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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 |
[서평] 『설계자들』
관리자(2010-11-04 14:29:27)
『설계자들』 당신도 이미 ‘설계’되었을지 모른다 - 임희종 전주신흥고등학교 교사 소설의 생명은 인물 창조에 있다. 2006년 제12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캐비닛』에서 김언수는 현실에 있음직하지 않은 무수한‘심토머(symptomer)’를 창조했다면 그 후 4년 뒤『설계자들』에서는 물질만능의 현 시대에 수많은 의문사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설계자들과 암살자들, 즉 동종집단이면서 또한 대립적인 너구리영감과 한자, 래생과 미토를 창조했다. 설계자들, 이 용어는 이 작품에서 결코 건축 설계자를 의미하지 않는다. 창조과학회의 지적 설계나 캘빈의 예정론에 나오는 설계도 아니다. 돈을 받고 누군가의 죽음을 의뢰받아 이를 의뢰인의요구대로 전체적인 구성을 짜는 사람이 설계자이다. 그리고 다시 이 설계자들로부터 돈을 받고 이를 깔끔하게 처리하는 사람이 암살자이다. 이작품은 설계자와 암살자, 그리고 설계의 대상자나 설계를 어긴 자들이 하나씩 사라져가는 이야기로서 극적 긴장감이 지속되는 있을 법한 이야기이다. 개들의 도서관, 정의의 사도 래생 작품의 주인공 래생(來生), 그의 이름이 상징하는 뜻은 결말에 가서야 풀린다. 그는 쓰레기통에서 발견되어 너구리영감의‘개들의 도서관’에서 자란다. 래생은 그림책을 보며 혼자서 글을 깨우쳤고 모든 것을 도서관을 통해 배웠으므로 도서관은 래생의 부모이자 고향이었다. 그는 도서관에서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으며, 자신이 키우는 두 마리의 고양이에게까지‘독서대’와‘스텐드’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러나그는 너구리영감의 휘하에서 비정한 암살자로 일하는 청년이다.래생에게 암살의 지령을 내리는 푸주의 주인 너구리영감,유학파 보안회사 경영인 한자, 최상품 죽방멸치로 아부하는미나리박, 트래커보다는 그림자로 흥미를 찾는 정보 수집자 정안, 정체를 알 수 없었던 개들의 도서관의 사팔뜨기사서, 헨켈로 죽음을 마무리 짓는 또 다른 암살자 추, 강력한 암살자 이발사, 시체를 태우던 울보 털보 등이 주요인물이다. 그들은 겉으로 보면 전혀 암살자의 면모가 아니다.지극히 정상적이거나 모자라서 은밀히 본모습을 숨기고 있는 자들이다.아이러니하게도 독재 시절과 군부 시절이 끝나면서 암살사업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군부 시절의 암살 사업은 소수의 설계자들, 기관과 군대에서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암살자들, 그리고 경험 많고 신뢰할 만한 청부업자가 은밀하게 움직이는 비밀공작 같은 것이었다. 군인들은 대체로 설계자에게 관심이 없었다. 눈엣가시 같은 사람들을 온 가족이 보는가운데 지프차에 실어간 뒤, 남산 지하실에 가둬놓고 반병신이 될 때까지 두들겨서 돌려보내도 아무도 찍소리 못했던 무탈하고도 무지한 시절이었다. 그들에게 고급 설계자들이 필요할 리 없었다.암살 사업의 팽창을 가속화시킨 것은 자신의 정부를 도덕적으로 포장하고 싶은 새로운 권력의 등장 때문이었다. 도덕적 포장을 하고 싶은 이 권력이 맞닥뜨린 한 가지 문제는 예전 시대처럼 입바른 소리를 해대는 얄미운 놈들을 두들겨 패기 위해 남산 지하실을 이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그들은 국민과 언론의 시선으로부터, 기관의 복잡한 명령 체계와 집행 흔적으로부터, 그리고 훗날 자신들에게 닥칠 책임으로부터 도망가기 위해 청부업자와 거래를 시작했다. 이른바 암살의 아웃소싱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80~81쪽)이런 살인청부업의 중심에 너구리영감이 운영하는‘개들의 도서관’이 있다. 설계자들은 권력의 배후에서 움직이는고도의 지적 능력자들이다. 그들의 설계가 자객들에게 떨어지고, 자객들은 설계를 실행한다. 도서관에는 20만 권의장서가 가득하지만, 찾아오는 자도 없고 너구리 영감과 래생만 책을 좀 읽는 곳이며, 죽음을 설계하는 장소로 사용될뿐이다.그러나 민주화와 함께, 도서관은 설계와 암살의 중심부에서 밀려난다. 대신 기업형의 보안 회사로 성공리에 탈바꿈한한자의 회사가 새로운 세력으로 떠오른다. 한자는 도서관 출신으로, 유학파 경영인이다. 래생이 전직 장군의 암살 설계를 변동하면서, 한자의 회사와 너구리 영감의 도서관은 충돌하기 시작하고 이내 걷잡을 수 없는 갈등이 빚어진다. 이미래생은 아버지 같았던 훈련관 아저씨와, 설계 대상을 살려줬다가 설계 명단에 오른 추를 한자에게 잃었다. 가장 친한 친구인 정안마저 한자와 한자의 암살자인‘이발사’에게 살해당하자, 래생은 도서관과 별개로 움직인다. 설계의 세계 전복 기도 미토, 그는 동생 미사를 앉은뱅이로 만들었으며, 그녀의 부모를 죽인 청부업자 모두를 증오하는 자로 몇 명의 설계자를제거하는 것보다 근본적인 문제, 즉 설계 자체를 무력화하려는 원대한 기획을 한다. 그동안‘개들의 도서관’사서인 사팔뜨기는 미토의 끄나풀이었으며 미토와 이미 차근차근히 그들의 계획을 수행해 왔던 것이다. 설계자 강지경의 비서로서설계에 깊이 관여한 미토, 유일하게 내생의 모든 것을 속속들이 알며 자신이 사라질 때 하나뿐인 동생 미사까지 부탁하는 그녀를 내생은 내칠 수가 없다.미토의 계획대로 래생은 한자의 설계를 빼내기 위해 그의변호사를 납치하지만, 한자의 설계대로 고용한 이발사로부터 아저씨, 추, 정안을 차례로 잃은 래생은 이발사를 찾는다.그러나 이발사는 돌아가라고 말한다. 특히 개인적 원한이 없고 누구도 서로 죽이라는 설계가 없는데 왜 서로를 죽여야 하느냐는 것이 이발사의 항변이다. 그러나 냉정함에 약간의 의리와 인간미를 소유한 내생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물론 내생이 한자의 설계를 빼내고, 너구리 영감의 설계의 책을 다 얻게 되자 미토를 마취시킨 후 단독으로한자와 대결함으로써 결국 수포로 돌아가지만, 너구리영감의 설계의 책은 그대로 미토에게 남긴 것으로 볼 때 앞으로의진행될 사건은 독자들의 상상에 맡기고 있다.소설 속의 래생은 여공과의 짧았던 순수한 사랑이나 한자의 금고에서 탈취한 3억의 돈으로 밀항을 상상하는 대목에서는 암살자에서 벗어나 평범한 한 인간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갈등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미사에게 들려주는『의아한북극곰』이야기를 통해서 그는 이곳을 벗어날 수 없음을 예견케 한다. 그리고 실제 그는 그곳을 벗어나지 않았고 그의 방식대로 한자를 처리하고 죽어간다. 물론 작품의 구조면에서푸주의 왕으로 표현된 희수영감의 갑작스런 등장은 단 일회적 사건으로 다분히 작위적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전반적작품의 반전의 효과에 비하면 그리 큰 문제로 지적되지는 않을 듯하다.이 소설을 읽으며 지금의 우리를 그리고 우리 사회를 돌아본다. 어쩌면 우리 모두 이 설계자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또 다른 시각에서 보면 우리가 설계자이고 동시에 이 계획을소리 없이 수행하는 해결사들이 아닌가? 그 함의를 깊이 있게 통찰해 볼 일이다. 임희종 전주신흥고등학교 교사이자 도서관장이다. 전북대학교에서‘늘봄 전영택 소설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독서지도와 작은 도서관 운동에 관심을 갖고 활동하고 있다. <타락한 시대의 진실 찾기>, <변전과 화해의 길> 등의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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