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2 |
[테마기획] 극장을 추억하다 5
관리자(2010-12-02 17:39:37)
극장을 추억하다 5
내 인생의 교실, 우리 동네에 영화관이 있었네
- 백학기 전주영상위 아시아영화유치단 단장
“문득 맨 가엣쪽 객석에 앉으며/ 나의 스물넷을 기다리는 동안/기다리는 이 없어 저혼자 슬픈…”으로 시작되는 내 문단 데뷔작「삼류극장에서 닥터 지바고를」은 젊은 문학청년 시절 문학과 영화에 대한 내 로망의 출발점이었다.
어두운 시절, 영화는 빛이었다
지금은 멀티플렉스 영화관으로 대자본이 투입된CGV, 메가박스, 롯데시네마 등이 즐비하지만 내가 사는동네에서 걸어서 10분 거리, 현재의 영화의 거리에는 추억의 영화관들이 있었다. 코리아극장, 제일극장, 삼남극장과 시민극장, 오스카극장, 공보관 등이 전주지역에 위치한 영화관들이었다. 이들 극장에서는 첫회 11시부터밤 9시까지 하루 6회 재상영관으로 대부분 지역흥행업자들에 의해 두 편 씩 상영되는 극장이었다. 대형 영화간판 아래서 배우들의 멋진 포즈를 올려다보며 시작된 극장에서의 생활은 내 부친의 손을 잡고 찾던 유아기에서벗어나 초등학교 시절부터 본격화됐다. 이들 극장에서죽치다시피 살아온 내게 영화관은 내 인생의 교실이자야외수업장이었던 것. 주말은 말할 것도 없고 일요일이면 일찌감치 도시락을 싸들고 영화관을 찾아 하루 서너편씩을 기본빵으로 때리는(?) 영화보기는 지금 기억해도코끝이 아련하게 아려오는 추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있다. 그 때문일까. 지금의 영화관에서 즐기는 영화관의영화와는 비교도 안 되게 그때의 영화들은 인생의 서사와 역사와 추억과 사랑이 가득 묻은 필름처럼 내 기억의회로를 맴돌고 있다.대중성 있는 흥행영화의 경우 낡은 필름을 돌려 화면 한쪽이 비 내리는 것처럼 우중충한데도 그와 상관없이 영화에 열심이었던 나는 영화관을 나올 때마다 한쪽 가슴이 시려오듯아프기도 했다. 영화의 자막이 끝나고 마치 그 영화에 출연한 배우처럼 폼(?)을 잡고 거리를 쏘다니기 일쑤였다. 오죽했으면 일요일 날 내가 보이지 않으면 어머니가 영화관으로나를 찾아왔을까. 아마도 어머니는 극장표도 끊지 않은 채불쑥 어둔 영화관으로 나를 찾아왔던 기억이 눈앞에 선하다.극장 앞의 대형 영화간판에는 당대 내로라하는 신성일 박노식 같은 배우들이 특유의 몸짓과 제스처로 장식됐으며 문희 남정임 윤정희 같은 최고의 주가를 치는 여배우들은 상냥한 눈짓으로 어린 나를 유혹하곤 했다. 밥은 굶어도 영화비는 꼭 준비해두고 다녔으니 영화에 대한 내 어린 날의 동경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동네 아이들을 꼬드겨 일열횡대로줄 세우고 영화관을 찾은 날 기도(?)가 나를 대하는 태도에우쭐대며 스스로 어린 황제가 된 듯 기쁘기도 했다.국산영화와 홍콩 영화, 가히 명작수준인 할리우드 영화를빼놓지 않고 보던 습성은 내 청춘시절까지 행복하게 이어졌다. 중학교 2학년 때 본 내 인생의 지침을돌려놓은 영화 <대부>에 대한 충격으로 며칠 밤을 설친 기억도 새롭다. 눈이 오는 창가에서, 비 내리는 허름한 뒷골목에서, 부모님이 며칠 여행을 간 집 안방에서 나는어린 동네 녀석들을 세워놓고 영화 <대부>의 알파치노에 대한 연기에 대해 세세한 주석을 달아 설명했으니 아이들은 내 입을 넋놓고 쳐다보곤 했다. 그렇게 영화에 대한열정과 추억은 고교 시절이 지나고 대학시절까지 지속됐다.문학책이 주는 상상과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영화로 이어지는 일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대학시절 도서관과 영화관은 내 인생의 두 축이었다. 도서관에서 나와“영화나 한 편 볼까”의 대화법은 일상의 주된 화법이었다. 후에 인상 깊게 본 가령 홍콩의 왕가위 감독의 영화에서 여주인공 장만옥이“영화나 한 편 볼려구요”라는 대사는 영화를사랑하지 않는 이들이면 그 감정을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아이콘이 됐다. 배우 허장강이“우리 심심한데 뽀뽀나 할까”의코믹스런 대화법과는 사뭇 다르게“우리 심심한데 영화나 한편 볼까”식의 대화법으로 저 어둡고 쓸쓸한 청춘시절을 견디어나갔으니 말이다. 영화 아니면 도통 숨 막혀 살아나갈 수없는 저 어둔 70, 80년대에 영화는 내 영혼의 빛나는 보석같은 것이라고 해야 옳다.
영화를 통해 인간과 시대를 고뇌하다
내 문단 데뷔작「삼류극장에서 닥터 지바고를」은 러시아의볼세비키 혁명 시대의 사랑과 로망을가득 담은 아름다운 스크린으로 인해 탄생된 시였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실제 추억과 그 시대의 연인 라라와의 사랑 이야기는 당시 한국의 젊은이라면 누구에게나 매혹적이었으리라. <닥터지바고> 영화는 내가 DVD소장본으로 갖게 될 때까지 수십번도 넘게 본 영화였다. 라라의 아름다운 테마 선율이 가득한 눈 쌓인 러시아 벌판과 미끄러지듯 방울소리를 내며 달려가는 눈썰매, 동화 속 엽서 그림처럼 환상적인 얼음 가득한시골의 저택과 밤에 우는 승냥이 울음소리는 지금도 기억에선연하다. 혁명 후 우연히 도서관에서 재회한 지바고와 라라가 나무 벤치에 앉아 담소하는 배경 위로 가을잎들이 쓸려내려가고, 볼세비키에 의해 끌려간 지바고가 다시 라라의 집으로 찾아왔을 때 벽돌 사이에 숨겨놓은 방문 열쇠와 라라의편지는 감동을 넘어 눈시울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사랑과혁명의 대러브로망이란 카피가 대형 극장 간판에 걸린 순간내 호흡이 멎을 정도였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배우가 화면속에서 객석으로 걸어 나올 때 얼마나 멋진가.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의 달콤한 선율과 함께 자막이 깔리고 객석에서 일어나는 관람객들은 저마다의 가슴 속에 영화를 품고 거리로나온다.국산영화에서부터 홍콩영화, 할리우드 영화, 프랑스 영화로 그 지평을 넓혀가던 내가 인생과 영화의 달콤한 향기를느껴가던 무렵 만난 이란 출신 압바스 키이로스타미 감독의<체리 향기>는 두고두고 얘깃거리다. 영화가 인생을 이렇게진지하게 말하다니 이보다 더 멋진 영화가 어디 있을까. 모름지기 영화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라는 기쁨과 감동으로놀란 적도 바로 우리 동네 영화관에서의 일이다.홍콩배우 왕우가 출연한 외팔이 시리즈로부터 촉발된 배우 위주의 영화 보기는이후 감독에 대한 영화로 바뀌면서 구로사와 아키라, 니콜라스 레이, 빔 벤더스,프란시스 코폴라 감독의 작품 영화로 내영화의 갈증을 해소시켜나갔다. 특히 독일 감독 빔 벤더스의 경우 <파리 텍사스>로부터 리스본 이야기, 베를린 천사의 시 등 수준 높은 영화를 통해 영화 미장센과 영화 대사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스토리텔링 위주의 영화에서 벗어나‘카메라로 시를 쓰듯’랜드스케이프와 스펙터클이 가미된 영화의 충격은 영화가 상업예술이 아니라 인간과 시대를 고뇌하는 예술가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제공하기에 충분했다.
우리 인생의 훌륭한 교실이자 야외수업장
바야흐로 영화의 홍수 시대다. 감동적인 명화 수준의 필름도 많지만 형편없는 영화도 많고 도대체 필름을 낭비하면서까지 영화를 만들어야 하나 하는 느낌을 갖게 하는 영화도허다하다. 재미와 감독, 흥행과 예술 사이에서 고뇌하며 탄생한 영화예술 양식은 인생을 살아가는 이들의 대다수의 로망이란 점은 이제 더 이상 논의할 바가 못 된다. 시 한 편을읽고 인생이 변한 이들이 있는 것처럼 영화 한 편이 인생을송두리째 바꾸어놓는 경우도 많다.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분명 인생을 사랑하는 이들임에 틀림없다. 그 영화를상영하는 극장과 영화관은 우리 인생의 훌륭한 교실이자 야외수업장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백학기(예명 백성원) 시인이자 배우, 영화감독으로 활동하고있으며 현재 전주 영상위 아시아영화유치단 단장을 맡고 있다.1981년『현대문학』으로 데뷔『나는 조국으로 가야겠다』등 3권의 시집을 상재했다. 1999년 충무로에 영화배우로 데뷔 <스물넷> <녹색의자> <길> 등에 출연했으며 중국 베이징에서드라마 <너는 내 운명>연출과 다수의 뮤직비디오를 연출했다.<흰 자작나무숲의 시간> 시나리오 및 감독·연출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