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3 |
122회 백제기행 - 2월 20일
관리자(2010-03-03 17:25:02)
권진규 전과 연극 <엄마들의 수다>
가슴 샘, 맑은 눈물 머금은 천재 조각가와 여섯명의 아줌마
-이화정 전북일보 기자
그는 진정 비운의 조각가였을까
조각가 권진규(1922∼1973). 사진 속의 그는 무표정했다. 서울덕수궁미술관에서열리는권진규전을보면서그가간직한황홀한폐허를생각했다.‘ 생은 공(空), 파멸.’그가 남긴 짧은 유서였다. 가슴 속 슬픈 샘 하나가 보였다.그는 정말 불행했을까. 나는 그가 비운의 천재 조각가로 불리는 것이 더 큰참혹함 같다. 권진규는 1973년 서울 동선동 작업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작품을 위해 목숨을 끊을 수도 있다는 말을 여러 번 한 것으로 전한다. 그러나극적죽음만으로는그를이해할수없다.“ 인간의아이는언젠가죽지만내가 만든 아이(작품)들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그가 남기고 간 말에서 세월의 자루를 메고 꿈꿔왔던 영원을 생각했다.
찰라 속으로 들어가다
그의 자소상(自塑像)을 보면 그가 얼마나 깊은 내면을 끌어내기 위해 고민했는지 느낄 수 있다. 무언가 바라보는 구도자의 고독한 눈빛. 그 속에서 나는 그의 죽음을, 그가 살아온 파랑 같은 날들을 봤다. 유난히 자소상이 많았다. 모델의 깊은 내면까지 들여다보고자 했던 그였기에 자신만한 모델을 찾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짐작만 할 뿐이다.지인을 모델로 한 흉상도 여러 점 된다. 친구로, 조수로,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다. 목 아래 부분은 단순하게 처리하면서 얼굴은 길고 마른 양감을 표현했다. 무심한 얼굴의 시선은 허공을 응시한다. 낮고 부드럽게 움직이는 고요,거기에 권진규가 있었다.<도모(1957년 作)>는 일본인 아내 이름을 딴 작품이다. 돌, 석고, 테라코타등 다양한 재료로 제작, 소박하면서도 간결한 아름다움이 살아있다. 동생 권경숙 씨는“도모와 살았을 때 오빠가 가장 행복해 보였다”고 말했다.<지원의 얼굴(1967년 作)>은 이미 널리 알려진 작품. 움푹 들어간 눈, 높은 콧대, 둥근 이마, 갸름한 얼굴형. 서구적인 두상(頭像)은 가르침을 전수받은 마리오 마리니가 추구했던 이상적 인물상이다. <영희(1964년 作)>, <선자(1966년 作)>, <춘엽니 비구니(1967년 作)> 등을 통해 많은 여성이 흉상을제작됐다.“여자를 멀리해라. 그러면 조각이 좋아지고 오랫동안 작업할 수 있다. 나는실패했다.”서울대와 덕성여대 교수로 재직할 당시 제자들에게 이 말을 자주했다고 한다.두상과 흉상이 차분하고 정적이었다면, 좌상, 입상은 가능한 많은 동세가표현됐다. 웅크리고 있는 좌상인 <휴(休)>에선 먼 길 돌고 돌아 마음이 누운 자리를 느낄 수 있었다. 고개를 돌려 사납게 노려보는 좌상. <싫어(1968년 作)>엔 마른 논처럼 쩍쩍 갈라진 마음의 격랑이 드러났다.권진규는 말과 새, 고양이 등 동물을 표현하는 데도 남달랐다. 구상, 추상의 형식에 구애받지 않았다. 특히 <말(1969년 作)>은 단연 역작으로 꼽힌다. 드로잉부터 환조, 부조에 이르기까지 두루 제작한 것을 보면 말에 대한남다른 애정이 있었던 것 같다.그의 작업은 테라코타와 건칠이 주를 이룬다. “돌도 썩고, 브론즈도 썩으나 테라코타는 잘 썩지 않습니다. 세계 최고 테라코타는 1만 년 전의 것이있지요. 작가로서 재미있다면 불장난에서 오는 우연성을 작품에서 기대할수 있다는 점과 브론즈 같이 결정적인 순간에 딴사람에게로 가는 게 없다는점입니다.”모든 작업이 자신의 손을 거쳐야만 하는 완벽주의의 면모가 드러난다.
사랑하는 것들을 그리워하는 방식
이번 전시는 일본 무사시노미술대학 조각과가 지난해 개교 80주년을 맞아 가장 위대한 예술성을 보여준 사람을 찾아나서는 과정에서 이뤄졌다. 이곳에 조각과를 세운 시미즈 다카시 교수를 연구하던 중 그의 제자였던 권진규가 발견되면서 30년 만에 그의 탁월한 예술세계가 부활됐다. 구로카와교수와 박형국 교수가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250명이 넘는 사람을 인터뷰하면서 노력한 결실이다. 그 결과 무사시노미술대학과 일본 도쿄국립근대미술관에서 <권진규 전>이 나란히 걸렸다. 권진규의 조각 작품 100점을비롯해 드로잉 40점과 석고틀 1점 등 그의 전 생애를 아우른 전시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그는 작품을 위해 스스로 고독을 택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아름다움을향한 허영과 욕망마저도 버리는 지독한 가난. 그는 구도자가 되어 온 몸을던져 이를 끌어안고 갔다.극화되거나 미화됐던 권진규에 대한 덧칠은 벗겨질 필요가 있다. 작품은오랜 침묵을 지키며 잔혹한 말들의 세월을 견뎠다. 그것이 권진규가 사랑하는 것들을 그리워하는 방식이다.
엄마들의 수다를 부탁해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
신경숙씨의 소설『엄마를 부탁해』첫 페이지에 리스트의이 말이 적혀 있다. 소설은 우리들 뒤에 빈껍데기가 되어 서있는 어머니, 그 가슴 아픈 사랑과 열정, 희생에 대한 세상모든 자식들의 원죄에 관한 이야기라면, ‘엄마들의 수다’는집안의 낡은 소파로 전락해버리고만 이 엄마들의 하소연, 시원한 속풀이다. 배우들의 맛있는 수다는 아줌마들의 속을 후련하게 긁어준다.“과자의 새 봉지를 뜯어 마지막까지 다 먹어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나.”“아이 키운다고 바빠 살도 안 빠져. 너무 바빠서 살이 빠질틈도 없다.”배우들의 거침없는 입담이 시종일관 긴장감 있게 진행된다. 캐나다에서 건너온 원작을 우리 입맛에 맞게 각색을 거쳤다. 배우들은 엄마를 비롯해 4명의 아이들까지 일인다역을 맡으며 무대를 바삐 오간다. 엄마들이 왜 그렇게 바쁜지고개가 끄덕여진다. 누가 이들을‘아줌마’로 만들었는가. 우리 모두가 유죄다. 왕의 일생보다 할 말이 더 많은 엄마들의하루를 들어줘야 할 책무가 있음을 느꼈다.나의 엄마는 약병을 달고 산다. 그것이‘화병(火’丙)’의 잔류물이라는 걸 철이 들고 나서야 알았다. 속절없이 늘어가는주름살과 뱃살을 바라보며 혼자 밥을 먹고 자식을 기다리며하루를 보낸다. ‘빈 둥지 증후군’을 앓으면서 불면으로 하얗게 밤을 지새우고, 확확 솟구쳐 오르는 열 때문에 이불이 젖기도 했다. 빈껍데기처럼 남겨져 우두커니 앉아 끝없는 외로움과 마주한다. 그것이 내가 마주한 엄마다. 딸인 나는 때로는 부담감으로, 때로는 미안함으로 둘 사이를 오간다. 엄마라는 삶 그 자체, 엄마라는 자리. 그게 대체 뭘까. 나는 아직도 그 답을 찾지 못했다. 다만, 엄마가 아직 내 곁에 있다는것, 엄마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행운을 내가 누리고 있다는것. 그것이 전부다. 잃어버린, 나에게 파 먹힌 몸이 돼 버린엄마를 떠올리며 나도 글을 쓰겠다는 바람을 가질 뿐이다.다만 남편과 아이 속 엄마만 초점을 맞췄을 뿐, 엄마의 존재감은 잘 드러나지 않는 점이 아쉽다. 엄마들의 수다가 웃음이나 눈물로 연결이 되기엔 무리가 없지만, 묻혀 있는 엄마들의 인생이 어떤 의미로 자리매김한다는 여운을 주기엔2% 부족한 면이 있었다.이 세상 모든 엄마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걸 실감했다. 그런 엄마가 아직 내 곁에 있다는 게 행복하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 넓고 깊은 행복의 여운을 실감하지못한 이들이 많다면, 이 작품을 꼭 한 번 보길 바란다. 그리고 나도 엄마의 길을 따로 또 같이 동행할 수 있으려니 생각한다.
이화정 2007년 전북일보에 입사, 사회부를 거쳐 지금은 문화부 기자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