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2 |
이현근의 농촌학교 이야기
관리자(2010-12-02 17:35:01)
교육철학의 생산지
상추가 미치고 있다
- 이현근 임실지사초등학교 수석교사
“상추가 미치고 있다. 내려와서 상추 좀 뜯어다 먹어라.”지난 여름, 어느 날 아침 일찍 전화가 와서 받아보니. 어머니께서 대뜸 전화기에 대고 하신 말씀이다.‘상추가 미치고 있다고?’나는 미친다는 말이 내가 알고 있는 다른 뜻도 있구나 생각을 하며“어머니 상추가 미친다는 말이 무슨 뜻이에요?”하고 물은 적이 있다.
‘미친다’는 말의 의미
11월 2주와 4주,‘ 행복한 화요일에 책읽어’에서 읽어야 할 책은『니체, 천개의 눈 천개의 길』(고병권)이었다. 책을 읽으며 니체를 통해‘미친다’, ‘가치 발명’이라는 말에 대한 인식의 폭을넓혀가는 나를 느낄 수 있었다.내가 알고 있는‘미친다’는 말은 그 뜻이 그리좋지 않았으며 한정되어 있었다. ‘정신에 이상이생겨 말과 행동이 보통 사람과 다르게 된다’는 사전적 정의 이상을 넘지 못하는 나의‘미친다’에대한 개념은 정민의‘미쳐야 미친다’라는 책을읽으며 그 말의 인식의 폭을 넓히는 기회를 가졌었다. 18세기 선비들이 보여준 불광불급(不狂不及), 어떤 일에 미치지 않으면(완전 빠져들지 않으면) 그 도를 넘지 못한다(이루지 못한다)는 말은 나에게 그래도‘미친다’는 말을 긍정적으로보게 했다. 그러다 이번에 본 책, 『니체, 천개의눈 천개의 길』을 읽으며 나는 무엇에 미쳐 있는가(?), 무엇에 미치고자 하는가(?)를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분명히 광인은 미친 사람이다. 그러나 우리는‘미친 것’과
‘아픈 것’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니체는 우리의 문명을 아픈
것으로 진단하지만 사람들은 니체를 미쳤다고 본다. 니체는 미
친 것의 반대가 건강함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광기에 반
대되는 것은 건강이 아니라‘길들여진 두뇌’와‘보편적 신념’이
다.”…“세계는 무한히 해석 가능하다.(WM;370) 세계는 배후에
아무런 의미도 가지고 있지 않지만 도리어 무수한 의미를 가지
고 있다.(WM;370)”…“통일성을 주장하는 것은 타성의 욕구이며,
다수성이야말로 힘의 징후이다.”
(니체, 천 개의 눈 천 개의 길 중에서)
농촌의 작은학교를 두고 10년 뒤에 지금의 절반으로 그숫자가 줄어들 것이라고 한다. 이런 예측은 지극히 현실적인 것으로, 과거로부터 지금까지의 학생들 숫자 변화를 보고 말하는 것이다. 면 소재지 학교인 지사초등학교의 경우도 내년 입학생이 2명으로 예정되어 있다. ‘면소재지 학교이기에 10년 전에 인근 학교를 폐교하여 통폐합되었던 것처럼 10년 뒤에 인근의 큰 학교(오수)와 다시 통폐합은 되지 않겠지’라는 기대만 할 뿐이다.
농촌의 작은학교는 교육 철학의 생산자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 말이 있다. 이말에는 선비들의 자가당착이 들어있지만 그래도 농(農)의개념을 근본으로 생각했다는 것에서 자연의 이치를 유(儒)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조선사회에 구현하려는 선비들의 고민을 엿볼 수 있다. 한자 농(農)은 노력하는 사람, 힘쓰는사람이라는 뜻을 품고 있다. 식물을 재배하려면 노력, 즉힘을 들여야 한다. 힘을 써야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농부는 생산자다. 생산자로 사는 본보기가 농부다. 그리고 그들이 사는 농촌은 자연을 터전으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을 만들어내는 생산기지가 된다. 그러나 이 시대의 관점인경제논리로 보면 농촌에 사는 사람들은 사전적 의미의‘미친 곳’이다. 그러나 니체의 관점에서 보면 새로운 가치를생산하는‘미친 곳’이다. 이 시대에‘길들여진 두뇌’와 이시대의‘보편적 신념’으로 농촌의 학교를 본다면 다른 해석이 있을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천개의 눈을 가지고 본다면 농촌의 학교는 배우는 곳이며 생산하는 곳, 성장하는터전이다.학(學)의 이형 동의어로 ?(학)이 있다. 이 글자를 잘 살펴보면 위에 문(文) 아래 자(子)가 있다. 文(문)‘ 무늬’의 뜻을가진 글자이며 자(子)는 생산의 뜻이 있다. 새로운 무늬를만들어 내는 곳이 학교다. 배우기만 하는 학교와 배운 뒤새로운 무늬를 만들어 내는 학교는 서로 다르다. 배움(학습)과 생산이 서로 공존할 때‘성장’이 있다.새로운 눈으로 농촌의 학교를 봐야 한다. 그래서 새로운가치를 생산해야 한다. 경제 논리의 눈으로 보는 농촌의 작은학교는 국가 재정의 소비자가 되지만 가치 생산기지의눈으로 본 농촌의 작은학교는 교육 철학의 생산자가 된다.농촌의 학교는 생태(生態)의 개념, 생산의 개념, 문화의 개념, ?(학)의 개념으로 둘러싸인‘울’이다. ‘우리’라는 말의기본 가치는 차이 인정이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어울려 사는 농촌사회의 공동체(共同體) 문화는 이 시대에 필요한 가치다. 이런 가치를 생산하여 공급하는 농촌의 작은학교는 도시학교가 놓치고 있는 농(農)의 개념을 바탕으로 한생태(生態)들이 어울려 사는 그런 배움터가 된다.“상추가 미치고 있다. 내려와서 상추 좀 뜯어다 먹어라”라고 말씀하시는 어머니께서는 나에게‘공부해라 공부해라, 그래서 나처럼 힘들게 살지 마라’하셨다. 철없던 시절에 나는 그 말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지금의 나는‘어머니는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모범을 보여 주고 계세요’,‘ 어머니께서 하셨던 일만큼 소중한 가치를 저는 그 어느 곳에서도 찾지 못했어요’라고 말하고 산다. 그해 여름, 어머니의 상추로 싸먹은 쌈밥은 참 맛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