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5 |
[문화칼럼] '스토리' 아니고 '스토리텔링' 인 까닭
관리자(2011-05-06 08:44:45)
‘스토리’아니고‘스토리텔링’인 까닭
- 김옥영 스토리텔링연구소 온 대표
스토리텔링이란 단어는 이제 우리 사회에서 더 이상 생경한 단어가 아니다. 몇 해전부터 이 단어는 온갖 분야에서 회자되어왔다. 광고, 홍보, 기업경영, 교육, 전시, 공간, 지역등에서 너도나도 스토리텔링을 해야 한다며 그 당위성을 역설해온 것이다. 서점에는 스토리텔링이라 이름붙은 책들이100여종이 넘게 쏟아져나와 있고, 정부 차원에서도 각종 사업에 스토리텔링의 도입을 독려하여 각 부처는 물론 각 지자체에서도 이런저런 이름이 붙은 스토리텔링 사업을 무수히해왔다.그런데 그렇게 많은 스토리텔링 사업 중에서 이거 참, 성공작이군! 할만한 것은 그리 쉽게 눈에 띄지 않는 것은 무슨까닭일까? 그 이유를 나는 약 세 가지 정도로 추정한다.그 첫째는 스토리텔링을 왜 해야 하는지 당위성이 없는 사업을 벌이는 경우이다. 짐작컨대 위에서 스토리텔링을 하라고 하니 하긴 해야겠고 뭘 해야 좋을지 모를 때 이런 일들이발생한다. 다시 말하면 명확한 목표가 없는 것이다. 이 경우로 얼핏 떠오르는 사례. 어느 지자체에서 십이지신상을 본뜬거리 상징물을 세우고 이 상징물에 대한 창작 스토리를 공모한 일이 있었다. 그 공모안을 보고 당장 머리 속을 지나가는생각은 뭐에 쓸려고? 하는 것이었다. 스토리텔링의 효용을짐작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모한 스토리들은 지금쯤어디 있는지 기억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 분명하다.둘째는, 스토리텔링의 목표는 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론으로 접근해야 할 지 모르는 경우이다. 엄청나게 많은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가장 흔한 것이 문화관광적 차원에서스토리텔링 사업을 한다며, 지역의 이야기를 발굴해 책을 내는 방식이다. 그런데 문제는, 책은 냈는데 이 책을 사보는 사람도 거의 없고, 보고싶어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는 데 있다.이야기는 너무 많은데 너무 많다보니 오히려 기억나는 게 없고, 오로지 책을 냈다는 사실만이 남는 경우이다. 그래놓고관계자들은“스토리텔링을 했는데 왜 효과가 없지?”라고 말한다.이것은 스토리텔링에 대한 근본적인 오해에서 비롯된 일이다.여기서 우리는 과연 스토리텔링이 무엇인지 그 근본을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근년 들어 스토리텔링이 이렇게 각광을 받게 된 것은 문화적 예술적 이유가 아니라(그러니까작품적 가치가 아니라) 사회적 효용가치란 측면 때문이다.즉 어떤 메시지를 단순‘정보’로 전달하는 것과‘이야기’로전달하는 것과는 수용자에게 미치는 각인효과가 다르다는 것을 크게 주목한 결과인 것이다. 그러나‘이야기’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많은 사람들이 정작 더 중요한 대목은 간과하고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야기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영향력을 발휘하려면 일단 이야기가‘전달’이 되어야한다는 아주 간단한 사실 말이다. 그것도 가능한 많은 사람들에게.바로 이 지점에서‘텔링’의 중요성이 제기된다. 그러니까‘스토리’가 아니고‘스토리텔링’이라 부르는 것이다! 그래,이야기는 있는데, 이걸 어떻게 이야기‘할래?’라고 묻는 것이스토리텔링의 방법론에 대한 요구이다.소설과 같은 언어적 영역, 드라마나 영화와 같은 영상적영역의 서사는 스토리텔링의 고전적 장르로 누구나 여기에‘스토리’가 있음을 알고 있다. 이것들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하는 선형적 서사의 특징을 지닌다. 그러나 공간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어찌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우리의 경험이 형성되어있지 않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래서‘스토리텔링’이라고하면 그 목적이 무엇이든 우선 책이나 드라마, 영화, 애니메이션 같은 익숙한 것들부터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자신이 실체로서 알고 있는 이상의 그 무엇, 특히 아직 존재하지 않는 그 무엇을 상상하기란 힘들기 때문이다.그러나 그러한 고전적 텔링이 수용자들에게 전달되지 않는다면 이야기의 힘은 그저 개뿔에 지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수많은 지자체에서 펴낸 그 수많은 책들이 도대체 누구에게 기억되고 있는지 한번 되짚어보시라. 스토리텔링의 힘을 발휘하기 위해 기울인 노력이 실은 헛다리를 긁은 것은아니었는지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스토리’를‘텔링’하는 매체와 방식은 대단히 다양하고,목적에 따라 그것은 한가지 방식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방식이 혼용되기도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스토리를 어떻게텔링하느냐에 따라 수용자의 기억 속에 그 스토리가 어떻게작용하느냐가 결정되며, 텔링을 어떻게 할 것이냐에 따라 스토리 자체의 채택조차 달라질 수 있다는 것도 유념해야 한다. 필연적으로 스토리텔링은 스토리를 어떻게 알릴 것인가하는 스토리 마케팅의 개념과 결합할 수밖에 없다. 바로 이점이‘스토리텔링’이 전문영역이 될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이와 관련한 것이 바로 세 번째 이유가 된다. 스토리텔링작업을 누가 하는가, 누가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의식이다.English Storytelling이란 이름을 붙였다고 영어 구연동화를 가르치는 교사가 스토리텔링 전문가로 오해되는 현실을보면서 암담함을 느끼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스토리텔링이란 분야가 아직도 이렇게 아리송하다보니 비전문가들이 이 분야의 전문가인양 나서고 있고, 이것이 스토리텔링사업의 성공을 어렵게 하는 원인의 하나가 되고 있다고 본다.내가 생각하는 스토리텔링 전문가는 이런 사람들이다. 스토리텔링의 목적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그에 합당한 스토리를 발굴하거나 선별하거나 창작할 능력이 있어야 하며, 그목적을 가장 효과적으로 달성시킬 수 있는 텔링의 방법론을찾아낼 수 있어야 하며, 그것이 대중의 감성에 깊숙이 파고들 수 있도록 하는 스토리 마케팅을 결합할 수 있어야 한다.생각건대 우리 사회에 현존하는 스토리 창작능력이 있는집단 중에 이러한 조건에 적합한 능력을 갖춘 집단으로는 방송작가 집단이 가장 유력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방송작가들은 온갖 종류의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매일매일을 이런목표와 효과 사이의 실증적 방법론을 개발해내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필자와 몇몇의 방송작가들이 모여 스토리텔링연구소를 만든 것도 이 분야야말로 방송작가들의 전문성을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는 분야임에 틀림없다는 확신때문이었다.스토리텔링 사업은 성공 모델이 필요하다. 스토리텔링을왜 하는지, 어떻게 하는지, 누가 하는지에 분명한 답변을 할수 있을 때, 비로소 스토리텔링은 이름만의 유행에서 벗어나우리 사회에 유효한 방법론으로 뿌리내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