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2 |
[문화시평] 제2 회 뉴욕산조축제
관리자(2010-12-02 17:37:14)
제2 회 뉴욕산조축제
CUNY 뉴욕시립대학 (10월 28~29)
뉴요커! 산조를 길게 즐기고, 깊게 듣더라
- 윤중강 국악평론가
제2회 뉴욕산조축제(2010 New York Sanjo Festival & Symposium, 2010. 10. 28~29 CUNY 뉴욕시립대학)를 다녀왔다. 해외에서 산조가 연주된 것이 허다하다. 그러나 공연 제목에 산조(sanjo)가 들어간 경우는, 내가 알기론 산조축제가 유일하다. 판소리가 공연 제목에 들어간 경우는 여러 번 있었다. 산조는 판소리에 비해서 아직 그 인지도가 낮다. 반면 산조는 기악독주곡의 형태로서, 세계의 고급청중을 잡을 수 있는 잠재력이다. 산조는 세계에서 유래를 찾기 어려운 음악이다. 한 연주가가 중간에 조금이라도 휴식 없이 짧게는 30분, 길게는 한 시간 넘게 연주하는 음악은 세계에서 매우 드물다.
산조, 세계에서도 매우 진귀한 음악형식
그간 해외에서 산조를 소개한 경우는 많았으나, 여러 명인들이 집중적으로 산조를 타는 축제의 형태는거의없었다. 이런면에서볼때,‘ 뉴욕산조축제’는여러면에서의미가깊다.‘제1회 뉴욕산조축제’는 참여한 아티스트는 주로 대학교수들이었다. 그들은 지난해 뉴욕에서 매우아카데믹한 산조를 들려주었다. 반면‘제2회 뉴욕산조축제’는 분위기가 좀 달랐다. 그들은 무대에서가장 산조를 많이 탄 연주가들이었다. 더불어서 산조와 인접예술이라고 할 수 있는 시나위 연주에서도일가견이 있는 연주자들이었다. 백인영(가야금), 원장현(대금, 거문고), 홍옥미(해금) 김영길(아쟁) 김규형(장구)은 뉴욕에서 더욱 빛이 났다. 축제를 모두 마치고 돌아오는 공항에서, 그들은 모두 그간 해외연주를 통틀어서 손꼽히는 무대가 되었다고 술회했다.
뉴욕산조축제는 이렇게 다르다
‘뉴욕산조축제’는 다른 국악공연과 다른 몇 가지 변별성이 있다.첫째, 산조의‘전 바탕’을 들려주는 무대다. 해외에서 이런 경우는 드물다. ‘뉴욕산조축제’는 학술대회를 병행한다. 이틀에 걸쳐서 심포지엄이 하루 동안(오전 9시~오후 4시) 이루어진다. 그 학술대회사이에 비중 있게 산조 연주가 펼쳐지며, 모두 산조의 전 바탕을 듣는 진지한 무대가 된다.둘째, 청중이 문화적 식견이 있는‘뉴요커’이다. 사실 우리 연주가들이 해외공연을 하게 되는 경우,대개 한국과 관련이 있는 여러 행사의 일환인 경우가 많다. 이럴 때 오는 청중은 대개 한국인이라거나,그지역에서한국과관련된사업등에연관된사람들이오는경우가많다.‘ 뉴욕산조축제’에오는청중들은 다르다. 청중의 한 부분은‘뉴요커’이다. 문화적으로 안목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며, 다른 문화에대해서 열린 시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셋째, 산조를 듣는 태도가 매우 진지했다. 그들은‘민족음악학(ethnomusicology)’의 입장에서 산조를 접근했다. 뉴욕산조축제에 참가를 원하는 사람들은 월드뮤직에 대해서 어느 정도 식견을 갖고 있는사람들이다. 그들은 세계의 다양한 문화의 연구자들이기 때문에, 이미 산조를 포함한 한국의 전통예술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의 사전 지식을 갖고 있다. 따라서 그들이 산조를 듣는 태도는, 어느 면에서는 국내의 그것보다 더 진지할 수 있다. 이런 세 가지 뚜렷한 특징으로 해서, 한국에서 참가한 명인들은 매우만족스러운 연주를 펼칠 수 있었다.축제의 대미를 장식한 것은‘명인들의 콘서트’(FestivalConcert by Sanjo Masters). 이 무대는 일종의 갈라 콘서트이다. 산조의 명인들은 마치 자신들의 음악의‘엑기스’만을 들려주는 무대였다. 지난 첫 번째 축제에선 1회 공연으로그쳤으나 많은 사람들이 성원을 했기에 올해 두 번째 축제에선 특별히 2회(5시 공연, 8시 공연)로 늘렸으나, 역시 모두전석매진이었다.
시나위, 재즈처럼 즐기다
올해 축제의 특징의 하나는 바로‘시나위’에 있었다. 지금까지 나는 많은 시나위의 녹음자료와 현장공연을 알고 있지만, 시나위 하나만으로 30분을 계속한 것은 이번‘뉴욕산조축제’가 처음이다. 명인들의 합주 사이에 독주를 넣어서 진행한 산조는 30분간‘열광의 도가니’를 만들었다. 이는 현장에 경험한 사람들이 추호도 과장된 표현이 아님을 증명할 것이다. 그들은 마치 재즈 콘서트에서 장인들의 즉흥연주(improvisation)에 환호를 보내듯, 한국의 다섯 명인들이 만들어내는 연주에 취해 있었다. 명인들마다 자신의 악기의 특성을 잘 살려내면서 훌륭한 연주를 보여주었다. 그러다가 조금씩 기교를 집어넣어서 만들어내는 현장성(ad lib)에 관객들은 깊이 매료되었다. 늘 최상급은 자제하고 싶지만, 이번뉴욕산조축제에서 펼친‘시나위’는 진정 첫 손가락으로 꼽을만한 무대였다.
내일의 산조? 악기 불문, 형식 불문.
그러나 산조의 매력은 살아야 한다!
이번 산조축제는 산조와 시나위와 같은 민속음악에 대해서다시금 생각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첫째, 산조가 갖고 있는‘현장성’이다. 민속음악의 큰 매력은‘작곡가’혹은‘악보’에 있는 것이 아니다. 민속음악에선‘연주자’혹은‘현장’이 가장 중요하다. 연주가가 자신의 개성을 자신의 악기를 통해서 얼마큼 잘 표현하느냐가 관건이다. 요즘 대학에서 산조를 배운 연주자들은, 마치 서양의 클래식 악곡을 타듯이 산조를 탄다. 품격이 있을지는 몰라도,생생하게 살아있는 연주로 들리지 않는다. 연주가들이 공연무대에 성격을 파악하고 관객들과 하나가 되어 즐기려는 태도가 중요하다.둘째, 산조를 국악기에만 국한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번 논문발표 중에서는‘신중현의 기타산조’를 대상으로 한 것이 있었다. 간단히 말하면, 외국의 발표자는 기타산조도 산조의 범주에 넣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이에 반해, 뉴욕거주의 한인은 객석에서 질의라는 형식을 빌려서‘신중현의 기타산조는 단지 산조를 가져온 즉흥 연주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에 의하면 이것은 산조의 본질(구조와형식)과 거리감이 있다는 것이다.이에 관한 나의 입장은 여기서는 심도 있게 밝히지 않겠다. 단지 내가 이런 논의를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런 것이산조를 보다 폭넓게 수용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사실이다. 사실 재즈가 발전되는 과정에 있어서도, 서로 정통재즈임을 주장하는 부류가 있고, 또한 정통재즈에 대항해서 새로운 재즈를 만들고자 하는 집단이 생겨남으로서, 재즈는 그음악적인 영역을 넓힐 수 있었지 않았는가? 산조 또한 분명그럴 수 있고, 그래야만 한다. 국악기를 위한 산조도 필요하지만, 락 음악에 뿌리를 둔 산조도 나올 수 있다. 또한 같은뉴욕에 존재하는 줄리어드음대 출신의 음악가들도 산조를만들어서 그곳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을 것이다.셋째, 산조의 어떤 중요한 특징이 잘 드러나는 음악이라면, 그 음악도 산조의 범주에 집어넣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산조는 매우 다층(多層)적인 구조를 지니고 있다. 이런 산조라는 음악에서 저마다 느끼고 깨달은 어떤 한 단층(單層)을수용해서, 그를 바탕으로 해서 자의적인 해석이 곁들여진 산조를 분명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결과물에서 산조의 특징과 매력이 살아난다면, 그것은 분명 산조라는 장르속에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산조가 범(凡) 세계적인장르로서 살아날 수 있는 길 중의 하나다.
뉴욕산조축제 vs. 전주산조축제
이번 뉴욕산조축제를 마치고 귀국하는 길에, 여러 해 전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는‘전주산조축제’가 생각났다. ‘전주’와‘산조’는 불가분의 관계다. 이는 전주 혹은 전라북도이외의 지역사람들에게도 종종 하는 얘기다. 산조와 같은 음악은 전주한옥마을과 같은 곳에서 들었을 때, 공감각적인 울림이 더 커진다. 나는 우리나라 여러 도시를 나름대로 돌아다녔는데, 전주 사람들이 가장 엉덩이가 무겁다. 그들은 일찍이 농경문화의 정착생활을 수용했고, 양반문화의 근성이남아있을까? 별반 대단치 않은 공연일지라도 그들은 끝까지객석을 지키는 모습을 본다. 이는 전라도의 타 지역에서 볼수 없는 풍경이기도 했다. 산조는 이런 좌식문화 산물이라고할 수 있다. 전주에서 다시금 산조를 중심으로 해서 제대로된 축제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런‘전주산조축제’가‘뉴욕산조축제’와 서로 연결고리를 갖게 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전주사람들이여! 전북도민들이여! 당신들에게 세계에 가장할 만한‘산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그 산조로 세계인들과 정겹게-지나치게 떠들썩하지 않게-소통해 보세요! 전주여! 산조여! 소통하라!
윤중강‘국악계의 열혈남아’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평론가이자 기획자, 그리고 방송인이다. 서울대학교와 국립일본도쿄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했다. 현재 국악방송 이사이자, 목원대학교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KBS국악대상(2004), 르노삼성소리상(2008)을 받았으며, 『비평에 정답은 없다』등 다수의 평론집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