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1 |
장미영·전흥남의‘꿈꾸는 노년’
관리자(2010-11-04 14:32:26)
장미영·전흥남의‘꿈꾸는 노년’
노년의 일과 사랑 - 홍상화의「동백꽃」과「황혼」의 경우 -
- 전흥남 한려대학교 교수
홍상화는 노년의 삶과 사랑을 모티프로 한 노년소설에 지속적인 관심을기울이며 창작을 한 작가다. 홍상화의 소설 중에서 노년소설에 해당하는작품으로는「동백꽃」과「황혼」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그의 노년소설의 압권에 해당하는 작품이기도한 만큼 여기서 일별(一瞥)해 보려고 한다.
노년의 열정과 그 아름다움
홍상화의「동백꽃」은 노년기 재혼 문제를 작품의 중요모티프로 해서 서사를 이끌어 간다. 폐암 말기로 죽음을목전에 둔 68세 성 교수는상처하고 홀로 지내다 이혼의 상처를 안고 뒤늦게 노년에 만난 아내를 진심으로 사랑한다. 성 교수 앞으로 55평짜리 아파트에서 약 180여 만 원의 정도의 연금을 받으며 비교적 넉넉한 생활을 한다. 두 아들과 딸의 형편도 곤궁하지는않은 편이다. 자식들 내외는 새어머니가 아픈 시어머니를 극진하게 보살펴 왔을 뿐 아니라 아버지를 진심으로 사랑하기에 존경하고 아껴준다. 특히 성 교수는 자신이 죽은 뒤 홀로남게 될 아내를 생각하며 안타까운 마음을 가짐과 동시에 자식들에게도 변함없이 친어머니처럼 대해 줄 것으로 유언으로남긴다. 성 교수는 죽으면서 유언으로 자신의 사후 모든 재산의 권리 유지 및 사용권을 아내에게 준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을 뿐 아니라 아내의 사망 시에는 그동안 쓰고 남은 부동산 및 자신의 지분에 해당하는 것을 종교 단체에 기부했으면 하는 부탁을 한다. 자신의 시신도 대학 병원에 기증할 것을 유언으로 남긴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자식들은 장례식 날 태도가 돌변하여 아파트 가압류하고 둘째 아들은 유언장을 바닥에 팽개친다. 사위 역시 이러한 유서 내용에 대해빈정대는 투로 말한다.참! 아버님, 해도 해도 너무하십니다! 살아 생전에 그렇게 유별하시더니 사후에도 시신 기증이다 뭐다 그게 다 뭡니까? 아파트명의 이전도 우리와 의논 한 번 없이 하시더니, 이제 와서 어떻게이런 유언을 우리에게 남기실 수 있습니까!”1)자식들이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지 않을 뿐 아니라 아파트를 가압류 하는 사태를 접하자 아내는 장례식이 어느 정도마무리 될 즈음 아파트 권리증과 인감도장이 찍힌 권리 위임장을 내 놓으며 자신이 낳은 아들이 모시겠다는 제의마저 물리치고 홀로 여행길에 나선다. 홀로 가는 여행은 남편이 생전에 품은 생각을 실천하면서 봉사하는 삶을 실천하며 살기위함이다.아들이 이 여사의 가방을 들었다. 이 여사는 아들이 든 가방을빼앗아 들었다.“엄마가 하고 싶은 대로 그냥 내버려 둬. 내가 꼭 하고 싶은 것이 있어.”“미국에서 승순이도 어머니 뵈러 귀국하겠대요.”“나를 그냥 내버려둬. 나는 이제 사람이 무서워졌어.”이 여사는 아들에게 등을 보이며 마을버스 정류장을 향해 걸어갔다. 걸어가면서 이 여사는 자신이 이제는 무서워지지 않는 사람들, 자신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가고 있다고 확신했다. 그곳에는, 생의 마지막 단계에서, 그들이 겪는 육체적 고통 때문에 과거에 생이 주었던 모든 기쁨을 망각하게 되고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잔인한 고통을 주는 악역을 함으로써, 애초에 자신이 세상에태어난 것조차 후회하면서 인생을 마감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이 여사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들이 자신의 도움을 가장필요로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고딕표시-인용자, 76쪽)2)「동백꽃」의 결말부분이다. 재혼의 상처를 안고 한 재혼이었지만 행복도 잠시 남편을 잃은 뒤 맞게 되는 마음의 상처를 되짚어주고 있다. 재혼을 해서 가정을 형성했더라도 상대방 배우자가 죽음으로써 가족으로서의 삶을 지속할 수 없어 그 집을 나와야하는 경우를 잘 묘사하고 있다.이 작품에서는 노인의 재혼이 재산 분할의 문제로 인해 간단하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저물어 가는 인생의 여정을 함께한새어머니의 남은 삶에 대하여 자녀들은 관심이 없다. 오직 관심을 갖는 것은 재산 문제이다. 아버지가 살아 있을 때는 꺼려하던자녀들이 사후에는 재산을 새어머니에게 주지 않으려고 파렴치한 행동을 당연시하는 세태를 비판하고 있다. 동시에 새어머니의 말년의 선택도 우리에게 시사해 주는 바가 크다. 노년의 삶을 생의 마감을 앞둔 사람들 곁에서 봉사하는 삶을 통해 남편의유지를 받들고 자신의 삶에서도 의미를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이런 점에서 이 소설은 자식들이 홀로 남은 아버지를 돌보기 어려워서 재혼을 권했지만, 막상 사후에는 새어머니와 재산 문제로 갈등을 일으킨다는 일반적 편견을 보여주면서도 마음먹기 따라서는 사후의 양태가 얼마든지 상식적이고 아름다울 수 있음을보여주고 있다.
노년의 쓸쓸함
한편, 홍상화의「황혼」의 경우도 노년소설의 관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황혼」은 뼈대 있는 집안 출신으로 품위를 지키며 살아가다 말년에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되는 부부의 이야기를 남편의 시각에서 그리고 있다.은행지점장 출신이기도 한 성환(남편)은 직장에 퇴직하면서 여러 가지 씁쓸한 경험을 많이 하는 요즈음이다. 동년배 친구들을 만나도 자신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더욱이 퇴직금을 아들의 사업 밑천으로 대주었다가 아들이 실패하자 아들 며느리 손주를 불러들여 아파트에 같이살다 보니 여러 가지로 신경이 쓰인다. 자신의 아파트임에도 불구하고 거꾸로 아들 부부에게 눈치를 보여 야간 경비원으로라도 취직해야 할 형편에 놓여있다. 야간 경비원에게는 건물주로부터 서민아파트를 무료로 빌려준다며 노골적으로 나오는 아들 내외에게 40평대 아파트를 내주고자 한다. 자존심이 센 아내에게 그 마음을 털어놓기가 힘들다. 그러나 아내는 모든 것을 알아채고 받아들이며 가정 형편을 위해 파출부 일을 나가겠다며 남편의 자존심을 달래준다.“왜 무슨 할 얘기가 있어?”성환씨가 어둠 속에서 말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아내가 손으로 더듬어 그의 손을 꼭 잡았다. 과거 집안에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남편의 이해를 구할 때만 하는 아내의 행동이었다.“저---저---오늘부터 옆 동네 빌라에 가서 일 시작했어요.”“무슨 일인데?”“그 집에 가서 청소도 해주고, 음식도 만들어주고 하는 그런 일이에요.”“뭐야?”성환씨는 침대에서 벌떡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아내가 누워 있는 곳으로 시선을 보냈다. -중략- 성환 씨는 문득 아들이 제안한 야간 경비직을 자신이 맡기를 두려워할까봐 아내가 먼저 파출부 일을 맡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건강한 늙은이가 집에 가만히 있으면 뭐 해요. 몸을 움직여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어요.”어둠 속에서 아내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나도 다음 주부터 야간 경비직을 하기로 했어.”성환 씨가 천장 쪽에 시선을 둔 채 말했다.“잘 생각 했어요. 건강할 때는 무슨 일이라도 해야 건강에 더 좋대요.”아내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정적이 찾아왔다. (고딕-인용자, 133쪽)“건강한 늙은이가 집에 가만히 있으면 뭐 해요. 몸을 움직여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어요”라는 아내의 시각 역시 어쩔 수 없는현실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열린 마음과 열린 사고에서 가능한 것이다. 아내는 어떠한가. 능바우 여인으로서 자존심얼마나 세던가. 하지만 이제 노년의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서 남편의 마음을 배려하는 부부애로 위안을 삼는다. 성환 씨의 부부의 애기는 일반적인 경우로 볼 만큼 우리 사회의 도처에 편재되어 있다. 노년소설의 모티프로는 흔히 등장할수 있는 소재다. 그런 흔한 소재를 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 역시「동백꽃」과 더불어 노년의 삶에 대해서 적지 않은 시사점을 제공해 주고 있을 뿐 아니라 홍상화 노년소설의 깊이와 수준을 가늠하게 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