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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 |
[서평] 『팬티 인문학』
관리자(2010-12-02 17:34:13)
『팬티 인문학』 일본인의 진화론적 문명관이 주는 불편함 - 장세길 전북대학교 강사, 문화인류학 박사 필자는 2008년에‘속옷의 패션화와 성기의 인식변화’라는 주제로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적이 있었다. 젊은 여성 16명의 속옷을 일일이 사진을찍으며 분석한 논문으로, 속옷의 겉옷화와 그 속에 담긴 성인식을 다루었다. 박사과정 중에 쓴 논문이어서인지 지금 생각해봐도 문제가 많았다.하지만 당시 사람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논문이 훌륭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여자 속옷을 공적인 학술대회에서 공공연하게 다룰 뿐 아니라, 조사한 여성 속옷을 직접 보여주며 발표했기 때문이었다.학계의 연구대상은 갈수록 폭넓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의식적으로 외면당하는 주제가 있다. 자칫하면 학자의‘품위’를 손상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알게 모르게 만연되어 있기 때문이다. 속옷 역시 그러한 주제가 가운데 하나다. 특히 겉옷이 공적 영역으로서 계급, 세대, 지위에 따른 사회적자아를 나타내는 것에 비해, 속옷은 사적 영역으로서‘은밀한 부위’를 암묵적으로 상징하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그런 점에서“사회와 개인, 집단과 개인, 개인과 개인 사이를 분리하는 최후의 물리적 장벽”인‘팬티’를 인문학적으로 다룬 책이 출판됐다는 점만으로도 반가운 일이 아닐 수없다. 속옷을 통해 시대문화를 들여다보다 요네하라 마리는 참 재능이 뛰어난‘작가’다. 발명, 이(異)문화, 음식, 동물, 소설, 책 등 그가 다룬 주제는 참으로 다양하다. 특히 프라하의 소비에트 학교에 다닌 러시아통(通)으로서, 구(舊)소련(이하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 공산주의 국가의 내면을 속속들이 보여주는 책들은 독자에게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게다가,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그중에서 독자의 흥미를 유발할만한 일화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고 감으로써 딱딱한 인문학적 주제를 쉽고 재미있게 만드는 글쓰기 솜씨도 남다르다.이 책 역시 조금은 낯부끄러운 소재를 딱딱하지도, 가볍지도, 진부하지도, 어렵지도 않게, 그리고 재미있게 썼다. 특히누구라도 한 번쯤은 궁금해 했을 터이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던 궁금증을 비교문화적인 방식으로 설명해주는 접근방식이 눈에 띄었다. 솔직히 필자 역시 초등학교 6학년 때‘아담과 이브를 가린 무화과나무는 왜 떨어지지 않을까?’,‘ 이브는 왜 가슴은 가리지 않았을까?’라는 의문을 가졌었다. 그런데 요네하라 마리가 27년 전의 궁금증을 풀어줬으니 어찌재밌지 않겠는가?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속옷을 입었을까?, 소련군인의 셔츠 끝자락은 왜 노랗게 물들었을까?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소련의 장교부인들은 왜 속옷만 입고길거리를 활보했을까? 옛날 여성은 월경 때 어떤 속옷을 입었을까? 일본인 남성은 왜 훈도시(엉덩이가 드러나는 일본의전통 속옷)를 고집할까? 발레리노가‘민망한’타이츠를 입게된 이유는 무엇일까? 제목만 봐도 궁금증이 생기는 이러한이야기를 요네하라 마리는 역사적 기원부터 살펴봄으로써 독자로 하여금“아하 그래서 그랬구나!”라며 고개를 끄덕이게한다. 유쾌한 그러나 때로는 불편한 하지만, 필자는 솔직히 글을 읽는 내내 마음 한구석에서 불편함을 느꼈다. 아마도 일본(인)을 문명국(민)으로, 소련(인)을 야만국(민)으로 바라보는 진화론적 문명관에서 오는 불편함 때문이었던 것 같다. 심하게 표현하면 요네하라 마리가‘일본인=인간/소련인=동물(개)’이라는 식으로 바라보는 것은 아니냐는 의구심마저 들 정도였다.요네하라 마리는 분명히 문화상대주의를 강조한다. 예를들어, 먹는 음식, 날씨, 정치적 배경 등이 달라서 일본과 소련은 속옷문화가 다르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 그럼에도 문명의 야만에 대한 문명화로 조선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해 조선인을 야만스러운 민족으로‘발명’한 것처럼, 문명?반문명?야만(미개)이라는 위계의식에 따라 소련 사람들을 비문명화된민족으로 바라보는 일본인의 진화론적 문명관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요네하라 마리는 소련 사람들이‘큰 것’을 본 뒤에 뒤처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여러 문헌과 경험담을 통해 소개하고 있다. 물론“종이는 세계적으로 볼 때 지금도 꽤 사치품”이라면서 소련 사람들이 종이로 뒤처리하지 못하고 옷 속의솜이나 손가락으로 해결하는 이유를 경제적인 데서 찾고 있다. 하지만 요네하라 마리의 이러한 설명을 읽다 보면 일본인은 (종이로 뒤처리할 정도로) 오래전부터 문명화되어 있으며, 더구나 경제적으로도 앞서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같은 느낌을 받는다.예를 들어,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인용했다고 하더라도, 소련 사람들의 용변 보는 방식은“개와 똑같다”,“ 팬티를 입지않아 똥이 셔츠에 묻어 노랗게 변했다”등의 이야기는 소련사람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도록 한다. 특히, 요네하라 마리는 포유류 중에서 용변을 본 뒤에 뒤처리하는 것은 인간뿐이라면서 그 이유를 직립보행에 따른 신체적 변화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먹는 음식이 달라 염소처럼 검고 작은 똥을 싸기 때문에 뒤처리를 안 해도 된다는 이야기를 제아무리 덧붙인다고 하더라도, 결국 밑은 안 닦는 소련 사람들은 야만스러운 민족이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에 불과하다.방대한 자료를 활용해 속옷의 역사부터 비교문화적 관점에서 속옷문화의 다양성을 소개하고 있는 요네하라 마리의 노력은 분명히 흥미롭고 가치 있는 작업이다. 표지에 쓰여 있는 것처럼,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속옷 문화사’로서 전혀 손색이 없는 책이다. 낯부끄러워 함부로 이야기하지 못했던 속옷에 대해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다만, 독자들이 필자처럼 불편함을 느끼더라도 절대로 소련인(지금으로 보면 러시아인)이 일본인, 또는 한국인보다 열등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문화는 우열을 가릴 수없기 때문이다. 만약 속옷과 관련해서 학술적이면서도 재미있고, 그러면서도 문화상대주의적 관점을 견지하고 문화인류학 서적을 원한다면 인류학자인 우에노 찌즈꼬가 쓴『스커트 밑의 극장』(출판사 논장)을 추천한다. 장세길 1971년 출생. 전북대학교 문화인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문화저널』의 기자로 활동했으며 현재는 전북대학교에서 강사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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