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8 | [서평]
소설의 시대를 오게하는 것들
『2003 올해의 문제소설』(푸른사상, 2003)
이동재 시인(2003-09-06 10:01:57)
전국의 대학에서 현대소설을 가르치고 있는 교수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현대소설학회>에서는 매년 우리나라의 월간지나 무크지, 계간지 등에 발표된 소설 가운데에서 우수한 작품을 선정하여 '올해의 문제 소설'을 단행권으로 엮어내고 있다. 『2003 올해의 문제소설』은 2001년 11월부터 2002년 10월까지 1년 동안 <현대문학>을 포함한 월간지, <창작과비평>을 포함한 계간지 등 국내 16개의 잡지에 실렸던 중·단편 소설을 대상으로 하여 학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교수들로부터 후보작을 추천 받고, 학회의 위촉을 받은 고려대 등 4개의 대학원 석·박사 과정에 재학중인 현대소설 전공자들이 중심이 되어 1년 동안 발표된 전 작품에 대하여 예비적인 검토 작업을 거쳐 60여 편의 작품을 추천받아 이사진이 중심이 된 선정위원회가 최종적으로 12편의 작품을 '2003 올해의 문제소설'로 선정하였다. 이상문학상이나 동인문학상 등 매년 특정한 작품을 선정하여 수상작을 뽑고 작품집을 단행권으로 발행하는 제도는 일찍부터 있어왔으나 그것은 특정 출판사나 단체에서 몇몇 평론가들을 중심으로 작품을 선정하여 상을 주는 제도였다. 그러한 제도는 그것 나름대로 의미가 있으나 출판사의 상업적인 의도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작품의 선정과정에 대하여 잡음이 있는 걸 보면 선정된 작품에 대한 신뢰도에도 문제가 있는 듯 하다. 어떠한 선정 행위에도 선택과 배제의 원리가 작용하겠지만 시상을 전제로 했을 때 기존의 수상작가를 제외해야하고 여러 가지 문단의 역학관계를 고려해야하는 문학상과 관련된 작품집의 경우 객관적인 작품 선정을 기대하기는 힘들 것 같다. 이에 비해 <현대소설학회>에서 하고 있는 '올해의 문제소설' 선정은 시상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문학사적인 자료의 정리 측면에서 매 해에 발표된 작품 중 우수작을 가리는 데 목적이 있는 만큼 앞의 문제점들로부터 좀 더 자유로울 듯 싶다. 그만큼 책임감도 크다는 얘기다.
『2003 올해의 문제소설』에 최종적으로 선정된 작품은 강영숙의 「검은 밤」(현대문학 2001 11월호) 등 12편의 단편소설이다. 11편의 작품이 실린 2003년도 이상문학 수상 작품집과 비교해보면 4명의 동일한 작가가 양쪽 작품집의 선정에 선정되었고 그 중 두 개의 작품은 동일한 작품이다. 전상국의 「플라나리아」(동서문학 2002 봄호)와 정미경의 「호텔 유로,1203」(21세기 문학 2002 가을호)가 그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이 이 두 작품의 우수성을 대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문학세계란 인간과 세상의 탐구, 즉 인간세계의 탐구에 다름 아니다. 『2003 올해의 문제소설』집이나 '2003년도 이상문학상 작품수상집'을 읽으면서 나는 그 사실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두 작품집에 실린 작품의 상당수가 인간관계의 어려움, 특히 남녀가 함께 살아가는 일의 어려움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었다. 여전히 인간관계의 중심에 남녀문제가 놓여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내가 이번 작품집에서 가장 주목한 작품은 그러한 문제를 다룬 작품이 아니었다.
재미와 감동은 필자가 소설에서 요구하는 두 가지 덕목이다. 물론 가장 좋은 작품은 재미와 감동을 동시에 줄 수 있는 작품이겠지만 두 가지 중에 하나의 덕목만 만족시켜줘도 나는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이 두가지 덕목 중에 이번엔 재미 쪽을 선택했다. 이 시대에 소설이 갖춰야할 최고의 덕목이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재미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취향에 따라 좀 다르겠지만 재미 없는 소설을 써놓고 소설이 안 읽힌다고 하소연 하는 소설가, 재미 없는 소설만 골라서 읽히면서 요즘 학생들은 소설을 읽으려고 하지 않는다고 하는 교사나 교수, 재미도 없는 소설을 자기만 아는 현란한 수사로 장식하여 명작인양 독자를 우롱하는 평론가들이 '소설의 시대'를 가게 하는 주범들이다. 소설은 예나 지금이나 재미있어야 하며 앞으로도 재미있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올해의 문제소설'에 선정된 김종광의 「낙서 문학사·창시자편」(문예중앙 2002 여름호)은 읽는 재미가 각별한 소설이다.
한때 나는 이상의 시를 보면서 '이게 어디 낙서지 시인가?' 하는 의문을 품은 적이 있으나 아직 그의 시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를 해보지 않아 해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혹자들은 현재에 발표되고 있는 문학 작품들에 대해 많은 불만을 품고 있다. 그야말로 낙서지 문학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만큼 양질 면에서 작품의 수준이 떨어졌다는 얘기다. 여기저기서 수도 없이 양산되는 수준 미달의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을 지켜볼 때 그러한 우려와 불만에도 일리가 있다. 김종광의 「낙서문학사·창시자편」에는 그러한 문단 상황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짙게 깔려 있다. '시는 시화호처럼 썩었고, 소설은 폭격 맞은 산처럼 황폐해졌고, 수필은 문학이기를 포기했고, 희곡은 연극의 노예가 되었고, 평론은 출판사의 첩이 되어' 있는 것이 현재의 문단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시간적 배경은 2015년이다. 대표적인 문학 장르인 시·소설·평론·희곡·수필 등을 제끼고 낙서가 문학사의 핵심적인 장르로 떠올라 있는 시기다. 그 낙서문학의 창시자가 30년 전에 요절한 '유사풀'이란 인물이다. 이 소설은 그 유사풀의 일대기를 22명의 주변 인물들의 증언으로 구성해놓은 소설이다. 광부인 아버지와 작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어머니로부터 버림받고 의붓어머니와 함께 살던 유사풀은 일찍부터 글읽기와 글쓰기에 탁월한 재능을 보인다. 약관의 나이에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고 작품집을 내지만 스물 다섯 살의 나이에 요절을 하고 만다. 그는 어려서부터 남들이 보기엔 시나 소설인 자신의 작품을 낙서라고 우겼던 인물이다. 살아생전에 주목받지 못한 그의 작품은 그의 사후 '안목 있는' 어느 평론가의 발굴에 의하여 일약 베스트 셀러가 되고 그의 작품집은 핵박(대박의 100제곱)을 터트리게 된다. 급기야는 낙서문학사의 창시자로 추앙받게 되고 '유사풀 낙서문학상'이 제정되며 그 상의 상금은 노벨문학상 상금의 두배로 전 세계적으로 권위를 가지게 된다는 것이 작품의 줄거리다.
이문구가 살아온 듯한 능청스런 문장은 이 소설을 읽는 재미를 맘껏 부풀리게 한다. 맛만 보자.
걔와 섹스 한 거요? 그거 그냥 순간적인 충동으로 한 거예요. 내가 젊었을 때 했던 섹스가 대개 그러했듯이. 내가 '문학과' 잠깐 다니면서 그나마 말을 하고 지낸 애가 걔예요. 걔의 낙서문학을 무시하기는 했지만, 걔의 글을 재미있게 읽기는 했지요. "낙서 부문이 없다고 시부문에 투고한 것은, 네 말대로 하자면 낙서문학에 대한 훼절 아냐?"라고 물었더니, "어쩔 수가 없었어. 낙서문학을 드높이기 위해서는 제도문학권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그 방법은 등단이 유일하고, 일단 아무 것으로나 등단을 하고 보자는 거였지. 내 판단이 옳았다고 봐"라고 대답했던 게 기억나요.
휴학계를 내러 갔다가, 역시 휴학계를 내러 온 걔와 마주쳤지요. 우리는 생맥주를 한 잔 하기로 했어요. 나는 미국으로 간다고 했더니, 걔는 세상 속으로 간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걔는 나를 볼 때마다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는 거예요. 내가 몇 명이나 먹어보았냐고 했더니, 다섯 명이라고 하더군요. "그중에 너처럼 잘빠진 얘는 없었어"라는 말을 덧붙이더군요. 나는 열댓 명의 남자를 먹어보았지만, 시인을 먹어본 적은 없었지요. 걔는 낙서가라고 우기건 말건 나는 걔를 시인이라고 생각했어요. 우리는 서로를 먹어보기로 했어요. 그래서 한 거예요.
어떤가? 매력적인 문장이 아닌가? 하지만 다음과 같은 문장을 읽다보면 '문학인'의 한 사람으로서 찔리는 면도 없지 않다. 어쩌면 작가는 우리 문단이 사기판이고 작품이란 것은 모두 낙서라고 말하고 있는 듯 하다.
나는 문학이라는 게 영 사기판 같았거든요. 그의 낙서문학 때문이죠. 그가 낙서문학을 했을 당시에는 아무도 쳐다보지 않았어요. 그런데 그가 죽고 한참 뒤에 모두들 그의 낙서문학을 떠받들고 있어요. 과거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요?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어쩐지 사기 같단 말입니다.
이 소설을 읽다보면 명작은 죽은 자의 작품이라는 문단의 우스개 소리가 자꾸 떠오르는 건 왜일까? 그래도 '창시자 편'의 후속 작품을 기대하며 강호 선남선녀들의 일독을 권한다.
이동재/시인이며 전주대 겸임조교수로 있다. 활발한 비평작업을 하고 있으며, 시집으로 『민통선 망둥어 낚시』『세상의 빈집』, 저서에 『20세기의 한국소설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