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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2 |
[신귀백 영화엿보기] 사랑학 ‘탐구생활’
관리자(2010-02-02 13:42:08)
사랑학‘탐구생활’ <바그다드 카페, 1987> 부 부 탐 구 생 활 차가 한 대 멈춰요. 한국 관광버스가 도로에 차를 세우는 것과 같아요. 부부가 쉬아를 마치고 싸워요. 독일어 같아요. 왜 싸우는지는 몰라요. 그냥 부부니까 싸우는 거예요. 남편, 아내 몰라요. 아내도 남편 몰라요. 탐구해 보기로 해요.아내를 두고 남편은 휭 떠나요. 여자가 사용하던 커다란 커피포트도 던져버려요. 여자는 걸어요. 진한 화장의 여자는 검은색 투피스 정장에 모자까지 썼어요. 여자는 높지 않은 힐을 신고 사막을 건너요. 캘리포니아모하비 사막 어딘가 봐요. 그런데 저기 사막 가운데 집이 보여요. 객잔, 혹은 모텔이라고 해요. ‘바그다드 카페’래요. 이라크는 아니니까, 쉬어가기로 해요.카페 안이에요. 여기 남녀도 싸워요. 왜? 부부니까요. 남편, 아무 것도 안 해요. 여자의 잔소리에‘너 해라’하는 식이에요. 여자 얼굴에 짜증이 기미처럼 붙어 있어요. 속만 썩이는 남편과 새끼들 때문이에요. 아내는남편을 종업원 대하듯 해요. 남편은 쫓겨나요. 이번은 진짠 것 같아요. 남편을 쫓아냈는데 누가 와요. 몸매 스펙? 그런 것 묻지 말아요. 단추가 터질 듯한 아줌마예요. 카 페 안 탐 구 생 활 이런 우라질. 카페가 창고가 아니라는 것은 창 쪽으로 탁자와 의자가 몇 개 있다는 것이에요. 여주인이 까칠해요. 매너 없어요. 자본주의 서비스 정신 그런 것 없어요. 그래도 좋아요. 독일인답게 커피가 막 땡기니까요. 그런데, 그런데 이 카페에는 커피가 없어요. 커피기계가 고장이에요. 부지런한 사람? 없어요. 웨이터 아저씨는 낮잠을 자요. 또 자요. 여기 카페에서 일하는 사람이나 장기투숙객 모두 박민규 소설『삼미슈퍼스타즈』에서 걸어 나온 사람들 같아요. 그래도『베니스의 죽음』을 읽고 있는 손님이 하나 보여요. 외로운 동네라는 말씀인 것 같아요. 미소년은 하나도 없는데 말이에요.모텔은 돈을 지불하기는 하지만 공공재인데 주인 여자 브렌다(CCH 파운더)는 맘에 안 들면 손님도 얄짤없어요. 손님은 왕? 헛소리에요. 로젠하임 출신이라는 자스민(마리안느 제게브레이트)은 갈 데 없으니 25달러짜리 모텔에 들어요. 황사바람은 불고 여관의 페인트는 모두 벗겨져 있어요. 물침대나 사방 거울도 없어요.그저 엄벙한 그림이 하나 걸려있는 것이 꼭 훈련소 막사 같아요.제기랄, 그녀의 가방 안에는 주로 남편 옷밖에 없어요. 경찰이 찾아와도 영어를 조금하니 특별히 공포는 없어요. 세상 어딜 가도 예쁘지 않으면 사람들 별 관심 없다는 것 잘 알아요. 심지어 어린 것들조차도 뚱땡이 여편네라고 무시를 해요. 알아요. 익숙한 눈짓이니까요. 심리적 무력감, 그런 것 없어요. 남편은 아예 머리털도안보이니까요.그녀는 빅마마답게 느리게 천천히 걸어요.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에서 나오는 뚱뚱한 여자의 우울함이나나른함 그런 것 없어요. 서비스 정신이 전혀 없는 주인에게 손님 자스민이 서비스를 해요. 그녀는 청소가 특기에요. 초고속 모드로 간판을 닦아요. 테라스도 닦아요. 육중한 몸으로 물탱크도 청소해요. 주인 여자방에서버릴 건 버리고 치울 건 치워요. 땀에 범벅되어 정리정돈하는 것이 그녀의 즐거움이에요. 그리고 아이를 사랑하는 것이에요. 그녀의 손이 닿자 창고도 블링블링 카페가 되요.‘이런 된장’을 입에 달고 사는 브랜다는 거의 미친 듯 성을 내 사무실 치웠다고, 이 흑인 쥔아줌마 총 들고 설쳐요. 여기서 여자가 화난 이유에 대해서 우리 탐구를 해 보아요. 간단해요. 삼미팀 멤버들은 질서가 생기는 것을 못 참아 해요. 뚱뚱한 여자들이 그러듯 황당한 그녀는 눈만 껌벅거려요. 볼 때문에 입이 더 작게 보여요. 아이는당신집에서나보라는막말에,‘ 난아기가없다’고말해요. 거기서브랜다가한방먹어요. 마음이 녹아요.카페 밖으로는 트럭이 지나가요. 라스베가스 가까운 고속도로 주변인 것 같아요. 큰 차가 막 지나가요. 계속 질주해요. 영화 <베니스의 죽음>에서 나오는 동네 같아요. 이방인은 동그란 눈으로 카페안 사람들을 관찰해요. 귀신히피 같은 딸내미는 오전에는 이놈 오토바이를 타고 갔다가 저녁에는 저놈 차를 타고 돌아와요. 미소년과 거리가 먼 흑인 청년은 매일 피아노만 쳐요. 아이는 울어요. 그녀는 아이를 봐요. 건반 두드리는 아들은 대가리 피도 안 마른 놈인데 벌써 새끼를 낳았어요. 친절한 야스민씨는 쓸쓸한 청년의 피아노 음률에 귀와몸을 맡길 줄 알아요. 멋져요. 그래요. 우리 사는 것처럼, 내 가정은 이해가 안 돼도 타인의 가정은 다 이해가돼요. 파 라 다 이 스 카 페 미안한 말씀이지만, 이 배우는 살을 찌운 것이 아니라 진짜 뚱뚱해요. 앉을 때 꼭 손을 짚고 앉아요. 다리를쩍 벌리고 의자에 앉아 선물 받은 마술세트로 기초를 배워요. 발목이 가는 걸 보니 그리 나쁜 건강은 아닌 것같아요. 특별한 의무가 없고 남편이 없으니 더욱 좋은 것 같아요. 마술을 습득해요. 손님 앞에 써먹어요. 자기가 해놓고 자기가 좋아해요.마술처럼 카페 안에 웃음이 생겨요. 흑인청년은 훌륭한 연주자가 돼요. 기쁨의 공간이 되요. 이젠 차가 씽씽 지나가지 않아요. 뚱보 웨이트리스에 반한 사람들은 라스베가스 쇼보다 재밌다고 말해요. 트럭 운전사들이 자주 찾아 이젠 기사식당이 되어요. 마술쇼 때문에 손님들이 쓰나미처럼 몰려와요. 너무 기뻐 눈물이 살짝나와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의 알콜 중독자 아저씨도 여길 들렀다면 죽지 않았을 지도 몰라요. 쟈스민은브랜다 가족의 일원이 되면서 카페는 오아시스가 되어요. 사막에 노래가 넘쳐흐르고 사막에 꽃이 피어 향내나요. 주님이 오셔서가 아니라 그 여자가 와서 그래요.여기 이동버스에 사는 콕스(잭 팰런스) 할배가 있어요. 부츠에 머리띠가 석양의 건맨 닮았는데, 서부 영화악역단골이에요. 할리우드 출신이래서 배우인 줄 알았더니, 세트 그림을 그렸대요. 이 영감님은 당신을 그리고 싶다고 작업을 걸어요. 받아요. 모델이 돼요. 그런데 그림을 그릴 때마다 모델의 옷이 한 장씩 벗겨져요.여관 마당에 텐트를 치는 나그네가 있어요. 젊은 총각은 밥 먹고 부메랑을 날려요. 또 날려요. 서쪽엔 아름다운 노을이 들어요. 그녀 역시 새로운 것을 좋아해 부메랑을 날려요. 우리 삶의 되돌아오는 어떤 것이 있다는 암시일 거예요.자스민의 초상은 페르난도 보테로의 그림을 닮았어요. 사실 이발소 그림 같기도 해요. 정장차림으로 그리기 시작해서 마지막에는 누드에요. 소녀틱한 얼굴과 풍만한 육체가 에로티시즘으로 전달되지는 않아요. 이할배는 야스민을 사랑하지만 달도 차면 기우는 법이에요.경찰이 찾아와요. 노동허가증이 있어야 한다고 압박해요. 여자는 카페를 떠나요. 마술은 끝났어요. 노래도없어요. 카페엔 손님이 없어요. 다시 카페에 게으름이 찾아와요. 잠을 자요. 그런데 다시, 부메랑처럼 택시를타고그녀가나타나요. 째쟁이할배가초라한꽃몇송이들고와야스민에게청혼을하는데,‘ 브랜다에게물어보고’라답하고영화는막을내려요. 쥔여자와상의한다는것이좀걸려요.‘ 페미’냄새를풍겨요. 카 페 밖 탐 구 생 활 핀란드에 <카모메 식당>이 있다면 사막에는 <바그다드 카페>가 있어요. 이 영화를 페미니즘의 시선으로평하는 고수들이 있어요. 그럴 수 있어요. 남편에게 버림받은 여자와 남편을 쫓아낸 인생 답답한 두 여인의만남을‘연대’래요. 카페의 활기는‘모계사회의 회복’이래요. 빵꾸똥꾸예요. 카페가 소수자의 영역이고 여성공동체 어쩌고 그래요. 역시 빵꾸똥꾸예요.감독님 퍼시 애들론 역시 여자예요. 뉴 저먼 시네마 세대에 속한 이 감독의 인물 설정? 독창적이에요. 서로에게 죽도록 헌신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이 여자분들 남자를 혐오하지 않아요. 페미 영화의 단골 싸가지 없는 남자가 여자를 때리고 총으로 쏘고 그런 것 없어요. 이 동네 남자들 좀 엄벙하고 좀 게으를 뿐이에요. 특별한 갈등 없이 영화가 될 수 있다는 이 텍스트는 괜찮은 탐구교재예요.문득 깨달음, 그런 것 없어요. 뚱뚱한 게 아름답다 그런 것도 아니에요. 흑인과 백인의 우정 그런 게 페미니즘이라면 재미없어요. 그런데, 이런 된장! 그 흔한 남성 성애 판타지도 아닌데 청소년관람불가 영화예요. 이유는 아줌마 쭈쭈가 나와서 그래요. 혹시 망한 비디오 가게에 이 영화 있으면 교재려니 하고 사 두세요. 돈 될거예요. 지금까지 남편 없이 사막에서 살아남는 여자의 자세에 대한 탐구였어요. 특 별 부 록 : 페 미 니 즘 탐 구 생 활 < 안 토 니 아 스 라 인 > 여자, 남자 몰라요. 남자, 여자 몰라요, 그러니 남녀관계에 대한 해석은 항상 지속적으로 유효한 질문이에요. 그래서 조금 쎈 페미의 시각에 대해 더 탐구해 보기로 해요.벌써 페미 고전이 된 기본교재 <델마와 루이스>가 있어요. 정당방위에는 찬성이지만 이것 레알 아니에요.그렇다고 짝퉁도 아니에요. 자매애 신화가 궁금한 사람들은 보충교재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를 보면 돼요.시나리오가 괜찮아요. 이야기의 액자 속 헌신과 관용 그리고 용기까지 이해가 되지만 뚱뚱한 캐시 아줌마의 설정이 너무 엄벙해요. 특목반 멤버들은 마린 고리스 감독의 <안토니아스 라인>을 챙기면 돼요. 주체여성들의아나키적 영토에 살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당신은 페미예요. 교훈 만점 특수반 교재를 조금 더 살펴보아요.안토니아는 다니엘을 낳고, 자유로운 그의 딸 다니엘은 데레사를 낳고, 데레사는 천재소녀 사라를 낳아요.여자 아닌 인간의 계라는 말씀이에요. 안토니아 여사는 웬 홀아비가 아들들의 엄마가 돼 달라는 청혼에‘아들필요 없다’고 거절해요. 섹스는 거절하지 않아요. 결혼 필요 없어요. 그럴 수 있어요. 그 딸내미 다니엘은 아이 가지고 싶은 마음에 결혼 없이 낯선 남자를 골라 유혹하고 아이를 가져요. 통과에요. 다니엘은 딸아이 선생님과 녀녀상열지사를 나눠요. 이해할 수 있어요. 성폭행한 놈은 뒈져야 해요. 맞아요.부족장 안토니아는 씩씩해요. 정의로워요. 대지에 씨를 뿌려요. 더 이상 여자와 어머니는 식민지가 아니라개척지라는 말씀이겠네요. 멋있어요. 그러나 상징이 너무 드러나요. 프로파간다예요. 그 공동체 식탁에서 몇끼는 먹겠지만 무서워 밥이 안 넘어갈 것 같아요. 식민지를 경험한 사람의 식민지 같아요. 남자에게 필요한것은 소주 한 잔도 안 되는 거시기뿐이라니요? 안 절실해요. 모든 차별을 억압으로 보는 건 좋은데 차이마저억압으로 보는 것 같아요.감독이 탐구한 남자라는 종(種)은? 정액 외에 큰 임무 없대요. 말없이 착한 남자는 예외에요. 여성들로도 잘살 수 있다는 메시지는 <슈렉>의 난장이 왕 파콰드와 비슷한 냄새가 나요. 그놈이 좀 엄벙하 못된 구석이 있어도 창의성이나 변혁에 대한 고민이 와 닿으면 피오나 공주처럼 사랑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괜찮은여자들하고만 살고 싶으면 <안토니아스 라인>을 탐구하면 돼요.그래도 어린 사라가 잠 못 잘 정도로 여기저기서‘막 하는’장면 좋아요. 거기다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를그림으로 만드는 장면은‘밑줄 쫙’이에요. 엄숙해야할 장례식에서 시신이 일어나 노래 부르고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상도 노래에 동참하는 환상 장면은 그래도 탐구할 만한 티 속의 옥이에요. 나머지 장면은 밑줄 칠것 별로 없어요. 아마조네스의 상상력은 겁은 주지만 우리의 삶을 가지런하게 해주질 못해요. 짐승들의 태도를 조롱하지만 설득하진 못해요. 상식적 이분법이에요.남녀관계? 절차탁마(切磋琢磨)예요. 외로우니까 사람이라잖아요. 서로 닳아져야 해요. 헤프지 않게 모가 줄어야 아이가 생겨요.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기도 하지만 사랑은 인간의 씨앗이에요. 앞으로도 더욱 탐구해보기로 해요. 끝나지 않는 숙제예요. butgoo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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