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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8 | [신귀백의 영화엿보기]
사랑은 그 태도일 뿐! <그녀에게>
신귀백(2003-09-06 09:15:48)
당신은 들어만 줘도 됩니다. 언제나처럼 선택은 항상 당신에게 있으니까요. 당신이 사랑하는 메릴 스트립, 매력적인 여배우죠. 그녀가 나오는 영화들. 다 봤죠. 그런데, 말했던가요.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보다가 참을 수 없어 도중에 나왔던 기억을. 왜냐고요? 그 대답을 알모도바르 감독의 <그녀에게>서 찾습니다. 보셨는지요, 이 영화. 마르코는 애인과 헤어지고서 도저히 같은 침대에서 잘 수 없어서 소파에서 잤답니다. 그런 것 아닌가요? 편지는 말할 것 없고, 시디 한 장, 같이 보던 지는 해, 이런 것들로 개망초가 피고 져도 풀물처럼 지워지지 않는 것이 사랑 또 사랑의 디저트 아니던가요. 편지대신 일기를 쓸 때쯤, 소문나고 안부에 난처해지던 날도 후딱 가서 세월은 약이 됩디다. 어찌 '원나잇 스탠드'를 나만 모르겠습니까만 오랜 시간을 남편과 같이한 욕조와 침대에서 천연덕스럽게 사랑을 나누는 영화 속 여인을 나는 용서할 수 없었던 거죠. 듣고 있나요? 이 남자 마르코 어때요? 그는 여자 투우사 리디아를 취재하러 갔다가 그녀의 집에서 옛사랑이 생각나서 울죠. 이 울보는 무용을 보다가 또 '꾸꾸루 꾸구' 하는 노래를 듣다가 눈물을 흘리죠. 라깡 선생 말씀대로 그에게 사랑은 '단 하나'이기에 이미 지나간 옛사랑이라는 모순을 어쩌지 못해 우는 것이죠. 그는 투우사를 사랑하게 됩니다. 그의 사랑은 화염을 일으켜 서로에게 갑자기 매혹되는 브레이크 없는 그런 사랑이 아니죠. 사랑을 잊지 못해 사랑하게 된 이 사람은 '그녀'를 또 소의 뿔에 잃고 바람의 여행자로 세상을 떠돌지요. 이 울보와 연결되는 바보가 또 한 주인공이죠. 남자 간호사 베니그노는 잠만 자는 발레리나 알리샤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죠. 음악을, 춤을, 영화를 이야기해 줍니다. 그녀에게. 그녀는 교통사고로 사 년 째 깊은 잠을 자는 윤기나는 관엽성 식물이죠. 기적을 믿는 이 바보는 백설공주의 몸을 닦아주며 그 결핍을 대화로 채워가죠. 아무런 반응이 오지 않는 사랑이요, 미래를 보장받지 못할 사랑이란 걸 이 바보는 잘 알고 있죠. 아니 그는 평등한 주체라는 계약원리가 환상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현자이기에 죽은 몸이라도 사랑하는데, 눈물겹습니다. 여기 의미 있는 무성영화 한 편이 영화 속의 영화로 그가 그녀를 범(?)하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액자 속의 그림 같은 표현방식으로 에로스의 구멍을 열고 들어가는 상징적 방법을 보여주죠. 도덕의 한계 이전에 욕망의 한계에서부터 절망했던 그는 이브의 몸 속을 들어간 끝에 병원이라는 유토피아에서 유배되어 결국 감옥에 갇히죠. 성폭행 죄. 병원 사람은 그에게는 성이 없으리라 믿었던거죠. 약혼자도 없고 사련(邪戀)이 아닌데도 그의 사랑은 세상으로부터 '금지된 장난'이죠. 한 달에 한 번씩 이어지는 마술이 멎고 그녀의 젊은 몸은 새 생명을 갖게 됩니다. 결국 아이는 사산되지만 그녀는 기적처럼 깨어나게 되고. 이 스페인 감독은 투우사의 몸매도 금단추도, 거울에 비춰지는 발레리나의 몸도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꽹과리요 소리나는 구리쇠라고 말하는 거죠. 사랑은 그 태도일 뿐이지 그 결과물이 아니라고. 마치 전작 <내 어머니의 모든 것>에서처럼 말입니다. 사랑을, 사랑의 태도를, 사랑의 힘을 믿는 작가의 시선은 따뜻하지만 행복한 전망을 내어놓지는 않죠. 기억나요. 어린 날 엄마들이 라디오연속극을 들으며 고구맛순을 벗길 때, 아줌마들의 농담을 들으면서 바보처럼 가만히 나도 그 행복한 낙원에 있을 수 있었죠. 베니그노가 남근소유자임이 드러나자 권력에 의해 가차없이 그가 감옥으로 떠밀려 온 것처럼 나도 떠밀려 여기까지 온 거죠. 김종삼의 시처럼, 그가 살아온 기적은 그녀를 살린 기적으로 이어졌지만 그가 아갈 기적은 되지 못해 그는 거기서 젖은 삶을 말리지 못하고 자살을 하고 맙니다. 그들의 정치성의 잣대로 그의 윤리성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거죠. 어떤 페미니즘 선수가 이것은 강간을 미화하는 영화라고 한 말씀하시던데 이는 투우를 단지 동물학대라고 말하는 사람이 닐까 해요. 당신의 하이힐과 눈높이가 버거웠지만 봄날 피어나는 이파리마다 이름 붙여주고 싶을 때가 있었죠. 라디오헤드가 부른 '클립'의 가사가 내 맘 같은 날들도 이제는 살같이 흘러 귀엽게도 내 머리 위에 서리가 내리는 오늘, 그 말 그대로 옮겨 다른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말한 의 입으로 오랜만에 당신에게 이야기를 걸었습니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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