이 스크린으로 들어간 <그대사>는 현실 속 노인들이 주연으로 나오는 우유같이 부드러운 드라마를 생성해 내는데, 보자.
캐릭터의 노고
“부다다다다” 지붕과 지붕이 이마를 맞댄 누추한 골목길. 좁고 어둡다. 오토바이맨김만석 할배(이순재)는우유배달로 골목의 새벽을 깨운다. 제 집 한 칸은 있어 재물복은 그리없지 않으나 마누라가암으로 세상을 떠난 염복(艶福)도 변변찮은 영감. 만화를 보면서 킬킬대는 손자들에게‘너 미쳤냐?’하게 생긴 심보사나운 형상인데. 이 노인네가 눈 내린 비탈길을 오르다 마주 오던 손수레 할머니가 오토바이 바퀴에 튄 돌멩이에 맞아 퍽 쓰러지면서 영화는 시작된다.‘늙기도 설워라커든 짐을 조차 지실까’마는송씨(윤소정) 할매는 폐휴지를 줍느라‘니야까(리어카라고 부르지 말자)’를 끌고 다닌다. 눈내려 미끄럽고 좁은 골목길에 자주 마주치니어찌 관심이 없겠는가. 만석씨는 참을성 있는노인이 아니다. 스펙이라곤 버럭 근성과 가부장적 태도 거기다 욕 잘 하고‘승질’급한 이 양반은, “귀가 먹었나, 이 할망구가?”하면서 쓸데없는 구시렁으로 포스를 부리는데. 영감의늙은 오토바이는「메밀꽃 필 무렵」에 나오는 조선달의 당나귀처럼 힘이 가빠 언덕길을 제대로오르지 못한다. 소설 속에서 허생원의 힘든 모습을‘고개를 넘을 때마다 나이가 알렸다’라는간결한 표현으로 늙음을 대신한다면, 이 영감님 보청기를 끼지 않으면 듣는 이에게 언성을높이고 오토바이는 언덕길에서 시동이 꺼져 버린다.‘야동 순재’아닌‘버럭 만석’영감은 우유배달차 오토바이를 타고 나갔다가 추운 날씨에어린이 놀이터에서 내복만 입고 그네 타는 붉은 내복의 조순이 할머니(김수미)를 발견한다.자신의 파카와 신발을 벗어 준 만석 영감은“이런 니미”하면서도 오토바이 뒤에 할매를 태우고 끝까지 화장실을 찾아 준다. 아, 오토바이뒤에 여자를 태우는 것은 보통 남자들의 영원한 로망인데, 그 로망의 끝에 노망난 할매라니!추리닝에 슬리퍼로 추위를 견디며 치매 걸린할망구를 보호하는 열혈남아를 관객이 사랑할이유는 충분하다.치매 걸린 할머니의 남편 장군봉(송재호)은평생을 택시기사로 일하고 이제는 주차관리원으로 살아가는 영감으로 점잖은 사람. 그는 송씨 할머니의 손수레를 맡아주는 영감인데, 대문 잠그는 것을 깜박 잊고 출근하자 이 사단이난 것. 벽에 x칠이 아닌 크레용 칠을 하며 꽃무늬 혹은 빨간 내복만 입고 돌아다니는 애물단지 마누라를 목욕시키는 할배는 자애롭고 그사랑을 끝까지 유지해 나가는데.예의와 염치를 아는 달동네 할매의 골목에눈은 내리고 와서 덮인다. 이 때, 그대의 오토바이 소리가 눈길을 밟고 간다. 동네의 아침을알리는 새벽닭이 되어 아침을 깨우는 영감에게사랑이 생긴 것. 욕쟁이 할아버지와 까막눈 할매의 눈 내린 골목 비탈길 사랑을 미리 알았다면 안도현 시인도‘연탄재’에 관한 시를 쓰지는못했을 것이다. 자분자분 말하는 송 할머니 귓불이 어여쁘니 만석노인의 훈계는 구시렁으로,구시렁은 따뜻한 사랑의 말로 바뀐다. 잠바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송 할머니의 장갑선물을받게 되는) 손을 모으고 버스를 기다리는 할매를 부신 듯 지켜보던 할배는 그림 편지로 데이트를 신청하고 글을 배운 할머니는 깍두기공책에 고맙다는 첫 편지를 쓴다. 레스토랑의 비싼가격 앞에서 공손해지는 영감, 그것을 보고 말없이 웃어주며 포장마차에서 데이트를 즐기는 두 노인네. 영감은 사랑이 그립고 할매는 고향이 그리운데….장영감은 송씨 할머니에게 글을 가르쳐 주고 만석노인은새로운 라이벌에 심통이 나지만 이들은 곧 친구가 된다. 하혈하는 조 할머니가 암으로 고통이 심화되자 이제 두 커플은바닷가로 소풍을 다녀오는데, 장노인 부부에게는 이승의 마지막 여행이 된다. 이들의 사랑을 덮어주는 이불처럼 눈이내리는 날 저녁, 장군봉 노인은 청테이프로 바람 새는 방의작은 틈을 막는다. 그리고 연탄 화덕을 들여 놓고 아내에게입맞춤을 한다. “이제 다시 우리는 부부가 되었습니다. 가족이었는데…”다시 태어나도 당신을 사랑할 거라는 장영감 부부는 세상의 사랑을 끝내지만 만석노인과 이뿐 노인은 사랑을 이어간다.노인에게 위엄을 가져다주는 것은 대개 지위와 돈이지만귀가 잘생긴 노인커플을 버티게 하는 것은 존경과 관심이다.못 배우고 거친 노인들이라고 솥단지 걸고 바로 합방하지 않는다. 이뿐이 할매를 위해 머리핀을 사고, 한데서 훌쩍이는코에 꼬르륵 거리는 배를 참는 모습 귀엽지 아니한가. 이제이 할아버지는 몇 달이 더 사랑스러운 남자가 된다. 생활보호 대상자도 기초수급자도 되지 못하는 호적 사각(死角)의넝마주이 할머니에게 김노인이‘송이뿐’이라고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할매는 꽃이 된다. 빈티지 후드티에 녹색 머플러가 이쁜 송이뿐 할머니에게 주민등록증이 선사되고.먼저 간 아내의 무덤에 우유를 뿌리는 영감, 따뜻하다. 단스 위 솜이불이 올려진 이뿐 할머니의 작은 방 도리상 앞에마주 앉은 두 노인. 케이크에 촛불을 켜고“그대를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는 노인은 행복하다. 송이뿐 노인의 더워진 뺨에 흐르는 눈물. 그를 지켜보는 만석 노인의 조금 어색한 표정.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것은 사랑할 사람이 있다는 것,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그대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이제부터 날마다 하루하루는 특별한 날이 되는 것. 자작나무우거진 강원도 깊은 산 속에서 머리카락 위에 반짝이는 청색머리핀을 한 송이뿐 할머니는 김만석 노인을 위해 메밀국수를 삶을 것이다.
감독과 배우의 노고
아무리 강풀의 만화가 그 선이 부드럽고 이야기가 따뜻하다 해도 누가 감히 이‘누추한’이야기를 영화로 만든단 말인가? 여기 메가폰을 잡은 추창민은 자기를 놓을 줄 아는 배짱좋은 감독이다. <마파도> <사랑을 놓치다>의 감독이라면,아하! 할까? 세상의 이쁜 것들, 신나는 것들을 멀리하고 칙칙하고 우울할 수 있는 이야기를 늙은이들을 투샷으로 호빵같이 부풀려 노배우들의 수고를 이끌어낸 솜씨라니. 자신만의개성과 야망이 있을 법 한데, 꾹 참고 원작에 손을 대지 않고만화 칸처럼 화면을 나누고 이어 붙여 성공한 경우랄까?여기 노인으로 출연한 배우들은 노인을‘연기하는’배우와는 다르다. 흰머리를 감추지 않고 후줄근한 옷 입기를 마다하지 않은 노배우들 자신의 전부를 다 보여주는 용감한 배우들이다. 주름과 늙은 손 그리고 풀어진 몸매를 드러내고전혀 우아하지 못한 자세를 연기한 노배우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박수칠 때, 부디 떠나지 마시라.) 말쑥한 양복을 빼입으면 은퇴한 교장같이 보일 이순재, 명품을 걸치면 아직 처녀 같을 윤소정, 튀는 장면 하나 없이 잔잔한 모습을 보여준송재호, 일용엄니부터 <프란체스카>에서 이사벨로 다양한스펙트럼을 보여준 배우 김수미, 정말 고생하셨다. 다만 그긴 손톱만 짧게 깎았으면 더 없이 좋았으련만.하나 더, 대중음악가이면서 인디 같은 루시드 폴, 인디이면서 과하지 않은‘옥상달빛’등이 부르는 노랫소리는 맑고 투명하여 노인들의 스토리를 올드하지 않게 세련된 감성을 뒷받침하는 큰 역할을 한다.
관객의 수고
노인네들의 느린 이야기를 다룬 영화관에 젊은이들이 들락거리며 입소문을 낸다. 컴퓨터 앞에 앉아 가운데 손가락으로스크롤바를 굴리면서‘강풀’을 보고 큰 세대들이 그 따뜻함을 잊지 않고 티켓을 산 것. 이들 착한 젊은이들은 어버이날에 나이만 늙은 귀여운 가수들의 노래인‘세시봉’을 선물하고 또 진짜 나이 드신 어른들의 이야기 <그대사>를 웹툰이뭔지 모를 부모에게 선물한다.노년을 다룬 영화가 하나 둘 는다. <이끼>가 노인의 탐욕에 대한 스릴러라면 사실 <시>도 노인에 대한 이야기였다.노인의 사생활을 엿보는 영화 박진표의 영화 <죽어도 좋아>에는 금기시되었던 노인의 욕망을 드러낸 점은 박수 받을 일이지만 솔직히 자아존중감이 없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영화의 주인공들과 조연인 오달수와 이문식 송지효까지 노인사랑홍보대사로 추천할 만하지 않은가.문신과 피어싱을 한 사람에게도 노년은 찾아오지만 사실노인을 위한 나라는 드물다. 이 나라를 이만큼 키운 성장의주역에게 일자리 소멸에 따른 소득 상실에 이어지는 심리적불안감과 소외감, 빈곤과 질병과 고독에 대한 문제는 곧‘우리’에게 닥칠 문제다. 아이들 다 키우고 나면 용도폐기 되어노인도‘제금나는’모습을 왕왕 보지 않던가. 노인의 나라는도둑같이 금방 찾아오리라.영화 속 송이뿐 할머니가 새로 받은 주민등록증은 39년생인데, 가수 티나 터너랑 같은 나이. 오노 요코는 33년생이고얼마 전 돌아가신 여신 엘리자베스 테일러 할머니가 32년생이시다. 세상 잠깐 아닌가. 그래, 학생자살로 문제 많은 어느대학 총장 할아버지께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다. 경쟁에서이기는 것보다 그대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학생이 많아져야좋은 학교가 될 터이니.끝으로, 노인복지법에서 노인은 65세부터지만 57세부터 웬만한 지자체에서는 이 영화를 공짜로 보여주고 빵과 우유도 드린단다. 이제 곧 전주의 한 극장은 실버관을 전용으로 운영한다니 마음이 쓸쓸한 노인이시여 극장을 찾으실 것.그리고 강풀과 그의 웹툰을 사랑하는 젊은이들은 땅 끝까지<그대사>를 전할지어다. 초보노인의 명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