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4 |
[테마기획] 장애인, 예술을 만나다 6
관리자(2010-04-01 18:55:14)
달리면 보인다, 희망의 빛이
- 송경태 전북시각장애인도서관 관장
장애인은 태어났을 때부터 장애를 가진 선천적 장애인과 사고 등으로 나중에 장애를 갖게 된 후천적 장애인으로 나뉜다. 전주시의원이자 전북장애인신문사 사장, 전북시각장애인도서관의 송경태 관장은 후천적 장애인이다. 젊은 시절, 불의의 사고로 시력을 잃은 그는 장애에 굴복하지 않고세계 4대 극한 마라톤 그랜드 슬램 달성, 시각장애인도서관 설립, 그리고 전주시의원에 이르기까지 화려한(?) 경력을 갖고 있다. 장애 없는 세상을 꿈꾸는 희망제조기 송경태 관장. 빛보다 눈부신 그의 희망마라톤을 만났다.
죽음과 삶의 갈림길에서
송 관장이 처음부터 빛을 보지 못했던 것은 아니다. 1982년의 무더운 7월,당시 군 복무 중이었던 그는 수류탄 폭발사고를 당했다. 그때 날아든 날카로운파편들이 그의 눈을 덮친 것. 이후 6개월 동안 세 번의 수술을 받았지만 완전히 시력을 잃었다. 1급 시각장애인. 스물 둘, 꿈 많던 젊은 청년이 감당하기에는 힘겨운 고통이었다. 결국 그는 반년이 넘는 병원생활을 마치고 고향 전주에내려왔다.“옆집 할머니가 그러더군요. 평생 집에서 해주는 밥이나 먹고 방 안에 갇혀살아야 할 팔자라고요. 지팡이를 짚고 구걸하며 다니는 눈먼 봉사와 다를 바없는 신세가 됐다는 생각에 견딜 수 없었지요”. 그의 인생에서 가장 지루하고고통스러웠던 날이었다. 살아갈 날에 대한 막막함 보다 더 견딜 수 없었던 부모님과 형제들의 아픔. 그는 여섯 차례 자살을 시도했다.다행히도그의자살소동은모두미수에그쳤다.“ 하루는자살소동을들은근처 성당의 신부님이 찾아와 자살을 주문처럼 계속 읊으라고 했지요. 죽으려는사람에게 자살이란 말을 주문처럼 읊으라니 처음엔 화가 났습니다”. 그는“그런데 계속 읊다보니 자살이‘살자’로 들리더라”고 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사람
‘자살’에서‘살자’로 삶의 방향을 바꾸니 세 가지 소원이 생겼다. 결혼과대학입학 그리고 컴퓨터 사용하기. 보통 사람에게는 평범한 일이지만 그에게는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이 없었다. 하지만 그에게 불가능은 없다. 삶에 대한애절함은 그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본래 공학도였던 그는 시각장애인을위한 컴퓨터 시스템을 마련하기 위해 국내 최초로 시각장애인용 음성변환프로그램을 개발, 2001년국내 최초로 인터넷 음성 도서관을 개설했다. 사촌이모가 운영하는 백화점 매장에서 지금의 아내를만나 결혼에도 성공, 전북맹인협회 정지훈 선생의 도움으로 한일장신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도 입학했다.대학입학은 성공했지만 대학생활은 그에게 또 다른 난관이었다. 학교에는 장애인을 위한 학습지원프로그램이나 편의 시설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특히 점자로 된 전공도서는 전무했다. “시험을보고 리포트를 제출하기 위해서는 전공도서를 공부해야 하는데 방법이 없더군요. 그래서 한 번은전공도서를 열 장씩 찢어 학우들에게 나눠줬어요. 녹음해 달라고요. 그런데 하루 만에 녹음테이프를 보내주는 학우도 있었지만 일년이 지나도록 감감무소식인 학우도 있었지요”.
장애인의 문화예술권리를 말하다
그는 대학시절 우리나라의 낙후된 특수도서 제작 현황에 실망했던 기억을 떠올려 전라북도 최초의 특수도서관인‘전북시각장애인도서관’설립을 꿈꾼다. 당시만 해도 전북에는 장애인을 위한 변변한 문화시설 하나 마련돼 있지 않은 상황이었다.2000년 7월, 전라북도 최초의 시각장애인도서관인‘전북시각장애인도서관’이 개관했다. 그의오랜 소망이 결실을 맺은 것. 현재 이곳에는 약 5만여 권의 점자도서와 녹음도서가 소장돼 있을 뿐만 아니라 점자·녹음도서실, 점자출력실, 녹음스튜디오, 녹음복사실, 컴퓨터교육실 등이 마련돼있다. 또한 이곳은 단순한 도서관이 아닌 시각 장애인의 문화시설로도 이용되고 있는 중. ‘사랑의카세트녹음기보내기운동’,‘ 독후감, 재활치료현상공모’,‘ 시각장애연주자와함께하는음악공연’등은 형편이 어려운 이유로 문화활동을 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그의 특별한배려다. 외출이 불편한 시각장애인들 위해 도서열람실을 없애고 특수도서를 직접 배달해주고 있다.송 관장은“장애인은 장애 종류에 따라 각각의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전문화된 문화예술적 접근이 필요하다”며“소외계층을 위한 문화교육이 전문화 돼야 장애인도 문화예술분야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이곳은 전주시에서 도서 구입비와 점자용지 구입비를 지원해주고 있지만 대부분 사비로 운영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연간 30만 명이 넘는 시각장애인들이 이용하는국내 최대 규모의 한국점자도서관조차도 민간이 운영하고 있다. 미국이나 일본, 영국 등과 같은 나라들이 국가에서 직접 시각장애인도서관을 운영하는 것과는 비교되는 대목이다. 10년을 이어온‘전북시각장애인도서관’이 지속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정부와 시의 관심이 절실한 상태다.그나마 그가 10년 동안 도서관을 운영할 수 있었던 데에는 전문자원봉사자의 도움이컸다. 시각장애인도서관의 낭독과 점역봉사는 몸으로 품앗이 하는 일반봉사와 달리 기술과 지식이 필요한 부분이다. 전북에서는 전문봉사자 양성기관이 없어‘전북시각장애인도서관’에서 전문봉사자를 양성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그동안 학생 주부 간호사 아나운서 등등 다양한 이들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송 관장의 눈물겨운 의지와 자원봉사자의 땀방울이 함께‘전북시각장애인도서관’을 만들어온 것.
빛보다 눈부신 희망
송 관장에게 새로운 소원 세 가지가 생겼다. 북극마라톤 도전과 희망문화관 만들기, 그리고 평평운동이다. “전라북도에 장애인을 위한 문화공간이 거의 없습니다. 장애인들이문화예술을 연습하고 즐길만한 공간이 턱없이 부족한 셈이죠”. 그는“앞으로 설립할‘희망모을’은 장애인들을 위한 문화시설”이라고 설명했다. 혹자는 장애인의 문화향유권에대해‘배부른 소리’라고 얘기한다. 먹고 사는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 장애인에게 문화예술은 한낱 사치라는 것. 하지만 장애인 역시 비장애인과 동등이 문화예술을 누릴 권리가보장돼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송 관장에게는 늘‘최초’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장애인 최초 세계 4대 극한 마라톤 그랜드슬램 달성, 전북 최초의 시각장애인도서관 설립, 최초의 음성변화프로그램 개발까지. 이제 그가 새로운 마라톤을 준비하고 있다. 다시 한 번‘최초’를 향해 도전하는 희망마라토너 송경태. 장애를 딛고 희망을 향해 달려가는 그의 질주는 빛보다 눈부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