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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 |
문화저널 창간 23주년을 축하하며 2
관리자(2010-11-04 14:33:56)
문화저널 창간 23주년을 축하하며 오지고 뿌듯한 기적을 오래 지켜라 - 황풍년 전라도닷컴 편집장 자정을 넘겨 걸려오는 전화는‘십중십구’술친구의 부름이요‘열이면 열’반드시 이끌려가기 마련이다. “언능 와라 잉~. 니 좋아흐는 아무개 작가가 왔다.”발신자의 이름만으로도 득달같이 달려갈 태세였는데, 오금을 박듯이‘아무개’를 들이민다. 10년 넘게 단골을 삼아온 선술집에 둘러앉은 사람들은 거개가 알만한 술꾼들이었다. 빙 둘러 수인사를 하고 빈자리에 앉았지만 불콰한 얼굴들 사이를 비집고 끼어든 맨정신으론 감당하기 힘든 분위기였다. 지역문화판 들여다보면… “대체 왜 그러는 거야. 명색이 작가한테….책을 냈다면 인사치레로라도 내용을 먼저 물어보는 게 맞지 않아? 대뜸 몇 권이나 나갔냐고? 내가 장사꾼이야?”아무개의 볼멘소리는 얼굴색만큼이나 벌겋게 열이 올라 있었다. 누군가는 분명 그의 억하심정에 불을 질렀을 법한데, 하나같이 시치미를 뚝 뗀 채 막걸리만 홀짝이고 있었다. 하긴 대꾸가 필요 없는 화법이었다. 저마다 시대와의 불화에서 오는 울분 따위를 꾸역꾸역 게워내는 게 술판의 속성이지 않던가. 독특한 자기 세계를 풀어내며 꾸준한 작품 활동으로 필명을 얻어왔건만, 노상 생계를 근심하는 그였다. 기실 동병을 앓는 벗들에게 취중을 기회로애꿎게 분풀이를 해대는구나 싶었다. 익숙한정경이다. 지역문화판의 뒤풀이는 온갖 뒷담화와 푸념이 뒤섞여 고만고만한 처지의 속앓이를 술로 씻어내는 굿판인 게다.불똥이 내게로 튀었다. 뻘쭘히 앉아 사태를파악하려 애쓰는 모양새가 안 돼 보였을까.“이번 달 전라도닷컴에 무얼 썼는지, 어디를다녀왔는지, 누구를 만났는지 알아? 맨날 발행부수나 물어보고 말이야. 돈이 그리 좋아?돈 때문에 우리가 책 쓰고 잡지 내고 작품해?”“고만해! 나도 그림 힘들어. 야도 동네서 노래하기 죽겄다고, 서울 가야겄다고 난리여….”상기된 얼굴도 격정적인 목소리도 슬며시가라앉고, 일순 좌중이 직수굿해졌다. “여그막걸리 한 주전자 더 주씨요”, “에이! 술이나묵세”하는 주문이 은근하게 터지고 한쪽에선통기타를 치켜들며“조용히 좀 해, 노래 좀 허게”하며 큰 소리로 권주가를 시작했다. 지역문화의 정체성은 어디로? 공연을 마친 소리꾼과 가수, 막을 내린 연극배우, 전시회를 접은 화가, 새 책을 펴낸 소설가와 시인…. 큰일이다. ‘지역’이라는 꼬리를앞에다 붙이는 온갖 장르의‘문화’가 시들시들 신명을 잃어가고 있는가보다. 문화의 핵심이 다양성이라는 말은 입에 발린 수사에 불과하고, 뭐든 돈이 되지 않는 것은 천덕꾸러기취급을 받기 십상인 세상이다. 서울과 수도권에 사람들을 죄다 오글오글 몰아넣고‘변방’으로 치부되는 동네에서 문화로 돈을 사기란나무에 올라 생선을 따려는 것만큼 무모하다.서울로 빠져가는 인구가 솔솔 늘어나는 세월만큼 나머지 동네의 후유증은 시름시름 깊어졌다.허나 이른바 지역문화판 일꾼들의 고민은작업의 성패를 관람객 머릿수와 수익만으로환산하는 몹쓸 시장에서 악착같이 살아남는일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가 돈 때문에?”라는 자조 섞인 물음을 주고받으며 스스로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는‘오기’를부려야만 버텨낼 수 있기 때문이다. 만만한 일이 아니다. 특히‘대중’이 사라진 지역에서 대중추수적 문화를 채근하는완장들의 서슬은 자못 드세다. 돈을 틀어쥔 권력이 그러하고, 블록버스터니 베스트셀러니 하는‘대박’상품만을 대접하는 언론들도 마찬가지다. 세계니 국제니 하는 어벌쩡한 수식어를 붙여 만든 허접한 축제들이 난무하고, 지역의 삶과동떨어진 요란한 이벤트와 대중스타들의 사생활까지 미주알고주알 까발려 재미 삼는 한심한 세태의 연유다. 지역문화발전의 든든한 노둣돌로 남길… “그게 아니라고, 니가 맞다고, 우리는 이렇게 가야 한다고….”노동의 대가, 창작의 보람을 합당한 가치로 갈음해 지역문화의 정체성을 꼿꼿하게 지켜준 외길 23년! 척박한 토양에씨를 뿌리고 애면글면‘문화’를‘저널’로 일삼아온 세월이라니. 지역문화예술의 눈물을 닦아주며 처진 어깨를 두드려 기를 북돋아온『문화저널』은 선술집의 다정한 벗이요, 기운찬북소리와 우렁우렁 추임새를 쉼 없이 던져온 고수와도 같다.알맹이 보다는 포장으로, 교묘한 남녀상열지사와 그럴듯한낯내기 인터뷰를 담아 독자를 현혹해온 숱한 종이뭉치들이빳빳한 지폐를 헤아리는 기쁨으로 몸피를 불려온 풍토에서참으로 귀하고 듬직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문화저널』의 지평은 문화영역에 국한되지 않았다. 오만가지 문화 현안을 날카롭게 파헤치고 진단하는 건강한 담론의장에서 추슬러진 지향들이 지역사회 전반의 나아갈 바를 가늠하는 잣대이기도 했음이다.“어이! 요샌 어때? 향우회 같은 디다 광고를 좀 하고, 괜찮은 출향인사들 소개하는 꼭지도 넣고 하면 좋을 것인디. 웬만하문 연계해서 광고도 넣고….”‘시장에서 살아남기’가 최대 화두인 판국이니‘잡지쟁이들’도 허구한 날 마케팅 타령이다. 그러나『문화저널』이나『전라도닷컴』이나 마케팅 따위로는 결코 명줄을 연명할 수없다.방법을 몰라서가 아니다. 결코 깰 수 없는 금기, 태생의 가치를 저버릴 수 없는 자존심이 있다. 하여‘잡지가 달라졌다’거나‘예전만 못하다’거나 하는 이런저런 품평들이 무성하지만‘그게 사라진 빈자리’가 얼마나 황량할지를 아는 이들의‘미련한’발싸심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잊혀져가는 전통문화를 발굴해 조명하고, 시장이 외면하는 작품의 존재감을 드러내 추어주며, 공동체의 삶에 활력을불어넣는 맞춤한 문화를 챙기는 역할이란, 지금 여기 함께이 땅을 밟고 사는 사람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십시일반’호주머니를 털어 잡지를 쌓아온『문화저널』지킴이들의 진득한 열정이 존경스럽고 놀라울 따름이다. 아울러 돈벌이와하등 무관한 책들을 펴내고, 강좌와 아카데미를 마련하고,전시·공연·답사 등 지역문화를 더욱 풍성하게 살찌울 궁리에 골몰해온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에 아낌없는 박수를보낸다.돌아서면 다시 그 자리인 게 살아있는‘저널’의 숙명이다.글쓰기와 편집으로 무수한 밤을 하얗게 지새우고, 한편에선제작비를 걱정하며 어김없이 찾아오는 마감을 지켜 독자의손에 잡지를 쥐어주기라니. 십 수 년도 넘어 동병의 근심을앓는 처지에서 보면『문화저널』과 같은 종류의 잡지를 23년동안 줄기차게 이어오기란 기적과도 같다.『전라도닷컴』의 저 앞 먼발치를 성큼성큼 먼저 걸어가면서그 오지고 뿌듯한 기적을 선물하는『문화저널』의 감동이 오래오래 계속되길 진심으로 바라본다. 황풍년 1964년 전남 순천에서 태어나 순천과 서울에서 공부를 하고 1991년부터 1999년까지 전남일보에서 기자생활을했다. 2000년 인터넷잡지 전라도닷컴(www.jeonlado.com)을세상에 띄운 이래, 2002년부터 전라도 향토잡지 월간 <전라도닷컴>과 <도서출판 전라도닷컴>의 편집장과 발행인을 맡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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