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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5 |
[기획특집] 지역문화 다시보기 - 남원 1
관리자(2011-05-06 08:45:19)
지역문화 다시보기 - 남원 1 이 풍부한 문화자산 어떻게 활용 할꼬 - 서정섭 서남대 국문과 교수 남원, 참으로 묘한 곳 문화는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달되며, 구체적인 행동으로부터 추상화, 상징화된다. 문화콘텐츠의 원천인‘문화적 요소’는 창의성과 기술을 바탕으로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문화콘텐츠로 전환될 수 있다. 창의적 기획력은‘문화적 요소’에 새로운‘혼’을 불러 넣는 원동력이다. 박물관 자료실 한 구석에 쌓여있던 역사적 기록, 이야기, 디자인이 소설로, 영화로, 게임으로, 만화로, 애니메이션으로, 캐릭터로 새롭게태어날 수 있다. 사소한 것으로 여겼던 것을 새롭게 인식하여‘혼’을 불어넣을 때 새롭게 다가갈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최명희『혼불』의 한 대목이 새롭게 다가온다.“이 남원이 참으로 묘한 곳이니라.”조부 동계어른 이헌의는 그 무렵에 이제 고보를 졸업하고 청년이 된 강호를 앉혀놓고 그렇게 말한 일이 있었다.“시정(市井)의 사람들은 흔히 남원하면 맨 먼저 그냥 춘향이부터 떠올리던 걸요.또 끝내 춘향이밖에는 모르고. 학생들조차도.”강호가 이헌의와 마주앉은 그날의 사랑에서 조부에게 웃음 띄운 음성으로 응대하자 이헌의는 다만“무지해서 그러하다. 모르는 줄도 모르고. 허기는, 모르는 줄을 알면 이미 반절은아는 것이지.”하더니 이윽고 물었다.“그러면 너는 네 고을 향리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느냐?”남원은 인생의 많은 고민, 고뇌의 터전이었고, 풍류를 아는 고장이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변화, 변혁을 추구하는 고장이었다. 또 민족의 아픔과 고통을 같이한 고장이면서 동시에 문학의 산실이었다. 판소리 동편제의 탯자리가 남원이고 고전문학의백미인 춘향전, 흥부전의 고장이고 변강쇠가의 판소리를 통해서 서민들, 유랑민의 애환을 노래했던 고장이다. 또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 중 한 편인 만복사저포기의 배경지가 이곳 남원이다. 이러한 남원의문화자산을 문학적 자산, 예술적 자산, 역사적 자산, 지리적 자산, 교육적 자산, 산업적자산으로 분류할 수 있다. 남원의 7대 문화자산 남원의 문학적 자산은 고전문학과 현대문학으로 나눌 수 있다. 고전문학은 춘향전, 흥부전, 변강쇠전, 만복사저포기, 최척전, 조선의 여류시인 김삼의당을 들 수 있다. 현대문학에서는 최명희『혼불』과 지리산을 배경으로 한 지리산문학을 생각할 수 있다.남원의 예술적 자산은 동편제의 판소리와거문고, 도자기이다. 춘향가, 흥부가, 변강쇠타령, 거문고의 악보를 채록한 양덕수의『양금신보』는 한국고전음악의 대표라 할 만하다.지금은 남원이 도자기 고장이란 말이 낯설게느껴질 수 있을지 모르지만 오늘날 일본에는정유재란 당시 남원에서 일본으로 끌려갔던도공 심수관 일가들이 불렀던「오ㄴ리_노래가 그대로 전승되고 있다. 남원이 일본 도자기의 본고장이었다.남원이 항거, 저항의 터, 절개의 고장이었던 것은 춘향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춘향이가 이몽룡과 사랑을 성취하게 된 데에는 변학도의 불의에 항거하고 저항한 결과이다. 춘향이가 단순히 사랑만을 위해서, 절개를 지키기위해서 인내하고 버텼던 것은 아니다. 변학도의 회유와 어머니인 월매의 흔들음을 이겨낼수 있었던 것은 불의에 대한 항거, 저항 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종교적 측면에서 남원은 변화욕구의 발원지이다. 불교 교종과 다른 선종의 발상지가남원 산내의 실상사이었고, 동학의 교주 최수운이 동학의 경전을 집필한 곳이 교룡산 은적암이었으며, 고려를 끝마침하고 조선을 건국하고자 뜻을 세운 곳이 운봉의 황산대첩이었다. 이러한 것들은 기존의 질서를 새롭게 하여 변화와 변혁을 추구하고자 했던 정신에서비롯되었다.남원의 역사적 자산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아픔이다. 남원은 지리적인 여건상 군사적 요충지임으로 크고 작은 싸움이 끊이지 않았다. 신라와 백제의 국경선으로 싸움이 잦아 산성과 토성이 많은데 남원성과 교룡산성이 대표적이다. 고려 말 이성계가 왜구를 물리친 황산대첩과 피바위, 정유재란 때의 남원성 싸움과 만인의총, 근대에 들어서는 동학농민전쟁, 현대에는 4·19 혁명의 도화선 김주열 열사 등이 아픈 상처이며 호국의 몸부림이었다.이외에도 한국전쟁과 지리산, 용성관, 사직단, 관왕묘 등이있다.지리적 측면에서는 뱀사골 계곡과 달궁, 구룡계곡을 품고있는 지리산과 지리산둘레길, 섬진강이 있다. 지리산은 민족의 영산으로 숭앙을 받았다. 백두산에서 뻗어내린 줄기와 기운이 높디높은 지리산을 솟게 했다. 백두대간의 끝자락에 힘을 모아 어머니 품처럼 포근하고 웅대한 지리산이 있다. 예전에 우리 선조들은 지리산이 민족의 영산으로 영험성이 있다고 믿었고, 지리산은 매우 웅장하고 크기 때문에 모든 사람을 품어주는 은둔처이었다. 선비들은 지리산을 이상향, 청학동으로 생각하여 몹시 사랑하고 즐겨 찾았다.교육적 측면에서는 조선시대 사마시 급제자의 명부인 사마방목에 소과에 급제한 남원 출신자가 384명으로 전국 10위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산업적 측면에서는 농업 중심의농촌이면서, 바루, 제기, 상, 생활목기와 추어탕, 흑돼지, 산채 비빕밥의 특산품이 있다. 관광은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보는 것, 빛을 보는 것 남원에 문화자산이 이처럼 많은 것이 오늘날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축복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그 반대일지 알 수 없다. 과유불급이 이에 해당할수 있을지 모르겠다. 문화자산이 너무 많아 하나라도 제대로 부각을 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여 아쉬울 때가 있다. 예를 들어 남원 하면 춘향을 떠올리지만 춘향을 있게 한 광한루는 황희의 일재(逸齋)라는 서당과 광통루(廣通樓), 정인지의 광한루(廣寒樓)로 변천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광한루원에서 황희 정승과 정인지가 중요한 인물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조명과 관심은 광한루원의 또 다른볼거리가 될 것이고, 춘향제의 한 꼭지로도 자리를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하나 차근차근 돌을 쌓아가는 심정으로 완성을 시킬 때 많은 문화자산이하나로 묶여 빛을 발할 것이다.관광(觀光)을 글자 그대로 풀어보면‘빛을 보다.’이다. 관광객은 자신의 고장, 나라에서 자신들이 가지지 못한 것, 즉 어둠속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 빛을 보려고, 경험하려고 찾아온다. 관광은 한 나라의, 한 지역의 자연풍광, 문물, 제도, 풍습을‘육안으로 보는 물리적인 빛, 심안(心眼)으로 보는 정신적인 빛’을 보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남원의 문화적 특성은 한국의 상징성, 대표성, 역사성을 간직하고 있다. 한국의 문화를 대표하는 곳이 남원이어서 남원을 자세히 보면 한국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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