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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 |
[문화시평] 전북일보 창간 60주년 기념 사진전
관리자(2010-11-04 14:33:10)
전북일보 창간 60주년 기념 사진전 < 전북의 자화상> 한국소리문화의전당(9월 28일~10월 8 일) 60년 역사 속 과거에서 미래를 묻다 - 홍성덕 전주대학교 교수 덜컥, 문화시평을 쓰겠다고 자원했지만 사진에 대해 문외한인 사람에게는 짐 아닌 짐이 되었다. 조금이나마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몇 년 동안 전주시와 전라북도에 보관된 사진들을 본 경험 때문이다. 역사를 전공하는 사람은 사진을‘예술’이 아닌‘기록’의 눈으로만 보기 마련이다.전북의 자화상은 전북일보 창간 60주년을 맞이해서 그동안 전북일보에서 촬영해 놓은 보도사진을 선별하여 전라북도를 이야기해 보고자 하는전시회이다. 195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시대별 전시와‘전북의 생태, 생명을 말하다’라는 생태사진 전시, 전북인들의 얼굴전, 전북일보 연혁등으로 나뉘어 이루어진 이번 전시는 이 땅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옛 기억을 더듬어 볼 수 있는 장이었으며, 전라북도의 굴곡진 현대사를엿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전통에서 근대로 1950ㆍ60년대는 오랜 식민통치와 전쟁으로부터 벗어나는 힘겨운 삶이 존재해 있었다. 전북자화상의 포스터로 사용된 사진은 해방 후 전라북도의 이미지를 대변한다. 한벽터널밖으로 보이는 중바위 자락은 이미 벌거 벗을대로 다 벗어버린 민둥산이다. 그 산자락에서 힘겹게 잘라낸 나뭇짐을 진 아낙들이 이고 지고 힘겹게 철길을 넘어오고 있다. 60년대 말까지도 전라북도의 산하는 굶주림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곰티재에서 살아남은 모자의 사진 속에 빛나는 아이의 눈빛은 희망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그만큼 삶의 생명력은 끈질긴 것이었으니, 한일외교회담 반대 시위는 그 메시지가 담고있는 사회의 빛에 대한 갈망이기도 했다. 36년의 식민지배와수탈이 군사정권의 출현과 함께 왜곡되는 흐름이 박대통령의선글라스 밑에 투영되고 있다.60년대까지도 도심 속에는 초가집이 즐비했다. 전주 발산자락이 그러했고, 군산의 해망동 일대 역시 초가집이 연이어있었다. 초가집이 기와집으로 바뀌는 과정은 현상적으로 분명 군사정권의 출현에 이어져 있다. 전통과의 단절, 말살을전재로 한 조국근대화 과정은 전통적 삶과 동떨어진‘선진’적인 것이었다. 도시공간의 변화 길을 내기 위해서 도로를 깎아내리고 초가를 대신해서 슬라브 지붕이 드러나고, 전주천변에 즐비했던 판자촌들이 사라지면서 정겨운 이바구 공간으로서의 전주천 빨래터도 자리를 감추게 되었다. 경제발전과 독재정권의 시대 1970년대는 경제발전과 독재정권이 두 축을 이루면서 번영 아닌 번영의 길이 열리었던 시기이다. 유신으로 대변하는1970년대는 한국적 민족주의, 한국적 민주주의를 표방한 이데올로기에 의해 삶이 재편되는 과정을 거쳤다. 언제부터인가 북괴 만행을 타도하는 대규모의 군중집회는 강제적 자발의 형태로 주말이면 부모님 손에 붙들려 나가는 정례행사가되었다. 종합운동장을 가득 메운‘북괴 땅굴 규탄대회’는 만고역적의‘북괴’에 대한 집단 최면에 가까운 것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간첩은 그래서 항시 검은 안경에 바바리코트를 입고, 눌러쓴 모자 속에는 늑대의 귀가 숨겨져 있는‘괴물’이었던 것이다.그런 와중에 전라북도 사람들을 즐겁게 했던 것은‘역전의명수’군산상고 야구부였다. 황금사자기 봉황기 등 고교 야구 대회는 지역민들의 자긍심으로 여전히 회자되고 있다. 삶의 짜릿함을 느끼는 야구의 붐은 1981년 프로야구의 출범으로 이어졌고, 80년대 초 한편으로는 우민화 정책인 3S의 하나로 또 한편으로는 독재와 민주화의 삶에 지친 사람들의 해방구와 같았다. 획일적 근대화의 종식 1980년대의 출발은 파괴와 저항으로부터 출발하였다.1979년 말 이리역 폭발사고는 경제개발계획 수립 이후 최대사건의 하나였다. 호남선과 전라선의 분기점으로 철도교통의 중심에서 터진 폭발은 근대화 과정에서 인간이 초래할 수있는 최악의 사건이다. 박대통령 저격 과 이리역 폭발사고는 독재와 획일적 근대화의 종언을 고하는 것이었다. 삶의고통이 있을 때 더욱 크게 느껴지는 것은‘인간애’이다. 이리의 재건 과정은 흐트러진 공공질서의 해결사로서‘국민’의몫을 당연시 하는 묵시적인 룰을 만들었다. 국가와 공공기관의 잘못된 판단과 실수를 국민들이 떠안아야 하는, IMF나 4대강 사업에서도 여전히 보이는 그런‘인간애’가 등장한 것이다. 80년은‘봄’을 잊을 수 없다. 독재정권의 몰락 이후 등장한 신군부 세력에 대한 민중들의‘봄’, 그 봄을 갈망하는숱한 역사가 전라북도에도 점철되어 있다. 잡히지 않기 위해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어가는 학생과 곤봉을 들고 뒤쫓는 전투경찰은 80년대 우리들의 자화상이었다. 80년 도청 앞 시위를 비롯해서 87년 전주역 대통령선거 유세 등에 보인 전라도 정신은 아직도 유효하다. 새만금에 기댄 전북의 미래 1990년대 이후는 바다, 개발 그리고 자치제의 역사였다.1990년 지방의회의 출범과 1991년 새만금사업의 착공,1993년 서해훼리오 침몰, 1997년 IMF를 정점으로 자문하던 시기이다.‘ 전라북도는 무엇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자치제의 시행으로 등장한 단골 메뉴는 50년 낙후였다. 자발적 개발능력이 미약한 농도인 전라북도가 첨단산업시대에살아남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자문하고, 노태우대통령이 던져준 곶감에 감사하며 새만금에 집중했다. 이후 20년동안 전라북도의 발전은 새만금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처럼 최면에 빠져들었다. 2003년 부안 방폐장 반대 시위 등은개발전략이 지역사회를 철저히 갈라놓은 대표적인 사례이다. 반목과 갈등을 넘어 새로운 지역문화의 창출은 지역민들에게 또 던져져 버렸다.2010년 전라북도의 비전은 여전히 새만금이다. 몇 백 만명의 관광객이 다녀갔던지 체류형 관광개발이 필요하다든지전북의 자화상 역시‘약속의 땅 새만금’을 다루고 있다. 대림과 갈등의 역사를 딛고 새로운 미래를 새만금에서 찾는 것이다. 그렇지만 과연 그러할까? 전북의 자화상에 나온 숱한 사진들은 보도사진의 성격 상‘사실의 전달’이 중심일 수밖에없으니 사건 사고와 개발 정책에 초점이 두어져 있을 수밖에없다는 한계점에도 불구하고, 전북의 미래를‘새만금’으로보지는 않는 듯하다.전라북도의 미래는 사진 속에 담겨져 있는 전라북도 사람들, 그들의 미소 속에, 슬픈 눈가에서 곧 자신들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닐까? 홍성덕 전북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게이오대학, 행안부 국가기록원, 전북대박물관을 거쳐 현재 전주대학교 언어문화학부에 재직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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