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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 |
장미영·전흥남의‘꿈꾸는 노년’
관리자(2010-12-02 17:37:02)
장미영·전흥남의‘꿈꾸는 노년’ 노인이 주도하는 삶 - 최명희의『혼불』- - 장미영 전주대학교 교수 노인은 사회적 구성물이다. 노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문화에 따라 다를 뿐만아니라 같은 문화권에서도 시대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한 사회가 노인의 의미를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노인은 전혀 다르게 해석되고 이해되는 것이다. 노인의 사회적 배치 21세기에 들어선 현재 우리나라의 노인은 사회적 약자로 분류되어 돌봐야 할 존재로 여겨지고 있다. 노인들은일차적으로 체력이나 면역력이 떨어져 크고 작은 질병에시달리는 수발해야 하는 존재로 부각되어 있다. 경제적 생산성을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속에서 체력의 열세는 곧 능력 없는 존재로의 전락을 의미한다. 따라서 오늘날의 노인은 무기력하고 의존적인 부담스런대상으로 자리매김 되고 있다. 이로 인해 노인은 사회문제의하나로 거론되기에 이르렀다.노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확산되면서 노인 공경을 인간의 도리로 간주하는 세대와 적자생존의 경쟁적인 논리에 길들여진 세대가 충돌하고 있다. 이러한 충돌 양상을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곳은 버스나 지하철 등 대중교통이다.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을 예의범절로 알고 있는 사람들은 노인 앞에서 일어나지 않는 젊은이들을 인간으로서의 자질이 없는 무뢰배쯤으로 평가한다. 반면 자리 양보를 강요받는 젊은이들은 노인들이 어린 사람들을 인격적으로 대하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노인들을 나이만 앞세우는 막가파쯤으로 간주한다.이러한 점에서 날이 갈수록 신·구세대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아직까지 사회 전반에 노인공경의 가치가 우위를 점하고 있는 분위기 속에서 노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하루 빨리 개선되어야할 중대한 사회문제다. 저출산·고령사회로의 인구구조의 변화 또한 노인을 이해하고 노인과 소통하는 긍정적인 방식의 시급성을 요구한다.이에 이전 사회에서 추구했던 노인 공경의 의미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소설『혼불』에 나타난 노인의 재현 양상을 살피는 것은 한국의 미풍양속으로 간주되었던 노인 공경의 긍정적 측면을 되살리는 의의 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공경의 대상 『혼불』은 전체가 5부로 구성된 총10권짜리 대하(大河)소설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다른 대하소설들과 현저히 다른 면모를 보인다. 대부분의 대하소설들이 통시적인 차원의 역사적 사건에 기대어 있다면, 이 작품은 역사를 초월하여 한국인들이 오랜 세월동안 지키고가꾸어 온 풍속과 문화를 문학적으로 재현하는 데 치중하고 있다.그래서『혼불』에는 한국인을 지배해온 한국적 가치관과 한국적 삶의작동 원리가 생생하게 나타난다.『혼불』에서 가장 존재감이 큰 인물인 청암부인은 한국적 삶의 작동 원리를 한 눈에 읽게 해주는 주인공이다. 청암부인의 존재감은 그 주변인물들을 통해서 드러난다.손주로 등장하는 강모는 친할머니인 청암부인에 대해 양면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다. 그 한 면은‘손주를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해 주는 할머니’, 그래서‘때때로 그 사랑에 억눌려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할머니다. 또 다른 면의 할머니는‘아주 큰 산, 너무 너무 크고 어마어마해서 넘을래야 넘을 수 없는 큰 존재’라고 느껴지는 집안의 어른이다. 즉 손주가 할머니를 마땅히 공경해야할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이러한 면모는 손주며느리인 효원에게서도 똑같이 나타난다. 효원은 시집온 후 낯선 시댁에서 그래도 자신이 의지할 수 있고 자신에게 든든한 바람막이가 되어줄 수 있는 존재는 마음이 따뜻한 시할머니뿐이라고 느끼게 된다. 그래서 효원은 시할머니인 청암부인을 마음깊이 존경하고 따르게 된다.한편 아들인 기채는 비록 양자이기는 하지만 청암부인을 친어머니로 인정하고 모든 일에 그녀의 뜻을 거스르지 않고 따르는 청암부인의 비서같은 인물이다. 한결같이 집안의 최고 경영자로서의 소임을 다하는 청암부인의 의견에 아들 기채는 동조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이와 같이 청암부인은 집안의 최고참 노인으로서 뿐만 아니라 집안을 대표하는 어른으로서 절대적인공경의대상이었다.『 혼불』의시대적배경이1930년대후반인점을감안해보면, 국가가식민지로전락하여 민족적 정체성이 크게 위협받았던 시기에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집안마다 노인을 섬기는 의식 덕분이었다고 할 수 있다. 각 집안이 한 분의 연장자를 구심점으로 집결하고단결할 수 있었기 때문에 친족집단이 강화됨으로써 민족의 기반을 공고히 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었던 것이다. 돕는 주체 청암부인이 집안의 대들보 같은 존재이면서 동시에 마을의 리더로까지 존경받을 수 있었던 것은 일차적으로 그녀의 인격적인 면모에서 기인한다. 부인을 세 번이나 잃고 아들까지 떠나보낸 시아버지가 세상을 포기하듯 살아가는 와중에서 남편도 없는 새색시가 서슬이 시퍼렇게 집안의 기강을 세우고 엄격하게 집안을 다스린 결과 집안을 일으켜세웠다는 것은 청암부인의 커다란 공적으로써 존경과 두려움을 불러일으켰다.그런데 한 집안의 종부로 살았던 청암부인이 지역사회의 존경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공동체주의적 정신을 실천한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청암부인은 마을 주민들을 위해, 예로부터 부족했던 농수(農水)를 풍부하게 확보하기 위하여 손바닥만한 기존의 저수지를 대거 확장하고자 집안의 재산을거의 다 내놓다시피 했다. 청암부인은 저수지 확장 공사의 명분을 집안의 도리와 연결지음으로써 집안의 존재 이유를 공동체주의적인 도덕적 차원으로 고양시킨다. 이러한 청암부인의 통 큰 자애로움과인정어린 마음씨는 마을 사람들을 감복시킨다. 청암부인은 자신과 자신의 집안을‘받는 존재’가 아닌‘주는 존재’로 규정했던 것이다.이와 같이『혼불』의 청암부인은 우리사회가 산업사회로 진입하기 이전의 노인에 대한 의식을 잘 보여준다. 청암부인은 오늘날의 노인처럼 도움을 받아야 하거나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돌봄의 대상이 아니었다. 청암부인은 도움을 주는 주체, 보살피는 주체로 배치되어 있었다. 그 결과 청암부인은 노인이되어서도‘노인=약자’라는 인식 대신 집안과 마을의 정신적 지주인‘노인=강자’로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강한 노인으로서의 청암부인의 면모는 오늘날 우리 사회가 되살려야 할 아름다운 노인의 모습이다.그것은 한 집안이나 한 사회를 막론하고 연장자가 짊어져야 하는‘어른으로서의 의무’라 할 수 있다.돕는 주체, 봉사하는 주체로서의 청암부인의 이미지는 시민 윤리와 공적 질서가 절실한 오늘날에 되새겨 보아야 할 의미심장한 모습이다.아주 쉽게 말하면 이제 노인은 여러 사람이 모이는 곳에서 차례를 지키도록 솔선수범하는 주인공이거나 아름다운 마을을 만들기 위해 거리를 가꾸는 실천하는 주체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다. 노인이 우리 사회의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근면, 성실, 봉사, 질서의 상징으로 재현될 때라야 드디어 공경의 대상으로 배치될 수 있다는 것은 상호 호혜적인 인간 삶의 근본적인 이치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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