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5 |
[문화시평] 특별 제작공연 <The 아리랑>
관리자(2011-05-06 08:49:44)
한국소리문화의전당 개관 10주년 기념 특별 제작공연 <The 아리랑>
의미있는 시도, 그러나‘지역’은 없었다
- 장세길 전북발전연구원 문화관광팀 부연구위원
기대보다 걱정이 많은 출발이었다. 민영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전북도는 정동극장·예술의전당·세종문화회관 같이 검증된 기관이 위탁에 참여할 것이라며 높은 기대감을 드러냈지만 정작 위탁신청기관은 중앙공연문화재단 한 곳뿐이었다. 당시 문화저널 기사에도 나와 있듯이, 소리전당과 전북예술회관, 도립국악원을 57억 원에 모두운영해야 한다는 말에 하나같이 신청을 포기한 것이었다. 도립국악원은 소리전당과 통합을 반대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중앙공연문화재단 대표와 직원의 불미스러운 일까지 불거지면서 소리전당은 그야말로‘소리’많은 시설이라는 소리까지 들어야 했다.
많은 성과, 하지만 문제점도 도사리고 있다
수탁기관이 바뀌고 나서야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직원의 고용승계는 흔들림 없는 시설운영의 밑바탕이 됐다. 도립국악원 통합이 취소되면서 위탁금액이 30여억 원으로 줄어 어려움이 예상됐지만 자체수익에서 상당한 성과(2010 년1,792,200천원)를 냄으로써 여러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적은 예산과 인력에도 불구하고 하루도 쉬는 날이 없이 공연장을 운영했으며, 특히 공익적인 프로그램(문화바우처, 비인기 예술장르 기획, 찾아가는 예술체험 프로그램, 토요놀이마당, 청소년교향악단 등)을 다양하게 추진함으로써 지역 문화예술 활성화에 기여한 바가 컸다. 2004년 최우수기관운영상,2009년 전국우수문예관 경영상을 수상했다는 사실만으로도소리전당 10년의 성과가 결코 적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한 가지 우려스러운 점은 10년이 지난 지금 호미로 막을일을 가래로 막을 수도 있겠다는 것이다. 많은 공연관계자들은“몇 년 후면 소리전당이 빈 깡통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고걱정한다. 위탁기관이 매년 시설유지관리에 많은 돈을 쓰고있지만(2010년 유지관리비용 338,472천원), 대부분 급한불끄기식의 미봉책에 불과하다. 시설보수유지 예산이 위탁금액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데다가 2~3년마다 한 번씩 수탁자를 새로 선정하는 민간위탁 구조에서 누구라도 시설유지보다 공연유치, 수익창출 등 경영성과에 열을 올릴 수밖에 없다. 민간위탁과 관련해서 많은 전문가들이 우려했던 일, 즉공공성이 부족하고 장기적인 전략을 실천하기 어렵다는 문제점이 1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민간위탁 문제점을 그대로 보여준 <The 아리랑>
<The 아리랑>은 소리전당 10년 성과를 정리하고 앞으로 10년을 준비하는 출발점이라는 의의를 가진다. 소리전당 측에서 밝혔듯이 진정한 아트 매니지먼트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국내 공연장에서는 처음으로 아트 커미셔너(ArtCommissioner)를 초빙해 선보인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번 공연이 컬쳐(culture, 문화)와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 오락·여흥)를 합친 컬테인먼트라는 개념을내걸고있는이유도여기에있다.‘ 아리랑’이라는가장한국적이면서 전통적인 예술소재를 세계적인 문화상품으로 키우기 위해 대중적 볼거리를 제공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는것이다.<The 아리랑>은 기존의 전통공연, 또는 퓨전공연과 분명달랐다. 한국의‘한’과 같은 정서를 담고 있는 세계의 민족노래를 하나로 엮어 세계 모든 이들이 특별한 설명 없이도 동일한정서를느낄수있도록기획했다.‘ 아리랑’,‘ 한’이라는한국적 특수성과 민요, 민족의 애환이라는 세계적 보편성이만난 것이다. 그런 점에서 <The 아리랑>의 기획 의도는 참신했고, 세계적인 상품으로서 가능성도 충분해 보였다. 공연을 보기 전까지는 그랬다.문화는 맥락적(context)이어야 한다. 멕시코의‘라쿠카라차(la cucaracha)’는 1910년 100만의 목숨을 앗아간 멕시코 혁명 당시의 농민들 이야기다. 혁명군 뒤를 따르는 농민들이 마치 바퀴벌레(라쿠카라차)가 행렬을 지어 가는 모습 같다고 해서 만들어진 노래다. 페루의‘엘콘도파사(El CondorPasa)’는 스페인의 200년 폭정에 분노하여 일어난 농민반란군의 슬픔과 결연한 의지를 노래하고 있다. 그런데 <The아리랑>에서‘라쿠카라차’를 부르는 모습은 슬픔보다는 흥겹다는 느낌이 강했다. ‘엘콘도파사’는 애절한 기타가 농민의 고통을 고스란히 전해주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노래와 함께 보여준 영상은 농민을 압제하던 귀족이나 살았음직한 고풍스러운 건물뿐이었다. 이 불편한 불협화음을 어찌하란 말인지?엔터테인먼트 요소 또한 제대로 작동했는지 되묻고 싶다.관객은 후반부 막바지에 등장한 오정해씨에게 우레와 같은박수를 보냈다. 경쾌한 노래에도 불구하고 오정해씨가 등장하기 이전까지 관객들은 숨을 죽였다. 어느 여성관객이 동료에게 하는 말이 귀에 박혔다. 마지막에는 아는 노래가 있어서 들을 만 했는데, 나머지는 잘 몰라서 힘들었단다. 컬테인먼트의 한 축인 엔터테인먼트, 즉 오락적 재미를 관객들은어디에서 찾아야 했는지, 갑자기 등장한 아프리카‘아닌카공연단’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흔히 하는 말대로 백화점식 레퍼토리와 번쩍이는 조명을 엔터테인먼트 요소라고 봐야 하는지, 전북의 아리랑은 왜 한곡도 무대에서 공연되지않았는지, 지금 생각해도 답을 찾기 어렵다.<The 아리랑>은 분명 의미 있는 시도다. 10살이 된 소리전당이 지역의 대표작품을 만들겠다고 나선 점에서 그러하다. 하지만 이번 공연만 놓고 보면 더 많은 변신이 필요하다.지역 예술인을 무대에 올렸다는 긍정적 효과만으로 공연에서드러난 문제점을 덮을 수는 없다. 지역 예술인이 아니라 공연을 기획하고 준비한 이들의 문제가 더 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