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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 |
[내인생의멘토] 시의 길에서 만난 인연
관리자(2010-11-04 14:32:16)
시의 길에서 만난 인연 그래서 나는 쓴다 - 복효근 시인, 교사 초등학교에 이어 중학교를 다니는 동안 내내 그림만 그려왔던 나는 외진 농촌마을을 벗어나 전주라는 대처(?)로 진학을 하게 되면, 말로만 듣던 전시회에 가서 많은 그림도 접하고 마음껏 그림을 그리게 될 줄 알았다. 화가가 되겠다는 막연한 꿈을 현실로 펼치기엔 그러나 운명이 거들어주지 않았다. 시 속으로 걷다 가난한 부모님 덕에 그 역시나 가난한 이모님댁에 잠깐 얹혀 지내기도 하고 그것도 사정이여의치 않아 독서실에서 새우잠을 자기도 하고여기저기 친척집을 전전하며 학업을 이어가고있었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생각도 못했다.인문계 고등학교라서 더욱 예능 쪽에 관심을 두지 않기도 하였거니와 미술부에서 활동한다 해도 당장 물감 하나, 종이 한 장 살 돈이 없는 나는 그림 쪽에 뜻을 접어야 했다. 워낙 놀기만 했던지라 공부도 크게 관심이 없어 시간이 날 때면 도서실을 찾아 학과와는 거리가 먼 책만 뒤적거리곤 했다. 그 어떤 정신적이고 정서적인허기가 나를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도서실 폐쇄식 서가 한 켠엔 폐기용 도서를쌓아놓았는데 그 책 더미 속에서 어느 날 우연히 얇은 시집 한 권을 발견한다. 여러 시인들의시를 한 군데 모아놓은 엔쏠로지였는데 찬찬이읽다가 어떤 시 작품에 눈이 오래 머물렀다. 허영자 시인의 시였다. 흐르는 바람으로 가락을 빚는 그 사람 아 나는 얼마나를 그 창조의 가슴과 손으로 하늘에 사무치는 주문이고 싶으랴 봄날 아침 문을 여는 꽃 죄 없이 웃는 영혼이고 싶으랴 - 허영자「피리」전문 그림에 두었던 뜻을 접고 지향점을 잃고 있던 나에게 이 시는 전광석화처럼 내 가슴을 스치며 내 삶의 지침을 돌려놓았다. 음악(피리)을 두고 한말이지만 미술도 마찬가지일 것이며 시라고 해서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바람으로 가락을 빚어내는”일처럼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이고,그게 하늘에 사무치는 주문이라면 굳이 그림(미술)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시를 쓰자! 피리 연주자가 피리소리로 하늘에 사무치고 죄 없는 영혼을 꽃과 같이 피울 수 있듯이 시로써도 내 영혼을 꽃 피울 수 있겠다. 시를 쓰자. 어렴풋하지만 시인의 꿈을 처음 꾸게 한 사건이지 싶다. 물론 뒷날 다시 화실에 나가 데생을 하고 소설도 써보기도 했지만 그것들은 내 시의 내용과 형식을 공고하게 해주는 그 이상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오로지 시에 대한 열망이 그것들보다 컸던 탓이었다.뒷날 허영자 시인을 사석에서 뵐 기회가 있어그런 말씀을 드렸더니 그 시가 실린 그 시집을기억하시며 덕담을 해주셨다. 그 후로 허영자시인의 시를 깊이 있게 접했다거나 그 분에게더 많은 것을 배우고 감화를 받은 것은 아니다.그 후로 몇 번 멀리서 뵐 수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다. 내 삶의물길을 바꾸어 놓기에는 이 시 한 편으로 족했다. 장강의 도도한 흐름도 한 방울의 빗물에서시작하지 않던가.그 이후에도 시인이 되겠다는 의지를 불어넣어준 사건이 물론 없지 않았다. 그러나 이 짤막한 시편은 나로 하여금 시인으로 살겠다는 의지를 갖게 한 것 말고도 내가 쓰는 시가 지녀야 할참 모습에 대해 꾸준히 궁구하게 했다는 점에서중요하다. 나의 삶과 예술을 추동해준‘멘토’로여기에 소개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시는“하늘에 사무치”는 그 어떤 것이어야 하며, “죄 없이 웃는 영혼”을 꿈꾸는 작업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짐승이 태어날 때 가장 먼저 마주친 것을어버이로 여긴다는 각인설이 있듯이 이 시는 나에게 시의 원형을 각인시켜 주지 않았나 싶다.시단에서 활동을 하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부나비처럼 시인의 허명을 좇고 또 많은 시인들이이 같잖은 시인의 이름으로 대단한 벼슬인 양허세를 부리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럴 때마다 이「피리」의 가르침을 떠올리며 내 자세를 가다듬었다. 그 때 그렇게 생각을 규모 있게 했을까 싶기도 하지만 어쨌든 시가 나를 구원하리라는 생각을 처음 했던 것은 분명하다. 행동의 가르침을 배워 그러나 열망만 가지고는 안 되는 일이 세상일이다. 그 열망의 불길이 사그러들지 않도록 꾸준히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고 연료를 공급해줘야 하는데, 대학 시절에 가르침을 주신 은사님이 그 일을 해주셨다. 지금은 내 출신 대학으로부터 자리를 옮겨 서울대에서 가르침을 베풀고 계시는 우한용교수님이 그 분이다. 소설론을 전공하신 분이지만 소설과 함께 시도 쓰고계셨다. 뒷날 몇 권의 소설집과 함께 시집을 내기도 했다.군대를 제대하고 대학에 복학했을 때 그 분의 연구실에서 잔심부름을해드리면서 가까이서 배우는 기회가 주어졌다. 문학에 대한 열망을 가진내가 열악한 현실에 주저앉지 않도록 용기를 불어넣어 주고 대화의 상대가 되어주셨다. 무엇보다, 당신이 어려운 성장 과정을 겪어 오셨던 분이라 내가 상처 받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를 해주셨다. 아직 문학에 대해서아무것도 모르고 다만 좌충우돌 객기만 가득했을 때인데도 한 번도 무시한 적 없이 진지하게 살피고 작품의 꼴을 갖추도록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다. 당신도 창작한 작품을 내보이고 제자와 동등한 입장에서 조언을 청취하고 고치는 겸손을 보이기도 하셨다. 함께 산행을 하고 술을 마시고 여러 문인을 만나면서 내 삶의 폭을 확장시켜주셨다. 뒷날 내가 교사로 살아오면서 때로 그 분의 나에 대한 배려를 생각하면서 내 자세를 가다듬을때가 많다.당신은 참 부지런하신 분이셨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그 분의 말씀가운데 가장 귀에 박히도록 많이 들었던 한 말씀이 언제나 나를 깨운다.적당히 주저앉고 싶을 때, 가파른 세상살이를 핑계로 게을러지고 싶을 때,자주 뵙지는 못해도 항상 곁에서 그렇게 말씀을 하시는 것 같다.“ 부지런히 써. 쓰지 않으면 시인이 아니야.”“하늘에 사무치”긴 아직 멀었어도, 그렇기 때문에 오늘도 나는“부지런히”쓴다. 복효근 1991년 계간 시전문지 <시와 시학>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1995년 편운문학상 신인상, 2000년 시와시학젊은시인상을수상했으며첫시집『당신이슬플때나는사랑한다』이후『, 버마재비사랑』『, 새에대한반성문』『, 누우떼가강을건너는법』『, 목련꽃브라자』등과시선집『어느대나무의고백』등을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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