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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4 |
[문화현장] 고은 시인 전주시 열린 시민강좌
관리자(2011-04-12 16:15:22)
고은 시인 전주시 열린 시민강좌 (3월 8일) 시공간을 뛰어넘는열강, 청중을 사로잡다 - 황재근 기자 지난 8일, 전주시청 강당은 2층까지 발 디딜 틈 없는 인파가 들어찼다.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고은 시인의 강연을 듣기 위해 찾아온 시민들이었다. 식전행사가 끝나고 고은 시인이 연단에 오르자 시민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로 그를 맞이했다. 군산 출생인 고은 시인은 1958년 문단에 오른 이래 150여권의 시집을 발간했다. 그의 시는 전 세계 20여 개 언어로 번역 됐고, 해마다 빠지지 않고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한국문학의 거장이다. 또 민주화와 통일 등 현실문제에도 적극 참여해 한국 현대사의 물줄기를 바꿔놓은 인물 중 하나다. 그는 여든에 가까운 나이를 잊은 듯 한 열정적인 강연으로 강당을 메운 청중들을 사로잡았다. 고은 시인이 모처럼 고향을 찾은 것은 전주시의 2011년도 열린시민강좌 개강강연 강사로 초청을 받았기 때문이다. 마침 이날 오전에는 그가 미국‘콘템포러리 아츠 에듀케이셔널 프로젝트’에서 주관하는‘아메리카 어워드(America Award)’2011년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이 전해져 강연의 의미를 더했다. ‘아메리카 어워드’는 지난 1994년 제정돼 세계문학에 기여한 문학인들에게 주어지고 있는 상이다. 고은 시인은 아시아지역 문인 최초로 이 상을 받는 기록도 세우게 됐다.연단에 오른 고은 시인에게 수상에 대한 축하의 박수와 꽃다발이 전달되자 시인은“아이고 황송합니다”라며 손을 내저어 청중들을 말렸다. “내가 전주에 대해 죄의식이 좀 있습니다. 2년 전 쯤에 저를 초대해줬는데 거절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엔 친구가 전화해 강연을 요청하기에 두말하지 않고 왔습니다. 오늘 얘기가 아주 길겁니다. 바쁘신 분들은 지금부터 먼저 가세요. 한번 왔으니까 길게 하고 가겠습니다.”노시인의 넉살맞은 농담에 청중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바다의 언어, 바다의 역사관을 갖자” 그는 가람 이병기의 시조 구절로 강연을 시작했다. “전주사람들이니까 가람 이병기 선생을 아실 겁니다. 그 분 시조중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바다를 들어오니 뭍이 도로 그리워라’오늘은 바다 이야기를 좀 해보려고 합니다.”고은 시인의 바다, 그리고‘바다의 언어’대한 열강은 동서고금, 역사와 문학을 넘나들었다. 육당 최남선의「해에게서 소년에게」부터 김기림의「바다와 나비」를 통해 근현대문학에 등장한 바다에 대해 이야기 하다가 마한과 백제, 발해와 장보고까지 고대·중세사를 훑고 최치원과 황진이의 글에 나오는 바다를 돌아본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다시 바다 건너 포루투갈의 시인 카몽에스와 대항해시대와 제국주의까지 거침없이 이어진다. 시공간을 뛰어넘는 타임머신을 타는 듯하다.“우리나라는 오랫동안 바다의 역사, 바다의 언어를 잊고살았다. 전해 내려오는 문헌을 찾아봐도 바다에 대한 언급이 별로 없다. 있다 하더라도 공포와 미지의 대상으로만 등장할 뿐이다. 그러다가 육당 최남선이 바다 앞에 선 소년을 이야기하며 근대 문학이 열렸다. 바다 앞에 선 나약하고 무기력한 소년에서 이제 우리문학도 청장년에 이르렀다.”“세계지도를 보라 근대세계지도에는 강력한 제국주의의 권력의지가 담겨있다. 그 지도를 뒤집어 보라. 한반도는 바다를 향해 뻗어나가는, 솟아오르는 강력한 에너지를 담고 있다. 지중해 인근 국가들은 지중해사관을 논의한다고 한다. 프랑스, 이태리, 스페인, 그리스, 터키의 역사는 각기 존재할 수 없다. 지중해사관으로 보면 지중해 전체가 역사의 마당이 된다. 바다는 육지를 아우른다. 바다는 이쪽과 저쪽을 연모한다. 하나의 진리는 없다. 수많은 진리가 도처에 있을뿐이다. 이것이야 말로 21세기 최대의 지혜다. 전주시민들도 한국판 지중해사관, 바다의 역사관을 갖기 바란다.” “시는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다” 강연 이후에는 질의응답의 시간이 이어졌다. 한 대학생이 마이크를 잡고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께서 감명 깊게 읽으셨던 책이나 추천할 만 책을 말씀해 주십시오.”시인이 답했다. “내가 읽은 책의 행복이 자네에게 통용될 수는 없을 거야. 자네가 직접 찾아가서 만나길 바라네.”간단하지만 현명한 답변에 청중들은 박수를 보냈다.“선생님의‘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이란 시 구절을 참 좋아합니다. 그 구절을 어떻게 쓰셨는지 말씀해주십시오.”고은 시인은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답변을 이어갔다. “내가 그걸 쓴 기억도 없어. 워낙 많이 썼어야지.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어떡하다보니 나왔다’고 해야 할 거야. 시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면 안 돼. 나오는 걸 자연스럽게 쓰면 되는 거야. 그 구절도 그렇게 나온 거지.”“바다에 대해 이야기 해주셨는데 새만금이 어떻게 하면 명품도시가 될 수 있을 지 의견을 말씀해주십시오.”잠시 고민하던 시인의 답변이 이어졌다.“그게 참 난제야. 내 친구들 중에는 새만금을 극렬히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또 고향에 내려오면 향토 사람들은 이것 없이는 우리가 존속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저는 노코멘트를 하고 싶네요. 다만 이것 한 가지, 지금 새만금은 어차피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 됐어요. 어떻게 하면 재앙을 최소화하고 축복을 최대화할 수 있을 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그건 도민들이 만들어야 합니다.”고은 시인이 온다는 소식에 혼자 강연장을 찾았다는 김은영(52·진북동)씨는“노벨문학상 후보로까지 거론되는 시인이 너무 소탈하고, 정열적으로 강연과 답변에 임하시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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