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10.3 |
[내 인생의 멘토] 행복한 노동
관리자(2010-03-03 17:24:44)
행복한 노동 농사는 예술, 나는 행복한 텃밭을 가꾼다 -지용출 판화가 봄. 마음 설레는 봄이다. 봄은 항상 무언가에 대한 기대로 충만하다. 매년 같은 계절이 반복되는 셈이지만, 봄을 맞이하는 마음은 해마다 변하는 것 같다. 올해로 전주생활 18년째. 봄이되면 마음이 산만해지기도 하지만, 봄은 항상나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다.나는 주로 겨울에 작업을 많이 한다. 여름부터 주로 밑그림을 그려서 겨울이 되면 파기 시작한다. 사계절 중 겨울은 판각(板刻)하기에가장 적당한 습도를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그렇게 난로 옆에서 작업을 하다보면 봄이 작업실 문 앞에 와 있곤 한다. 하지만 올 봄은 사정이 좀 다르다. 아니 많이 다를 것 같다…….지난해에는 작업실 근처 땅을 빌려 농사를지었다. 논 삼천 여 평에 콩 천여 평. 적은 양도 아니었다. 농사가 어렵다고는 들었지만 농사가 씨를 뿌리고 수확을 하는 일 이외에도 정말 많은 과정이 있다는 것을 일 년 동안 직접몸으로 체험을 하고나서야 실감할 수 있었다.그래도 다행히 전문 농군의 도움으로 처음치고는 많은 수확을 거둬들였다. 수확한 쌀과 콩은 약간의 직거래와 농협수매를 통해 이익을남기기도했다.‘ 행복한노동’이었다.사실 농사가 힘들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기때문에 행복한 노동이라는 말은 초보농군인 내견해이며, 수십 년 농사를 지어온 농부들에게미안한 말이기도 하다. 농사를 행복한 노동이라고 한 것은 노동의 대가가 순수하고 정확하다는 뜻이다. 뿌린 만큼 거두어들인다는 지극히 당연한 명제가 오히려 나를 행복하게 했다.‘판화’를 하는 내가 농사를 시작한 것을 이상하게 볼 수도 있지만 그 시작은 몇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실행에 옮기기 시작한 것은 5년 전이고, ‘선배 농사꾼’에게 배운 것은3년이 되었다. 그렇게 해서 4년 만에 첫 수확을 한 것이니, 나로서는 지난해가 상당히 중요한 한 해였다. 특히 중고 트랙터를 마련한 것은 큰 기쁨이다. 어릴 적부터 시골에서 농사짓는 부모님과 생활을 한 이들이라면, 그게 뭐그리 대단한가, 하겠지만, 서울에서 나고 자란나에게 농사는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농부들과 친해지는 것조차도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그것은 농경사회의 정서를 이해하기 쉽지않았던 것도 있지만, 내가 농사꾼의 일원으로 인정받는 것도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기때문이다. 이제 그러한 과정들은 어느 정도 해소 되었다.그렇다고 내가 대농을 꿈꾸는 것은 아니다. 텃밭 수준의 취미생활은 더더욱 아니다.나는 다만 내 삶에 충실하고 싶을 뿐이다.처음 농사를 시작할 때는 고민도 많이 했다. 미술활동과 농사를 병행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에서였다. 주변의 반대가 많았고, 가족에게는 비밀로 시작했다. 처음 2년은실패를 할 수 밖에. 그러나 많든 적든 씨만 뿌리면 무언가 열리는 것이 너무 신기하고대견했다. 하지만 농작물이라는 것이 너무 자라도, 덜 자라도 수확이 없다는 것을 아는 데에만 2~3년이 걸렸다. 적당함. 적당하게 키워야 한다는 것이 참으로 어려웠다.더 중요한 것은 수확 후 판매였다. 농작물 판매는 나에게 또 다른 어려움이었다. 그림처럼 수 십 년을 보관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농작물의 유통판매는 마을 주민들의도움을 받아야 하는 문제였다. 처음 농사지을 때는 주민들이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서섭섭하기도 했는데 나중에 이야기하길, 마을 사람들 여럿이서‘초보농사꾼의 농사일기’를 아침저녁으로 살폈다고 했다. 얼마나 버티나 보려던 것이리라. 그리고는 나처럼 무모한 사람은 처음 봤단다. 어찌되었든 이제는 노는 땅도 빌려 주겠다고 하니 훨씬 편하게 새 봄을 맞이할 수 있을 것 같다. 미술이든 농사든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는 일이었다.미술대학을 졸업하고 정식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지 20여년이 되었다. 그동안 미술 외에 다른 것은 감히 생각도 해보지 않았던 것 같다. 그것은 다른 일에 대한 두려움보다 정신적 상위개념에 빠져 있었던 것은 아닌가, 싶다. 예술가들의 마음에는, 언젠가 유명해지리라, 하는 막연한 바람이 있다. 호랑이가 죽어서 가죽을 남긴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당연한 말이겠지만, 나는 삶의 충실함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한다.농사일에는 어떠한 일보다 상위개념이라는 사치가 없다.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아야하는 정직함만이 있다. 그것이 나는 가장 행복한 노동이라고 생각한다. 지용출 추계예술대학교 판화과와 전북대학교 대학원 미술학과를 졸업했다. 개인전 10여 회를 비롯해 <지용출·유대수 판화 2인전> 및 다수의 그룹전에 참가한 바 있으며 2001년 전북청년미술상을 수상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