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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4 |
[서평] 『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 서영은 지음
관리자(2011-04-12 16:18:34)
『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 서영은 지음 내 안의 ‘노란 화살표’ - 김형미 시인 월명암에 오르는 길은 많다. 변산 소재지로 해서 남여치 고개를 넘어도 되고, 사자동이나 원암마을, 혹은 노랫재 바위를 타고 대소를 경유하여 가도 된다. 그 많은 길을 놓아두고 사람 발길이 제일 뜸한 외길을 탄 적이 있다. 월명암에서 모노레일을 놓아 물건이나 실어 나르는 길. 오랜만에 찾은 길이 눈에 설어 순간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애를 먹던 찰라, 산 안쪽에서 호피무늬를 가진 커다란 개 한 마리가 달려 내려와, 나뭇잎 속으로 드러난 감태나무 굵기만 한 길을 따라 월명암까지 안전하게 안내해주었다. 호피무늬 개는 불전에 들면 불전 앞에서 앞발을 포개고 엎드려 기다리고 있다가, 산을 다 내려갈 때까지 또 그렇게 안내를 해준 뒤 사라졌다. 그 후로 오랫동안 나는 그 호피무늬 개가 산신령의 지팡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마음이 갈 바를 찾아 발을 움직였을 때, 보이지 않는 힘이 선뜻 마음을 내어준 것이라고. 그리고 그 보이지 않는 힘은 밖에서 온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안에서 나왔다는 것을. 산티아고까지 가는 순례길에 오른 작가 서영은이 그러했던 것처럼. 서영은. 그녀가 마음 둔 곳을 향해‘걷기’를 시작한 그 순간부터, 아니 떠나기로 마음을 낸 바로 그 순간부터 보이지 않는 힘은 작용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힘이 그녀가 안전하게 미궁 속을 들어갔다 나올 수 있게 보호를 해주었는지도. 사람의 마음은, 아마존 나비의 미세한 날갯짓이 북아메리카 대륙 텍사스에 토네이도를 일으키는 것처럼 거대한 파장을 지니고 있다. 그 파장으로 인해 보이지 않는 움직임이 때로는 현실 세계에서 눈으로 확인되고, 손으로 만져지는 대상으로 현현되기도 한다. 물론 현현된 대상은 마음을 낸 사람의 안에서 나온 힘이다. 그녀의 안에는 그녀를 안내해 줄‘노란 화살표’가 있었다. 동행하여줄‘치타’도 있었다. 처음엔 그녀도 그녀 밖에 있는 이질적인 것이라 여겼을 것들. 자신의 운명을 노란 화살표나 치타에게 의지하고 내맡기기도 하면서, 그녀는 자신을 진정 자신 안에 이르게 하는 것은‘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하여‘동행에 의지하지 말고 혼자’걷기를 갈망한다. 결국 길은 내게서 뻗어나가 내게로 돌아오는 것이기에. 하지만 그녀는 곧 노란 화살표나 치타가 자신과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간절히 원했을 때에야 만나지는 한마음이라는 것을 알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내면의 마음이 변화하여 밖으로 나가 또 다른 모습으로 곁을 지켜주고 있었다는 것을. 자신에게 현재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나 변화는 모두 다 자신의 마음에서 나온다. 그녀가 산티아고로 향하기 전부터 그녀 안에는 이미 수마이아가 있었고, 빌바오와 라 메사, 카다보와 구로, 그 밖의 그녀가 지나간 수많은 곳들과 산티아고가 있었다. 그리고, 노란 화살표나 치타가 그러했듯 산티아고를 떠나 다시 돌아온 처음 출발지가 있었다. 처음 자리에 있는 자신이 다시 그 자리에 있는 자신을 만나기 위해 잠시 하나의 큰 동그라미를 그린 것이다. 다만 그녀는 자신 안에 있는지도 모르게 잠자고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발로 두드려 호명하여 깨워본 것뿐이다. 그리고 그것들로 하여금 미로 속을 다 통과하고 나면 자신이 무엇이 되어 있을지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무엇이 된다는 것. 그것은 직접 발도장을 놓으며 큰 동그라미를 그리는 과정에서 얻은 그녀가 진정 짊어져야 할‘짐’이다. 끊임없이 손속에 쥐고 가는 자신의 얼굴과, 명예와 이름을 내려놓고 그 빈곳에 새로 들여놓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것이기도 하다. 누구나 홀가분해지기를 원하는 현대 사회에서 이익을 따지지 않고 되려 짐을 지려고 하는 이의 모습이 얼마나 고귀해 보이던지. 그렇게 시작과 끝이 하나인 지점에서 깨달음을 얻은 서영은은 또 새로운 시작을 꿈꾼다. 그녀가 지나온 숱한 곳에 그만큼 숱한 자신을 내려놓으면서부터 보다 큰 세상을 보듬어 안을 수 있는‘어머니’가 되어. 산은 산이로되 옛 산이 아니듯, 큰 동그라미를 발로 그려본 사람이 어찌 이전의 모습과 같을 수 있을까. 그녀 안에는 이전에 발견하지 못했던 참 나가 함께 하고 있는 것을. ‘나는 실컷 죽을 고생하고 걸은 뒤에야 간신히 얼굴에서 수건을 떼어냈는데, 언제 고난당하는 기척도 없이 그 자리에 가 있는’어머니는 없는 것이다. 산티아고는 내게 순례의 종착지가 아니다. 산티아고는 내게 새로운 차원을 열어주는 문(門)이자 또다른화살표이다. 그화살표가성경속의모든선지자들에게그랬듯.‘ 이제내가여기있나이다’하는 자리로 나를 이끈다 해도……- <본문> 중에서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 일종무종일(一終無終一). 천부경의 처음과 끝부분이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는 뜻이다. 시작도 끝도 없는 길을 어쩌면 우리는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끊임없이‘나’라고 하는 미궁에 빠지면서, 혹은 스스로 빠져들기를 원하면서 인생이라는 거대한 순례길에 오른다. 함정에 빠져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자기 안에서 나오는 고요한 울림을. 순간적으로 덮쳐드는 불안과 무섬증으로부터 환하게 빛을 내어주는 것이, 밖에 있는 등불이 아니라 내면의 소리라는 것을. 서영은이 산티아고까지 가면서 만난 초월적 존재. 혹자는 신(神)이라고도 부르는 그는 다름 아닌 또 다른 모습의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그러한 모습이 다시 한 번 자신 안에 있다는 것을 알기까지, 생의 전부를 걸어봐도 좋겠다, 여겨지게 만드는 양서를 만난 듯해 기쁘다. 고행이 고통이 아니라 수고로운 행복이라 여겨지게 만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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