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1 |
[서평] 『거꾸로 보는 고대사』
관리자(2010-11-04 14:29:36)
『거꾸로 보는 고대사』
우리 고대사의 ‘불편한’진실
- 김병남 국가기록원 학예연구사
다큐멘터리 <불편한 진실(An Inconvenient Truth)>(2006)을 보았을 때의 더부룩하였던 감정이 책의 첫 장을 읽어 내려가면서 언뜻 떠오르는이유는 무얼까? 사실 갑자기 들어온 서평 청탁 전화에 청탁자의 이야기는 귓등으로 듣는 둥 마는 둥 어떻게 거부할까만을 생각하는 가운데 서평할 책의 저자가 박노자라고 하는 순간 앞뒤 재지 않고 덜컥 받아버린 후회가 한순간에 밀려들어 왔다. 박노자의 ??당신들의 대한민국??을 읽던때의 감흥과 정서적 충격을 생각하면, 나이를 떠나 그의 신간 저술에 대해 서평을 쓸 기회가 왔다는 것만으로도 묘한 흥분과 설렘을 갖게 하기에충분했다. 특히나 서평자의 전공과 같은 한국고대사와 관련된 책이라니…. 하지만 거기까지이다. 괜한 욕심이 화를 자초한다더니, 누구 말대로 서평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닌가 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속은 약속이니, 역사에 관심이 많은 일반인들이나 제목 때문에 책을 손에 잡은 독자들을 위해, 필자가 생각하는 이 책의 몇 가지 미덕에 대해 언급하는 것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위대했던 고대사’의 실제를 마주보기
이 책은 일관되게 우리의 기본 인식을 거부한다. 특히 고대와 관련된 우리의 자긍심을 조금은 잔인하게(?) 짓밟는다.가령‘고조선의 만주 지배’논리에는 우리도 언젠가는 만주를 되찾아 중국, 일본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열강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준 제국주의적 욕망 논리’(31쪽)가 투영되어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늘 평화의 민족임을 내세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남을 침략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애써 망각하려는 모순성을 지녔다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저자의말대로‘평화적이지만 옛날부터 광활한 영토와 강성 대군을과시한 우리 민족’이란 논리 자체가 매우 자가당착적인 담론이다. 평화를 사랑하는데, 남을 침략하지 않는 백의민족인데어떻게 광활한 영토를 침략하지 않고 차지하였을까? ‘영토’가‘국력’의 척도라는 노골적인‘만주 향수병’이 우리도 모르게 잠재되어 있었다.그렇기 때문에 우리는‘제국주의의 희생자’이면서도 언제나‘제국’이기를 바라는 이중성을 갈무리하고 있었다. 지도상에 나타나는 이미지의 힘 때문인지는 몰라도 일부의 저서에 만주(동북 지방), 내몽골은 물론 아예 연해주와 남부 시베리아의 상당 부분까지 아우르는 듯한‘대고구려’의 모습은,실제 여부를 떠나서 그 자체로서 감탄과 흥분을 자아내는 환상적인 과거였다. 하지만 그 제국의 크기가 크면 클수록 침략과 정복의 횟수와 정도도 비례한다는 지극히 평범한 사실을 우리는 애써 부인하고 있지 않는가?이 책의 미덕 중 하나는 이처럼 우리가 우리도 모르게 상식처럼 이해하고 믿어왔던 고대의 사실들이 한 꺼풀 벗기고 보면 전혀 다른 모습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점을 상기시킨다는것이다. 우리가 언제나 생각하는 노란 바나나는 껍질을 벗기는 순간 하얀 속살을 드러내듯이 말이다.
‘민족’을 버리고 융합을 선택한다는 것
필자가 보기에는“역사 쓰기란 현재적 선택의 문제다.…… 타자들과의 섞임, 어울림, 교류를 중심에 놓는 역사를저술함으로써 국경을 넘는 지역공동체 만들기를 지향할 수도있다”(55쪽)고 저자가 주장한 것이, 이 책의 가장 기본적인서술 동기이자 지향점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강조점을확인시키는 작업으로 필자는 과연 고대에 근대적인‘민족’개념이 있었는지에 대한 원론적인 의문을 제기하였다. 특히“실제 신라인들은 고구려나 백제를 동족으로 보지 않았다.세 나라는 각각 지배층 사이의 신화나 제사 체계는 물론 언어라든가 행정 체계 등이 서로 달랐던 데다가 누적된 적대감까지 가미돼, 동족이 아닌 경쟁세력일 뿐이었다”(102쪽)는 주장에 대해서는 십분 동감하는 바이다.필자도 이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고대의 한반도를 하나의민족사적인 관점으로 해석하기보다는‘다자간의 국제(International) 관계’라고 파악하고 접근하는 것이 맞다고본다. 그리고 그런 관계에서 통일 지향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파악해야 만이 신라의 통일이 갖는 의미가 제대로 조명될 것이다. 신라가 고구려나 백제를 같은 동족으로 보지 않았기에“수나라의 수치스런 패배를 복수하고 천하통일을 완수하기 위해 어차피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랴오둥을 복속시키기로 마음먹은 당나라 태종의 대외정책”(102쪽)에 아무 거리낌없이 편승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고구려에 대한 일련의 침략들이 성공을 거둔 뒤 당나라의 다음 목표는 백제의 옛땅을 차지하고 그 여세를 몰아 신라까지도 손에 넣는 것이었는데, 한반도 주민들의 저항에 부딪히자 그 목표를 비교적 쉽게 포기”하고 말았던 이유도, 당시 당나라를 둘러싼 국제정치 구도 상 한반도보다도 토번(티베트 제국)과의 갈등이 더급하고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117쪽)이라는 점은 시사하는바가 크다. 우리에게는 그토록 민족적 역량을 총동원한 대외항쟁이었지만 한 걸음 물러나 바라보면, 결코 우리의 위상이현재와 마찬가지로 고대에도 세계의 중심이거나 외교적으로중요한 현안이 아니었기에 살아남았다는 서글픈 현실과 맞닥트린다.따라서 이 책의 또 다른 미덕은 이제는 영구불변의 주체로서‘민족’(287쪽)이나, 외부를 상대로 군사적 투쟁을 벌인‘우리 민족’이란 고대사의 틀에서 벗어나 사람과 지식 그리고 기술의 교류, 중국·한반도·일본열도가 교차하는 다양한종족간의 교류, 문화와 사상의 흐름과 융합 등‘섞임, 어울림, 교류를 중심에 놓는 고대사’를 스스로 바라보고 해석할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는 점일 것이다.
‘역사의 복수’, 기록의 의미
아울러 저자는 가장 필요한 미덕에 대해서도 말한다. ‘기록을 남긴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이를 위해 저자는 통일신라 이후의 사서에서 가야 지역이 이렇다 할 독립적인 위치를 점하지 못하고, 신라의 부속품으로서 일차적 관심대상에서 사라져버린 결과가 우리에게 어떠한‘역사적 복수’를 가져왔는지를 냉철하게 말하고 있다.한반도 사학이 가야에 대해 무관심한 사이 일본의 최초 정사인『일본서기』에는 가야 관련 자료가 풍부하게 간직되었고, 이는 일찍부터 가야사 연구의 중요한 사료가 되었다. 따라서 대표적인 실학자인 한치윤이『해동역사』에서『일본서기』의 가야사 관계 기록을 장황하게 인용하고, 신공왕후의‘삼한 정벌’신화도 비판 없이 그대로 전재하는 계기로 만들었다. 또 김택영(1850~1927)의 근대적 국사 교과서인『역사집략』(1905)에서도 일본 군대가 대가야에 주둔하고 신공황후의‘삼한 정벌’기록에 대해‘설사 과장된 바 있다 해도 없던 일을 완전히 날조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164쪽)고 논하게끔 하였던 것이다. 이는 결국 기록을 남기지 않는다는것이 역사를 빼앗긴다는 의미임을 새삼 강조한 것이라 할수 있다. 그럼에도 작금의 현실은 다시 기록을 남기지 않으려 하니, 미래에 우리는 어떠한‘역사적 복수’에 또다시 직면할까?
김병남 전북대 사학과에서 한국고대사를 전공(문학박사)했다.한솔종이박물관 학예연구사를 거쳐 현재 국가기록원 학예연구사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