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2 |
[문화시평] 한국전통민화전
관리자(2010-02-02 13:41:31)
문화시평┃한국전통민화전
(12월 29일~1월 10일)교동아트센터
민화 안에 담긴 민초들의 삶 그리고 꿈
- 이상찬 전북대학교 교수
민화를 통해 본 민중의 삶
우선 민화를 재현한 작품은 비록 재현된 민화를 통해서나마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그들과 같이 호흡하면서 그 시대를살아낸 사람들의 꾸밈없고 친근한 인간미와, 꿈과 사랑 속에서어떠한 삶을 살고자 했는지 그들의 진솔한 삶을 느낄 수 있었으며, 또 그들이 이승과 저승을 오가며 절대신에게 그토록 갈구하고자 했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원하고 갈구하면서 그 시대를 살았는지, 그들이 해학과 익살 속에서 무엇을 이야기하고 풍자하려 했는지 시공을 뛰어넘어 대화할 수 있었다. 전통은 그래서 아름답고 소중한 것이다.다음으로 전통민화를 작가가 재해석한 작품으로 특히 담뱃대대신 장미꽃을 물고 있는 호랑이는 까치호랑이 못지않은 익살과 해학으로 현대사회의 에로티시즘을 은유적으로 풍자한 작품으로 평가하고 싶다. <호작도>에서는 인간의 길흉화복을 좌우하는 서낭신의 심부름꾼 호랑이가 장미를 물고 나타나 누구의사랑을 갈구하는 것인지…. 다음으로 요철지에 수묵으로 그린호랑이 같은 경우 창작민화라 분류해야 되겠지만 민화가 민중들 속에서 태어나고 민중들에 의해서 제작되고 민중들에 의해서 사랑받는 민중그림, 민중예술이라고 정의한다면 동시대 민중들의 삶과 애환, 그리고 동시대를 아우르는 풍자와 해학이 그림 속에 담겨야 한다고 본다. 다시 말해서 민화를 그 시대의 산물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오늘의 사회상과 민중들의 애환이 녹아 있는 그림이어야 한다는 것이다.전통민화는 그들에게는 유희였고, 바람이자 소망이었으며 신앙이었고, 생활 그 자체였다. 그들은 민화를 통하여 신과 소통했고 자연과 소통했고 인간끼리도 소통했으며 신과 인간을 이어주는 통로이자 현세와 내세를 이어주는 통로로 여겼다.그러나 그 시대를 살아간 민중들의 삶과 오늘날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삶의 근간이 크게 다르지 않을 진대 그 시대의 벽사와 진경, 기복축사가 오늘날 우리의 염원과 그리 크게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민화란 무엇인가
민화라는 용어가 처음 쓰이기 시작한 것은 일본인 미술평론가 야나기 무네요시(유종열柳宗悅1889~1961)의「불가사의한 조선민화」라는 글이 우리 그림에 민화라는 어휘를 붙인최초의 글이다. 한국의 민예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야나기무네요시는 월간지「공예」에 발표된 논문(1937)에서“민중속에서 태어나고 민중을 위하여 그려지고 민중에 의하여 구입되는 그림을 민화라 칭하자”고 주장했다. 조선후기까지만해도 속화 또는 환이라 불려온 우리의 허드레 쓰임새 그림이일본인 야나기 무네요시에 의해서 민화라는 이름으로 다시태어나 생명력을 얻은 것이다.주지하다시피 민화란 한국회화사의 주류에서 벗어난 그림으로 정식 그림교육을 받지 못한 비전문적인 화공, 장인들이대중의 그림에 대한 수요와 욕구를 채워주기 위해 그린 어수룩하고 소박하고 꾸밈없는 허드레 쓰임새 그림을 일컫는데야나기 무네요시의 표현대로 불가사의하게도 이 허드레 그림에서 자유로운 상상력, 꿈과 사랑, 해학과 익살, 구성미와추상성이 느껴지는 그런 그림이다.
한국화 속 민화
그러나 도화서에서 제작될 수밖에 없고 궁중에서 임금의자리에서 밖에 사용될 수 없는 <일월곤륜도>(곤륜산은 중국의 전설 속 산이며 해와 달은 음과 양을 의미하지만 달도 하나 해도 하나 임금도 하나, 즉 유일지존을 상징한다) 같은 그림이 민화로 분류되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 또 원체풍의 민화가 우리 민화에 주조를 형성하고 있다는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 민화의 개념에 좀 더 명확하게 접근할 필요가있다. 따라서 어떤 사람들에 의하여 제작된 그림이 한국의민화인가를 살펴보기로 하자.한국 그림은 그 양식에 있어서‘정통화’와‘원화(원체화)’,그리고‘민화’의 세 가지 흐름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정통화와 원화의 두 가지 양식을 이해하고 이를 제외시키고 나면민화란 무엇인가 그 특징을 알게 될 것이다.정통화의 범주에 드는 사람들은 사대부 출신의 문인화가로서 한국미술사의 주조를 이루며 제도권 미술을 이끌어 온사람들이다. 이들은 중국의 그림이나 화본을 닮아있기는 하나 그 본질에 있어서 근본적으로 다른 한국 수묵화의 전통을확립했고 정통을 이어왔다는 점에서 그들의 작품을 정통화로 분류하고 있다.다음으로 원화를 그린 사람들은 신라시대부터 왕실이나사대부들에게 필요한 그림을 그리는 도화서 소속의 화원들인데 전통양식을 충실하게 따른 세화, 흉배, 초상화, 기록화또는 장식화 등 극세화의 사실적인 그림으로 원체화, 또는원화라 부르고 있다.또 원화풍과 유사한 불교화가 있다는데 화승이라는 특수한 신분의 승려들이 이를 담당했으며 한국의 큰 사찰을 중심으로 불교의식에 따른 소재, 양식 등이 형성되었으나 이들의그림은 원화풍에 가까웠다.이상 열거한 사대부 문인화가, 도화서 화원, 화승 등은 직간접적으로 민화에 영향을 미쳤을지언정 사실상 민화 제작과는 상관없는 사람들이다. 물론 대화가나 화원들, 또는 화원시험에 낙방한 장인, 도화서에서 쫓겨난 화원들이 일상생활에 필요한 그림들을 전혀 그리지 않았다고는 볼 수는 없다. 그들이 그린 호랑이, 용, 화훼, 영모 등의 그림이 장식과일상생활을 위한 면이 전혀 없지는 않으며 현존하는 작품도다수 있다.김미혜는「한국화 개념설정을 위한 한국 민화의 분석」에서“도화서 화원들의 그림들은 그 제작과정에 있어서 중국의 그림이나 화론, 또는 미관이 거의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점에서 민화로부터 제외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렇게 민화에 있어서의 비본질적인 요소를 괄호 속에 집어넣고 나면 한국의 민화는 외국(특히 중국)의 그림이나 화론에서 온 미관에 의해 결정적인 영향을 받지 않은 한국사람(이 가운데에는기능공, 화승, 단청공, 은둔한 시골 선비, 낙오한 화원, 또는화원지망생이 국한된다)에 의해서 시대나 장소에 구애됨이없이 한국의 고유한 전통적 신앙과 정서 및 미관에 따라 그려진 다양한 옛 그림들이라고 정의될 수 있겠다”라고 말하고있다.따라서 한국 그림 중에서 정통회화와 원화를 제외시키고나면 민화를 제작한 사람들은 한국회화사의 주류에서 벗어나 일상생활에 얽힌 대수롭지 않은 그림만을 그린 비전문적이고 이름 없는 화공들이다. 그들은 이름을 알아주지도 또알아주기를 원하지도 않는 개인기를 버린, 즉 창작성이 배제된 그림을 그렸다. 따라서 그들의 그림에는 낙관을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으므로 민화에는 낙관이 없다는 것이 특징이다. 또 하나의 민화의 특징으로 선과 색채, 구도를 들 수가있다. 민화의 선은 굵고 둔탁한 그러나 부드러운 선으로 외곽을 그리고 맑고 밝은 오방색으로 경내를 칠하는 수법을 구사하고 있으며 구도는 대체로 대칭구도나 평면성, 또는 역원근법을 쓰기도 한다. 이 같은 시각은 주체가‘나’보다‘너’라는 사고의 발로로서 우리의 자연주의 사상은‘내’가 자연을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대자연 속에 내가 존재한다고 하는 자연주의 사상에서 온 것이 아닌가 한다.이와 같이 민화는 민중들의 삶을 진솔하게 담아내는 과정속에서 스스로 하나의 틀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이상찬 우경 이상찬은 일본 나고야 예술대학에서 일시 수학하고 경원대 회화과와 홍익대학교 교육대학원을 졸업하였다.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 전북도전 운영위원장 등 각종 공모전에서 심사위원 및 전라북도 미술품심의위원을 역임, 전북도전 최고상, 중앙미술대전에서 장려상을 수상했다. 현재 전북대학교 예술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