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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4 |
내 인생의 멘토 - 나의 스승 이창규
관리자(2011-04-12 16:09:16)
“멀리 보거라 경태야!” - 이경태 화가 혼자를 즐기는 사람은 애초부터 타인에게 폐를 끼칠 조건에서 제외된 사람인 듯합니다. 오직 자기 자신을 즐기고 고독을 신처럼 사랑하는 사람이 예술가의 표상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루소는“혼자 있을 때 나는 결국 무엇을 즐기고 있을까? 바로 나 자신, 세계 전체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무리에서 홀로 파편과 같이 떨어져 나와 힘 있는 고독으로 유유자적하는 사람에게서는 나무 냄새가 나지요. 그 나무냄새는 세월냄새로 숨쉬기도 합니다. 오랜 세월동안 스승님으로부터 나무냄새를 맡아 왔습니다. 흑백사진 같은 청춘의 기억 “긴 어둠과 영원한 어둠 사이에서 반짝하고 빛났다가 꺼지는 것이 인생이다”라고 희랍인 조르바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덧없는 인생을 명쾌하게 이야기 합니다. 반짝 빛나기 과정의 그 찰나에서 나의 청년은 시작 되었고 중년을 넘어 지금은 장년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가고 있습니다. 스승님께서는 나의 청년과 중년과 장년의 호흡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아껴주셨고 지켜 봐 주셨습니다. 어떤 인연이었기에 흐트러짐 없이 나의 인생에 지표가 되셨고 의미가 되셨고 길이 되어 주신 스승님. 대학 2학년 어느 봄날, 첫 누드 수업 시간이었습니다. 난생처음 여인의 육체를 현상으로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가 잠을 설치게 했고 그 기대는 꿈속으로 들어와 나의 청년을 출렁거리게 했습니다. 벼르고 벼른 누드수업에 지각을 했던 기억이 아련합니다. 실기실의 침묵, 모든 학생들이 모델을 향해 열심히 그림을 그릴 때 나는 죄지은 사람마냥 구석자리에서 고개만 숙인 채 차마 모델을 볼 수 없었던 기억.“그럼 그렇지 아무리 전라의 누드모델이라지만 그 부분(?)까지 보여주는 것은 아니겠지” 그렇게 위안하면서 모델이 입고 있었던 순백색(레이스가 달려 있었음)팬티가 더욱더 나의 시선에 잡혔던 기억. 누드모델보다 모델이 입고 있었던 팬티를 강조하면서 캔버스를 채우고 있을 무렵 난데없이 나의 뒤통수를 치면서 스승님 왈“너 그 빤스 뭐하려고 그리느냐?”결국 실기실은 웃음이 바다를 이룰 때 어찌할 바를 모르고 쩔쩔 매고 있었던 흑백 사진 같은 내 청춘의 기억들. 수업이 끝날 때 즈음 내 어깨를 도닥거려 주셨던 스승님의 손길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인생의 간격을 배우다 그 후 나는 대학 3년을 마치고 군대에 갔습니다. 이등병의 피곤함도 놓아두고 스승님께 아주 긴 절망 같은 편지를 보냈는데 예술과 인생에 대한 지표가 담긴 편지를 답장으로 보내주셨던 스승님. 지속적으로 편지를 보내면 보낼수록 스승님께서는 예술과 철학의 깊이를 내게 보내주셨고 그 힘으로 무사히 군대생활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제대 후 K시의 어느 모퉁이를 돌아서면 바다가 보이는 낡은 일본식 2층 건물에 세잔느와 뭉크의 이름을 빌려‘세뭉화실’을 열었지요. 그곳에는 나의 청년이 탄식처럼 숨 쉬고 있었습니다. 겨울초입 스승님께서 초라한 세뭉화실을 방문해 주셨고 마치 생의 마지막 보루인 듯 그렇게 그린 나의 그림을 보고 아주 간략한 언어로“바람 한 점 들어갈 틈도 없이 화면이 철벽으로 꽉 막혀있구나”, “멀리 보거라 경태야!”라고 인생의 간격을 이야기해 주셨던 스승님. 고압 전류가 흘러 나의 전신이 타들어 가는 것처럼 여러날을 나는 호흡하기 조차도 힘든 시간들을 앓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성적인 실천주의자였던 스승님 그 후 부터 현재까지 습관처럼 나는 스승님께 나의 삶과 예술의 흔적들을 보여 드리고 있습니다. 정직하고 자상하신 스승님께서는 교육자로서 또 예술가로서 세상을 감당하는 자의 엄격함을 한결같은 모습으로 실천해 주시고 용기를 주십니다. 시간의 틈을 놓고 내 청년은 그렇게 흘러가 버렸습니다. 기억들을 헤집어 보면 고색창연한 옛 건물들의 침묵이 느껴집니다. 하나의 물체 혹은 장소, 기억이 길이 되어 열릴 때가 있지요. 진정한 길은 단 한 번에 활짝 열리는 법이 없는 듯합니다. 매번 갈 때마다 그 길을 다시 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도 스승님을 통해 배웠습니다. 스승님께서 습관처럼 읽어대는 방대한 책들은 당신의 동무였던 것 같습니다. 읽는 자는 문화의 생산자의 대열에 서있지만, 읽지 않는 자는 소비자의 부류에 들어가 있다는 진실을 몸소 실천하신 스승님 이십니다. 이렇게 세월이 흘렀고 내 삶속에서 스승님은 똑같은 빛깔로 살아 있습니다. 지성이 살아 숨 쉬는 스승님께서 얼마 전에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의 <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이라는 책과 <철학, 죽음을 말하다>라는 책을 선물해 주셨는데 그 책들 속에서 숨 쉬고 느꼈던 나의 결론을 스승님의 삶과 예술로 함축해 본다면 지나친 과장일까요? 無는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탄생하는 것이라는....... 엄격한 질서는 오히려 무질서를 낳는 경우가 있는 듯합니다. 무질서 속에서 숨 쉬는 유연한 질서야 말로 이성과 감성으로 함께하는 지성적인 실천주의자이지요. 내게 스승님의 모습은 그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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