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3 |
장미영·전흥남의‘꿈꾸는 노년’
관리자(2010-03-03 17:23:50)
세대와 세대를 잇는 고리 - 문순태의 소설을 중심으로 -
-전흥남 한려대학교 교수
문순태 소설 속에 나타난 젊음과 늚음의 갈등 구조
「늙으신 어머니의 향기」도 이런 맥락에서 읽혀질 수 있는 작품이다. 다만, 『그리운 조팝꽃』에서는 노년의‘나’가 화자이자 초점인물이라면, 「늙으신 어머니의 향기」는 화자인‘나’의관점에서 어머니의 삶을 부각시킨다. 따라서 이작품은 아들인‘나’의 관점으로 서술되고 있다. 노인의 냄새를 모티프로한 소설이다.“어머니의 냄새는 보통 냄새가 아니어요. 두엄 썩는 냄새, 아니 제초제 냄새를맡고 있는 것 같아요. 집에 있으면 냄새 때문에 식욕도 떨어지고 생머리가 지끈거려요. 병이 나겠다니까요. 꼭 무서운 바이러스 같다고요.”내 귀에는 언제나 아내의 찌증 섞인 투정이 윙윙거리게 마련이다.
“세상에 제초제 냄새라니…”
나는 아내의 엄살이 좀 지나치다 싶었
다. 하기야 온종일 어머니의 냄새에 파묻
혀 집안에 들어박혀 지낸다는 것은 고역
임을 알고 있다. 그렇다고 어머니의 냄새
를 바이러스와 제초제에 비유하다니「( 늙
으신 어머니의 향기」,『 울타리』13~4쪽)
인용문에서도 감지할 수 있듯이 아내는 어머니가 머문 자리에 지독한냄새가 난다며 외출을 갔다 오면 문을 열기에 바쁘다. 심지어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나’역시 어머니의 냄새를 모르는 바 아니나 아내처럼 맡기 거북할 정도는 아니다. 아내의 이러한반응에도‘나’는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혼자서 심하다고 생각할 따름이지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는 것이다.이 작품의 갈등구조는 어머니의 냄새와 아내의 냄새로 나타난다. ‘늙음’을 의미하는‘어머니’와‘젊음’을 의미하는‘아내’사이에서‘나’는 갈등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어머니와 아내의대립은 오래 전부터 시작된 것으로 사사건건 대립한다. 그것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부분은 집에있는 화초와 분재를 다 뽑아버리고 어머니가 그화분에 고추와 가지 모종 등을 심은 것이다. 어머니에게 화초는 산이나 들에 가면 얼마든지 볼수 있는 것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흙 한 주먹이 아쉬워’안타까워하는 어머니의 살아온날과 아내의 삶은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다.아내는 아내대로 어머니의 냄새를 몰아내기위해 갖은 방법을 다 쓴다. 결국 아내는 처형의병구완을 핑계로 처형 집에 가서 돌아오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을 더 이상방치할 수 없는‘나’는 아내를 데려오고 어머니의 냄새를 없애게 위해 어머니를 동생 집에 며칠만이라도 모셔다 드리자고 제의하는 것으로 현실화된다. 결국‘나’역시 아내의 성화에 못 견디고 어머니와 대화중에 이 사실을 실토하고 만다.
“나한테서 냄새가 나냐?”
“모르셨어요?”
“아주 심해요”
“어떤 냄새?”
“모르겠어요”
어머니는 고개를 좌우로 돌려 가며 자신의 몸에서 나는 냄새를 맡느라 연신코를 벌름거리며 킁킁거렸다.
“아무 냄새도 안 나는듸. 절대로 내 몸에서 나는 냄새가 아녀”
아머니는‘절대로’라는 말에 힘을 주어 단호하게 부인했다.
“자 어디, 한번 맡어 봐.”
그러면서 어머니는 어머니는 상반신을 내 앞으로 바짝 꺽으며 재촉했다. 나는더 할말이 없어 부지런히 숟가락질만 해 댔다.
“ 이놈아, 에미한테서 나는 냄새는 에미가 자식 놈들을 위해서 알탕갈탕 살아온, 길고도 쓰디쓴 세월의 냄샌겨.”
어머니는 깊은 한숨을 섞어가며 말했다. 쓰디쓴세월의 냄새라는 어머니의 말이 명치끝을 후벼 팠다. 길고도 쓰디쓴 세월의 냄새라니…「( 늙으신 어머니의 향기」, 30쪽, 고딕-필자)
어머니와 대화중에 어머니에게서 냄새가 난다고 얼떨결에 내가 실토하고 마는데, “쓰디쓴 세월의 냄새”라는 어머니의 말에 나는 망연자실해지며 잠시나마 냄새로 어머니에 대해품었던 마음을 접는다. 아내는 여전히 유독‘나’의 어머니 냄새가 독하고 맡기 거북하다고 요란을 떨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결국 새로 이사한 아파트로 동생 부부가 한 달간 어머니를 모시기로 한다. 그런데 어머니가 집을비운 사이 아파트의 한 구석에서 보따리를 발견한다.보따리 속에는“녹슨 호미와, 오래된 손저울, 함석 젓 주걱, 판자로 짠 손때 묻은되, 때에 전 흰 다후다 천의 돈 주머니,짙은 밤색의 나일론 머풀러, 땟국에 전앞치마 등이”(35쪽) 들어 있다. 또한“검정 고무줄로 친친 묶여 있는 돈주머니를 풀고 그 속에서 손바닥만 한 수첩”도 발견된다. 화자인‘내’가 대학 다닐무렵 도붓장수를 하며 아들 뒷바라지를하며 작성했던 빛바랜 외상장부 수첩인것이다.어머니의 삶의 흔적이 묻어있는‘보따리’, 역겨운 냄새의 근원지는 바로 그 보따리로 드러난다. 보따리 안에서 나온 자질구레한 물품들은 자식들을 키우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온 사람의 향기임을‘나’는 비로소 인식하게 된다. 과거의 기억이 묻은 물품들을 간직하고사는 어머니의 행동이, 젊은 사람의 눈에는 노망으로밖에 보이지 않지만,어머니의 과거를 아는‘나’에게는 사람의 향기로 느껴지는 것이다.그런데 동생한테서 어머니가 갑자기 사라졌다는 전갈을 받는다. 다급한마음에나는어머니를찾기위해고향으로발길을돌린다.“ 땅의혼령들로가득한 그곳에서 어머니의 냄새가 바람처럼 훅 덮쳐왔다”(39쪽)는 결말부분의 서술을 통해서 화자인‘나’는 자신의 근원과 뿌리가 어디에서 연유하고 있음을 절감한다.이 작품에서 화자인‘나’가 어머니의 삶을 서술함으로써 핍진성을 갖는다(최명숙, 2006, 76쪽). 아들은 어머니의 삶을 평생 지켜보고 누구보다도 어머니의 삶을 이해하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예전의 어머니의 향기를아내는 기억하지 못하고, 어머니의 질박한 삶을 공유할 수 없지만, 아들인‘나’는 할 수 있는 것이다. 무조건 국도를 달려 고향으로 향하는 아들의모습은, 부모 모시기를 번폐스러워하는 현실에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문순태 소설에 나타난 이해와 소통의 길
한편, 문순태의 노년소설에 나타난 노인들은 타자에 대한 이해와 포용을 통한 소통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음도 소홀히 할 수 없는 대목이다. 서사화의 방법도 서술자의 개입을 자제하면서 독자들이 공감하도록 유도한다. 화자가 작중인물과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독자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판단할여유를 남겨둔다. 따라서 타인의 삶에 대한이해와 소통의 방식에 몰두하는 인간상이 그의 작품 속에서 용해되어 여러 모습으로 출몰한다.「느티나무와 어머니」의 경우만 보더라도 새로운 가족 형태, 즉 외국인 며느리를 인정할수 없는 어머니와 외아들인 나 사이에는 불화가 생길 수밖에 없다. 아들을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했다는 어머니와 이를 알면서도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하는 아들 사이의 화해는 무엇보다도 타인의 삶에 대해 섬세하게 접근하고 이를 바탕으로 이해의 폭을 확장하기 위한노력이 선행되어야 가능하다. 문순태의 소설「은행나무 아래서」도 이러한 맥락에서 읽혀지는 작품이다. 타인의 삶에 대한 차이를 인정하고 이것을 받아들일 때 이해와 소통의 길이열린다. 「은행나무 아래서」에서 화자가 내뱉는 대목을 통해서도 작가의이러한 생각이 스며있다고 본다.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다른 것끼리 평화롭게 어울리는 것이며 궁극에는 서로가
같아지거나 하나가 아닌가 싶었다. 더욱이 인생은 시작과 끝자락에서 똑 같아지
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이 세상은 거대한 조화로움의 세계가 아닐까 싶었
다. 사랑과 미움, 슬픔과 기쁨, 빠른 것과 느린 것, 뜨거운 것과 차거운 것, 만남
과 헤어짐, 넘침과 모자람, 절망과 희망, 생과 사, … (중략) … 등은 극단적 대립
이 아니라, 하나가 되기 위하여 적당하게 밀어내고 끌어당김을 계속하는 것은 아
닐까「.( 은행나무 아래서」, 60쪽)
성격이나 살아온 과정이 전현 다른 두 여성 노인이 화해에 이르기 위해서는 타인에 대한 이해와 관용이 전제될 때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이해와소통의 길을 찾는 과정이『울타리』에 실린 노년소설의 삶에 일관되게 흐르고 있다. 그러한 여정은 타인의 존재를 새롭게 인식하는 것으로 나아간다.이를 통해 현재와 과거의 삶을 연결하고, 현재의 삶을 조화롭게 만든다.여기에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 중 하나가 추억이다. 추억이란 나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기보다는 남과 함께 살며 겪었던 공동의 영역이기 때문이다.체험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은 곧 더불어 사는 삶의 근거가 마련되어 있음을 의미한다(신덕룡, 2006, 360쪽).이런 점에서 문순태의 노년소설에서 각 인물의 행위를 이끌고 있는 것은 고향과 어머니 그리고 느티나무로 대표되는 유년의 기억이다. 유년시절의 체험과 이에 대한 향수가 문순태 소설의 바탕이 되는 공간을 형성하고있는것이다. 다음에는최일남의소설집『아주느린시간』,『 석류』에수록된 노년소설에 나타난 해찰과 역리(逆理)를 통해 예술가의 말년의식을살펴볼 차례다.
전흥남 CBS 전남방송 칼럼 위원을 지냈으며 현재는 한려대학교 교수 재직 중이다.「한국 근대소설과 영화의 교섭 양상 연구」,「 ‘여순사건’과‘4· 3사건’관련 소설의담론화연구」,「 한국근·현대소설의문학치료학적관점의적용과그가능성탐색」등 다수의 논문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