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3 |
[신화이야기] 이해경의 신화로 본 세상
관리자(2010-03-03 17:24:31)
이해경의 신화로 본 세상
신과 합일을 통한 영생의 동경으로서 밀의(密儀)
-이해경 전북대학교 인문학연구소 전임연구원
엘레우시스의 데메테르
아테네에서 북서쪽으로 20여㎞ 떨어진 살라미스만 해안에 자리 잡고 있는 평지 엘레우시스(Eleusis)에는 데메테르신전이 있으며, 어머니 데메테르와 딸 페르세포네의 신화가어려 있는 곳이 많으며, 특히 엘레우시스 비밀제의(秘密祭儀)로 유명하다.신화에 의하면, 9일 낮과 밤 동안 아무 것도 먹거나 마시지도 않고 페르세포네를 찾아 나섰던 데메테르는 자신의 사제들로부터 페르세포네가 엘레우시스에 있다는 말을 듣고10일째 되는 날 노파로 변장하고 그곳에 도착한다. 그곳의왕 켈레우스와 왕비 메타네리아는 여신을 친절하게 대하면서 그곳에 머무르며 갓 태어난 아들 데모폰을 보살펴 달라는부탁을 한다. 왕 부부가 권하는 박하향이 있는 보리죽 한 그릇을 허겁지겁 마시는 데메테르를 본 켈레우스의 장남 아바스가“오 당신은 정말 탐욕스럽게 마시네요”라고 소리치자여신은 그를 도마뱀으로 바꾸어 버린다.그러나 자제력을 잃고 참을성 없었던 자신의 행동을 수치스럽게 생각한 여신은 데모폰을 보살펴주기로 마음을 먹는다. 여신은 그를 신처럼 죽지 않는 불사의 몸으로 만들기 위해 아침이면 신의 숨결을 쐬어주며 가슴을 불사초로 문지르고, 밤이면 불길 위에 올려놓고 주문을 외운다. 데모폰을 불에 쪼여 죽음이라는 성질을 내몰아낸다는 이러한 행위는 아이들을 위한 축성의 원시적인 풍습인데, 이것은 성스러운 불이 악령을 쫓아 낸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 이를 곡식의 신 데메테르와 연관시켜볼 때, 곡식을 햇볕에 말리거나불에 쪼여 수분을 어느 정도 제거함으로써 씨앗이 썩는 것을막을 수 있고, 그럼으로써 다음 해에 다시 싹을 잘 틔울 수있는 좋은 종자가 되는 것이다. 이 씨앗은 다음 해에 새로운튼실한 열매를 맺음으로써, 영속성을 가지게 된다.데메테르의 이러한 비밀스런 행위를 엿보아서는 안 된다는 금기가 있었다. 그러나 이 장면을 엿본 하녀의 말을 듣고달려온 왕비의 비명소리에 여신의 주문은 풀리고 데모폰은죽게 된다. 자신의 비밀스런 작업이 방해받은 것에 화가 난여신은 자신이 데메테르임을밝힌다. 이어서 여신은 두 아들의 불행한 운명에 대해 슬퍼하는 켈레우스왕 부부에게 아직도 아들 셋(트립톨레모스, 오이몰포스, 오이블레우스)이 남아있으니까 슬픔의 눈물을 거두라고 말하면서 그중에서 첫째인 트립톨레모스에게 재능을주어 왕부부가 두 아들을 잃은슬픔을 잊도록 해주겠다는 약속을 한다.데메테르의 호의를 받게 된트립톨레모스는 아버지 켈레우스의 가축을 돌보는 목동인데,‘세 번 쟁기질하는 자’의 의미가 있다. 여신은 그에게 곡식이삭을 주고, 쟁기로 밭을 가는 방법, 씨 뿌리는 방법, 추수하는 방법, 타작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이어서 여신은그가 날개달린 뱀이 끄는 자신의 수레를 타고 곳곳을 다니면서 곡식의 씨앗을 뿌리고 도처에 있는 인간들에게 곡식재배기술을 가르치도록 배려하고, 각종 농기구를 발명하는데 도움을 준다. 이름으로 볼 때, 그는 농업에 걸맞은 인물이고,여신으로부터 농경과 관련된 재능 및 농경지식과 기술을 전수 받음으로써 농경문화를 일으킨 첫 번째 인간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자기의 임무를 완수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트립톨레모스는 엘레우시스 근교의 땅을 첫 번째 쟁기로 갈고 씨앗을 뿌린다. 인간들을 위하는 자식의 이러한 행위는 아버지에게는 불안요소가 된다. 자신의 지위를 잃을까 염려한 아버지 켈레우스가 그를 살해하려하자 데메테르는 이를 무력화시키고 그가 아버지의 권좌를 물려받게 해준다.
데메테르 제의(祭儀)
데메테르를 숭배하고 기리는 제의와 축제는 주로 엘레우시스에서 행해졌는데, 엘레우시스 비밀제의(EleusisMysterien)와 테스모포리엔(Thesmophorien) 제의가 그것이다.데모폰의 죽음과 관련하여 데메테르가 그곳에 자신을 위한신전을 짓고 제의를 행하라고명하였던 것에서 유래한 것이엘레우시스 비밀제의이다. 용어‘비밀제의’는 그리스어 미스테리언(mysterion)에서 유래하는데, ‘입을 닫다’라는 의미의‘myo’나‘닫다, 침묵하다’라는의미의‘myein’에서 파생하였다. 비밀제의는 제의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닫혀있으며, 종교적인 가르침이나 제의는 미스텐(Mysten)이라는 참여자들에 한정하였다. 참여하는 자들은 제의에 참여함으로써 그들 개인의 심령이 구제된다고 믿었기 때문에, 제의는종교와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비밀제의는 유래도 오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에 참여하는 자들 사이에 비밀이 지켜졌기때문에 오늘 날까지도 명확하게 밝혀지지는 않고, 단지 연구자들의 연구와 유적발굴로 대체적인 윤곽이 드러날 뿐이다.엘레우시스 비밀제의는 기원전 15세기경에 시작되어, 기원전 8세기에서 기원후 4세기까지 그리스 전역에 퍼졌다.364년“어둡고, 이교도적인 모든 의식을 금한다”라는 로마황제 발렌티니아누스 1세의 칙령과 392년 엘레우시스 축제를 금하는 테오도시우스 1세의 칙령, 그리고 395년 엘레우시스 신전이 파괴됨으로써 이 제의는 더 이상 열리지 않게되었다.엘레우시스 비밀제의는 페르세포네의 귀환과 어머니 데메테르와의 만남을 축하하기 위한 취지로 생명의 탄생과 죽음그리고 부활에 관한 성스러운 체험이 의식화 된 것이라 할수 있다. 소제의와 대제의로 이루어진 이 제의에서 소제의는엘레우시스에서 개최되는 대제의의 전단계로 안테스테리온(2/3월) 달에 아테네 외곽 등지에서열렸다. 이때는 사제가 제의에 참여할 후보자들을 정화시키고, 돼지를 제물로 바친 다음, 의식을 거행하였다.여기에서 일등급을 받은 후보자들은보에드로미온(9/10월) 달에 열리는대제의에 참여 할 수 있었다.이 제의는 9일간 계속되는데, 첫째날에는 제의 참가자들이 서약을 하고, 제물들을 아테네로 나르며, 둘째 날에 사제가 제의의 공식적인 시작을 알리며, 팔레론 해변에서 목욕하고, 새끼돼지와 성스러운 보리로 만든빵을 제물로 바친다. 물로 몸을 깨끗이 한다는 것은 새롭게태어난다는 신생(新生)과 재생(再生)의 종교적 의미가 있다.새끼돼지를 제물로 바치는 것은 갑자기 땅이 꺼지면서 하데스가 나타나 페르세포네를 납치할 때 케레우스의 아들 오이블레우스가 돼지 치는 목동으로 이 장면을 목격한 것과 관련이 있다. 또 돼지는 다산과 풍요의 상징으로 농경을 주관하는 데메테르 신을 통한 생산성의 기원이라는 의미가 있고,보리로 만든 빵을 바치는 것은 데메테르가 곡식의 여신이기때문이다. 이어 이틀 동안 단식 한 후, 닷새째 되는 날 참여자들은 머리에 화관을 얹고 아테네에서 엘레우시스까지 행진하면서 기쁜 노래를 부르고‘Iakch´ o Iakche!’를 외친다. 이것은 딸을 찾아 나선 데메테르를 북돋우기 위한 것이고, 신을 공경한다는 표현이다. 엘레우시스에 도착한 다음날에는 페르세포네를 찾기 위해 데메테르가 단식한 것을 회상하며 참여자들이 단식을 한 다음 박하향이 나는 보리 음료와 퀴케온(Kykeon)이라는 술을 마신다. 보리음료는 데메테르가 엘레우시스에서 처음으로 마신음식이고, 퀴케온은 슬픔에서 기쁨으로, 찾아 돌아다님에서 찾음의 과정을상징적으로 나타낸다. 이어 이틀 동안은 캄캄한 신전 텔레스테리온에서 데메테르의 성물들이 제시되고, 하데스의 페르세포네와의 약탈혼을 의미하는 성스러운 결혼식이 열리면서 젊은남녀 간의 성적 결합이 이루어진다. 저녁마다 참여자들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열락에 빠진다. 여기에서 캄캄한 신전은 하데스의 지하세계를, 성적인 결합은 생산성을 의미한다. 제의에 참여하는 자들은 여기에서 삶과 죽음의 문턱을왔다 갔다 하고, 지하의 신과 지상의 신의 얼굴을 바라보며,어둠속에서 밝게 빛나는 태양을 바라봄으로써 부활을 체험한다. 아흐렛날에 제의 참여자들은 아테네로 되돌아오고, 이비밀제의는 끝이 난다.엘레우시스 비밀제의가 대대적으로 열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한 것은 인간의 영생에 대한 기원과 믿음 때문이었으며, 이것은 호머의 다음과 같은 찬가에서도 잘 드러난다.
“죽을 인간 중 이것을 본 사람은 행복이 있으리.
그러나 의식을 거행할 때 있지 않은 사람,
참여하지 않은 사람은 결코 그 행운을 누리지 못하고,
사라져 곰팡내 나는 어둠속에 있게 되리.”
데메테르의 또 다른 제의는 테스모포리엔이다. 이는‘정해진 것, 규칙, 관습’을 뜻하는‘thesmo ´s’와‘가져오다, 간직하다’의미의‘ph´erein’이 결합하여 파생된 것으로 볼 때,‘ 법을 만드는 자, 문명을 가져온 자, 정착하도록 한 자’의 의미로 데메테르가 이해되고, 이 데메테르를 공경하는 제식행위는 테스모포리엔이라 일컬어진다. 곡식을 인간에게주고 이를 재배하도록 하여 문명을 발달시킨 데메테르가 테스모포리엔의 중심에 있다.땅의 생산성과 생의 재생을 기원하기 위한 테스모포리엔제의는 피아놉시언(10/11월) 달에 시작되어 3일 동안 계속되는데, 이 제의에는 여성들만이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여성의 축제이다. 이 제의가 열리는 시기는 그리스 기후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우기인 가을이 지나고 씨뿌리기에 적당한겨울에 제의가 열리기 때문에 겨울 축제이며, 파종의 축제이다. 이 제의는 엘레우시스에서 뿐만 아니라 그리스 전역에서행해졌다. 그럼에도 그와 관련된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서 이 제의와 관련된 의견이 연구자마다 분분하다.제의에 참여하려는 여자들은 제의가 시작되기 일주일 전부터 성생활을 금하고, 새끼돼지를 잡아 동굴 속에 넣어놓았다가 제의가 시작되는 날 동굴 속에 들어 가 의식을 거행하면서 부패한 새끼돼지의 고기를 씨앗과 섞는다. 이러한 의식은 돼지고기에는 자연 곳곳에서 생산에 영향을 미치는 힘이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새끼돼지는‘인간 탄생과 논밭 작물 탄생의 상징’으로, 자연과 사회 간에는 차이가 없을뿐더러 여성과 새끼돼지 및 땅의 생산성간에도 차이가 없다는 신화적인 생각의 발로이다. 이는 주술적인 방식으로 서로들 간에 생산성이 촉진 될 수 있다는 믿음이 그 밑바탕에 깔려있다. 제의가 열리는 기간에 여성들은 금식하면서 무엇보다도 수월한 출산과건강한 후손들을 기원한다. 마지막 날에는 훌륭한 식사연회가 열리고 나서 제의는 막을 내린다.
신과의 합일을 통해 영생을 꿈꾸다
데메테르와 관련된 제의는 원래 곡물의 풍요를 기원하는자연종교를 기반으로 생겨난 것으로 초기 사회에서 일어나는 현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데메테르가 주재하는 곡식의순환적인 특성, 페르세포네의 귀환과 재회, 그리고 인간의영생에 대한 동경이 서로 혼합됨으로써 데메테르 제의는 신화와 종교 그리고 농업이 결부된 형태가 된다. 싹터 성장하고 열매를 맺어 거둬들여졌다가 씨앗을 통해 다시 태어나는곡식이 인간의 운명과 대비되어 언젠가는 죽기 마련인 인간에게 죽음을 뛰어넘는 영원한 생명이 부여되는 종교적인 의례가 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인간들이 신과 합일을 통해 영생에 대한 동경을 충족시키면서 영혼의 구제를 추구했던 형식이 제의이다.
이해경 전북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하노버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전북대학교 인문학연구소에서 전임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