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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2 |
[테마기획] 차(茶)_전북의 차를 탐하다
관리자(2010-02-02 13:39:23)
차(茶)_전북의 차를 탐하다 차문화 복원은 음식문화의 정통성을 되찾는 일 - 박태건 시인 최초의 차 생산지를 찾아서 최초의 차나무에 대한 기록은 신라시대 때 중국에서 가져온 차종자를 지리산 일대에 뿌렸다는 지리산 파종설이유력하다. 이것도 문성왕 때 진감선사가 가져왔다는 주장과 흥덕왕 때 대렴공이 가져왔다는 주장으로 나뉘는데,진감선사설이 더 힘이 세다. 최근에는부안 능가산 개암사의「개암사사적기」에 의거하여 지리산 파종 전에 개암사에서 차나무가 있었다는 부안 원효방기원설을 주장하기도 한다.진표율사의 수행지로 알려진 불사의방과 원효방이 자리한 부안은 개암사는‘전설따라 삼천리’처럼 전설이 많은 곳이다. 인근의 동굴에서 원효스님이 참선을 했다. 졸음이 왔던 것일까? 원효스님은 갑자기 차가 마시고 싶어졌단다. 이때 상좌승이 물을 없어 안타까워하자, 옆 동굴에서 젖물같은 단물이 솟아올랐다고. 절벽에 난 세 개의 동굴 중 가운데 동굴에는 지금도 샘물이 솟아올라 전설을 증거한다. 원효가 마셨을 차가 지금도개암사 일대에서 자생하는 차나무 군락의 조상묘목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통일신라 이전부터 음차가 선 수련과 같이행해졌음을 나타내는 중요한 기록이다.지리산 파종설은『삼국사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좀 더 설득력이 있다. 진감선사에 의해 들여온 차나무를왕명에 의해 쌍계사 주변에 심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화개계곡은 배수가 잘 되는 토질로 차나무의 생육에 안성맞춤이라고 한다. 원효방에서 시음했을 차가 중국에서 수입한 차라고추측하면 지리산 파종설은 본격적인 차나무 식재의 처음이었을 것이다. 신라시대 최초의 구산선문으로 지정된 남원의실상사에서는 발우공양을 한 후에 차를 마셔온 전통을 지금껏 잇고 있으며 쌍계사에서 하동으로 가는 19번 국도에는 뜻있는 이들이 모여 다원을 열고 있다. 지리산 제다원이 대표적인 곳. 박경리의 소설『토지』의 배경이 된 악양의 최참판댁세트장 인근의 <매암 차문화박물관>은 일제의 임업수탈의현장(지리산 임업연구소)을 박물관으로 개조하여 다양한 다기전시와 함께 차밭의 정취를 느낄 수있는 곳이다. 추사 김정희가 반한‘선운작설’ 고창의 선운사는『세종실록지리지』와『동국여지승람』에서 명차의 특산지로꼽는 차생산의 명소다. 선운사 대웅전뒤의 나지막한 산의 이름이 다산(茶山)이라는 점도‘선운작설’의 역사를 말해준다. 동백나무 사이에 자란 차나무에서나는 차는 동백향이 배어있어 풍류를 아는 이들에게는 한번 맛보기를 소원할 정도라고 한다. 명차의 산지는 인근에 좋은 다기를 생산하는 도요지가 있기 마련. 부안 줄포일대의 청자도요지는 전남 강진과 더불어 차문화 연구에 사료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그 외에도 전북지역에는 익산시 웅포 일대의 야생차군락지를 비롯하여 순창 강경마을에 대규모의 차나무군락이 있어 가히 차문화의 중심지였음을 알려주고 있다. 내장산 백양사에서 스님들에 의해 덖어진 차는 절에서 소화하기도 부족한 양이어서 아는 이가 있어야 맛 볼 수 있다고. 최근에는 전주의 오목대 일대에서도 자생차 군락이 발견되었다 하니 전북은 곳곳에 차나무가 자생하는 차의 메카로써 역사성과 미래성을 두루 갖추고 있는 셈이다.전남 강진에 초의선사와 다산 정약용의 만남이 있었다면선운사에는 백파선사와 추사 김정희의 교우가 있었다. 당대의 선승과 서화의 대가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으나 이미서로에 대해서 흠모하던 사이. 백파가 선운사의 동백향이 배인 첫물차를 따서 추사에게 보내며 주고받던 서신이 자못 플라토닉하다. 따자마자 바로 즐겨야 향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차의 특성상 백파선사의 상좌승은 새벽길을 걸어 한양으로 갔다.(유럽에서도 햇차의 향을 즐기려는 사람들의 욕구는쾌속선의 개발로 이어졌다. Tea-Race로 알려진 햇차 운반경쟁은 중국 푸젠성에서 영국까지 최단 시간에 차를 운반하려는 선주들의 경쟁을 일컫는 것. 좀 더 빠른 쾌속선의 개발과 경쟁은 당시로썬 흥미로운 볼거리였는데 가장 빨리 운반된 차가 가장 비싸게 거래되었기 때문이다) 선 수련의 과정에서 다반사로 중국 속담에“이른 아침한 잔의 차는 약장사를 굶긴다”는 말이 있다. 실제로 흡연자의 경우, 녹차를 전혀마시지 않는 사람이 하루 1잔 이상 마시는 사람에 비해 폐암 위험이 13배나 높다는 연구가 있다.녹차가 서양에 소개된 방식도 약용식품이었다. 예나 지금이나낯선음식을접할때가장많이듣는말.‘ 몸에좋은것’이 녹차에게도 적용된 셈이다. 차는 동양에서 온 신비의 만병통치약이었다. 징기스칸의 유럽 원정 시에 몽골식 음차습관에서 전파된 것으로 알려진 음차방식은 설탕과 우유, 버터등을 가미해서 먹는 방식이 대부분이었다. 미국의 경우 차를쓴맛이 날 때 까지 오래 끓여서 마셨으며 뉴잉글랜드의 경우는 끓은 물은 버리고 남은 찻잎에 소금과 버터를 발라 먹었다고 한다. 다반사(茶飯事)라는 말처럼 차는 일상적으로 애음되던 음료이자 건강음료였던 셈이다.중국의 차문화는 기원전 6세기경인 당나라 때 대중화가되어 송나라 때는 유럽으로 수출을 할 정도였다. 이백의 시에 당대의 유명한 페르시아계의 차 시중꾼 이야기가 있을 정도니 다방 종업원과 카페의 매출의 상관관계도 오래되었다.중국에서 시작한 차문화는 영국을 비롯한 서구인들의 생활의 일부가 되었으나 우리나라의 경우는 그렇지 못하다. 신라 때 당을 통해 수입된 차문화가 고려 때에 귀족층을 중심으로 퍼졌다가 조선조에 이르러 시들해진 것. 18세기 말 정조 때에도 중앙 지식인이나 사찰을 중심으로 유행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전북의 차문화의 현재는 어디일까? 차문화의 복원 차 산업 개발에 가장 열심인 곳은 정읍시다. 이곳은 일제시대‘오가와’라는 교사가 입암면 천원리 일대에서 자생차나무를 발견한 후 대규모 재배를 시도했던 곳. 군청 내에관련 담당부서를 두어‘정읍사’란 브랜드를 만들고 자생차의 명품화에 행·재정적지원을 하고 있지만 아직은차문화에 대한 이미지 제고에 그치고 있다. 타 지자체의 차문화 행사는 이벤트성으로 끝나는 느낌이다.전주시에서 열린 <2009전주전통차문화축제>는 한복 콘테스트와 패션쇼를 비롯하여 전통차 예절겨루기 대회 등 차문화 전반에 대한 재인식을 불러일으키려는 야심찬 기획. 한옥마을에 세워진 하드웨어를 활성화하기 위한 시도였다. 그러나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차인(茶人)이 행하는 다도축제가자기들끼리 잔치로 끝나는 것 같아 아쉽다. 2008년 익산시에서 열린 <익산국제차문화축제>도 마찬가지. 늦게나마 지자체에서 차문화에 주목하고 전통차의 대중화를 통해 산업화와 관광자원화의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고 하지만 음식점의 대부분은 여전히 자판기에서 믹스커피를 제공하는 것이차문화의 현실이다.차문화의 복원은 음식문화의 정통성을 되찾는 것과 같다.『맛의 생리학』의 저자인 브리야사바랭은“무엇을 먹는지 말해보아라, 그대가 어떤 사람인지를 맞혀보리라”라는 말을 남겼다. 섭취하는 음식은 그 사람의 취향과 계급을 나타내며,더 나아가 음식문화 역시 그 사회가 추구하는 목표를 나타낸다는 말이다. 차는 음식문화의 정수이며 완성이다. 마침 국가식품클러스터 조성사업이 정부의 예비타당성을 통과, 국책사업으로 선정되면서 우리지역에서 빛을 보게 됐다. 맛에대한 본질적인 욕구에 식품을 통해 건강 문제까지 해결하려는 식품클러스터의 테마산업으로 차를 활용한 식품과 품질개발에 힘써야 할 것이다. 박태건 전북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으며『시와 반시』신인상과 대산창작기금을 수상했다. 현재 대안문화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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