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1 |
[문화현장] 초록시민강좌 제주올레이사장 서명숙
관리자(2010-11-04 14:30:22)
초록시민강좌 제주올레이사장 서명숙<올레길, 느림의 철학과 발상의 전환>
(10월 7일) 전주시평생학습센터
길에서 얻은 삶의 희망
제주올레는 온전히‘걷는 자’를 위한 길이다. 이곳에는 곱게 포장된 콘크리트도, 아스팔트길도 없다. 다만 한 사람이 지날 갈 수 있는 좁지만 아늑한 흙길뿐이다. 여행객들은 제주올레의 호젓한 길섶을 따라 걸으며, 새로운 제주의 속살을 발견한다.2007년 제주올레가 처음 만들어졌을 당시, 누구도 제주올레의 성공을 예상하지 못했다. 혹자는‘쓸데없는 일’이라 비아냥거렸다. 그러나 4년이흐른 지금 제주올레는‘걷기열풍’의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전국 각지에 제주올레를 본 따 만든 각종‘길’이 생겼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올레길에 빠져들면서‘올레꾼 올레바이러스 올레뽕 올레중독 올레폐인’과 같은 신조어가 생기고 있다. 또한 탐방객이 급증하며 지역경제 활성화는 물론제주올레는 제주도 여행의 랜드마크가 됐다.지난 10월 7일, 전북일보와 전북환경운동연합이 공동 주최한 <2010 초록시민강좌-자연이 내게로 왔다>에서 제주올레 열풍을 이끌어낸 서명숙이사장(사)제주올레)을 만났다.
속도에 중독된 나라
그의 이력은 화려하다. 시사주간지「시사저널」최초의 여성편집장이자 인터넷 언론「오마이뉴스」의 편집국장. 그는 23년의 기자생활 동안 남부럽지 않은 인생을 살았다.“중학교 때부터 기자를 꿈꾸고, 언론사에 들어간 이후 각박한 도시에서 뒤처지지 않고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치다 보니 편집장도 됐어요. 당시 제 별명이‘왕뚜껑(뚜껑이 잘 열린다고 해서), 마녀, 명예남자(남자보다 더 터프다고 해서)’이었어요. 완벽주의에 일중독이었거든요.”하지만 매일같이 반복되는 과도한 업무와 경쟁은 점점 그를 지치게 했다.“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몸은 기계처럼 망가지고, 마음은 춥고 쓸쓸했어요. 그동안 일과 속도에 중독돼 내몸을 돌보지 않아 생긴 결과죠.”결국 그는 오랜 세월 몸담았던「시사저널」을 그만뒀다.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다. 이후 그는 건강을 위해 재즈댄스, 요가, 수영, 단학등 다양한 운동을 배웠다. 그러나 몸치에 가까운그에게 맞는 운동은‘걷기’뿐이었다.“일할 때는 지하철과 회사의 거리가 200m 정도인데도, 그 거리를 택시타고 다녔어요. 회의에늦지 않기 위해 혹은 그 시간마저도일하기 위해‘걷기’를 포기했죠. 하지만일을 그만두고 보니 제게 가장 맞는 운동은‘걷기’더군요.”이때부터 시작된 그의‘걷기 사랑’은 멈출 줄 몰랐다. 그는매일 같이 전국의 걷기 좋은 길을 찾아 나섰다.“일을 그만두고 나서 처음으로 휴가를 즐기기 시작했죠.예전에는 특종을 잡지 못할까봐 제대로 쉬지도 못했죠. 이때처음으로 휴가다운 휴가를 즐겼어요.”그러나‘걷기’또한 쉬운 일은 아니었다.“예전에는 우리나라의 모든 길이 대동맥처럼 이어져 있었는데, 고속도로가 생기고 아파트가 들어서며 길이 끊겼어요.계속 걸을 수 있는 길도 없고, 그나마 길을 걷기 위해서는 자동차의 위협과 소음 등을 견뎌야 해요.”
느림의 미학과 여유를 찾아서
그러던 중 그는 우연히‘산티아고 순례길’을 접했다. 당시인터넷신문「오마이뉴스」의 편집국장을 맡고 있던 그는 또다시 사표를 냈다.“주위 사람들이 많이 말렸죠. 친정엄마한테도 혼나고요.콩나물 팔아가면서 대학 보내놨더니 회사 그만둔다고요. 물론 딸의 성공을 위해 희생한 엄마의 마음을 이해해요. 그런데 23년을 열심히 살아온 저 자신에게 상을 주고 싶었어요.이기심은 나쁘지만 자신을 아끼는‘나’도 필요하니까요.”그의 나이 쉰. 그는 그렇게 산티아고로 떠났다. 프랑스 남부의 국경 마을인 생장피데프로에서 시작해 피레네 산맥을넘어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까지 이어지는 길은 총 800m.그는 2006년 9월 10일을 시작으로 36일 동안 끊임없이 걷고 또 걸었다.“처음 2~3일은 심심한 느낌이더군요. 자동차 소리도, 핸드폰 소리도 들리지 않으니 불안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어느순간부터 그런 불편한 소리를 잊기 시작했어요. 대신에 저 자신과 끊임없는 대화를 나눴죠.”산티아고는 그에게‘성찰’과‘치유’의 방법을 선물했다.또한 그는 산티아고 길을 걸으며 수많은 인연을 만나기도했다. 그 중 가장 뜻 깊은 인연은 바로 영국인 친구‘헤니’다.“어느 날‘헤니’라는 친구를 만나 함께 점심을 먹는데 그친구가 그러더군요. ‘너희 나라는 너무 바쁘고 정신없고 경쟁적이라고’. 그러면서 저에게‘나는 고향에 돌아가면 나의길을 만들테니 너도 너희 나라에 가서 너의 길을 만들어보라’고 했어요. 우리가 지금 느낀 소중한 감정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느낄 수 있도록 만들자는 것이었죠.”
제주 올레의 탄생
산티아고에서 돌아온 그는 중앙일보에‘산티아고 순례길’에 관한 글을 연재하며‘제주의 길’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이듬해인 2007년 그는 지인들의 도움으로 서귀포시 말미오름에서 섭지코지에 이르는 제1코스를 개방했다. 이름하여‘제주 올레’다. 올레는 집 대문에서 마을길까지 이어지는 아주좁을 골목을 뜻하는 제주어다.“제주 사람이 태어나서 처음 걷는 곳은 올레예요. 저는 이제주 올레가 집에서 마을로, 개인에서 사회로, 제주에서 세계로 이어지는 길이라고 생각해요.”2007년 1코스 개방 이후 제주 올레는 총 21개 코스(정규코스 14개와 비정규 코스 5개)로 늘었고, 그 길이만 해도347km에 이른다.“처음 제가 제주도에 걷는 길을 만든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반대했어요. ‘몇십억씩 들여 관광지 조성해도 사람들이 안 찾아온다’며 꾸짖던 분들도 계셨고요. 하지만 이제는많은 분들이 좋아하세요. 어떤 분들은 자신의 집 앞에도 올레길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하기도 하고요.”이렇게 만들어진 올레길이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서 이사장의 남다른 원칙 때문이다. 속칭‘안티공구리’다. 기계를사용하지 않고 자연의 길을 만들기 위해서다. 때문에 올레길에는 화장실도 편의점도 없다. 길 안내 표지판도 파란색 화살표와 리본이 전부다.“요즘 보면 길 만들기에 무척 많은 비용을 투자해요. 그런데 이런 보여주기 식의 전시행정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돈을들여 길을 만들면, 자연이 주는 편안함을 느끼지 못하니까요.산티아고에는 1년에 600만 명의 여행객이 다녀가지만 노란화살표와 조개껍질, 그리고 알베르게라 불리는 순례자 전용숙소가 전부죠.”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올레길에 다녀갔다. 난생 처음 걸어본다며 꽃처럼 웃던 류머티스관절염환자, 죽으려고 왔다가올레길을 걷고 다시 살고 싶어졌다고 말하는 암환자, 이별여행을 왔다가 다시 결합한 커플 등 모두 각기 다른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들은 올레길을 걸으며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운 삶의 희망을 얻었다.“올레길에서 사람들은 관계를 다시 찾고 서로 마음을 열어요. 길 위에서 진정한 부부로 다시 만나고, 한 집에서 수십 년동안 나눈 이야기보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해요. 제주 올레길은 치유의 올레이자 관계의 올레, 사랑의 올레입니다.”앞으로도 그는 꾸준히 올레길을 개발할 계획이다. 제주의올레길이 하나의 길로 이어질 때까지…. 그의 느리지만 꾸준한 발걸음이 오늘도 희망을 퍼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