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5 | [문화시평]
'동녘'은 언제 밝아오나
오페라 <동녘>
김성식 전주역사박물관 학예실장(2003-07-26 12:03:14)
정확히 109년 전, 1894년에 전라도 고부땅에 혁명의 불길이 치솟았다. 반봉건, 반외세의 기치를 들고 농민들이 결연히 떨쳐 일어섰던 동학농민혁명이 그것이다. 어쩌면 서구열강의 틈바구니에서 민족자존과 주권을 외치는 현재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시기였으며, 따라서 현재의 역사는 근대사의 질곡과 실패에 따른 데서 단초를 찾을 수 있다. 우리가 동학농민혁명에 주목하는 것도 바로 그 지점이다.
지난 3월 29일부터 2일간 한국소리문화전당에서 이 사건을 배경으로 오페라 <동녘>이 공연되었다. 사단법인 호남오페라단(단장 조장남)의 제17회 정기공연이자, 지난해 한국문예진흥원이 선정한 '창작지원활성화 사후지원 사업'의 성과물이기도 하다.
기실 전주라는 지역의 역량과 여건으로 볼 때 민간단체에서 대규모 오페라를 제작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남오페라단은 오페라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전주에서 척박한 현실을 개척해가며 17년동안 고집스럽게 지켜오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지역의 역사와 결합시킨 창작오페라 <동녘>을 무대화하는데까지 이르렀다.
이번 공연의 의의를 필자는 다음 두가지 측면에서 평가하고 싶다.
첫째는 무대예술의 활력을 민간예술단체에서 이끌어내야 한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지역사회일수록 민간예술단체의 활동은 열악할 수밖에 없다. 제작비용, 인적구성, 관객층, 시장규모 등 무릅써야할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그렇다고 뒷짐만 지고 있을 수는 없다.
민간단체는 상품의 품질향상과 함께 공연예술의 사회적 기능 및 역할 찾기에 매진해야 한다. 즉 관객의 호응을 이끌어 낼만한 작품생산은 가장 본질적인 부분이며, 문화예술 영역에 있어서 민간예술단체 존립의 당위성 전파와 자구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지역예술계일수록 관립단체의 위상과 역할이 클 수밖에 없다. 그만큼 공연시장이 협소하며, 경제적 안정 없이 예술적 지속이 힘든 구조이다. 이는 상대적으로 민간예술단의 설자리가 그만큼 힘겹다는 뜻도 된다. 일테면 악순환 고리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무대예술의 활력은 민간단체에서 시작되고 수혈되어야 한다. 민간단체가 활성화되어야 한편으로는 실험적이고 다채로운 작품생산이 가능하고, 또 한편으로는 관립단체와 선의의 경쟁을 통해서 긴장감을 불어넣을 수 있다.
문제는 민간단체가 활성화될 수 잇는 방안 모색에 있다. 가장 바람직하고 원칙적인 측면에서야 독자적인 예술적 역량강화로 수익성을 창출함으로써 경영 자생력을 키워나가는 데 있다. 그거나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우선 민간단체는 현재 시행되고 있는 각종 지원사업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하며, 관련 기관에서는 공연예술계의 활성화와 문화향수권 신장이라는 측면에서 과감한 확대지원을 추진해야 한다. 문화예술 전문법인화 제도(다행히 호남오페라단은 문화예술 전문법인으로 인증을 받아 제도적 지원창구를 마련하였다). 또 무대공연작품 제작지원사업, 문예진흥기금 등 지원제도와 정보를 찾아 발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그렇지만 그것도 분명한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고 좀더 근본적인 지원책이 요청된다.
그런 측면에서 가장 매력적이고 이상적인데도 좀처럼 결실을 맺지 못하는 제도가 소위 '메세나 운동'이다. 기업의 이익을 문화예술에 환원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는 이 제도가 좀더 활성화되면 좋겠다. 마치 1社 1山가꾸기 운동처럼 1社 1단체지원 운동을 펼치면 민간공연단체의 활성화는 상당한 실효를 거둘 수 있다는 생각이다. 기업은 지원 액수만큼의 세제혜택과 함께 그 이상의 회사 이미지를 신장시킬 수 있지 않겠는가. 호남오페라단이 실천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경영의 선진성에 주목하며, 타 단체에도 점진적인 파급효과로 결실이 맺기를 기대한다.
둘째는 지역의 자원을 무대로 연결짓는 지역문화의 창조적 계승이라는 측면이다. 이번 호남오페라단의 <동녘>을 관람하면서 필자는 대단히 서구적 양식인 오페라와 대단히 한국적인, 더 구체적으로는 지역의 역사문화 자원과 결합시킨 점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양식이라고 하는 것은 특정한 플롯을 특정한 장르로 표현하는 것에 불과할 수 있다. 따라서 표현양식의 국적이나 정서가 서구냐 동양이나 한국이냐 보다 더 중요한 것은(특히 지역의 문화예술단체일수록) 지역의 역사문화적 자원을 콘텐츠로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이 점에서 호남오페라단 조장남 단장은 "비록 오페라가 서양음악 형식이지만 우리 음계를 담은 우리만의 창작오페라를 만들어 보자는 데 뜻을 모았고, 앞으로 전북의 역사와 전통문화를 오페라라는 종합예술 장르에 담아 전북의 대표적인 문화상품으로 키워갈 것이며, <동녘>이 그 첫걸음이다"라는 포부는 호남오페라단을 주목하기에 충분하다.
다시 작품 <동녘>으로 돌아가서, 지방 민간단체의 경쟁력 확보에 관한 몇 가지 대안제시를 하고자 한다.
첫째는 규모의 경제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대규모 작품은 웅장한 스케일을 비롯한 그 다운 매력이 분명 있다. 반면 그만한 인력과 재원의 소요가 필연적이다. 그렇다면 너나없이 형편이 열악한 단체의 입장에서는 경영성, 즉 수익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웅장한 스케일보다 치밀한 극적 구성과 가능한 인적자원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마케팅에 관한 전략도 시급히 정착되어야 한다. 마케팅은 작품에 따른 메인 타깃 관객 개발의 문제, 단체관람 및 협찬의 문제, 광고의 문제, 관객분석의 문제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다. 전주의 공연문화 환경은 상당부분 초대권 관객이나 무료공연에 의존하고 있는게 숨길 수 없는 현실이다. 이러한 현상은 여러 가지 요인으로 분석이 가능하다. 혹시 대극장 공연계획에 따른 객석 점유율에 대한 부담을 동원으로 해결하려는 안이하고 막연한 관행이 아닌지 깊이 성찰해야 할 문제이다. 만약 그렇다면 그 후유증은 또 다른 작품을 제작해야 하는 작품공연단체 및 공연자에게 고스란히 되돌아 올 것이며, 기획단계에서 아예 공연 관객분석이나 관객개발 전략을 전혀 수립하지 않고 있다는 결과이기도 하다. 공연 주체는 제작비가 없어서 쩔쩔매는 형편인데, 초대권이 남발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기묘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끝으로 질 높은 작품개발로 예술성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명제는 가장 첨예한 문제이다. 질높은 작품개발은 예술적 직관력이 뛰어난 연출자, 예술경영에 탁월한 기획자, 무대예술에 정통한 작가, 그리고 우수한 실력의 공연자가 유기적인 팀웍을 이루어야 가능하다. 종합예술을 무대화하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각 분야의 전문인력이 충분한 인프라를 형성해야 한다는 말이다. 지역에서 예술활동을 하는 데 있어서 가장 취약한 영역이 이 부분이다. 따라서 문화기획, 예술경영 부분의 전문인력 약성기관 신설이 절실하다. 이제는 문화예술 분야의 전문화가 논의되어야 할 시기이다. 문화인력이 마치 순환보직처럼 적당히 역할나누기로 해서는 안된다. 각 분야별 전문인력이 배출되고 분야별 경쟁시스템이 갖추어져야 질 높은 예술성을 담보할 수 있다.
이 글은 필자에게 호남오페라단의 창작오페라 <동녘> 공연시평으로 청탁되었다. 그러나 필자는 오페라에 대한 전문지식도 없거니와, 애초부터 이 작품을 제작한 단체에 주목하면서 지역예술계를 짚어보고자 하였다. 그 까닭은 근본적으로 지역의 민간예술단체가 처한 매우 열악한 여건을 환기해 보자는 측면과, 나아가서 도래할 문화분권 시대에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를 검토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우리의 여건과 역량과 수준을 냉혹히 뚫어보지 못한다면 지방분권에 대한 대비도, 지역 예술발전에 대한 전망과 전략도 모두 공허한 뒷북치기가 아닐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