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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5 |
꿈꾸는 노년 - 박완서의「마른 꽃」
관리자(2011-05-06 08:51:58)
박완서의「마른 꽃」 노년의 연애 - 장미영 전주대학교 교수 우리 사회는 곧잘 여성을 꽃으로 비유한다. 소녀는‘덜 핀 꽃’, 혼기에 찬 여성은‘활짝 핀 꽃’, 중년 여성은‘시든 꽃’과 동일시된다. 그러기에 소설의 제목인‘마른 꽃’은 틀림없이‘늙은 여성’의 메타포다.작가의 표현대로, ‘꽃’이라는 말에는‘같이 아이를 만들고, 낳고, 기르는 그 짐승스러운 시간을 같이할 정욕의 주체로서의 여성’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것을 우리는 우아하게 포장하여‘정열’이라고 일컫는다.급기야 작가는, 정욕이 넘쳤던 젊었을 때의 사랑을 아름답게 추억하면서, 사랑은 있으나‘정욕’이 없는 노년의 연애를‘겉멋’으로 치부하고만다. 그 결과 밥 걱정, 노후 걱정 안하려고 시집가는 배고픈 할머니는 자원봉사보다 훨씬 더 거룩하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허무로 시작되는 노년 맞이 1995년『문학사상』1월호에 발표된 박완서의「마른 꽃」은, 초로의 여인을 초점화자로 하여, 도시 중산층 노인의 연애 심리를 조명했다. 살아온 시간이 많이 지나서‘시든 꽃’을지나‘마른 꽃’으로 취급받기에 이르는 노년은 허무로부터시작된다고 작가는 담담히 고백한다. 허무해지기 시작하면 꽤 괜찮게 자란 아이들도, 실력을인정받는 간부사원이 된 남편도 시들해졌고, 시들해지기 시작하면 손끝 발끝이 저리도록 기운이 빠졌다. 느닷없이 돈푼깨나 있는 친구가 보석상을 차리고, 겨우 사는 내가 아무것도 안 사면서 보석상을 뻔질나게 드나든 것도 그런 허전한 심사와 무관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 때 늙는 일밖에 안남은 나이를 죽음보다 더 두려워하고 있었다「.( 마른 꽃」중에서)작가는 인생의 허망감을 미구에 닥칠 노추의 공포라고 단정 짓는다. 그것은 시대의 변화와 맞물려 지금 이 사회가 노인에게 막되 먹은 공간을 제공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노송의 연륜이 무시되고 노인의 지혜가 무덤보다 더 대우받지 못하는 도시의 막되 먹은 공간속에 청사포가 들어설리 없다. 죽음조차 품는 지혜는 뒷전으로 밀리고 가려지고삶의 편익만이 도모되는 오늘의 도시 속엔 청사포는 없다「.( 마른 꽃」중에서)‘공간과 빠르기의 시대에 시간과 깊이의 유물은 별로 소용이 없다.’는 작가의 뼈있는 한 마디는‘세월의 두께와 깊이가주는 성숙은 도외시 되고 눈앞의 이익만을 쫓아 곧장 환전될수 있는 젊은 정보만을 섬기는 우리 사회에 대한 원망이기도 하다. ‘늙은 지혜와 성숙으로 곰삭은 노인들의 새로운 지식은 젊은 정보로 구성된 조직망으로부터 체계적으로 소외’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작가는 노년을 두려워하는 작중 화자의 신산한 마음을 담으면서 노인으로 살아갈 날들을 차근차근 해석해낸다. 대부분의 노년소설이추체험을 목적으로 회상을통해 과거를 소급 제시하는것과 달리, 「마른 꽃」은 노인이 된 현재 상황 위주로 서술시간을 잡음으로써 독자로하여금 노인 심리의 진실에 닿아 있는 것 같은 실감을 느끼게 한다. 연애의 기쁨을 압도하는 노년의 속성 연애 감정이란 열여섯 살 먹은 계집애나 회갑을 맞는 노인이나 별다를 것이 없다고, 화자는 사랑앓이의 속내를 드러낸다. 명품 트렌치코트에 이끌린 후, 남자의 긴 다리와 날씬한몸에 반했다가 늠름한 걸음걸이에 가슴을 울렁이는 여주인공의 모습은 손발이 오글거릴 정도로 유치하기에 더 연애답다.주인공은 회갑을 앞둔 초로의 미망인이다. 그녀는 친정 조카 결혼식을 보고 오는 고속버스 속에서 상처한 지 삼 년 되었다는 지방대 교수를 지낸 멋쟁이 조 박사를 만나 천만뜻밖에도 사랑을 하게 된 것이다.주인공은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간사스러움도 부려보고, 함부로 탄성을 지르는 톡톡 튀는 연기도 마다하지 않는다. 젊은이 못지않은 노인들의 간지러운 연애행각에 미소가 절로 솟는 대목이다.강아지 안부를 주고받는것으로 시작된 그와 나의 전화질은 강아지를 보낸 후에는 차 한 잔 하자는 만남으로 발전했다. 그를 만나기위해 아침 산책을 나가기도했고, 첫 눈이 오는 날은 마침내 카사노바하고 비슷하게분위기가 고급스러운 바에서괜히 잔을 부딪치며 위스키를 마시기도 했다. 그때는내가 샀고, 다음엔 그가 답례로 토속적인 목로술집에서막걸리를 샀다. 서양식 술집 못지않게 근사한 집이었다. 내가 한식을 사면 그는 양식을 샀고, 내가 싼 걸 산 다음 그는 비싼 걸 샀지만 서로 부담을 안 느끼기 위한 어떤 규칙이 있는 건 아니었다.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그때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했다.그의 잘생긴 진돗개하고도 낯을 익혔고, 그의 차에다 진돗개를 태우고 드라이브를 가기도 했다.서울 근교에 그렇게 좋은 곳이 많다는 걸 처음 안 것처럼느꼈다. 강아지를 핑계로 눈물을 흘릴 수도 있을 만큼 간사스러워진 후였다. 곳곳이 새로워 함부로 탄성을 지르지를않나, 열여섯 살 먹은 계집애처럼 깡충거리지를 않나, 요즈음 신세대 탤런트의 연기를 톡톡 튄다고들 하는데 내 안에서도 뭔가가 핑퐁 알처럼 경박하고 예민한 탄력을 지니게 되었다는 걸 느꼈다. 뿐만 아니라 연기를 하고 있다는 혐의가 아주 없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자신 속에서 느끼는 경박한 즐거움은 유희의 기쁨 같은 것이었으니까「.( 마른 꽃」중에서)연애하는 동안 주인공의 눈을 가리고 오로지 한 남자만 보이게 한 그 맹목의 힘은 사랑이었다. 그런데 결혼 말이 나오면서 뻔히 짐작 가는 노인의 구차한 속성들이 연애감정을 압도하고 만다.아무리 멋쟁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이 닥칠 늙음의 속성들이 그렇게 투명하게 보일 수가 없었다. 내복을 갈아입을때마다 드러날 기름기 없이 처진 속살과 거기서 우수수 떨굴 비듬, 태산준령을 넘는 것처럼 버겁고 자지러지는 코곪,아무데나 함부로 터는 담뱃재, 카악 기를 쓰듯이 목을 빼고 끌어올린 진한가래, 일부러 엉덩이를 들고 뀌는 줄방귀,제아무리 거드름을 피워봤댔자 위액 냄새만 나는 트림, 제입밖에 모르는 게걸스러운 식욕, 의처증과 건망증이 범벅이된 끝없는 잔소리, 백 살도 넘어 살 것 같은 인색함, 그런것들이 너무도 빤히 보였다「.( 마른 꽃」중에서)길게 나열된 늙은 남성의 속성은 한 문단 분량으로 지면을메운다. 연애감정을 깨게 만드는 여주인공의 세속적인 현실감은 사랑의 발랄함을 영영 떨치고 만다. 연륜에서 오는 세상살이에 대한 실용적 감각은 현실과 환상을 너무나도 명석하게 구분 짓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간의 노인들이현실에 발목을 잡혀 불가능한 꿈을 꾸기가 어려웠던 모양이다. 노년의 거룩함 ‘마른 꽃’은 향기도 없고 모양도 예쁘지 않다. 싱그러움이 충만한 생화가 자신의 영혼을 보다 더 높이 올려놓기 위해서애썼다면,‘ 마른꽃’은화려했던날을차곡차곡접을줄을알아야 한다. 노년은 지워질 듯 남은 그리움으로만 연명하기힘든 복잡성을 갖기 때문이다.“밥걱정 노후걱정 안하려고 시집오려는 사람은 얼마든지있대. 그렇지만 너무 젊은 여자는 며느리가 싫은가봐. 당장지내기 거북한 것 말고도 나중에 책임질 기간이 길까봐 그렇겠지 뭐. 기껏 어디서 배고픈 할머니나 한 분 모셔 올 모양이야. 엄만 사랑하던 사람이 그렇게 불쌍해져도 좋아?”친구한테 농담하듯이 버릇없는 말투였다. 나는 발끈했다. “배고픈게 왜 나빠? 무시하지 마, 너. 자원봉사보다 훨씬 거룩한 거다, 그거.”「( 마른꽃」중에서)노인에게 진정한 사랑은 가슴 떨리는 연애감정이 아니라삶의 편익을 제공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작가는‘거룩한것’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고 있다. 노송이 아무렇게나 버려져야하는 무가치한 나무가 아니듯, 노인도 삶의 마지막을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도록 일상의 안녕이 보장되어야 한다는것이다.‘ 밥걱정, 노후걱정안하려고시집오려는배고픈 할머니’는 그래서 자원봉사보다 훨씬 더 거룩한 일을 할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사랑보다‘배고픔’을, 노년의 해결사로 여기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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