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1 |
[저널초점] 문화가 살아 숨쉬는 학교 박물관 5
관리자(2010-11-04 14:35:11)
문화가 살아 숨쉬는 학교 박물관
지역주민과 함께하는 소통의 공간
한국의 근대적인 박물관이 문을 연지 100년이 지났다. 지방자치제가 시작되면서 전국의 박물관은 급격히 증가했고, 지금도 자치단체마다 다양한 성격의 박물관이 건립 중이다. 하지만 그동안 적지 않은 지역의 박물관이 규모와 재정, 인력과 전문성 등 여러 문제점과 한계를 드러내면서 위기를 맞고 있다. 그 중에는 더 이상 지역주민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하거나 박제화 된 공간으로 이미 전락한 경우도 적지 않다.그러나 최근 들어 지역박물관이 변화하고 있다. 수많은 지역박물관들이 명품중심 전시공간에서 생활형 전시공간으로 바뀌고 있으며, 지역민과함께 소통하고 교감하는 지역의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시대의 새로운 요구에 조응하고 있는 것이다.이번호 저널초점은『문화저널』창간 23주년을 맞아 지역문화와 지역박물관이 함께 성장·발전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봤다.지역박물관은 그 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대표하는 연구기관이자 문화시설이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지역박물관은 지역문화와 함께 호흡할 수 있을 것인가. 그 가능성과 미래를 들여다본다.
지역문화와 박물관은 하나다
- 최석영 국립극장 공연예술박물관장
박물관은 주지하다시피 인류 역사 속에서 많은 변화를 겪은 후에 세계무대에등장한 역사적 산물이다. 지식의 발달과 시민혁명 이후 지식정보의 독점적인향유가 아니라 이를 공평하게 일반인들에게 보여주게 된 데에서 근대 박물관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물론 국가마다 근대박물관의 등장 배경은 다르다. 여기에서는 적어도 유럽의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다.그러나 아시아에서는 달랐다. 아시아 가운데 일본은 근대민족의식을 불러일으키고 황실 권위를 드높이기 위해 근대박물관으로서 최초로 국립으로서 동경박물관이 무대에 등장하였다. 우리는 어떠하였는가. 근대박물관이라 말할 수있지만 우리의 힘이 아니라 일제의 의도가 가미되어 이왕가박물관에 이어 조선물산공진회(1915년 9월 12일부터 10월 31일)가 종료된 후 진열관이었던미술관(본관)을 조선총독부박물관으로 1915년 12월 1일에 개관한 것이 우리의 근대박물관 역사 모습이다. 일제 강점 시기 동안 내내 조선총독부박물관은그들의 식민지사관을 교육시키는 시각적 교육 공간이었다. 경성(오늘날 서울)의 경복궁 안에 위치했던 조선총독부박물관은 조선의 대표적인 박물관이었다.반드시 어느 한 지역의 박물관이 아니었다. 그러나 지역 가운데 일본 고대와관계가 깊었다고 역사적 평가를 받은 경주와 부여에 각각 경주분관(1926년개관)과 부여분관(1939년 개관)이 있었다. 그 곳은 수학여행 시 보통 들리는공간이었다. 그 만큼 지역박물관으로서 교육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 채 있었다. 거기에서 일본 고대 문화 가운데 야요이 문화와 아스카 문화와의 관련성이 강조되면서 경주분관과 부여분관은 주목을 받았다. 참고로 여기에서 박물관이라 함은 지역사회의 미술관, 식물원과 동물원을 포함하여 법적으로 제2종으로 분류된 역사관, 기념관 등을 가리키는 것임을 첨언해 둔다.
박물관정책의 변화과정
해방 후 우리는 해방 정국의 역사가 흘러가는 가운데 친일청산과제는 해결하지 못한 상황 하에서 마찬가지로 일제 강점 시기 동안 일제의 식민지정책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던 이른바 식민지박물관의 전시구성에 대한 해체는 없었다. 그러나 점진적인 변화가 있었고 이제는 우리 학계의 연구 성과가 반영된전시공간으로 변하였다. 한편 1984년에 이르러서야 일본의 박물관법(1951년 제정)을 참조하여 우리도「박물관법」을 제정·공포하게 되어 이 법이 운용되다가 1991년에 박물관 진흥을 위해「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으로 개정·공포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물론 그 간 여러 번의 개정이 있었다.그리고 우리의 박물관정책에도 변화가 있었다. 그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1968년 문교부가 소관하고 있던 박물관업무를 문화부로 이관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는 것이다. 박물관의 교육적 기능으로부터 박물관의 문화관광적 기능으로 대전환이 이루어진 것이다. 현재 교육과학기술부에서 관장하고있는 박물관은 대학박물관, 교육박물관, 과학관 정도이다. 그리고 또 하나 큰 변화는 이와 같은 사정 때문이었는지 박물관의기능 가운데‘교육’기능이 법 조항에 들어가게 된 것이 2006년이었다. 물론 이와 같이 박물관의 교육적 기능이 법조항에 포함되지 않았던 시기에도 박물관에서는 이른 바‘사회교육’이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이 법조항에 공식적으로 포함됨으로써 본격적으로 박물관의 교육적 기능을 강화해야 하는당위성이 생겼다. 여기에서 한 가지‘사회교육(socialeducation)’은 곧‘평생교육(life-long education)’을 의미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박물관에서의사회교육은 특별한 의미를 가진 시기가 있었다. 그것이 일제 강점 하에서 조선총독부 학무국의 사회교육과에서 관장하게 된박물관은 우리를‘사회교화(社會敎化)’의 대상으로 설정하고박물관에서‘사회교육’을 크게 강조하였다. 따라서는 이와 같은 역사적 상황을 벗어난 오늘날에는 가능한 한 사회교육이 평생교육을 의미한다고 하더라도 박물관 내에서만은 사회교육이라는 용어보다는‘박물관교육(learning in the museum 또는educational role of the museum)’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것을 권장하고자 한다.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준비하는 곳
박물관의 존재 이유를 묻는다면 필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박물관은 우리를 벗어나 인류 문화의 보고(寶庫)로서우리의 모습을 비추어 우리를 되돌아보고 미래를 설계하는공간이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지나간 우리 인류의 과거뿐만아니라 미래가 바로 박물관 안에 있다. 문자로 역사를 서술할때는 집필자의 입장에 따라서 역사를 왜곡할 수 있다. 그러나상대적으로 인류의 물질문화는 그 안에 문자로 표현 못하는많은 생각들이 들어가 있다. 따라서 그 물질문화 안에는 미래가 있다는 말이다. 또한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할 때 인류가 만든 물질문화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해결의열쇠를 찾을 수 있다.공식적인 교육기관에서는 문자로 된 텍스트(text)를 매개로 지식을 전달받는다. 그러나 박물관에서의 학습활동은 이와는 다르다. 학교에서처럼 정신적인 압박도 없다. 높은 점수를 획득하고자 경쟁할 필요도 없다. 박물관의 물질문화를교과서처럼 정해진 대로 해석할 필요도 없다. 그리고 만들어진 지식을 억지로 받아들일 것을 강요하는 사람도 없다. 이얼마나 자유롭게 상상하고 과거를 되돌아보고 현재를 생각하고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공간인가. 이처럼 인류의 지혜가바로 박물관 안에 있다. 따라서 박물관교육은 지식을 전달하는 공간이 아니라 유물을 매개로 박물관 이용자가 눈치 보지않고 의사소통하는 학습의 공간이다. 그것이 박물관교육의본질이다. 우리들에게도 다양한 박물관이 설립되기를 바라는마음 간절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한 국가의 미래는 박물관이어떻게 운영되는가에 달려있다. 아무리 겉으로 보잘 것 없는박물관에도 그 안에는 우리 인류가 있다.
박물관의 역할
우리 교육정책의 핵심은 무엇일까. 현행 교과과정에서는창의인성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인문학이 소외당하는 상황하에서 자연과학만을 염두에 두고 창의인성교육을 강조하는방향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반쪽만을 본 것이다. 창의인성교육이 완성되려면 자연과학뿐만 아니라 인문과학 모두를 아우르는 융합과학으로서 접근해야 할 것이다. 인문과학에서 콘텐츠를 발견하여 자연과학에 제공하여 이를 실험하여 새로운문화를 만들어내는 과정이기 때문에 양자의 융합은 절대 필수적이다. 그리고 그 어느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 아니라상호 마찬가지로 중요하다는 상대적인 시각이 요구된다. 자그러면 지역사회에서 박물관은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가.즉 지역사회의 무엇의 발전을 위해 박물관이 필요하다는 것인가.우리의 박물관 현황을 보면 일본과는 달리 사립박물관이전체 박물관 가운데 80% 정도를 차지한다. 그 사립박물관에는 특정 주제 박물관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종합박물관 성격을 가지는 사립박물관은 드물다. 아니 없다. 사립박물관은규모의 차이가 있을 뿐 특정 주제를 다루고 있다. 최근에는법인화하는 사립박물관도 나타나고 있지만 개인이 설립한 경우가 대체적이다. 그 설립 주체가 어떻든 간에 중요한 것은지역의 발전을 위해 설립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역의 사립박물관은 지역사회의 발전에 기여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역에는이와 같은 사립박물관뿐만 아니라 국립박물관과 공립박물관이 있다. 국립박물관은 그주제가 고고학과 미술사, 그리고 역사학이다. 그리고 공립박물관은 대체로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다루고 있다. 국립이든 공립이든 모두 종합박물관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지역사회와 박물관이 상호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는가를 두 가지 방향에서 언급해 보고자 한다.하나는 지역사회에서 박물관에 접근하는 방향에 관한 것이다. 현재 면단위가 되든 군단위가 되든 박물관은 존재한다. 지역사회 안에는 여러 공식 비공식 교육기관이 존재한다. 공식기관은 물론 학교이고 비공식 교육기관이라고 하면 문화원, 예술문화재단, 문화활동단체 등을 들 수 있다. 우선은 이와 같은 교육기관 간에 협력체계를 구축해야 함은물론이다. 문화는 돈을 버는 수단이 아니다. 요즘 문화산업이라는 것이 화두가 되어 있지만 그것은 산업이라고 하여 반드시 가시적인 재정과 연결시켜서는 안 된다. 그 산업이기본 콘텐츠(contents)가 되어 그야말로 우리의 산업경제로 연결된다는 측면에서 그러한 용어와 개념을 사용하는 것이다. 학교를 비롯하여 문화원, 예술문화재단 등에는 물질문화인 유물은 가지고 있지 않다. 따라서 박물관에서는 유물을 소장하면서 조사와 연구를 한다. 전시는 박물관에서도 할 수 있지만 문화원이나 예술문화재단에서도 할 수 있다. 어떤 면에서는 예술문화재단의 경우에는 그 공간을 넓게 활용할 수 있다는 것과 함께 많은 사람들을 이용하게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물론 이러한 현상들이 나타나고있다. 반가운 일이다. 그 가운데 공식적인 교육기관은 학교에서 박물관을 크게 활용할 수있다. 지역의 학교에서는 교과서 중심의 교육뿐만 아니라 그 곳에서 태어나 자라 학교를 다니고 있는 학생들에게는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통해 우리 역사를 몸으로 느끼도록 해 주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학교에서는 지역사회에 대한 공부부터해야 한다. 지역의 곳곳을 답사하면서 설명을 듣고 오감으로느끼는 그야말로 지역사회를‘생태박물관’처럼 활용해야 한다. 일본에서는 학생들을 인솔하여 그 지역의 구성, 역사와문화를 알기 위해 학생들을 인솔하여 해당 기관을 찾아 직원으로부터 설명을 듣고 메모하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다. 일본에서는 지역의 학교에 사회교과 교사가 부임하게 되면 그동안 축적된 지역사회 조사 성과를 검토하고 거기에 새로운변화사실들을 첨가하는 일을 한다. 그것이 이른 바‘향토사회’공부의 역사이다. 우리는 바로 옆에 있는 살아있는 역사현장도 모른 채 역사와 사회공부를 교과서 중심으로 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이 얼마나 말하자면 실제와 이론이 유리된방향인가. 학습의 흥미는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어느 저자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박물관에서 교과서 중심으로 무엇인가를 설명하는 데 집중하는 학생들이 적었는데 유물을가지고 나와 설명하니 집중하는 학생들이 갑자기 늘었다는것이다. 맞다. 요즘 학생들이 시각적인 측면을 선호한다면이를 유물로서 재미있고 흥미롭게 설명해 주어야 할 것이다.이를 학교와 박물관이 협력하여 그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앞서 언급했지만 박물관은 분명 교육기관의 하나이다. 박물관에는 평가가 없다고 하지만 실제는 평가를 한다. 학교에서와 같이 필기시험으로 평가는 하지 않지만 그들의 반응을 평가한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오감(五感)으로 느끼는것을 평가하지는 않는다. 이것이 학교와 박물관에서의 평가방식 차이이다. 학교 교과과정에서 최근 강조되고 있지만 강조하지 않더라도 학생들을 인솔하여 박물관을 견학하되 단지 학생들에게 박물관을 느끼어 보라 하면 그야말로 교육 목적을 달성하는 데 한계가 있다. 그것은 막연한 목적이다. 그것보다는 방문을 할 박물관의담당 연구사와 사전에 교사와함께 교육의 목적을 일정하게달성하기 위하여 협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박물관에서 교육을 어떤 방식으로 진행할 것인가.박물관 휴관일을 활용하는 것도 하나의방법이다. 교사는 사전 방문을 통하여 박물관에 소장하고 있는 유물이 무엇이고 현재 전시되어 있는 유물들은 무엇인가에 대해 사전 설명을 듣고 학생들에게 학습동기 부여를 시킬 만한 유물들을 중심으로 간략한 설명과 함께박물관에서 제공하는 내용이 담긴 CD 등을 보여줄 필요가있다. 박물관에 빨리 가보고 싶다는 욕구를 불어넣어줄 필요가 있다. 그 다음 박물관에서 교육을 어떻게 진행할 것인가.이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박물관 상황에 따라 다르다.수장고 안에서 수업을 진행할 수도 있고 전시실 내 어느 특정 진열장 앞에서 방석이나 의자에 앉아 진행할 수도 있다.이 진행은 박물관 연구원과 교사와 함께 할 수도 있고 아니면 박물관 연구원이 혼자 할 수도 있다. 수업 방식은 진열장을 수업 시간 중에는 열어놓고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끼게하면서 질문하고 답하면서 토의하는 것이다. 이 때 학교에서는 사전에 박물관 직원과 협의하여 만든 활동지(worksheet)를 활용해도 될 것이다. 이것이 이른 바 중간평가가 될 것이다. 수업이 종료되어 학교로 돌아가서는 학생들에게 느낀 바를 발표하게 한다든가 그것을 글로 표현하여 보게 한다든가아니면 그림으로 그리게 하여 그림 전람회를 연다든가 한다.이것이 최종평가가 될 것이며 이는 피드백(feedback)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강요하지 않고 자율적으로 활동을 하게 할때 창의력이 신장된다. 이것은 박물관이 창의력 신장을 위해반드시 필요한 기관이 되는 이유 중 하나이다.또 하나는 박물관에서 지역사회에 접근하는 방향에 관한것이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지역사회 내 박물관, 학교, 문화원, 문화예술재단 등이 상호 협력하는 체계를 구축하고 박물관이 다른 교육기관으로 접근하는 방안 하나를 소개하고자한다. 문화원에서 그 지역사회의 역사와 문화를 조사할 때협력해서 조사활동을 전개하는 것은 물론 문화원 내에서 그것을 전시할 때 협력하는 방안이다. 물론 이러한 체계가 서서히 구축되고 있다. 또한 문화예술재단에서 문화예술활동의 일환으로서 각종 순회전람회를 포함하여 전람회를 열 때 협력할 수 있다. 여기에서는 구체적으로 지역박물관이 학교교과과정에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를 언급하고자한다. 정부의 지원을 받아 지역의 사립박물관은 학교교육과정에 참여할수 있다. 즉 아웃리치(outreach) 활동이 그것이다. 그 활동을 보다 적극적으로 수업을 함께 운영하는 방식이다. 물론 소극적으로 학교에 유물을가지고 찾아가 소개하고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보다 적극적으로 수업을 교사와 함께 진행하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이는 사립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유물에 대해 학교교사와 함께 조사하고 연구하는 활동을 통해가능하다. 즉 박물관과 학교가 일체가 되어 움직이는 것이다. 박물관 자원봉사의 경우에도 학교 학생들에게 적극 그러한 기회를 줌으로써 박물관이 지역사회에서 규모는 작지만 큰 의미를 차지하게 된다.
박물관, 보이지 않는 미래자산
이상 지역사회와 박물관의 역할에 대해 몇 자 적어 보았다. 이러한 제언을 이상적(ideal)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결코그렇지 않다. 현실의 상황을 바꾸면 그것은 절대 이상적인 것이 아니다.현실 바꾸기를 꺼려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렇다. 현실 바꾸기에는 협력과함께 이해(利害)를 계산하지 않고 접근할 때 가능성이 보인다. 지역사회를 균형 있고 뒤지지 않는 특성화된 공간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방안을함께 고민해야 할 때이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발전’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정작 이해를 떠나 우리 모두에게‘발전’이 되는 방향으로 지역사회와박물관 간의 역할을 생각할 때이다. 정부에게 전적으로 의존할 것도 아니다. 지역의 기업들이 기업메세나운동을 통해 박물관의 역할을 돕는 것이야말로 지역사회의 발전으로 연결된다는 점을 깊이 인식할 때다. 그리고 박물관은 지원의 결과를 투명하게 지역사회에 보여줄 때이다. 일본과는 달리 우리는 진정 박물관을 산업의 대상, 이윤 창출의 대상이 아니라‘보이지 않는’미래 자산의 대상으로 박물관을 보고 지역사회에서 국립과 공립과 사립박물관이 각각 특성화된 미션(mission)을 가지고 균형 있게 발전되어 지역사회의‘윤택함’을 위해 큰 역할을 하기를 진정으로 바란다.
최석영 일본 중부대학 국제관계학(역사학) 국제관계학 석사를 마치고 히로시마 대학에서 국제사회론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2005년ICOM 서울세계박물관대회 조직위원회 학술팀장을 역임하고, 국립민속박물관과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를 지냈으며, 2009년 단국대학교 연구 조교수를 지냈다. 현재 국립중앙극장 공연예술박물관장으로 재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