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4 |
[테마기획] 장애인, 예술을 만나다 5
관리자(2010-04-01 18:55:05)
비켜가면 벽이 되고, 다가가면 하나 된다
-전북작은자의장애인자립생활센터와 함께한 연극 <화려한 외출>-
- 박규현 극작가
다시 하라고 하면 엄두도 못낼 테지만, 두해 전 늦가을에 몸이 아주 많이 불편한 분들과 즐겁게 연극작업을 한 적이 있다. 연극이란‘배우가 멋들어진 대사로, 혼신의 몸짓으로, 그럴싸한 무대로, 탄탄한 대본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라면, 우리 연극 <화려한 외출>은 그 3가지 요소 중 아무것도 갖추어지지 못했다. 몸이 불편하다는 완곡한 표현을 썼지만 사실상 혼자서는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는 분들과의 작업을 한 셈이다. 중증장애인, 쉽게 말하면 전동휠체어를 손으로 조작해서 움직이시는 분들. 심지어는 엄지발가락 하나로도 능숙하게 조종을 하시는 분들도 있다.
장애인이 말하는 장애인
이제야 구체적으로 우리 연극의 라인업이 머릿속에 그려졌을 것이다. 과연 어떻게 이분들과 연극을 만들었는지, 그게 가능한 일인지 의문이 생길 테지만 분명 우린 만들었다.정확하게 말하면 그들이 만들었다. 그리고 앞으로는 그들이그들의 이야기를 그들 스스로 만들어낼 것이다. 왜냐하면 처음 이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두 가지 목표를 가지고 시작했다. 하나는 완성된 형태의 공연을 만드는 것이고 둘째는 외부 조력자가 없더라도 자체 제작이 가능하게끔 제작 기술을전수하는 것이었다.사실 목표는 세웠지만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이 크게 기대는 안했으리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내 입장에서는 부담 아닌부담이 됐었다. 이런 형태의 연극은 해본적도 없고, 무엇보다도 장애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이런 내 속마음을 알아챘는지 이 프로젝트의 담당자가 결과를 기대하지만 너무 얽매이지 말고 편안하게 만들어가기를원했다. 내가 심각해지면 참여자들도 덩달아 마음에 돌덩이를 가지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얼마만큼의 마음의 짐을덜어내고 그들과 작업을 시작했다.첫 미팅에서 알게 되었는데 그들 중에 시인이 되는 게 꿈인 채지윤 작가가 있었다. 이번 연극의 대본도 그분께서 쓰신 작품이다. 내용을 간략하게 설명하면, 중증장애인들의 자립생활을 지원하기 위한 상담일을 맡고 있는 주인공은 자립생활을 하기 위해 부모님을 설득해서 조그만 아파트를 갖게된다. 진정한 의미의 자립생활을 하게 된 주인공은 앞으로닥쳐올 어려움들이 걱정도 되지만, 한 인간으로서 누리게 될더 많은 자유와 권리를 생각하며 부푼 꿈에 젖어 있다.하지만 첫발을 내딛으면서부터 난관에 부딪힌다. 아파트벽지를 새로 꾸미기 위해 찾아온 도배업자는 주인공이 혼자사는데다가 장애를 가진 것을 보고 도배 일을 대충대충 처리하려 한다. 주인공이 아무리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만 도배업자는 장삿속만 챙기려 한다. 때마침 주인공의 활동보조인이나타나 위기를 넘기게 되는데….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나가다
중증장애인으로서 자립생활을 해나가는 과정을 중심으로이야기가 구성되었다. 딱히 누구 한사람만의 이야기라고 할수 없는 게 참여자 대부분이 비슷한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조금만 확대해석하면 각자 자기의 이야기라고 해도 무방할정도였다. 대본에 나오진 않지만 구성과정에 나온 이야기들을 들어보면 이 정도로 그들이 저차원적인 삶을 살았었나 하고 짐작할 뿐이었다.진정한 의미(연극에서)의 자립을 위해서는 그들 스스로 연극을 제작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야 했다. 언제까지 아웃소싱에 의존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무엇보다도 연극제작 과정이 간단하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필수적인 요소만 알면 나머지는 얼마든지 수정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를 그들이 직접 쓰고 연기할 수 있도록 했다. 각자 직접 겪은 일, 다른 사람이 겪은 일, 신문에서 본 일, 누구에게 들은일 등등, 무수히 많은 이야기가 오갔고, 상황을 만들어냈고,또 그것을 직접 시연해보고 하는 일들이 무작위로 이루어졌다. 그렇게 한줄한줄 대본은 만들어졌고, 한 장면 한 장면 작품은 만들어졌다. 연기 이외의 기술적인 부분은 누구라도 할수 있는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 일이어서 내가 맡았다. 참고로 연극에 쓰인 OST는 엄지발가락으로 휠체어를 조종하시는 권이 형님이 선곡하시고, mp3 파일을 다음카페에 올려주셨고, 또 다음날 워드로 정리까지 해주셨다. 도대체 어떻게 작업을 하셨는지 상상도 안 된다.
거짓 없는 언어가 통하는 세상을 바라며
제작하기에 앞서 또 하나 중요한 고민은 그렇다면, 연극을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분위기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이었다. 여전히 진행 중인 그들의 삶을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할 것인가? 좀 더 냉정하게 현실을 바라볼것인가? 처음 그들과 합의하기를 나는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기를 원하며, 그렇게 작업방향을 끌고 가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그들도 역시 심각한 이야기를 하고 싶진 않다고 했다. 순수한 예술로서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겼다.결론은 그들의 이야기를 하되 최대한 감정이입을 걷어내는 연극을 만들기로 했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당당하게 살아가기를, 또 그렇게 살아가고 있음을 이야기했다. 연극을 들여다보면 그들에게도 멋을 부릴 줄 아는 센스가 있고, 사회구성원으로서 역할을 당당히 해내기 위한 각자의 일도 있고, 때론 세상의 따가운 시선에 맞서 똑 부러지게 자기주장을 내세우는 날카로운 논리도 있고, 무엇보다도 가슴 뛰고 한없이아름답고 소중한 사랑도 있다는 것을 어설프지만 진실된 연기로 보여주고 싶었다.연극에서 가장 중요한건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을 파헤치고, 인간을 고민하고, 인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그래서 우리의 풀리지 않는 물음에 다가가기 위함이다. 그들은그들의 언어로 거짓 없는 연기를 했다. 그들에게 그 무슨 가식이 있겠는가? 다만 생각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 몸이 버거울 뿐. 그들의 한마디 한마디는 햄릿의 그것과도 같은 무게로 다가왔고, 연습 내내 보여줬던 순수한 빛과 같은 모습은가을하늘 아래 곱고, 곱고, 곱기만 할 뿐이었다.마지막으로 연극을 통해서 변화된 점이 있다면 상투적인표현이지만 이 또한 사실이다.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조금 넓어진 느낌이고, 더불어서 연극을 통해서 내가 그들에게 바라는 점은 부족한 나를 통해 아주 조금 진일보한 그들의 연극에의 대한 애정과 성장치이다. 그 공연 후에 약간의시간이 지났을 즈음 그들이 어떤 단체로부터 공연섭외를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기뻤다. 그들이 또 공연할 수 있기를바라며 글을 마친다.
박규현 2003년에 창작극회에 입단, 현재까지 이곳의 단원으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