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1 |
[문화시평] < 경기전>
관리자(2010-11-04 14:32:58)
< 경기전>
일본 가나자와21세기미술관(10월 5일~11일)
정주하의 <경기전>으로 경기전 다시 보기
- 최효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미술관장
조선 왕조 개창자의 어진이 모셔진 경기전(慶基殿). 그 경기전의 진(眞)면목을 공들여 그려낸(寫) 사진(寫眞) 전시를, 영당(影堂)건립 600년이 되는해, 경술국치 100년이 되는 해에 일본의 한 고도(古都)에서 갖게 되었음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경솔국치 100년, 흑백사진 속 역사의 진실을 담다
10월 5일, 일본 이시카와 현 가나자와 시의 가나자와21세기미술관 시민갤러리에서 정주하 교수의 <경기전(慶基殿)>전시가 열렸다.지난 해 3월 전주에서 이시카와현 비주얼디자인협회 회원초대전이 열렸을 때 정 교수의 작품을 접하고 경기전의 가치를 새롭게 보게 된 오오바 요시미 회장과의 협의를 시작으로, 일 년 여의 기간 동안 각별하게 공들여 추진되어 마침내결실을 보게 된 것이다.세계적으로 유명한 가나자와21세기미술관은 종래의 미술관 개념을 탈피, 가장 현대적이고 혁신적인 미술관의 개념을구현한 사례로 꼽힌다. 인구 45만의 도시에 미술관 내방객이 한해에 155만 명에 이른다. 무척 다른 풍광으로 무척 다른 정서를 환기시키는 정교수의 경기전 이미지에, 시내 외와현내 외에서 오는 많은 미술관 방문객들이 일본인 특유의 집중력으로 차분하게 몰입하는 듯하였다.가나자와21세기 미술관은 일본 3대 정원중의 하나인 켄로쿠엔(兼六園)과 가나자와 성(金澤城)이 지근 거리에 있어과거와 현대가 절묘한 대비 속에 조화를 이루는데, 가장 현대적인 내외장의 미술관에 펼쳐진 가장 전통적이고 유현한이웃 나라 역사 유적의 이미지 역시 절묘한 대비와 조화를이루었다.이 전시를 위하여 정주하 교수는 많은 공을 들였다. 작년 7월 현해탄을 건너 자전거로 가나자와까지 여행하여 관계자들을 만나 구체적인 협의를 하고 귀국 직후 전시 계획을 확정하였다. 디자인 회사 컨티뉴의 김병철 대표가 10년 전부터추진한‘경기전 문화콘텐츠 개발사업’에 정 교수가 2006년부터 합류하여 4년간 경기전 작업에 몰두하였고 1800여 컷의 흑백 필름을 얻기 위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수도 없이 그곳을 드나들었다. 역사성을 드러내기 위하여 이 시대 사람들의 이미지는 넣지 않았다. 개방된 공간에서 그 또한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우리는 과거나 현재나 다르지 않을 법한 경기전의 항구한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일본 전시를 위한 프린트를 한지에 하기로 결정하고 특별한 규격과 질감의 전주 한지 제작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한지 제작의 마지막 단계에서 가외의 공정을 추가하여 표면입자를 훨씬 더 촘촘하게 만들었다. 한지에 한 프린트는, 일반 용지에 한 것보다 더 부드럽고 덜 선명하고 흑백의 대비가 덜 강한 결과를 얻게 되는데, 이는 한지의 불편만성과 닥섬유의 거친 속성과 함께 프린트 작업을 족히 두 배는 힘들게 만들어준 요인이 되었다. 프린트는 자외선 차단 성분이섞인 염료로 하여 보존성을 크게 높였다. 전시물의 표구도전통 방식으로 하였다.
경기전 다시보기
조선 시대 어진(御眞)은 살아있는 임금과 동격으로 여겨졌다. 왕조 개창자의 어진을 모신 경기전은 단순히 위패를 모신사당과 달랐다. 과거 종묘 사진 작업의 경험이 있는 정 교수는, 돌아 간 이의 혼백을 모시는 사당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과 동격인 어진을 모시는 영당을 담아내는 작업이기에 더 큰의미를 두었다고 하였다. 그래서 곧 발간될 사진집의 첫 작품도 신도(神道)가 아닌 인도(人道)를 보여주게 된다고 한다.정주하의 경기전 작업은 안정적이고 인간적이다. 작가가공격적이거나 낯설게 하는 시각은 의도적으로 피했기 때문이다. 과다한 클로즈업도 없고 평이한, 우리가 늘 보아 오던시각을 기본으로 하였다. 그러나 그 느낌은 다르다. 정주하의 작업은 그 장소가 일상 속에서 쉽게 드나드는 휴식 공간으로 변해 우리가 자칫 놓쳐버리는 경기전의 진면목, 그 역사성, 그 가치를 새삼스럽게 느끼게 해준다. <경기전> 작업을 통해 그는, 시끄러움과 번잡함 속에 묻혀버린 600년 역사를 간직한 영당(影堂)의 장엄함, 장중함, 격조, 경건함, 고즈넉함, 유현함, 유려함, 조화로움, 아름다움 등을 분리, 정제, 추출해내서 화면 속에 고착시켜 내었다.경기전을 둘러 싼 각종 간판, 안내문, 시설물 들이 시각적으로, 축제 때의 고막을 찢는 밴드의 공연음과 각종 행사를알리는 기계적 증폭음과 일상적 소음 등이 청각적으로, 역사속으로의 몰입을 방해하여 경기전의 참 가치를 쉬이 느낄 수없게 만든다. 그럴 때면 그런 것들을 지워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현실에서 어렵다면 이미지 속에서라도 말이다.이미지가 실재보다 강하다는 것은 분명 왜곡이다. 그러나현실에서 경기전은 그 핵심이 되어야 할 정신성(精神性)과영성(靈性)이 탈색되고, 한옥마을 방문자의 그저 의례적인방문 코스, 그저 편안한 휴식의 공간, 모임의 공간, 코앞마저상업 공간으로 탈바꿈되었기에, 당대가 덧씌운 그 어지러운얼룩을 벗겨내는 공들인 이미지화 작업을 통해 고래(古來)의가치가 제대로 발현되는 것이다. 그의 작업을 통해 우리는,시대의 문화적 감수성이 두루 높았던 조선 그 당시로 의식의여행을 떠날 수 있는 것이다.평론가 이선애는, 경기전이 과거 누구나 함부로 드나들 수있는 곳이 아니었으나 세월의 변화에 따라 그 신성한 장소는대중들의 휴식 공간으로 자리를 내 주었고(오늘의 자본주의체제 속으로 편입되었고) 한 사진가에 의해 마침내 자본주의체제‘밖’으로 분리되어 나오게 되었다고 하며, 그것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유토피아를 꿈 꾼 것일지 모른다고 하였다. 그런데 과연 그것은 정녕 유토피아일 뿐일까? 아니, 그것은 우리 마음의 문제일 것이다. 정주하는 갈수기에 경기전마당의 마사토류의 흙이 날려 고옥들이 뽀얀 먼지를 뒤집어쓰곤 하는 현실도 안타까워하였는데 그것은 조금 더 나은‘관리’가 이루어졌으면 하는 마음이었고 그런 마음들이 모이면‘유토피아’는 실현되는 것이 아닐까?성경에, 예언자는 고향에서 존경을 받지 못한다고 하였다.너무 일상적으로 친숙해져 있기 때문에 보이지만 보지 못하는 것이다. 늘 보이되 잘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을 확실하게 보이게 하는 작업으로서 정주하의 작업은 일관성이 있다. 정주하는 늘 거기 있지만 쉬이 보지 못하는 그것을 새삼스럽게보게 해준다. 정주하의 <경기전>으로 경기전 다시 보기. 정주하의 작업을 통하여 나날이 그곳을 방문하는 시민과 방문객들 사이에서 경기전의 가치가 재발견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최효준 서울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미국 미시간주립대 경영학 석사과정과 서울대 인문대학 미술사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박사과정을 중퇴했다. 삼성미술관 수석 연구원과 서울시립미술관 수석 큐레이터, 전북도립미술관장을 역임했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미술관장으로 재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